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언어의 정치적 힘

김형준 | 본지 편집주간

대상 : 고등학교 2~3 학년
수업 자료:『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글 / 삼인)
관련 영상 : <엘 고어, 불편한 진실>, <화씨 911>
(이 두 영상은 책의 주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엘 고어와 조지 부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책의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준다.)
학습 목표
1. 언어와 인식의 관계를 이해한다.
2. 정치적인 주장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이해하고, 그것을 재구성해 본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부제는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이다. 실제로 미국 대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2000년 공화당의 조지 부쉬에게 민주당의 엘 고어가 패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도덕성, 인물, 무엇 하나 떨어진다고 평가받기 힘든 엘 고어가 어떻게 '알콜중독 망나니 석유재벌'에게 패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바로 언어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음의 논제는 이것과 정확히 동일한 전제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제시문 (가)와 (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자의 속성은 무엇이며, 그것이 각각의 제시문에서 어떻게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지 설명하시오.

(가) 파이드로스야, 문자에는 나쁜 점이 있고 그런 면에서 그림과 비슷하단다. 그림이 그려낸 화상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나 네가 그것들에게 무엇을 묻는다면 아마 점잖게 침묵하기만 할거야. 문자도 그와 똑같아. 넌 문자들이 뭔가 아는 것처럼 네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네가 무엇을 정말 배울 요량으로 그것이 말한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틀림없이 그것들은 늘 고정적이고 획일적인 내용만을 줄 뿐이야. 그리고 말은 한번 씌어지고 나면 장소를 불문하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자에게나 그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에게나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그 말이 애당초 어떤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지. 그 말은 방임되고 부당하게 욕을 먹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낳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해. 왜냐하면 글자로 씌어진 말은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도울 능력이 없으니까.

(나) 근대에 접어들어 한반도에서도 문자의 독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제 문자를 통하지 않으면 서민의 일상도 어려워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농투성이 무지렁이들과 장돌뱅이들, 개 잡고 소가죽 벗기던 이들, 심지어 그 자식들까지도 학교 문 앞을 기웃대고, 그러다 급기야 모든 사람들이 책이란 걸 읽고, 나아가 글줄까지 긁적거릴 줄 알게 된 일종의 개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한편 그 독재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이기도 했다. '앎의 민주주의' 말이다.
- 2007년 이화여대 수시 1 논제 중에서

제시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자의 속성은 한 마디로 사람들의 인식을 제한하는 것이다. 제시문 (가)의 요지는 언어가 고정되고 획일적인 의미만을 형성할 뿐이며, 결국 그 본래적 의미가 제대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낳은 아버지'(상황과 맥락)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제시문 (나)에서 '문자의 독재'라는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 근대화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전해줬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문자를 통해서만 의미가 파악되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독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제시문은 문자가 인간의 인식을 한정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제시문 (가)가 그것이 이해와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제시문 (나)는 문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이라는 점에서 평등한 의사소통의 기반이 되었다고, 즉 '앎의 민주주의'를 열게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즉, 이 논제는 언어가 지닌 양면성을 이해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인식과 개념을 형성하지만, 그 과정은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사고가 획일화되고 언어에 의해 지배받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언어와 선거, 언어와 민주주의, 언어와 정치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와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뿌리: 이성에 대한 확신
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인민)에게 주권이 있는 정치체제 혹은 원리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권은 결정권을 뜻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국민이 국가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치 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결국 모든 개인에게 불가침의 이성이 존재한다는 데카르적인 이성주의가 민주주의의 뿌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이성이 존재하고, 우리는 이 이성을 통해 진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리는 동물과 다른 존엄성을 갖고 있으며, 이 존엄성을 펼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 없이 민주주의는 작동되기 어려운 원리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주된 원리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의 원리, 또 민주주의 운영원리라 할 수 있는 선거와 투표, 공개토론에 의한 합리적인 의사결정. 이 모두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설정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주의적인 믿음은 사실 여러 가지 함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근대 민주주의의 이념에 가장 먼저 문제제기를 한 것은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문제제기는 국민(인민)이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로 요약된다. 요컨대 계급 사회에서 국민(인민)은 타협할 수 없는, 서로 배타적인 이익을 지닌 집단으로 구성되며, 결국 필연적으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계급 독재의 형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리민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가의 나라, 노동자의 나라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 그러니까 모든 국민이 주권을 지니기 위해서는 계급이 철폐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르주아를 위한 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민주주의만이 존재함을 역설한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가 소비자보다는 기업을, 노동자보다는 기업가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마르크스의 문제 제기가 아직까지도 상당부분 유효함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마르크스 역시도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적 전제들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즉, 마르크스 역시도 노동자들이 '이성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마르크스 이론은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파악한다는, 그러니까 공산주의 사회를 필연으로 본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이 역시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에 기반한 논리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전개 과정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되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혁명과 같은 국지적인 혁명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서구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기꺼이 부르주아의 정책에 찬성했고, 부르주아에 투표했으며, 나아가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 전쟁터로 나아가 희생을 감수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면, 그리고 이 이성이 우리의 이익을 알려준다면,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이 안토니오 그람시이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으나 당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지배하였고 자신이 감옥에 갇힌 현실 속에서, 그람시는 마르크스의 경제적 토대에 의한 하부구조결정론을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혁명을 위해서는 피지배층에 물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수반하는 동의에 기반을 두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도덕적 가치로써 동의에 기반을 두는 지배가 바로 헤게모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적 민주주의가 나타날 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인간의 이성 역시 바로 이러한 특성을 표현한 말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덜 이기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동기계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도덕적 결론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 민주주의 논리에 대한 중요한 도전이다.
결정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회집단이 도덕을 만들어내고 지배할 때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이용해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민주주의를 껍데기뿐인 제도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험성마저도 갖고 있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과 『동물농장』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역설을 놀랍도록 섬뜩하게 묘사한 책이다. 이 두 소설은 공통적으로 어떻게 도덕적 강제가 만들어지며, 그것은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가를 명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두 소설에서 언어에 대한 문제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인식 구조는 언어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결국 인간의 인식을, 나아가 도덕체계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결정권을 갖는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양한 철학적인 쟁점을 낳았다. 언어가 과연 진리 탐구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또 언어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인지,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와 인간의 인식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정치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이며, 인식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와 그 스승인 노엄 촘스키가 언어학자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에 깊이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업에 활용하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신문읽기의 혁명』, 『동물농장』, 『1984년』과 같은 책들에 이어 수업하면 더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수업 방향을 구성해도 좋을 것이다.

1. 『동물농장』
→ 민주주의의 왜곡이 나타나는 상황을 이해함.
2. 『신문읽기의 혁명』
→ 민주주의의 왜곡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서의 언론을 이해함.
3.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보다 구체적으로 정치적 발언들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이해함.

이 책의 미덕은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 그 사례가 미국의 정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교사가 해당되는 쟁점에 대해 충분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또, 책이 연설문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유적인 표현들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수업은 먼저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은 학생들의 이해도를 묻기 위한 질문 내용과 답안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
1. 프레임(frame)이란 무엇인가? 책에 나온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대로, 가능하면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오.
→ 프레임이란 하나의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무의식적인 인식 체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이 관점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우리가 이 용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고, 나아가 노동시장에 대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관한 문제라는 점보다는, 제도적인 효율성의 문제로 접근하게 된다. 이렇게 언어가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인식의 틀을 '프레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이 책의 제목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또 주제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는 반사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즉, 상대편의 논리가 만들어낸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은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이 말은 저자가 민주당의 패배요인을 상대편이 만들어낸 논쟁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과 일치한다. 즉 논쟁의 헤게모니를 빼앗기게 되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책에는 두 가지 가족 모델이 등장한다. 그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각각 어떻게 정치적인 입장으로 나타나는가?
→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의 선거 구호가 '가족의 가치'였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즉, 공화당이 '가족의 가치'라는 프레임을 내세움으로써 공화당은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민주당은 가족을 중요시하지 않는, 가족 제도에 적대적인 정당으로 포장해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화당만큼이나 민주당도 가족제도라는 도덕적 가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단, 공화당의 가족체계가 '가부장적인 가족'이라면, 민주당의 가족 체계는 '자상하고 책임 있는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이는 테러에 대한 대응방법의 차이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공화당이 테러에 대한 '처벌'을 강조한다면, 민주당은 '보살핌'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4. 우익들이 '동성결혼'이라는 말보다 '게이결혼'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결혼이라는 말은 성적 행위를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이들의 성행위에 위협감을 느끼다. 따라서 '동성결혼'이라는 용어보다는 '게이결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5. '미끄러운 비탈형' 쟁점이란 무엇인가?
→ '미끄러운 비탈형' 쟁점이란 상대방이 만들어낸 논쟁 구조에 들어가는 순간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흐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부분출산 낙태' 논쟁과 같은 형태가 그것이다. '부분출산'이라는 말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낙태가 출산 가능한 아이를 죽일 수 있는 살인과 같은 행위라는 인식을 만든다. 그것은 어떤 효과적인 반박을 하더라도 결국 낙태를 반대해야 한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보충 자료 1 참고)

*보충 자료 1
미국 하원은 4일 이른바 '부분출산 낙태'(partial birthabortion)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시켜 8년에 걸친 논쟁에 일단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하원은 상원에서 가결돼 넘어온 유사한 법안에 이날 중 약간의 마무리를 한 뒤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넘길 계획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미 승인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한편 낙태권리 옹호단체들은 새 법이 통과되면 즉시 위헌심사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 대법원은 이미 지난 2000년 같은 내용의 네브래스카주 법을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이번에는 대법관 한 명이 사임하고 부시 대통령이 보수파 인사를 후임자로 임명할 것으로 알려져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재연될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태아의 머리 전체나 몸통 일부분이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아기를 지우는 낙태를 뜻하는 '부분출산 낙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했으며 공화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의회 다수세력이 된 지난 1995년부터 금지법 제정을 추진해 왔다.
이 법은 임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예외로 규정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건강상문제가 있는 경우는 예외로 삼지 않고 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방법이 보통 건강한 임부의 건강한 태아에 시술되고 있다고 비난하며 부분출산 낙태 금지법의 제정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 제정 반대론자들은 의학용어로 '팽창 및 적출'로 불리는 이 방법은 예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법률을 막연하게 적용할 경우 임신 2기에 사용되는 다른 낙태 방법들까지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낙태권 옹호단체인 NARAL 프로 초이스 아메리카의 케이트 미셸먼은 "부시 대통령이 모든 낙태를 금지하기 위한 첫 발을 떼고 있다"고 비난했다.
- 『한겨레』(2003/06/05)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으면, 이를 우리 사회의 현실에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간단하게는, 다음과 같은 언어들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들을 분석해본다.

·국가경쟁력 →국가, 기업의 경쟁력이 개인의 삶을 결정한다.
·세금 폭탄 →세금은 부정적인 것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면 경제 위기가 온다.
·코드 인사 →자신과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도 등용해야 한다.
·하향 평준화 →평등은 질적 저하를 가지고 온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만이 자유로운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의 사설을 활용하는 것이다.(사례, 보충자료 2)
이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1) 먼저, 모둠별로 사설의 논지를 파악한다.
(2) 모둠별로 사설이 갖고 있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3) 모둠별로 사설에 대한 효과적인 반박과 비효율적인 반박을 각각 생각해본다.
(4) 모둠별로 효과적인 반박을 한 문장으로 압축적으로 표현해본다.
(5) 전체 모임에서 각 모둠의 결론을 검토해본다.

보충 자료 2
입시 공부, 실업고는 되고 외고는 안 되고
이 정권은 5년 내내 반외국어고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2008년 입시만 해도 그렇다. 대학더러 고교 간 학력 격차를 무시하고 내신 위주로 신입생을 뽑으라고 강요한 것은 외고에 불이익을 주자는 뜻이었다. 2010년부터는 거주 시·도 밖 외고에는 지원을 못하게 하는 규제도 만들었다. 지난 5월엔 시·도 교육청이 교육부 장관과 협의하지 않고는 외고를 포함한 특목고를 세울 수 없게 했다. 교육부가 10월 중 내놓겠다는 특목고 종합대책에는 기존 외고의 인가를 취소하는 안까지 포함될지 모른다고 한다.
지난 11일엔 교육개발원이 '특목고 토론회'에서 '외고 때리기' 돌격대로 나섰다. 국어성적을 분석했더니 외고 학업성취도가 일반고와 별 차이 없다면서 외고의 수월성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외고는 외국어수업이 일반고의 4배다. 전체 수업시간은 똑같으니 국어수업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국어 성적만 갖고 그런 무리한 결론을 발표했다.
반외고 정책의 명분은 외고가 입시기관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고 등 특목고를 요리·인터넷·애니메이션 등을 가르치는 학교처럼 특성화고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외고에선 아예 입시공부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대학의 '실업고 특별전형' 비율을 정원 외 3%에서 5%로 확대하면서까지 실업고의 대학 진학 길을 넓혀줬다. 수능에 '직업탐구' 과목을 도입한 것도 실업계의 진학을 돕기 위해서였다. 실업고들은 진학반도 편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그걸 문제 삼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실업고는 대입 공부를 해도 되고 외고는 안 된다는 것이 무슨 황당한 논리인지 알 수가 없다.
외고 규제에 집착해온 이 정권은 자립형 사립고도 시범운영기간이 끝나면 6개에서 더 늘리겠다고 했던 당초 방침을 뭉개고 신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부모는 비싼 돈 내고 외국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 『조선일보』(2007/09/14)

마무리 및 과제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이성에 많은 한계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인간의 노력에 부정적인 증거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이 닫혀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수업은 진실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실을 '가치 있게' 말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언어와 정치의 관계를 다룬 다음 논제를 풀어보면서 정리해보는 것도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문제】사회 공동체에서 언어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아래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시오.

(가) 인간이 벌이나 다른 군서(群棲)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연은 그 어떠한 것도 헛되이 만드는 법이 없다. 자연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언어 능력을 부여했다. 언어는 발성 능력과 다르다. 다른 동물들도 소리는 낼 수 있으나, 그들의 소리는 단지 고통스러움과 쾌적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도 본성적으로 쾌와 고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느낌들을 소리를 질러 서로에게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그러므로 의로운 것과 의롭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진정한 차이는 인간만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을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

(나) 사람은 논변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홀로 서 있으면서도 의사소통적 문맥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이상적인 의사소통 공동체'가 의미하는 바이다. 논변적 담론의 참여자들에게 요구되는 합의는 현실적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속하여 있음에서 오는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은 이런 담론 속에서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 담론에 의해 합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다음 두 사항에 의거한다. 하나는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양도불가능한 개인의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기중심적 관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비판 가능한 주장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로 대응할 수 있는 개인의 불가침적인 자유가 없다면, 동의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한편 각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지 않는다면, 오랜 토론을 거치며 숙고해도 보편적 동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을 지닌 동시에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관계망의 구성원이다. 이 두 국면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담론을 통한 결정 절차에서는 바로 이런 연결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다) 토론을 하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돕고, 도(道)로써 서로 깨우치고, 선(善)을 따를 뿐 반드시 이길 것을 구하지 않으며, 의에 승복할 뿐 말이 막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짓으로써 서로 미혹케 하고, 화려한 언사로써 서로 혼란스럽게 하고, 나중에 멈추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이기기만을 바라는 것은 토론을 함에서 본받을 바가 아닙니다. 무릇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제후들을 현혹시켜 대국을 망하게 하고 군주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하였으니, 이들이 변설에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말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길이었습니다. 군자는 비속한 사람들과 더불어 군주를 섬기는 것을 꺼려하였으니, 그들이 군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면서 어떤 일도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바르고 의로운 말을 받아들여 경(卿)·상(相)을 보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여 당장의 유리한 말만을 좋아하며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 같은 식으로 관리 노릇을 하면 마땅히 중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 2006년 이화여대 정시 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