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
- 송하춘,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

안효근 | 한성여고 교사


* 두 개의 이야기

이번 달 원고의 제목을 써놓고 나니 일단 분위기가 확 사는 느낌이다. 알다시피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기'는 1930년대를 풍미한 시인 정지용의 '시론' 중 한 구절이고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는 2000년 『라뿔륨』 가을호에 실린 송하춘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재미나게도 이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한 마디로 '겉으로 열하고, 안으로 서늘옵기'라 요약된다. 70년의 시차는 딱 이 두 구절로 확연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인터넷에서 긁어 온 「해탐노화도」 이야기 좀 하자. 심미안을 타고났기에 그냥 봐도 좋다고 우긴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물론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라 알려주면 수집가들은 투기하려고 군침 좀 흘리겠지만.
헌데 대상의 의미는 알수록 오묘해지는 법이다. 이 그림처럼 두 마리 게가 갈대꽃을 물고 있으면 '두 차례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이 내려주신 음식을 받는다'는 의미로,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이해된다고 한다. 또한 먹만이 아닌 설채(設彩) 기법이 두드러진 이 그림은 화면 좌측 상단에 "바다용왕의 처소에서도 옆으로 가네(海能王處也橫行)"의 제발(題跋)이 있어 그림에 아취(雅趣)를 더하는데, 지조를 갖고 임금 앞에서도 직간을 서슴지 않던 그런 충신이 되라는 바람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이쯤 되면 그림의 실체에 좀 더 접근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보통 한지 위에 먹으로 그려진 평범한 그림에서 조선시대 화가의 섬세한 예술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알아갈수록 그 뜻이 새삼 깊어지는 듯하여 오주석의 말대로 옛 그림 읽기는 마냥 즐거워진다. 말하자면 대상의 실체에 접근하는 일은 힘겹긴 해도 그것 자체로 즐거운 노동이란 이야기다. 덩그러니 갈대와 게만을 소재로, 참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김홍도는 그 점에서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기'를 실천한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엔 지인에게서 얻어들은 요즘 이야기이다. 어느 쇼핑광 아내를 둔 남편이 머리는 점점 비어가는 채로 쇼핑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다 못해 아내 몰래 서예 학원을 등록해 놓고, 제발 조금만 더 교양 있게 살기를 바랐는데, 이상하게도 아내가 서예에 흥미를 느껴 반 년 남짓을 꾸준히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아내의 서예 솜씨를 보고 싶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구를 적어 보라고 했더니, 그 아내가 놀랍게도 '현월미수(現月美水)'라는 구절을 그럴 듯한 글씨로 써왔단다. 남편은 크게 감동 받았고, 이제 자신의 아내가 내적으로 충실한 삶에 흥미를 붙였다고 내심 흐뭇해졌단다. 그 구절의 의미는 또 얼마나 유현(幽玄)하고 고아(高雅)한가? '달이 모습을 드러내니, 물빛이 더욱 아름답구나.'라는 뜻을 새기고 또 새기며 감동을 곱씹고 있는데, 그런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말하길 '그 구절이 그리도 감동적이냐'고 하더란다. 알고 봤더니 그 구절의 뜻이란 게 '현대백화점은 월요일에 쉬고, 미도파 백화점은 수요일에 쉰다.'라는 뜻이라나. 겉으론 왠지 고상해보일 것 같은 마음에 서예 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안으론 내내 쇼핑 생각뿐이었을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더불어 현대인들의 삶이란 이처럼 외형에만 열하고 내면에는 찬바람만 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내친 김에 이번엔 그 얘기를 해보자. 현대인은 외면의 화려함을 추구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지만, 그로 인해 망가져버린 내면의 황폐함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내면의 충실을 기하는 일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 그걸 좀 거들떠보자.

*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의 줄거리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에는 상관없는 듯 보이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짜여져 있다. 하나는 아이돌 그룹 'HOT'의 열혈 팬인 세 여중생의 상경담이고, 다른 하나는 강남의 최고급 빌라 '비벌리힐스'에 사는 한 노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전개된다.
우선 첫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현주·민정·정아는 자신들의 우상인 HOT의 집을 찾아 남해에서부터 순례를 온 여중생들이다. 그들에게 HOT는, 보고 싶어서 자다가도 눈이 떠지는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그리움은 피상적인 이미지와 실체라고는 없는 허상을 향한 것일 뿐이다. 그들이 HOT의 텅 빈 집 앞에서 팬들의 낙서로 뒤덮인 낡은 건물을 보며 마치 실제 스타를 본 듯 감동 받는 모습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새떼들의 지저귐처럼, 에이치오티가 머물다 간 자리, 팬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뱀의 허물인 듯, 만지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낡은 껍질 앞에 문득 허물을 벗고 달아난 징그러운 몸뚱아리를 보는 아이들은 황홀하다.
 -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 2001 올해의 문제소설, 한국현대소설학회 편, 2001, 신원문화사, 234쪽

그들이 서울까지 온 것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HOT 오빠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껍데기인 집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HOT의 집'이라는 허상에 넋이 나가, 깨알 같은 낙서로 뒤덮인 낡고 허름한 실제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뱀의 허물처럼 '만지면 부서지는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은' 껍질에 철저히 사로잡혀 있으며 오로지 '겉으로만 열할' 뿐이다.
이들 세 여학생은 황당하게도 이미지가 곧 실체이며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에 관한 민정이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 한낮인데 에어컨도 켜 있지 않았어. 차 안이 후텁지근하더라구. 구석 자리를 잡는다고 잡다 보니, 노약자석이었던가봐. 뒤늦게 알기는 알았지만 어차피 남는 자린 걸 뭐. 그냥 눈 딱 감고 버틴 거야. 서울도 차 안에 잡상인들이 많더라구. 방금 어떤 아저씨가 요요를 팔고 간 뒤였을 거야. 그 전에 참, 노래하는 맹인 아줌마가 한 차례 느린 걸음으로 지나갔었지. 그러고는 깜빡 잠이 들었던가 봐. 인기척이 느껴져서 눈을 떠 보니 어떤 궁상맞게 생긴 할아버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야. 자세히 보니 내 앞에 손을 내밀고 한푼 줍쇼 하는 거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얼마를 줘야 하는 건지. 겁이 덜컥 나더라구. 평소에 돈 같은 걸 줘 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그냥 모른 척하고 가만 있었지 뭐. 그랬더니 어쨌는 줄 알아? 내 앞에 서서 잠시 나를 째려보더니, 되레 자기 호주머니에서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안겨 주는 거 있지? 그러고는 얼른 다음 칸으로 가 버리는 거야."
 - 같은 책, 245쪽

민정의 남자 친구는 얘기를 듣고 나서 그런 행동을 한 할아버지의 의중을 그들에게 묻는데, 그들 중 아무도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외면적인 행위 안에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깨달음은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 이외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경비원 황씨의 과거사를 통해서도 암시되어 있다. 과거 십대들의 우상이던 '동리 선생'이, 실체 또는 본질을 상징한다면, 오늘날 아이들의 우상인 'HOT'는 표피 또는 허상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 역시 빌라 비벌리힐스의 화려한 겉모습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웃지 못 할 비극을 대비시켜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의 이 같은 단면을 드러내준다. 이야기는 한밤의 영화 촬영 에피소드로 시작되는데, 황씨의 동료 경비원 성씨는 최고급 빌라의 아름다운 언덕에서 현란한 조명 아래 촬영되는 러브 씬을 보려고 날밤을 새지만, 화려한 조명과 우거진 아카시아 숲에 가려 그 무엇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이는 우리를 미혹시키고 욕망을 부추기는 화려함의 정체가 실제와는 거리가 먼 허상일 뿐임을 말해준다. 밤새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던 이 영화가 알고 보니 그렇고 그런 B급 영화에 불과했다는 것은 비벌리힐스의 화려한 겉모습 또한 초라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껍데기에 다름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영화 속 내용 중 숲속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은, 308호 노인의 죽음을 예고해 주는 복선이기도 하다.

308호 영감님은 작년에 팔십오 세를 넘겼다고 들었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한낮이면 요 앞으로 산책을 나다니곤 했는데, 올 들어 그나마 포기해 버린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언제부턴가 의원님이라고 불리는 그 집 아드님은 현재 이렇다 할 직함은 없지만 원래 빈 택시가 더 바쁜 법이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어디든지 뛰어다녀야 하니까. 한시도 집 안에 머무는 걸 못 보았다. 의원님 사모님은 더 바쁜 것 같다. 반드시 정치인 남편을 내조하느라고 그런대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자면 남 못지않게 신앙생활도 해야지, 사회봉사 활동도 거들어야지, 거기다가 가정 경제도 일으켜야지, 여자로서 할 일이 너무 많을 것이다. 그 빈자리를 파출부 아줌마가 메워 준다는데, 그 메운다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메워 주고 채워준다는 것인지, 낮에는 텅 빈 집 안에 영감님 병 수발을 하는 일이 전부일 텐데, 그도 피차간에 만족스럽지는 못할 것이다.
 - 같은 책, 239-240쪽

비벌리힐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호화로운 겉모습은 이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비원 황씨의 시각을 통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비벌리힐스의 번지르르한 겉모습은 그곳에 사는 한 노인의 쓸쓸한 삶과 허무한 죽음을 은폐하고 있다. 상당한 재력가인 그 노인은 함께 사는 정치인 아들 내외의 무관심 속에서 파출부의 병수발을 받으며 극도의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아들과 그의 아내는 체면 치레와 겉치레에 바빠서 노인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비벌리힐스의 경비원들은 그 잘난 아들의 부탁을 받고, 재산 욕심 때문에 노인을 데려가려는 딸로부터 노인을 지키고 있다. 하루 종일 인터폰이 연결되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던 날에, 노인은 결국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혼자 숨을 거둔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발견된 노인의 시신은 경비원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앰뷸런스에 실려 나간다.

"왜, 오늘은 경적도 울리지 않고 조용하다지?"
"시체로 나갈 때는 원래 그렇다는군."
남문 경비는 달아난 앰뷸런스의 뒤꽁무니 쪽을 우두커니 보고 서 있었다.
"별 일은 없었군요?"
"산 채로 도둑맞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들은 가로등처럼 길가에 나와 서서 이야기했다.
"하긴, 낮에 주치의가 왔을 때부터 이상했었어."
황씨는 벌써 어제가 되어 버린 시간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사모님이 나간 직후였을지도 몰라."
"온종일 시체를 지킨 셈이군. 누구 안 왔나?"
"그렇지 뭐. 떠날 때는 언제나 혼자더라구."
둘은 황씨가 꺼낸 담배를 나눠 피웠다. 밤바람 탓인지, 담배 맛이 쓰다.
 - 같은 책, 246쪽

*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

송하춘은 소설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소위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소설의 기본에 충실한 작가이다. 정교하게 짜여진 완결된 구조 속에 동시대의 삶을 압축하여 담아내는 것이 단편 소설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의 치밀한 구성과 통일성 있는 구조는 그런 점에서 단편 소설만의 미학과 독특한 매력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실제로 남해에서부터 무모해 보이는 성지순례를 감행한 소설 속 여학생들의 모습은 단순히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십대들의 행동이나 그들의 사고 체계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지와 실체를 동일시하는 현대인들의 태도 일반으로 확대되어 이해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사이버 세계의 지위나 아이템 다툼이 실재 세계로 확대되어 살인까지 벌이는 현상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이미지와 가짜들이 실체를 지배하고, 진실이 되어가는 시대이다.
우리 사회는 허다한 환상과 화려한 이미지들로 우리를 최면에 걸리게 하고,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가시적인 세계에만 몰두하게 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실제 세계는 왜소해지고, 우리의 내면은 빈약해져 간다.
따라서 겉치레에 치중하느라 내적인 삶이 황폐해지고, 체면치레에 떠밀려 정작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들이 버려지는 비벌리힐스 308호의 모습은 이 시대의 정직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외양은 화려하나 그 안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비벌리힐스는 우리 사회의 내면적 빈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벌리힐스 서울 사이트」의 두 이야기는 서로 독립되어 대등하게 진행되면서도 빈번한 상호작용을 통해 '외면의 화려함에 대비되는 내면의 빈곤함'이라는 단일한 주제를 형성하며 하나의 전체로 통합된다. 또한 삽입된 에피소드들 역시 '허상과 실체의 상관성'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변주하면서 작품 전체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주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허상과 실체'라는 화두에 매달리다 보니, 엉뚱하게도 이제는 기억 속에서조차 가물가물한 여자 아나운서의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가장 표피적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실체에 근접한 방송 멘트를 날리던 그녀의 이름은 바로 '정은임'이었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2004년 7월 22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로 출근하던 중 흑석동 삼거리 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된 후 8월4일 숨졌다. 그녀는 1992년 MBC 아나운서팀에 입사해 홍동식 PD, 신영희 작가와 의기투합하여 FM 라디오 '영화음악실'을 진행하며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얻었었다. 그녀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안으로 열한' 방송 진행 솜씨였다.

숫자, 모든 숫자가 단순히 수학적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편애하는 숫자들이 있어왔죠. 우선 1, 1은 태초의 시작·본질·중심·남성·하늘을 뜻하고요. 3, 3은 양인 1과 음인 2가 결합한 완전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숫자 중에서 3 곱하기 3, 9는 가장 길한 숫자이며 하늘의 힘을 나타내는 수로 사랑을 받아 왔죠. 이제 한국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에서 아주 의미 깊은 숫자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193" 대통령탄핵 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의 수입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FM영화음악 정은임 인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민족이 사랑하던 숫자 '1, 3, 9' 가 아주 기가 막힌 조합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193"
193이 한국역사에 영원히 길이 남을 숫자로 등장한 오늘, 우리는 숫자의 힘에 다시 놀랍니다. 4500만을 이렇게 들끓게 하는 193의 힘에요.    
 - FM영화음악 2004년 3월 13일자 오프닝멘트
 
19만3천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 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 FM 영화음악 2003년 11월 18일자 오프닝 멘트

한 방송국에 매여 사는 병아리 아나운서의 입에서 듣는 방송 멘트치고 참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방송국이란 게 늘 최첨단을 지향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굴려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지라 '겉으로 열하고 안으로 서늘옵기'를 추구해야만 하는 곳일 터이다. 그런데 어찌된 게 민감하디 민감한 대통령 탄핵이나 고공 크레인 농성 같은 정치적 사안은 물론 청취자의 심금을 울리는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그녀의 멘트는 진실한 그녀의 음성과 함께 청취자로 하여금 조금 더 진실에 다가선 듯한 감동을 주었다. 화려한 조명과 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채 소비 창출을 지상명령으로 움직이는 방송국엔 참 안 어울리는 아나운서란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실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방송국이라는, 이미지의 산실에서는, 패션이나 트랜드 같은 외형적 허상 창출에 몰두해야 함에도, 내적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듯한 그녀의 태도 때문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허상을 조작해내야 하는 공간 안에서 비록 그 자체가 또 다른 허상에 불과했을지라도 '안으로 열하기'를 추구한 한 아나운서의 행동은 요즘 들어 더욱 의미심장하게 필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얼마 전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듯이, 허상에 매몰된 사회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조작된 이미지에 이리저리 휩쓸리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정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 검증을 위해 애쓰기보다는 '특정 단체에게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진다.'는 현수막 하나에 몰표를 쏟아 부었다. 당선자의 현수막에는 사진도, 정책도 없었고, 심지어 해당 후보는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는 후보자 정책 토론회에도 대부분 불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일부 여론이 조작해 낸 특정 단체의 이미지에 철저히 현혹되어 자신이 별다른 피해를 본적이 없음에도 대단한 피해 의식 속에서 충실하게 허상에 매몰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선거결과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부자들은 양심이 없고, 중산층 이하는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심이나 의식은, 안으로는 실체를 보려는 치열한 노력이 전제되고 겉으로는 대상을 접하는 냉철한 판단력이 동원될 때, 즉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할 수 있을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덕목들이다.
허상만이 판을 치는 세상, 요즘 와서 새삼 우리가 소중한 한 표를 던지며 꿈꾸었을, 우리 지도자나 장밋빛 미래의 이미지가 뱀의 허물처럼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과연 나만의 착각일까?
 

* 관련 논제와 예시답안은 배남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