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들어간 사람들
-『초정리 편지』, 『책과 노니는 집』, 『책만 보는 바보』

안정희 논술교사 hee-4747@hanmail.net

 

새로운 물길을 내는 것처럼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다른 사람보다 앞서 생각하고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때로 그들의 앞선 생각과 행동은 모진 매를 맞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는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역사는 그렇게 앞서 나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앞서 나간다는 것은 앞에 어떤 것이 나타나더라도 그것과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이나 관습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사실은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 틈은 여러 곳에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실개천처럼 흐르겠지만 자신을 억누르는 무엇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앞선 자들의 생각을 배우고 저항의 힘을 기르고 커다란 역사의 강을 만든다. 다만 누군가 앞서 나가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어린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가끔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늘 무엇인가 아쉬웠다. 나는 역사를 따로 공부한 일도 없을뿐더러 새싹같이 푸르른 어린이들에게 어떤 왕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위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대의 권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이어졌는지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앞선 생각과 행동으로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 갔는지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책들이 보인다. 이야기 구성도 좋고 문학적인 분위기도 좋으면서 한 시대의 화두를 소재로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다. 반갑다.

우선 아래 세 권의 책을 통해 앞선 이들의 생각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공부해 보면 어떨까 싶다.

 

『초정리 편지』 배유안 / 창비

나온 지 꽤 됐다. 서너 살이 되면서부터 우리글은 물론 다른 나라 문자까지 배우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말은 있되 글자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 당연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한자가 당연하게 우리의 문자로 쓰이던 시대, 소수 양반들만 한자로 소통하던 조선 초기, 건국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도 한글의 창제는 참으로 획기적인 발상과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난 후 시집간 딸에게 시험해 보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너, 글을 아느냐?”

“글을요? 모릅니다.”

“배워보련?”

“예? 글을 배워요?”

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ㆆ ㅎ ㅇ ㄹ ㅿ

ㆍ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이게 글이란 것입니까?”

“글자니라. 자, 보아라. 이것은 ‘기’, 이것은 ‘키’이니라.”


문자를 배울 수도, 배울 필요도 없어 보였던 가난한 석수장이 소년이 초정리로 휴양을 왔던 임금을 우연히 만나 한글을 배우게 된다. 산속에서 우연히 만난 양반 할아버지로부터 글자를 배운 소년은 누나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비록 사람이 가서 전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엄청난 소통과 통신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소년 장운은 당시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도구가 갈급했을 테고 한글은 그 갈급함을 채울 수 있는 좋은 표현수단이었을 것이다. 창조는 갈급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갈급한 마음은 생각을 하게 하고 공부를 하게 한다. 무지한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도 참 훌륭하지만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여러 사람에게 퍼뜨린 이들도 아주 훌륭하다.

흔히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꿋꿋하게 민족성을 지키며 살아남은 까닭을 문자를 가졌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훌륭한 우리 문자의 창조와 역사에 관해 어린이들과 함께 읽으며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 문학동네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역시 흠뻑 빠져서 읽지 않을까 싶다. 제목도 아름답고 그림도 책갈피에 묻어두기 아까울 만큼 참 아름답다. 문체가 간결하고 흐름이 빨라 어린이들이 내용에 몰입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때가 1446년, 그 후 수많은 소설이 창작되었다.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 「사씨 남정기」 따위가 나왔다.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필사본이 널리 퍼지면서 한글로 된 책들이 널리 읽혔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서민들의 의식이 변화되었고 문자를 아는 서민층이 많아지고 그들의 지식욕구가 많은 책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신분은 낮으나 비교적 자유롭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했던 기방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글 소설이 널리 읽히게 되었다.

청나라 사신행차를 따라갔던 역관들 편에 신간이 들어오는 날은 책방 안이 쥐라도 풀어놓은 듯 들썩거렸다.

글방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일고여덟 살배기 아이들부터, 머리에 서리가 내린 반백의 노정승까지 약계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장이가 어깨에 둘러멘 책보 속에는 새로 필사한 『전등신화』와 『숙영낭자전』이 들어 있었다. 장이는 이야기책을 배달할 때 가장 신이 났다. 더구나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전할 때는 발걸음이 더 가벼웠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정확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아마도 조선후기, 18C 말~19C 초 정조 시대로 보면 얼추 맞을 듯하다. 17C 무렵 천주교가 서학이란 이름으로 전파된 이래 유교의 억압적 구조에 불만을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는 새로운 사상의 전파, 더구나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개심은 엄청난 회오리를 겪지만 쉽게 좌절되지 않고 신분과 계급이 위태롭게 존재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이는 조선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단한 조짐이었으므로 수차례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되었다.

“평생 책 베끼는 일을 하며 책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이렇게 호사스런 직업이 어디 있느냐? 앞으로도 장이 너와 작은 책방을 꾸려 이렇게 살고 싶다.”

주인공 장이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장이의 아버지는 책을 베껴내는 필사쟁이였고 이 새로운 직업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천주학 책을 베꼈다는 죄로 매를 맞고 죽음에 이른다.

단순히 보면 가파른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잃고 외롭게, 용케 성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보면 역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물길을 터 가는 앞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양반 홍교리나 기생 설향, 미적 그리고 책방주인 최서쾌들은 『초정리 편지』에 나오는 세종대왕을 비롯해 장운, 오복이, 또는 문자를 배우고자 했던 많은 석수장이들과 같은 인물일 수 있을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 보림

앞의 두 책은 사실에 기초한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이덕무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분량이 좀 많고 어린이가 읽기에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중간 중간 중요한 부분만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아주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양반의 핏줄이지만 반쪽짜리 양반이라 벼슬에 나갈 수도 없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서자였던 이덕무는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 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가난한 서자 출신의 선비, 그의 울분과 고뇌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보다 사물을 보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그를 세상을 앞서 가는 사람이 되도록 했을 것이다.

밥을 굶을 때가 더 많았던 가난한 나날들을 책을 읽으며 보내던 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스승과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18C 실학파의 중심인물들이다. 그는 홍대용으로부터 ‘지구’란 말을 듣고 새로운 세상을 깨닫게 된다. 땅이 둥글다니! 게다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있다니! 위아래가 없는 공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며 자신의 삶에서는 자신이 중심이라는 깨우침은 마치 한자만이 글자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한글을 알게 된 것처럼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왜 사농공상의 순서를 매겨 차별한답니까? 농사짓고 물건을 만들고 이를 파는 게 어디 위, 아래가 있는 일이랍니까? 사람에게 순서를 매겨놓고 차별하는 게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양반들이 그런 말을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박제가의 말이다. 신분질서가 당연히 존재했던 시대에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살고 있는 것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거나 엄청난 각성을 통해 얻게 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후에 박제가는 사신을 수행하는 일을 맡아 중국을 다녀오게 되면서 『북학의』라는 책을 썼다. 중국의 활발한 상업과 무역을 보고 조선도 백성들의 실생활을 변화시켜야 잘 살 수 있다며 상공업과 무역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유득공은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광해군 때 한백겸이 쓴 ‘동국지리지’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세상의 중심인 중국에 붙은 조그마한 변방이 아니라 아침 해가 빛나게 떠오르는 동국이라 했다.

이처럼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은 주로 중국을 통해서였지만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우리의 실생활에 필요한 것들로 변화, 발전시키려 애를 썼다.

‘지금’, ‘이곳’

그들이 생각했던 ‘지금’의 학문은 옛사람들이 쓴 책뿐만 아니라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의 과학까지 아우르는 학문이고 ‘이곳’의 학문은 조선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었다. 그들은 나라의 빈곤이 가장 큰 폐단이라는 생각으로 물자의 생산과 유통의 필요성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췄다. 또 그 일은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는 평등성까지 바탕에 두고 있었다. 이는 조선의 신분제도에 맞서는 새로운 생각이었다.

이들의 실학사상은 정조의 정치이념과 맞아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정조의 죽음 이후 세도정치가 득세를 하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 박해를 받게 되고 낙향을 하거나 귀양을 가거나 죽게 되었다. 다만 그들의 사상은 이후에도 이어져 내려와 조선의 개혁과 근대화에도 여러 면에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 그저 지식을 배우고 익혀 많은 것을 아는 것이 목적일까? 학문의 효용성은 실용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이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그 시대에 내가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어떤 곳, 어떤 자리에서 살았을까? 몹시 궁금했다. 글자도 모르고 살면 참 답답하겠구나. 신분이 낮으면 참 살기가 어렵겠구나.……, 따위의 생각이 들어 겁도 조금 났다. 그러나 이 세 권의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어진 형편과 조건에 맞게 조용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현재에 의문을 갖고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창조해 내었다. 그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용기 덕분에 새로운 역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이 책들을 통해 앞서 생각하고 살았던 옛 사람들의 삶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읽으며 오늘의 삶에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 내는 어린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들에 의해 또 새로운 역사가 생겨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