해오름

[re] 2002/09/05-안도현의 시 한 수를 드립니다.

조회 수 13128 추천 수 0 2004.07.08 09:36:32
얼마전에 저도 "연탄길"을 읽었는데
안도현의 시가 떠올라서 시 한 수 올립니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을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주문한 설렁탕이 사무실로 배달되자 사무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려고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김 대리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팔을 끌며 안으로 들어왔다.
>
>"왜, 거기서 혼자 식사를 하세요? 우리도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하시면 좋잖아요. 어서 이리 앉으세요."
>
>김 대리는 도시락을 손에 들고 멋쩍어하는 아주머니를 기어코 자리에 앉혔다.
>
>"아니에요. 저는 그냥 나가서 혼자 먹는 게 편한데...."
>
>"아주머니, 저도 도시락 싸왔어요. 이거 보세요."
>
>정이 많은 김 대리는 아주머니의 도시락을 뺏다시피 해서 탁자 위에 올려 놓고는 자신의 도시락을 나란히 꺼내 놓았다.
>
>"아니, 왜 이 건물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식사할 곳 하나가 없어!"
>
>"그러게나 말야."
>
>"글쎄, 날씨도 추운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식사를 하시려 하잖아."
>
>김 대리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멀찌감치 듣고만 있던 창수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표시를 했다. 아주머니가 싸온 반찬통에는 시들한 김치만 가득했다. 숫기가 없는 아주머니는 자신이 싸온 초라한 반찬이 창피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대리는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해준 김이며 장조림이며 명란젓을 몇 번이고 아주머니에게 권해드렸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머니가 싸온 시들한 김치만 먹었다.
>
>"김치 참 맛있네요,아주머니"
>
>김 대리의 말에 아주머니는 소리 없이 미소만 지었다. 다른 동료들도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맛나게 먹었지만, 창수는 단 한 조각도 입에 넣지 않았다.
>창수는 왠지 그 김치가 불결해 보였다. 워낙에 시들한 데다가 김치가 담겨 있던 통은 너무 낡아 군데군데 허옇게 벗겨져 있엇고 붉은 물까지 들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창수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근할 때 아내가 보온병에 담아준 율무차를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종이컵에 따르면 두 잔이 나오지만 머그잔에 가득 따라 자신은 먹지 않고 아주머니에게만 주었다. 아주머니는 거듭 사양했지만 결국 창수의 성화에 못 이겨 율무차를 마셨다.
>대신 창수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네 잔을 뽑아 동료들과 함께 마셨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가 어려웠는지 율무차를 마시는 내내 벽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
>"정말 맛있게 마셨어요. 근데 제가 다 마셔서 어떻게 하지요.?"
>
>"아니에요."
>
>아주머니는 창수가 준 율무차를 조금도 남김 없이 다 마시고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머그잔을 씻어다 준다며 밖으며 나갔다.
>
>그 날, 7시쯤 집으로 돌아온 창수가 보자마자 그의 아내가 대뜸 물었다.
>
>"아침에 가져간 율무차 드셨어요?"
>
>"그럼."
>
>"어쩌면 좋아요. 맛이 이상하지 않았어요?"
>
>"왜?"
>
>"아니 글쎄, 율무차에 설탕을 넣는다는 게 맛소금을 넣었지 뭐예요. 저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설탕 통에 맛소금을 담아 놓았더라구요."
>
>창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싸온 김치를 그가 불결하다고 생각할 때, 아주머니는 소금이 들어 있다는 짜디짠 율무차를 마셨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몇 번이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
>그 날 밤 창수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깰 뿐이었다.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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