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부드럽게 웃는다
   -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김태빈 | 한성여고 교사

 

사람들은 두려운 것을 종종 싫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의지의 굴복이지만 싫음은 자신의 의지에 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놀이기구의 고전인 '바이킹'을 싫어한다. 인간의 감정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작위성과 그 날카로운 긴장을 별수 없이 견뎌야 하는 원추운동의 반복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싫음의 이유는 사실 두려움의 이유다. 나는 바이킹을 타는 것이 두렵다. 명성에도 불구하고 『장미의 이름』을 제쳐두면서 그런 류의 소설이 싫다고 했던 것은 사실 그 소설을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장미의 이름』을 읽는 내내 나는 '바이킹'의 두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소설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중세철학 난해함과 당시의 복잡다단한 사회, 정치적 배경에 대한 무지를 한 꼭지점으로, 기호학을 활용한 소설의 형식적 특징 - 이것도 정확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에 몰이해를 또 한 꼭지점으로 해 『장미의 이름』독해는 쉼 없이 흔들렸다. 칠 일에 걸친 비교적 단순한 서사에 흥미를 느끼고 안심하고 있노라면 또 다시 『장미의 이름』은 이단논쟁과 해박한 철학적 사유로 나를 어지럽게 했다. 이 글은 그 어지러움 가운데 간신히 건진 몇 가지 오해의 편린일 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신학자 존 쉘비 스퐁은 '머리가 거절하는 것은 결코 가슴이 예배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신앙의 본질을 물은 바 있다. 신앙의 본질은 믿지 못할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치 -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 - 를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이라는 그는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의 맹목을 흠 없는 신앙으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건전한 비판을 십자가의 고행 및 이단의 핍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비판이 거세질수록 자신의 신앙의 신실함이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에는 강퍅함은 있을지언정 신앙에 대한 최소한의 진정성은 없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만큼의 진정성으로 기독교적 맹목을 추구하는 것은 그나마 가치 있는 일일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도 해칠 수 있는 믿음은 과연 건전한 믿음일까. 호르헤 수도사의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신념이 커지면 커질수록 주변의 비극도 커졌다. 중세의 교조적 신학은 그 단단함 때문에 사람들을 불행하게 했으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종말을 고한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뜻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른다.

 

'진리는 오로지 진리 그 자체의 힘으로만 인정을 받으며, 그 힘은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정신에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 교황 바오로 2세의 회칙 "세번째 천년을 맞이하여" 중에서

 

여는 마당

아래 글을 참고해 『장미의 이름』의 시간적 배경이 된 중세의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겼다. 당시 아비뇽은 나폴리 왕국에 속해 있었지만, 교황청은 이때부터 프랑스의 세력권 내에 놓이게 되었다. 교황청이 이렇게 옮겨가게 된 데에는 프랑스 국왕의 위협이 결정적이었다. 11세기의 그레고리우스 개혁이래로 로마교회는 교회의 보편적인 지배권을,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여 교황에 의한 신정정치를 내세웠다. 세속의 국왕들은 이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세속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지상과 천국 모두의 지배자로서 오랫동안 군림해왔으나 12-13세기의 전성기가 지나감에 따라 세속화하고 타락했고, 이로써 교회가 원래 가졌던 종교적 열정과 청신한 기풍은 점차 쇠퇴해 갔다. 하나의 권력체로서 비대해진 이상 교회 역시 그 본래의 이상에 투철하기보다는 현세적 이익과 세속적 권력 확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14세기 이래로 교회는 스스로를 개혁할 의지를 잃은 것은 물론 교회 밖의 새로운 신앙운동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1300년대 초부터 세속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수많은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고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신비주의가 발달했으며, 자유정신 형제단의 수가 증가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에 대한 숭배보다는 국가에 대한 숭배 풍조가 증가했고, 가시적이고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만연했다. 이러한 청빈운동과 국가에 대한 숭배라고 하는 서로 모순적인 것이 동시에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실의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교황에 오른 요한 22세는 일찍이 프랑스 왕 필립을 도와 거짓 모함으로 성당기사단을 박해한 바 있다. 그는 성당기사단을 파렴치한 범죄조직을 매도하고 타락한 성직자들과 손을 잡아 재물을 가로챘던 것이다. 천재적인 재정 전략을 발휘하여 세속 군주들의 권력을 대체하고, 재정적 힘으로 세상에서의 권위를 내새웠던 교황의 입장에서는 청빈사상을 내세우는 교파가 무척이나 껄끄러웠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지아에서 소집되었고, 총회장이었던 체제나의 미켈레는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여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물건을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할 수도사들은 재물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교황은 재물을 소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황제를 임명하는 권한까지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교황 요한 22세가 이를 못 마땅해 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또 한편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 내부에는 권력화 된 수도회를 부정하고 아주 엄격한 청빈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는 집단도 있었다. '엄격주의파'로 불린 이들은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한 묵시록적 시대가 선행하고, 그 전에 맨발의 명상가들이 나타난다는, 이른바 칼리브리아의 요아킴의 천년왕국설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그 맨발의 명상가들이라 믿는다. 1318년에는 4명의 엄격주의파 수도사들이 화형을 당하는 등 박해를 받기도 했으며, 페루지아 총회에서는 카잘레의 우베르티노와 안젤로 클라레노가 교단의 선언에 불복하기도 했다.
- 강유원, 『장미의 이름 읽기』참조  

 

지도 방안
『장미의 이름』이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14세기 초반은 가톨릭교회의 폐단이 극에 달한 시점이자 ‘신에 대한 학문’을 핑계로 어떠한 이견도 수용하지 않았던 암흑기가 서서히 균열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청빈 논쟁’을 비롯한 다양한 갈등이 가톨릭교회 권력과 세속 군주들 사이에 벌여지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聖)과 속(俗)은 엄격히 분리되지 않았으며 서로 혼재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청빈’을 비롯한 기독교 교리는 그 진정성을 잃어버린 채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기능할 뿐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전해지면서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도 우주 만물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태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중세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논리적 비수로 역할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맞물려 모든 지식을 독점했던 당시 교회권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세속의 대학이 성장하면서 지적 독점력이 상당부분 약해진 것입니다. 『장미의 이름』이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닌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입니다. 그래서 한 연구자는 『장미의 이름』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 있는 생생한 지적 보고(寶庫)’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 작품의 배경을 간단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펴는 마당

1.『장미의 이름』은 아드소 수련사의 '성실한 연대기'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7일 동안 일어난 일을 정리해 봅시다.

 

지도 방안  『장미의 이름』의 외화 서술자는 '서문'과 '노트'에 등장하는 '나'이고 내화 서술자는 등장인물인 아드소입니다. 물론 이 작품이 전형적인 액자구성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의 줄거리는 아드소에 의해 서술된 내용, 즉 '아드소의 원고'의 내용만을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이 작품은 연대기적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종의 하이퍼텍스트처럼 수많은 곁가지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주요한 사건만을 정리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제 1일
11월 말 경 수련사인 아드소는 모종의 임무를 띠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와 함께 문제의 수도원에 도착한다. 윌리엄 수도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원장을 비롯한 수도사들의 신망을 얻게 되고 원장은 전날 발생한 아델모 수도사의 살인사건 해결을 부탁한다. 

 

제 2일
두 번째 날 조과, 즉 새벽 2시 30분 경에 시작되는 예배 시간에 또 다른 수도사인 베난티오의 시신이 발견된다. 윌리엄 수도사와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하지만 윌리엄 수도사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장서관의 미궁으로 들어가지만 길을 잃고 만다.

 

제 3일
의혹을 받던 베렝가리오의 방에서 피 묻은 천이 발견되고 결국 베렝가리오는 한밤중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윌리엄 수도사는 장서관의 미궁을 깨뜨리기 위해 미궁의 지도를 그린다. 아드소는 식당에서 여자를 만나 육체적 관계를 갖고 번민하다 윌리엄 수도사에게 죄를 고백한다.

 

제 4일
윌리엄 수도사와 세베리노는 베렝가리오의 시신을 검사하다 독살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황제측 사절인 프란체스코회 대표들과 교황측 대표단이 수도원에 도착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장서관 미궁으로 다시 들어가 <아프리카의 끝>에 이르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다. 살바토레는 엉뚱한 짓을 하다 베르나르 기에게 체포된다.

 

제 5일
그리스도의 청빈에 대해 황제측과 교황측 대표단이 갑논을박하고 세베리노는 윌리엄 수도사에게 이상한 책 이야기를 한 후 시체로 발견된다. 베르나르 기는 심문을 시작하고 종과 성무 시간에 호르헤는 가짜 그리스도의 도래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제 6일
조과 성무 시간에 말라키아가 꼬꾸라져 죽고 아드소는 꿈을 꾼다. 윌리엄 수도사는 아드소의 꿈을 해몽해 준다. 수도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살인 사건 조사를 종료할 것을 종용하고 윌리엄 수도사는 아드소가 우연히 했던 말을 통해 <아프리카의 끝>에 들어가는 비밀을 알아낸다.

 

제 7일
<아프리카의 끝>에 들어간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는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호르헤 수도사를 만나고 아리스토렐레스의 『시학』제 2권이 모든 살인사건의 원인임을 밝혀낸다. 그 책을 호르헤 수도사로부터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장서관에 불이 붙고 그 불은 수도원 전체를 태우고 만다.

 

뒷말
화재가 발생한 이후 수도원은 사흘 밤낮을 탔고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뮌휀에서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사는 헤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아드소는 이탈리아에 갔을 때 그 수도원의 폐해더미를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타다 만 양피지 조각을 바랑 두 개에 가득 채워온다. 그 후 아드소는 유물의 문자를 해독한다.

 


2.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 수도사가 5명의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감추고 싶어 했던 책은 아르스토텔레스 『시학』의 제 2권입니다. 아래의 자료를 통해 그가 이 책의 공개를 지극히 꺼렸던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희극은 보통보다 못난 사람들의 모방이다. 그러나 인간의 온갖 악에 관련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희극적인 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의 일종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일종의 결함이며 창피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통이나 파괴의 성질을 띠지는 않는다. 명백한 예를 들자면 희극의 탈은 추하고 일그러졌지만 고통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부에서 우리는 비극을 다루면서 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야기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의 창출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씻어 내는 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이제 약속대로 희극을 풍자극, 광대극과 더불어 다루면서 이 희극이 어리석은 자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비극과 같은 작용을 하는 과정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 윌리엄 수도사가 번역한 희극에 관한 『시학』2권 도입부 부분

 

이 서책(『시학』2부)에, 웃음은 예술로 과대평가되어 있고,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으로 과장되어 있어요. 이것이 철학이나 부정한 신학의 대상이 된대서야 어디 말이나 되는 노릇입니까? 교회는 범부의 이단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제 죄로 저 자신을 심판하거나 무지로 자멸하게 되는 법이랍니다.

- 호르헤 수도사의 웃음을 부정하는 말

 

비극과 희극은 모두 카타르시스, 즉 감정 정화를 불러일으킨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듯한 희극의 감정 정화 작용에 대해 서술한 시학』2권을 호르헤는 왜 그리도 숨기고자 했던 것일까? 이는 이 책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세 철학에 있어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중세 철학은 인간의 이성으로써 초월적인 신을 논증하고자 하였지만 신을 논증하기에 마땅한 이성적 도구가 없었다. 12세기가 되자 아랍 세계에서 보존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들이 서양에 유입되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의 자연철학은 『성서』에서 도출되는 것들을 보충했다. 그것은 또한 비판적 추론에 필요한 도구와 개념적 원천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굳이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만으로도 세계를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철학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중세 철학 체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강유원, 『장미의 이름 읽기』

 

지도 방안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제6장 ‘비극의 정의, 비극의 여섯 요소’에는 ‘6보격 모방의 시와 희극은 뒤에 논할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비극에 관한 내용인 『시학』 1부는 현전하지만 희극에 관한 글이라고 추측되는 2부는 저자도 분명하지 않고 4세기까지만 남아 있었고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미의 이름』 ‘제7일’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호르헤 수도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하고많은 서책 중에서 어째서 이 서책만 그렇게 싸고돌았는지……. 무엇 때문에 당신은 갖가지 요술로 속임수를 쓰고, 당신 자신까지 저주를 면치 못할 짓을 하면서까지 이 책을 감추려 했소?’ 호르헤 수도사는 답합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오.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은 하나같이 기독교가 수세기에 걸쳐 축적했던 지식의 일부를 먹어 들어갔소.’ 중세적 종교의 엄격한 교리를 상징하는 듯한 호르헤 수도사는 희극 곧 웃음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시학』2부를 결코 다른 수도사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신성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웃음에 대해 그가 보인 편집증적인 증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가진 힘, 즉 탄탄한 이성적 논리 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복종과 열정 위에 정초한 종세의 교조적 철학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아래 글을 참고해 진리를 추구하는 호르헤 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의 태도의 차이를 생각해 봅시다.

옆 그림은 플라톤의 학원을 그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왼쪽 둥근 아치 모양의 문 밑에 걸어들어 오는 두 사람은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런데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은 진리가 ‘하늘에 영원한 이데아(idea)’로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참된 본질은 하늘에 있다기보다는 바로 이 지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에 대한 주석의 역사다.’라고 플라톤 철학을 상찬한 바 있다.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이자 스승인 플라톤을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과감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주고받게 된 계기는 예사롭지 않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고봉은 서른둘의 나이로 패기와 열정을 갖춘 젊은 학자였다. 그는 단지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를 하기 위해 학문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진정한 삶의 진리를 터득하려 했다. 고봉은 마침 서울에 와 있던 퇴계[지금의 국립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를 찾아가 그와도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당시 퇴계는 이미 나이 쉰여덟의 대학자로 낙향하여 학문에만 힘쓰고 있었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계속 거절할 수 없어서 잠시 서울에 와 있던 참이었다.

퇴계는 그런 그를 무시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학자로서 존중해 주었다. 그것은 퇴계가 고봉을 만나고 난 얼마 뒤 고봉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편지로 써 보낸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 시작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1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약 백 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두 선생의 사단칠정 논쟁은 독자적인 한국 주자학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리학은 태생적으로 중국의 학문이었기에 조선의 성리학은 외래사상의 추수나 반복으로밖에 평가될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선생의 논쟁은 성리학을 단순 수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지도 방안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과 태도는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정한 시대와 지적 권력에게 포획된 진리는 더 이상 진리일 수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진리는 무한하기에 둘의 어긋남은 필연적입니다. 형편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진리의 담지자로 자처하는 사람은 편협한 맹종에 빠졌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갖힌 사람일 것입니다.

호르헤 수도사는 “지식의 역사에는 발전이나 진보가 있을 리 없습니다. 오로지 연속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요점약설(要點略設)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하며 성서만이 유일한 진리의 기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르헤 수도사에게는 새로운 지식의 탐구를 불필요합니다. 이미 성서에서 진리를 모두 밝혀 두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흠 없이 보존하는 일뿐입니다. 이런 호르헤 수도사에게 윌리엄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호통 칩니다. “이 영감아,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플라톤과 퇴계는 모두 자신만의 철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이견 또한 존중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대방의 견해를 경청하는 유연한 태도야말로 진정한 진리에 도달한 자들의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쓰는마당

 

다음 글을 읽고 종교적 정통성과 이단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요약하고 이것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을 논술해 보십시오.

 

서부 캐나다 북쪽 어디에 외딴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개라면 눈썰매를 끄는 허스키라는 개밖에 없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개’하면 떠오르는 것이 회색 털, 반 미터 정도의 키, 우뚝 솟은 귀,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 늑대 같은 짖음 등이다. 그들의 경우 개라면 무조건 허스키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바뀌어 이 마을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이 대도시나 다른 주로 나들이를 나갈 뿐 아니라 멀리 다른 나라에까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디로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사람이 중국산인가 하는 시츠라는 개 한 마리를 가지고 왔다. 갈색인 데다가, 손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몸집, 귀는 척 늘어졌고, 긴 털이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고, 입은 몽땅하고, 짖는 것도 캥캥하는 소리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개를 놓고 이것이 개냐 아니냐 하고 토의하기 시작한다. 몇몇 사람은 이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허스키와 기본적으로 같은 특성이 있으므로 개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개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껏 사랑하던 허스키에 대한 모독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설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사람들의 여행이 더욱 잦아지고, 그에 따라 이 마을에도 세퍼드, 도벌만, 라바돌 리트비어, 토이 푸들, 데리어, 치와와, 진돗개 등등의 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마을 사람이 개라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기호에 따라 이런 저런 개를 사서 키우며 자기들의 ‘개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아직도 허스키만 개라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모든 개를 개로 여기는 사람들의 ‘타락상’을 안타가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중 더러는 적극적으로, 다른 모든 개를 개로 인정하려는 사람의 오류와 그런 오류를 퍼뜨리려는 사람의 기도를 박멸하는 것이 허스키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그 허스키 충성파 사이에서조차 난리가 났다. 그 충성파 사이에 누구의 허스키가 순종 허스키냐 하는 논쟁이 생긴 것이다. 각자 그 마을 많은 허스키 중에서도 눈 위에 점이 박힌 자기 집 허스키만 순종 허스키요, 그것과 다르게 생긴 다른 집 허스키는 모두 허스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허스키 중에서도 이상스럽게 눈 위에 흰 점이 흐리게 보인다거나 색깔이 좀 다른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런 허스키는 요즘 새로 들어온 잡개의 피가 잘못 섞여서 생긴 가짜 허스키라는 것이다.

- 오강남, 『예수는 없다』

 

학생글

 

(가) 한성여고 3학년 안수현

저자는 외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 라는 이야기를 통해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일부분은 계속해서 보아온 허스키라는 개만이 ‘진정한 개’라고 보고, 다른 개들은 개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순종과 잡종을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좁은 안목을 가지고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만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 그 밖에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더 많은 종류의 종교들이 있다는 것이 이 저자의 핵심이라고 본다.

나도 같은 입장이다.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독실함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논리는 옳지 않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제일이고 그 외에 존재하는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단’이라는 부정적 어감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기피대상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다른 종교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종교로 인해 마을 사람들끼리 다투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종교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는 네트워크로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때인데 왜 종교로 인해서 갈등을 빚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서로 조금만 차이를 이해해주고 그들만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존재를 존중해준다면 모든 종교가 어우러져 사람들 간의 갈등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 한성여고 3학년 김세령

이 글은 종교적 정통성에 대한 대립을 개의 사례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개라고는 허스키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종의 개를 보게 되고 허스키와 다른 종 사이의 정통성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대립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허스키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느 쪽이 순종 허스키냐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여기서 저자는 종교 간의 대립 또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종교 간의 파벌 싸움 등이 정통성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제시해 준다. 즉 정통성의 문제에서 시작된 논쟁은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종교를 이단이라고 생각하게 하며 결국 종교의 대립을 낳게 하는 것이다.

나는 종교적 정통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에 대해서 정통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글에 제시되었던 사례처럼 그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예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예루살렘을 사이에 두고 한 십자군 전쟁을 들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의 명분이 비록 성지인 예루살렘 탈환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의 진인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서로의 종교를 이단시하는 태도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16세기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단행되었던 당시 기독교 내의 구교와 신교의 싸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예로 보아 종교 간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결국 순수한 신앙 활동이나 믿음을 방해하는 하찮은 일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정통성을 따지기 보다는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첨삭

정통성은 엄격한 교리주의자에겐 종교의 본질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정작 그들이 섬기는 신의 관점에서는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신은 그 자체로 자족하는 존재이며 세상의 모든 만물을 관장하는 존재일 텐데 특정 교리에 어긋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배제하는 신이라면 우리가 믿을 만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통에 의한 이단의 정죄는 정적에 대한 신을 빙자한 폭력이거나 기껏해야 밥그릇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허스키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점은 명백하다. 개별적 대상인 ‘허스키’를 ‘개’라는 보편적 존재로 확대한 것은 ‘외딴 마을’ 사람들의 오류일 뿐이다. 그들이 다른 종의 개들을 개라고 규정하거나 그렇지 않을 권리는 없다. 순종 허스키만을 개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독실한 믿음은 일말의 진정성이 있을지 몰라도 그의 개에 대한 인식은 편협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종교만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맹렬한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가)와 (나)는 제시문의 핵심을 적절히 파악했다. (가)는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비판하고 있는 반면 (나)는 종교의 정통성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둘의 결론은 유사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또한 (가)가 정통과 이단의 갈등과 대립의 사례로 든 현재 진행 중인 ‘종교 전쟁’과 (나)가 제시한 십자군 전쟁과 종교 개혁이 어떤 점에서 종교적 정통성에 대한 논쟁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진술이 없어 아쉽다. 상식적 진술은 오류의 가능성은 낮지만 동시에 논지의 선명성 또한 확보할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믿지 못할 것을 믿게 하는 것은 종교적 열정이 아니라 종교적 무지와 아집일 뿐이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통해 경험한 영적 체험과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소망과 열정은 결코 타인의 믿음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앙만을 강요하는 태도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거리낌이 없는 영의 교류를 경험한 사람이 실제 삶을 옥죄는 교조적 태도를 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단은 실재하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종교적 기득권에 도전하는 어떠한 주장과 행동도 그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이단으로 단죄되었던 것이 종교의 역사이다. ‘이단(異端)’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들만이 신의 본질을 독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통주의자들이야말로 신이 보시기에 ‘이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