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조회 수 6267 추천 수 0 2008.05.20 04:16:47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뭘까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내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 확고한지
마치 자기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뭘까
남들은 가끔 나더러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친절, 분명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관 같다는데

나는 뭘까
남들은 또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하루를 지내는 내 모습이
어찌나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만을 아는 투사 같다는데

남이 말하는 내가 참 나냐
내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냐
새장에 든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약한 나
목을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아름다운 색깔과 꽃과 새 소리에 주리고
좋은 말, 따뜻한 말동무에 목말라하고
방종과 사소한 굴욕에도 떨며 참지 못하고
석방의 날만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고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게 된 나다
이별에도 지쳤다 - 이것이 내가 아닌가

나는 뭐냐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참 나냐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이 둘이 동시에 난가
남 앞에선 허세, 자신 앞에선
한없이 불쌍하고 약한 나
이미 결정난 패배 앞에서
허둥대며 떠는 패잔병에
견줄 것인가

나는 뭘까
이 적막한 물음을 나는
끝없이 희롱한다
내가 누구든
나를 아는 이는
오직 당신뿐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 하느님!


* 본회퍼는 기독교 목사이면서 신학자였습니다. 독일에서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하였다가 사전 발각되어 감옥살이를 하다가 사형당하였습니다. <무엇에 따르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시는 처형당하기 전에 감옥에 있으면서 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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