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서관 활용 교육인가
이덕주 송곡여고 사서교사 oliblove@hanmail.net

1. 오늘도 도서관에서 <다양하고 삐딱한 꿈터>를 말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곡여고에 입학한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송곡여고 열린도서관입니다. 이곳의 이름은 열린도서관이지만 이곳의 내용을 설명하자면요. <다양하고 삐딱한 꿈터>랍니다. 여러분 교과서는 과목당 한 권, 합쳐야 10권 정도지만 여긴 보시다시피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다양한 책들이 있고요. 여러분들이 다양한 만큼 책과 길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삐딱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나 교육현실이 이미 문제가 많다는 것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세상이 이미 삐딱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중심을 잡고 똑바로 잘 살려면 삐딱한 세상에서 삐딱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둘 중 하나겠죠. 더 삐딱해지거나, 멀리서 보면 똑바로 거나. 하여간 있는 현실을 고민 없이 무작정 따라가지는 말자는 의미입니다. 유식한 말로 비판적 사고라고 해요. 그런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중요한 인간성 하나를 포기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꿈터 라는 의미는……. 여러분은 꿈이 있나요? 수정아 누가 너에게 너의 꿈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은미야 너의 꿈은 무엇이니? 꿈이 없다고 꿈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친구들 있죠. 그런 친구들은 이곳 도서관에서 나의 꿈을 찾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의 꿈은 이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친구들도 많죠. 교사라고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그것이 진정 나의 꿈인지? 또 그 꿈을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그 꿈을 먼저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 도서관엔 많이 있죠. 이곳 도서관의 책을 통해서 꿈이 단지 꿈으로만 머물지 않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꿈을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곳 도서관의 책에 담겨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러면 도서관 안에 어떤 다양하고 삐딱하고 꿈을 가진 이야기들이 있는지 우리 한번 어떤 책들이 있는지 일단 구경해볼까요. 보고 싶은 책들을 찜 했나요? 

지금부터는 우리 영화 몇 편을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죠. 먼저 함께 볼 영화는 재난영화인 <투모로우>라는 영화인데요. 도서관 장면이 들어간 영화의 결정판이자 가장 극단적인 영화죠. 즉, 도서관에 들어간 사람, 도서관에서 버틴 사람만 생존한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죠.

이 장면을 보면 결정적 시기에 휴대폰이 안되거나 잘못된 최신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서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인도하는 장면이 나오죠. 즉, 휴대폰 등 첨단 문명이 언제나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은근히 아니, 직접적으로 현대 과학문명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이 영화엔 들어 있어요.

가장 안타까운 장면인데, 왜 사람들이 최신정보인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온 정보와 창밖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와 남쪽으로 행진하는 장면을 보고 다들 따라나갔을까요? 분명히 주인공이 내 아버지인 기상학자가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마라, 밖으로 나가면 다 얼어 죽는다고 했는데도 말이지요. 맞아요. 바로 그것이죠. 다들 나가니까.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인데……. 여기서 도서관에 남아서 생명을 건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죠? 기상학자인 아버지로부터 직접 대처방법을 들은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신뢰하는 친구들, 또 주인공 청년의 이야기가 어떤 근거를 갖고 하는 이야기인지를 귀담아듣고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이었어요. 어쩌면 이런 상황은 단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어떤 순간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 올 수도 있고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이런 갈등을 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무난하게 선택해야 하나. 혹시 잘못된 길이라도 다 함께 죽으니까 덜 억울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갈 것인가요. 자, 우리 모두가 주인공같이 전문가 아버지를 가질 수도 없고 주인공도 마침 아버지가 기상학 전문가여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좋은 조언을 받았다 뿐이지 교육전문가이거나 상담전문가인것은 아니죠. 다양하고 때론 변덕스러워서 매번 변하기도 하는 우리의 꿈을 도와줄 다양한 전문가와 다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전문가들을 어떻게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답은 뻔하죠. 도서관입니다.

2. 학교의 교사들에게

, 여기 체육선생님이 계신데요. 만약 체육선생님이 운동장에선 잘 수업을 안 하시고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지식전달도 잘되는 교실에서 수업만 하신다면 어떨까요?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우리 체육선생님들은 운동장이 또 체육관이 가장 익숙한 교실이시니까요.

그럼 과학선생님이 과학실험실은 절대 활용하지 않고 오로지 교실에서만 수업을 하신다면요? 그럴 수있는 가능성은 좀 많이 있죠. 실험하기엔 빠듯한 수업진도, 실험기구를 다룰 때 혹시라도 생기는 안전사고 및 관리나 인력 문제 등, 대신 인터넷을 통해서 입수한 실험영상을 대형TV로 보여주면 되겠죠. 하지만 과학 선생님이 과학실험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힐난의 눈총을 보내거나 최소한 안타깝게 생각을 하겠죠.

그런데 왜 학교의 소위 말하는 인문과학 선생님들, 국어나 문학 사회 윤리 역사 도덕 선생님들이 학교의 도서관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선 왜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도서관에 사회교과교실이란 간판이 없기 때문인가요. 국어교과교실이 아니기 때문에요? 혹시 도서관에 피해라도 갈까 봐 하는 배려하는 마음이신가요. 왜 교과서나 문제집에 작품 일부만 들어있는 내용의 원문 전부를 한번 찾아보자고 하시지 않는 거죠? 역사수업을 하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다양한 제도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자료를 찾아보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죠? 사회나 윤리수업이면 계속 언급되는 다양한 사회적 논제나 가치의 충돌, 윤리적 선택에 대한 다양한 주의 주장에 대한 원저자의 글들을 찾아보거나 직접 비교해보지 않는 거죠?

물론 역시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많이 있죠.

하지만 우리가 사교육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인터넷강의에 대해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연습을 해보도록 하는 것, 단지 물고기 잡는 법을 지식으로 가르쳐주는 것만도 한계가 있지요. 다양한 교과에서 다양한 주제로 찾아보는 연습을 시켜주는 것, 이것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 아닐까요?

나의 아이가 아프다면,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처방이 약이 없다고 한다면. 현대의학으론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열에 아홉은 일단 다른 병원에도 가 볼 것이고 대한민국의 최고 명의를 찾을 것이고 여비가 된다면 외국이라도 갈 것입니다. 서민이든 재벌이든 질병에 관해선 철저히 의사의 진단과 의사의 말과 의사의 처방에 의존해야 하죠. 그것이 우리의 자연스런 문화요 현실입니다.

그런데 <로렌조 오일>이란 영화에선 아이가 불치병 선고를 받자 부모는 바로 도서관에 가서 그 병에 해당되는 자료, 즉 병의 원인, 병의 진행, 환자의 사례 등등을 찾습니다. 의사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의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해서 정보를 찾고 그 지식을 활용하여 아이의 치료에 결국 성공을 합니다.

이 영화를 교육과 좀 비약적이지만 연결시켜 본다면 주인공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도서관에서 선생님이 내주신 여러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연습과 훈련을 쭉 받아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가 아픈 인생의 가장 절박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도서관을 찾아서 제약회사나 의사들이 도외시한 희귀병에 관한 연구를 스스로 합니다. 이런 시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들의 교수법이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화가 <위험한 아이들>이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선 선생님이 문제아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시가 있는데 교사가 시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기존의 수업방법으로 몇 차례 시도를 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러자 수업방법을 바꾸어 그 시에 대해서 직접 가르치기를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가서 관련되는 시를 찾도록 합니다. 물론 경품을 걸기는 하지만요. 그러자 아이들은 교실수업에서의 따분한 표정을 버리고 진지하게 시를 찾아 읽고 교사가 내어준 과제에 답하려고 서로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답을 열심히 찾아갑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이런 영화장면이 더 이상 부러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험이 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 도서관활용수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논술을 교육하는 선생님들께

제가 아는 선생님이 논술이 학교에서 뜨기 전에 아이들을 모아서 논술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 의식화 교육하는 것 아니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서울대의 통합논술 어쩌고 가 뜨니까 전혀 논술적이지 않은 분들이 너도나도 논술교육을 아이들에게 하겠다는 것을 보면서 그만 논술교육을 접었다고 하더군요. 이제 다시 영어가 뜨고 논술은 공교육현장에서 좀 잠잠해지거나 몇몇 상위권 학생들만의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때가 다시 모든 학생에게 필요한 책읽기와 논술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교가 성적 올리기, 입시교육에 매몰될 때 학원의 효율성과 긴장 긴박함을 따라갈 수 없죠. 그런데 요즘 학교가 그러고 있으니, 학교 선생님들도 학원의 원장님이나 코스닥 상장까지 하고 있는 대기업 학원관계자들을 모셔서 연수를 받기도 하고, 아이들은 교사의 수업보다도 인터넷의 명강사 강의에 매혹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몇 개의 강의를 들어보았는데 정말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가고 이해되도록 개념설명과 틀을 잡아주는 강의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 우리 아이들의 학력이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하는 능력도 그렇고, 어쩌면 명강사의 명강의가 우리 아이들에게 지식을 잘 정리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밤 11시, 12시까지 수험생 같은 공부를 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져야하니 학습플래너다 코칭이다. 하는 등 아이들에게 비전(내지는 야망과 욕망)을 심어주고 학습동기를 부여해주고 관리해주는 것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지식전달만의 한계 내지는 아이들의 지식 탐구 학습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내가 이렇게 한다고 다 노벨상 타는 것도 아니고 의사, 변호사나 펀드매니저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또 무엇으로 아이들을 독려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해낼까 하는 기대(?)도 됩니다.

어쩌면 이런 때일수록 온고지신의 지혜로 돌아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교육이 자리잡기 전인 과거 서당식 교육이 그랬을까? 학동과 훈장이 한동네 살면서 개인적 관계를 맺으며 부모에 대해서도 알면서 한 권 한 권 선현들의 이야기를 익히고 토론하고 했던 식의 진부해 보이는 공부 방식.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을 꼭 공부만 하려고 가는 것은 아니죠? 그곳엔 무엇보다 친구가 있어서이고 만약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챙김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가 보았던 그 영화대로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아이들은 다음 달에 학원을 등록 안 할지 몰라요. 설령 아이들은 잡아놓을 수 있다고 해도 단기간에 내신 성적이 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부모님들이 먼저 학원을 끊을 걸요. 그건 오히려 공교육에서 가능하지 우린 학원에 도서관도 없고…….” 하던 학원 선생님들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수고한 열매를 혹시나 다른 학원의 다른 교사가 따갈지라도 그 아이는 우리 아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태평한 이야기겠죠.

요즘은 학원에서도 소규모의 도서관을 만들고 바코드까지 붙여서 대출반납까지 하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 요즘 지역사회 개방하는 학교 도서관도 있고 공공도서관도 좀 늦은 시간까지 개방하니까. 물론 아이들이 편하게 맘대로 찾고 토론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공교육에서 안되면 사교육에서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