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갈등과 문제 해결 
- 『내 방 찾기 전쟁』을 중심으로 

신혜금 |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독서치료 강사 kharp@hanmail.net


『내 방 찾기 전쟁』(로버트 킴멜 스미스 글 / 남궁선하 그림 / 푸른숲)은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죄책감과 '방을 되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욕망 사이를 오가는 소년의 심리가 잘 나타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불만의 발생에서부터 갈등, 문제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유머감각을 가지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초등학교 5학년인 피터는 "우리에게 진짜 있었던 중요한 이야기를 써 오라"는 국어 선생님의 특명을 받는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일어난 진짜 이야기를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철저하게 피터의 입장을 쓴 이야기이며, 또 피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읽어야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1. 이야기 속으로
   
로버트 킴멜 스미스가 작가가 된 계기는 딸이 잠들기 전 동화를 지어 읽어 준 것이었는데, 이야기를 지어내면 지어낼수록 점점 틀이 갖추어지면서 생생해져 갔다고 한다. 딸에게 들려준 그 이야기가 첫 작품인 『초콜릿 열꽃』이다. 스미스는 청소년 문학상인 뉴욕 니커보커 상 외에도 각종 어린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표지 그림이다. 왼쪽은 우리나라에서 번역하면서 새롭게 구성한 표지이고, 오른쪽이 원서 표지이다. 커다란 짐 가방 위에 할아버지와 손주가 등을 맞댄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은 아주 유사하지만, 왼쪽 표지가 더 만화적인 느낌을 준다. 원서에는 방문이 닫혀 있어서 두 사람 사이의 전쟁을 암시하고 부각한 반면, 번역본에서는 방문 사이로 엄마 아빠, 여동생이 몰래 두 사람의 신경전을 훔쳐보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번역본은 남궁선하가 그림을 그렸다.
피터의 부모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살게 된 할아버지를 집에 모셔오기로 한다. 12세 소년 피터는 사랑하는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이사와 같이 살게 됐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0년 넘게 지내며 정든 자신의 2층 방을 할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3층 손님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결정을 듣고 피터는 엉엉 운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기 때문에 2층에 있는 피터 방을 쓰고 피터는 3층으로 옮겨야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쓰던 자신의 방을 빼앗기게 된 피터는 부모님의 결정에 반항해 보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피터의 친구들은 방을 빼앗긴 것은 부당하다며 전쟁을 벌이라고 부추긴다. 곧 피터의 본격적인 작전은 개시된다. 처음엔 할아버지 방 알람시계를 새벽 3시에 맞춰놓고, 슬리퍼를 감추는 조그만 타격부터 시작된다.
피터의 행동을 가볍게 여기던 할아버지는 피터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응전을 시작한다. 피터가 가장 아끼는 게임을 숨겨놓는가 하면 피터 방의 알람시계를 꺼놓고, 칫솔을 숨겨놓는 등 피터를 단단히 골탕먹인다. 할아버지가 한 복수 때문에 지각할 뻔했던 피터는 할아버지의 틀니를 숨겨버린다.
이가 하나도 없는 당황한 할아버지의 힘없고 슬픈 얼굴을 본 뒤 피터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나를 알게 된다. 피터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할아버지는 지하방을 개조해서 자신의 방으로 쓰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피터도 원래 자신의 방을 되찾게 된다.

2. 피터의 심리
 
처음 피터는 사랑하는 할아버지랑 같이 살게 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피터의 방을 할아버지가 쓰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피터의 마음은 들끓기 시작한다.  

"피터, 우리도 할아버지가 어디서 지내는 게 좋을지 많이 생각해 봤어. 그런데 대답은 하나뿐이구나."
나는 잽싸게 대답했다.
"안돼요!" (24쪽)
 
피터는 자신의 방을 할아버지가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들은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여동생 제니퍼로부터 미리 들었다. 제니퍼는 비밀을 좋아하는데, 비밀을 잘 지키는 편은 아니다. 제니퍼에게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게 해주는 대신 "할아버지가 우리집으로 와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피터의 방을 쓰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정보를 이미 입수했던 것이다.
피터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피터의 부모는 피터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해 놓은 상태였다. 피터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계속 보도록 하자.  
 
아빠가 말했다.
"피터, 네 방밖에 없어."
"절대로, 진짜 100% 안돼요! 절대 안돼요!"
난 그냥 말한 게 아니었다. 있는 힘껏 고함을 쳤다.
엄마가 말했다.
"피터, 소리 지르지마."
 
피터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큰 소리로 표현하지만 크게 소리친다고 오히려 엄마에게 야단만 맞는다.
 
내가 간청했다.
"제니퍼가 방을 양보하면 안돼요? 왜 내 방이어야 해요?"
엄마가 대답했다.
(중략)
"제니퍼는 아직도 한밤중에 자주 잠을 깨잖니. 너보다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해. 아침엔 옷 입는 것도 도와줘야 하고. 제니퍼가 얼마나 굼벵이 같은지, 엄마가 얼마나 쫓아다녀야 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 안 그러면 날마다 학교에 지각할 거야. 피터, 넌 오빠잖아. 거의 다 컸어. 엄만 널 믿어."
난 툴툴거렸다.
"이건 옳지 않아요."
아빠가 대꾸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옳지 않아. 할아버지가 슬프고 외로운 것도 옳지 않고. 인생이란 언제나 공평하지 않아, 피터."
(중략)
"아니오, 절대 그럴 리 없어요. 난 내 방을 사랑해요. 거긴 내 방이에요!"
이렇게 소리치면서도 내 말이 먹힐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잇는 일을 했다.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달려가서,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미친 듯이 엉엉 울었다." (24∼26쪽)

피터는 부모님을 대화로 설득하려고 해 봤지만 실패했다. 아무리 부모님에게 호소해도 생각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기 때문에 3층을 오르내리기 힘드시고, 또 화장실이 좁아 씻기도 불편하시다는 이유와 동생을 3층으로 보낼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결정의 정당함을 설득하려고만 한다.
다리가 불편해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아픈 할아버지를 위해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안락한' 내 방을 내주어야 한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고 시작한다.

부모가 원하지만 아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개 부모가 이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유리한 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늘 싸움에 이긴다.
(중략)
"피터,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구나."
내가 물었다.
"정말, 치사하다는 거 알아요?"
"물론 알아."
"진짜 치사해요."
"네 말이 맞아."
난 투덜거렸다.
"진짜 어처구니없고, 치사하고 끔찍해요. 미치겠어요."
"그래, 그럴 거야. 이번 주말부터 네 물건을 하나씩 삼층으로 옮겨 놔야 해. 틀림없이 넌 삼층에서도 잘 지낼 거야."
"이사가기 정말 싫어요."
(중략)
"다른 선택이 있어요?"
"아니." (27∼29쪽)
 
한 쪽에게 일방적인 이해와 배려를 위장한 도덕적인 강요가 가해질 때, 다른 구성원에게 그것은 '폭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소중한 것을 내 주어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피터는 마침내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싶었지만 몇 달 전 할머니를 잃고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을 막상 접하자 측은해진다. 이런 피터에게 방을 빼앗긴 것은 부당하다며 전쟁을 벌일 것을 제안한 것은 단짝 친구들, 친구들은 미국 독립전쟁 시절 영국군에 맞선 독립군처럼 게릴라전을 벌여 '방도둑' 할아버지로부터 방을 되찾으라고 부추긴다.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는 방을 빼앗은 당사자인 할아버지와 게릴라 전쟁을 벌이게 된다. 피터에게 있어 이 전쟁은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영위하기 위한 '정당한 싸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 (중략) 할아버지에게 총을 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난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또렷이 떠올랐다. (62쪽)

피터는 할아버지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가족간에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의 일방적인 결정에 결코 승복하지 못한다.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자, 책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원하는 이유를 적에게 알리는 전갈을 할아버지에게 보낸다. '하루의 시간을 줄 테니 내 것을 돌려 달라. 안 돌려주면 전쟁을 시작할 것'이란 쪽지로 선전포고를 하지만 할아버지는 별달리 대응하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피터는  불안함에 몸달아 하기도 한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쪽지를 보내 전쟁을 선포했는데 나의 적은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이 될 것만 같았다. (68쪽)

피터가 하는 전쟁은 상대를 약올리며 장난치는 수준이다. 한밤중에 알람을 울리게 해 할아버지의 잠을 방해한다거나, 슬리퍼를 숨긴다거나,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시계를 숨기는 것 등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도 호락호락 방을 넘겨주려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피터를 점잖게 타이르고, 야단치고, 심지어 따귀까지 때리던 할아버지가 피터의 강경한 태도에 변화를 보인다.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지혜로운 노인'이란 필명으로 전쟁을 그만둘 것을 종용하는 쪽지를 보내고, 피터의 물건을 감추는 등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슬리퍼를 찾아서 침대 아래와 옷장을 뒤져보느라 일이 분쯤 시간을 허비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건 할아버지의 복수야! 지금 당장! 바로 오늘 아침에! 할아버지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시계가 늦게 울리고 슬리퍼가 사라진 것이다.
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으려고 맨발로 후다닥 욕실로 달려갔다. 칫솔이 안 보였다. 진짜 칫솔이 없었다. 개수대 위 플라스틱 물 잔 안에 쪽지가 있을 뿐이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 손가락을 이용해라.' (145∼146쪽)

할아버지가 한 복수 때문에 지각할 뻔했던 피터는 할아버지의 틀니를 숨겨버린다. 틀니가 없어서 입이 오그라들고 말소리가 불분명한 할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본 피터는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패배를 인정한다.
피터는 최후의 전쟁에서 쭈글쭈글 늙어 버린, 그래서 자신에 비해 한없이 약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직면하고는, 처음에는 아무리 작게 시작한 전쟁일지라도 진행이 될수록 점점 상대의 상처를 깊이 건드리게 되고, 그것이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3. 할아버지의 심리, 그리고 화해로 나아가기

처음 할아버지 눈에 비쳐진 피터의 '내 방 찾기 전쟁'은 어린 손자의 버릇없는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항상 원하는 건 모두 손에 넣으려는 버릇없는 손자의 막무가내 고집으로 보고 야단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틀니 사건'을 계기로  할아버지는 "나도 전쟁을 즐기고 있었단다. 이 전쟁이 내겐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됐다."면서 피터와의 전쟁으로 새로운 삶의 열정이 생겨 그것에 몰두함으로써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이 없어졌다고 손자를 다독인다. 피터는 다만 어른들 마음대로 결정한 일이라 화가 나서 그런 것이라고 할아버지에게 고백한다. 할아버지는 "누군가의 입을 다물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피터의 방을 빼앗은 것은 피터의 부모님을 포함한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이렇게 '내 방 찾기 전쟁'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진 할아버지와 손자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지점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전쟁을 통해 가족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바로 피터에게 방을 돌려주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어느 한쪽의 희생 없이도 합리적인 가족에 이를 수 있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아가 누구의 할아버지, 누구의 손자라는 정해진 이름을 넘어 서로의 삶과 꿈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유대감도 생길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자신이 작아 보일 때 우울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쑥 자라서 커진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더 이상 작은 일로 분노하거나 우울해 지지는 않는다. 어른다운 너그러움으로 세상을 대하게 된다. 가족은 배려와 사랑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된 강력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집단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배려나 사랑, 이해 등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만이 더 클 수도 있다.
또한 가족관계는 자신이 아무리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관계 자체를 없앨 수 없는 것이고, 보통 매일 서로 대면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때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족간에도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해당 문제에 대해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