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교회에 일년에 두세번 나오는 회지가 있는데, 얼마전 나온 이 회지에 "세상사는 이야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삶의 중심추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기에 좋아서 실어봅니다.
# 의사로서의 길 - 오중완
(중략)...
의사는 환자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사의 목표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있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변호사가 있는 사회가 불의한 사회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병든 사회 속에 살면서 질병을 없애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무(無)에 이르기를 목표로 삼는 사람이 의사입니다.(과연 변호사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영(零)이 되게 하고자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의사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세상이 병들어 있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튼 환자 때문에 의사가 존재할 수 있기에 저는 환자들 옆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더러 아주 황당한 환자들을 만나서 정말 간도 쓸개도 다 꺼내 놓고 그 환자를 달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병든 사회의 인간의 모습이므로 저는 그런 사람들을 피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 대개 생각하듯, 저의 선후배 한의사들도 대부분 제가 개원을 하기보다는 학교에 남는 것이 한의학을 위해 더 좋을 것이라고, 제가 학교에 남아 있으면 그런 황당한 환자들을 만나 고생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합니다. 제가 환자들과 씨름하는 것이 보기에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환자를 돌보라고 의사가 있는 것이다. 의사가 되어서 편한 것만 찾으려 하면 그건 잘못 생각한 것이다. 편하게 살려고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돌보려고 의사가 되는 것이다.
저는 저명한 의학자가 되기 보다는 환자를 잘 치료하는 임상의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성전에 한가롭게 앉아서 찾아와 제물을 바치고 간구하는 자들에게나 눈길을 주는,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나 응답하는 배부르고 교만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삶의 질고를 지고 힘들고 괴로워서, 기도할 틈도 없이 탄식하고 신음하는 노예들을 사랑하사, 그 뜨거운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비참을 숙명으로 여기며 항거할 생각조차 못하던 노예들에게 그들도 인간임을 일깨우고 그들을 당당한 인간으로 세우신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배부르고 편안한 자들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친히 찾아 오사 그들의 상처에 직접 손을 대시고 어루만지시며 차마 그 고통을 가만히 바라볼 수 없어 친히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저의 미약한 손을 통하여 환자들을 어루만지시고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루속히 바로 이 다음 순간에라도 이 땅에 임하시사, 의사를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