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는 아이들,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2006년 해오름 여름학교

|강은주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아이들과 연극을 하면 어떨까?' 살림학교 교사들이 아이들과 연극을 하고 싶다는 바람과 소망을 가진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연극을 한다면 어떻게 풀어내지? 또 어떤 것이 연극으로 만들어져야 할까? 교사들은 연극에 대한 이런 저런 궁리와 상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어느덧 해오름 계절학교가 열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연의 아름다운 색과 빛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직선과 곡선의 흐름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느끼며 내 안의 빛을 만나는 시간을 아이들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영혼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졌고, 땅의 사람으로 하늘에 간절한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몸을 움직여 혼을 깨우고 손을 움직여 자아가 깨어나는 놀이와 노작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힘으로 새로움을 창조하고 그것을 다시 내면의 힘으로 모으는 존재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풍부한 창조의 세계를 극이라는 형태로 모아 또 다른 창조의 품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하늘의 달과 별은 어디서 왔을까? 풀과 꽃과 나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산과 강과 바다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지?' 우리를 안고 있고 우리가 안겨있는 이 세상. 우주와 자연과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여전히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신비한 그 근원은 어디일까? 아이들은 그런 의문으로 과학책을 들여다보고 역사에 귀 기울이고 옛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세상의 탄생을 아는 건 내 존재의 처음을 밝히는 것이고, 그 처음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시작이 아이들 앞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존재의 시작을 느끼며, 자신을 느끼며 세상 속에서 서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존재의 시작을 아이들과 극을 통해 느껴보고자 합니다. 신화는 그 존재의 시원을 상상력으로 펼친 고리입니다. 세상이 생기기 전 태초에는 무엇이 있었고, 하늘과 땅과 자연과 만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떠했고 거기서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신화 속 상상력을 빌어 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주제로 한 극을 여름학교에서 펼치며 아이들이 또 어떻게 자신과 만날지 기대해 봅니다.

극을 준비하는 교사 연수

여름학교를 준비하며 극 형태의 윤곽이 잡혔습니다. 극은 대사 없이 내레이션과 몸짓으로만 이루어지며 노래와 음악이 결합된 형식이 되었습니다. 전체 극은 총 3막으로 이루어졌는데, 1막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의 모습, 2막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모습, 3막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모습으로 짜였습니다. 이번 극은 몇몇 아이들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구경하고 박수만 치는 형태가 아니라 여름학교에 온 아이들 모두 극에 참여하고 함께 느끼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1막은 5~6학년 언니 오빠들이, 2막은 3~4학년이, 3막은 1~2학년 아이들 모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극의 내용을 아이들 발달 단계와 연관 지어 학년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의 혼돈 상태인 1막은 자아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내면의 혼란을 겪고 있는 5~6학년이, 세상이 만들어지는 2막은 이제 세상에 눈을 뜨며 세상과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 시기인 3~4학년이, 사람이 만들어지는 1막은 아이에서 어린 사람의 모습으로 서고 있는 시기인 1~2학년이 만들기로 했습니다. 여름학교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극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모둠활동도 극의 내용을 아이들이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예술적으로 젖어드는 과정으로 풀어나가도록 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 아이들의 극을 공연하고 셋째 날은 꽃잎 탁본으로 2박 3일의 전체 흐름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계획되었습니다.
한 달 반 동안 진행된 교사 연수에서 매번 극을 연습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주제의 극을 아이들과 풀며 아이들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자신을 발견하고 꽃피우게 하려면 교사가 먼저 느껴야 합니다. 교사는 전체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그 흐름을 자신의 흐름으로 익게 하고 그 결 속에서 흐르는 무수한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모둠 활동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풀어내야 할지 자기 고민으로 가져가 자기 속에서 풀어내야 합니다. 교사 연수에서 이 주제를 자기 고민으로 풀어나가려 고민하는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신화를 통해 들여다볼 것은 무엇인지 공부하고, 극으로 표현되는 포르멘(선그림)을 도화지에 열심히 그리며 수련하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빛그림이나 나무 색연필로 혼돈과 세상이 만들어지는 느낌을 아름답게 그려온 교사도 있었습니다. 여름학교의 모둠 활동 계획서를 꼼꼼하게 만들어 담임교사와 보좌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덥고 땀나는 연습실에서 뻣뻣한 몸을 움직이며 몸의 감각을 열어 극을 배우고 익히느라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살아오면서 극을 해본 적이 없거나 극을 해본 지 너무 오래 된 교사들이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며 동작 하나하나에 자기를 싣고, 매번 하는 극이지만 매번 순서를 잊어버리는 고역 속에서도 또 연습을 하는 교사를 보면서 "우리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나는 왜 여기 있나, 나는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를 계속 묻게 되었습니다. 교사 연수의 과정은 이런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모두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 교사연수에 자신을 쏟아 부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나는 도대체 어디 있나' 라는 자기 물음에 스스로 자신에게 답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연수 기간 동안 교사들의 눈은 빛이 났습니다.

횡성 살림학교 느끼기

해오름과 잠실운동장 역에서 출발한 아이들은 횡성 살림학교로 오는 동안 노래도 배우고 모둠 친구들과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걸 즐거워했습니다. 노래를 아는 아이가 앞으로 나와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모둠 친구들과 선생님 소개를 하며 한 명씩 자기 이름이 불리자 아이들은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다가도 다른 친구의 얼굴은 열심히 보려고 목을 쑤욱 빼고 들여다  봅니다. 역시 아이들은 며칠 동안 같이 놀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한가 봅니다.
모둠 친구들별로 나무 이름표와 공책을 다 만들고 난 아이들은 조용히 운동장으로 개울로 밭으로 개집으로 스며들 듯 다가갑니다. 아이들은 2박 3일 동안 머물 공간이 어떤 곳인지 탐색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 운동장 한쪽에 걸린 작은 종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종을 톡톡 건드려보다가 땡, 한두 번 살짝 쳐보다가 댕댕, 점점 힘을 주며 종을 쳐보는 아이, 해바라기 밭을 빙빙 도는 아이, 봉숭아에 살짝 손을 대다 입이 떨어지자 누가 볼세라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는 아이, 개집 옆 나무에 걸쳐져 있는 해먹을 손으로 까딱까딱 밀어보다 엉덩이를 살짝 걸쳐보는 아이, 강아지를 가만히 쳐다보다 강아지와 눈싸움을 하며 친해지려고 하는 아이. 횡성 살림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아이들은 풍경이 낯설고 사물들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이 사물과 풍경과 어떻게 관계 맺을까를 상상하며 아이들은 그것들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은 자신의 상상을 훨씬 넘어 나무 꼭대기에 닿을 만큼 하늘 높이 그네를 탈 것이고, 시도 때도 없이 종을 땡땡 힘껏 쳐댈 것이고, 봉숭아와 해바라기 잎을 손으로 주욱 당겨 우두둑 뜯어낼 것이고, 해먹에 누워 무서운 180도 회전을 빙빙 돌리며 깔깔댈 것이고, 강아지를 안고 끼고 쫒아 다니며 못살 게 굴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과 사물과 풍경에 거부감 없이 편견 없이 성큼 안겨 자신을 풀어 헤칠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들이 자연과 사물에 관계 맺는 방식입니다. 그 자유로운 소통 속에서 아이들의 기운은 막힘없이 흘러 다음에 전개되는 모둠 활동 속에서 조용히 몰두하는 힘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극 이해하기,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공연할 극은 대사를 가진 이야기로 풀어내는 극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과 세상이 생겨나고 사람이 생겨나는 이야기를 유리드미라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레이션의 이야기를 북, 괭과리, 피아노 반주와 함께 몸을 움직여 흐름꼴 형태로 나타냅니다. 그 흐름꼴의 형태는 선그림(포르멘)으로 형상화됩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젖어들어 아이들의 감각을 깨우면, 감각은 내면에서 모아져 형태를 갖춘 몸짓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극으로 표현해 낼 것입니다. 그리고 모둠활동도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얘들아, 맨 처음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냥 만들어졌겠죠."
"……."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무 것도 없었겠죠."
"뭐라도 있지 않았을까?"
"뭔가가 서로 막 엉켜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것이 뭘까?"
"뭔가가 여기저기로 막 다니며 이것저것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그럼 그 상태를 몸으로 표현해볼까?"

아이들은 일어서서 눈을 감고 걸어봅니다. 처음에는 모두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이는 세계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갑니다. 눈을 감고 걸으며 부딪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끝내고 눈을 뜬 아이들은 무서웠다고 합니다. 힘이 들었다고도 하고요. 보이지 않는 혼란의 경험은 두려움으로 남은 듯합니다.
방금 경험한 혼란의 상태와 결부지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은 혼돈의 상태를 색연필 가루로 그려보았습니다. 머메이드 종이에 나무 색연필을 갈아 가루를 내고 그 색깔로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교사가 보여준 혼돈의 그림과는 무척 다른 자기만의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기운이 서로 엉켜 있는 혼돈도 있고, 에너지가 점점이 박혀 하나하나 자기 힘을 가진듯한 혼돈도 있고, 음과 양의 흐름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혼돈도 있었습니다. 신화를 만들어낸 최초의 상상력은 아이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만큼 아이들의 상상력은 자유롭고 거침없고 감각은 열려 있었습니다.
이런 태초의 혼돈에 대한 느낌을 포르멘(선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선그림의 형태는 극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를 향해 달팽이처럼 모여드는 선그림을 색연필 가루로 그렸습니다. 선그림은 오르고 내리고 맺고 푸는 흐름과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서로 조화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그림의 흐름은 음악의 선율과 같은 흐름입니다. 음악의 오르고 내림, 강해졌다 약해졌다, 늘어졌다 줄어들어 드는 법칙이 조화 속에서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색연필 가루를 갈아 파란색 음과 빨간색 양을 조화롭게 그리려 아이들은 무척 애를 씁니다. 선풍기 바람에 색연필 가루가 날아가자 선풍기마저 꺼버려도 아이들은 그 세계 속으로 집중해 들어갔는지 덥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음악 선율을 따라 선의 형태를 문지르며 아이들은 몰두했고 집중했습니다.
이 몰두 속에서 아이들의 혼은 깨어나고 감각은 사방으로 통합니다. 선그림을 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듯 소곤소곤 수다도 떨고 옆 친구를 툭툭 치며 장난도 칩니다. 아이들은 방금 전 그 아이들이지만 몰두와 집중 속에서 내면 깊숙이 자신과 만나고 온 아이들은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교사 공연과 극 연습

아이들 공연은 둘째 날 저녁에 할 예정이었지만 교사 공연은 첫날 저녁을 먹은 뒤 시작되었습니다. 교사 공연을 먼저 보며 아이들이 자기가 할 공연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빨강과 파랑의 긴 천으로 만든 유리드미 옷과 검은 긴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서니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 달 반 동안 덥고 땀나는 연습실에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자기 몸과 싸우며 교사들이 연습한 1막, 2막, 3막의 극을 마쳤을 때 극을 본 아이들은 생소한 느낌인 모양입니다. 대사도 없고, 의상도 간단하고, 여럿이 함께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극의 형태가 아이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두런두런 교사들이 무얼 하는지 묻고 대답하며 뭔가를 찾아내려 합니다. 아이들은 극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느낌과 분위기인지는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교사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의 극 연습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교사 공연 때 입었던 빨간색과 파란색의 천과 긴 치마를 입고 직접 공연을 하는 것처럼 연습을 했습니다. 모둠활동에서 선그림의 형태를 몸으로 깊이 느낀 때문인지 아이들은 극의 흐름 속에 충분히 젖어 들어가 종이에 먹물이 퍼지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교사들이 한 달 반 동안 연습하면서도 계속 헷갈리는 순서를 아이들은 단 몇 번 연습으로 다 익혔습니다. 그냥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거기다 극을 완성하고 싶은 욕구와 의지가 올라 극을 지도하는 교사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했는데도 아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고 계속 요구했습니다. 아이들의 열정에 모둠교사도 극 지도교사도 놀랐습니다. 다시 괭과리가 울리고 장구를 치고 피아노 반주 시작됩니다. 아이들의 몸놀림은 진지하고 엄숙하며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이들은 극 연습을 하면서 또 다른 몰두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은 자기 자신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솟습니다.
학원과 순위를 매기는 공부 속에서, 컴퓨터와 TV와 게임기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자신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짓을 통해서 만나고  있습니다. 극을 통해 꽃핀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요? 흐름과 규칙을 가진 몸짓에 감각이 열리고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 참된 자신을 만나고, 그것이 자기를 세우는 힘이 되어 피어나는 것. 그날 그 순간 자신과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트럭 타기와 물놀이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모입니다. 아이들 앞에는 트럭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트럭에 번개처럼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계절학교의 명물이 된 트럭 타기 시간입니다. 트럭에 타서 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에는 설렘이 가득합니다. '와아~~~' 드디어 차가 출발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환성을 지릅니다. 박형만 선생님이 운전하는 트럭은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돌면서 학교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트럭을 타고 물놀이 하러 가는 길입니다. 트럭이 직선으로 가지 않고 크게 곡선을 그리니 트럭에 타고 있는 아이들의 몸이 이리저리 쏠립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끼야~', '야호~', '아악~'나름대로 낼 수 있는 비명은 다 지르며 즐거워 어쩔 줄 모릅니다.  아이들을 태운 트럭은 넓은 논을 지나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산길을 오릅니다. 트럭이 자신들을 신기하고 멋진 물로 데려갈 거란 기대와 자동차가 바람에 실어준 속도, 이리저리 쏠리는 몸의 스릴에 한껏 즐거움이 부풀어 오릅니다. 트럭은 다시 산길을 내려와 물레방앗간은 지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고…. 트럭이 멈춘 곳은 바로 학교 옆 개울입니다. 아이들은 잠시 어리둥절합니다. 원래 그 자리로 도로 돌아온 셈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 싱싱한 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이번에도 아이들은 서로 먼저 트럭에서 내려 한달음에 물로 달려갑니다. 여름학교가 시작되기 전 내린 장마와 폭우로 돌과 흙이 쓸려 내려가 학교 앞 개울은 아이들이 놀기에 딱 좋은 수영장이 되었습니다. 물놀이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직 젖지 않은 친구 물에 빠트리기, 여럿이서 선생님에게 물 끼얹기지요. 차가운 물이 몸에 닿으면 섬뜩 놀라지만 쏟아지는 물폭포를 피하지 않습니다. 아니, 피할 수 없지요. 일단 내가 당하면 다른 아이에게 또 물을 끼얹는 돌려주기 물폭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물세례가 두려워 멀찍이서 보고만 있던 친구도 재미있어 보여 다가오면 여지없이 물세례를 받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서로 아낌없이 물폭포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이들 공연

Deep peace of the running wave to you    
(출렁이는 파도의 깊은 평화를)
Deep peace of the flowing air to you    
(흐르는 공기의 깊은 평화를)
Deep peace of the shinning stars to you  
(빛나는 별들의 깊은 평화를)
Deep peace of the quiet earth to you    
(고요한 대지의 깊은 평화를)

둘째 날 해가 지고 깜깜 어둠이 내리자 공연이 열렸습니다. 강당 안 조명이 모두 꺼지고'deep peace'의 피아노 반주로 아이들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초에 불을 밝히며 5~6학년 아이들이 'deep peace'를 부르며 1막을 열었습니다. 이어 꽹과리와 장구 소리를 신호로 태초의 혼돈이 밀고 당기는 몸짓을 나타냈습니다. 달팽이진을 짜고 풀면서 음양의 기운이 맞물려 돌아가는 움직임에 이어 음과 양의 기운이 교차해서 풀어지고 천지개벽의 밝고 어두운 기운이 자리를 잡아 세상이 생기는 모양을 붉고 푸른 8자의 모양으로 형상화하며 1막을 내렸습니다.
다시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지나 3학년 아이들이 리코더와 밤벨로 '피어납니다'를 연주하며 2막을 올렸습니다. '피어납니다' 노래를 세상이 만들어 지는 것으로 연결 지으며 천상의 악기 리코더와 아프리카 토속 악기 리코더로 연주하며 표현했습니다. 이어 4학년 아이들이 세상을 만든 거신(巨神)과 거신이 만드는 해와 달과 땅을 만들고 사라지는 것을 몸짓으로 드러냈고, 사방과 색깔이 생겨 세상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유리드미로 표현하며 2막을 내렸습니다.
막과 막을 구분 짓는 조명이 꺼지고 다시 켜졌을 때 1~2학년 아이들이 무대를 조용히 걷는 것을 시작으로 3막이 시작되어 하늘의 영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이 되는 과정을 표현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시를 몸짓으로 표현하며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서 생겨난 사람을 표현했고, '햇볕은 고와요' 노래를 부르며 이 땅에 새로이 태어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예쁜 율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어 3학년이 밤벨로 '축복송'을 연주하며 세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 우리 자신을 축복하며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극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3학년 아이들의 밤벨 연주에 앵콜이 쏟아졌습니다. 밤벨 연주는 한 개의 악기가 하나의 음만을 연주할 수 있어 전체 연주자가 조화롭게 호흡을 맞추어 음을 고라야 되는 연주입니다. 평소에는 장난꾸러기인 아이가 진지하게 밤벨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극이 주는 자기 몰입의 힘, 그 몰입이 아이들 스스로를 꽃피어나게 함을 또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밤벨로 연주되는 '축복송'을 들으며 강당에 모인 모든 이들이 조용한 음성으로 '축복송'을 허밍으로 부르자 강당 안은 깊은 고요와 평화로움 그리고 충만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조용히 부르는 축복송은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주는 선물처럼 모두의 내면에 고요히 가라앉아 스며들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막 1장 혼돈
하늘에 묻는다.
태초의 일 누가 들려주었던가.
형체 없던 하늘과 땅, 어떻게 해서 생겨났나?
해와 달이 뜨는 이치, 그 누가 알 수 있나?
혼돈의 그 모습, 무슨 수로 알 수 있나?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태초의 세상이 궁금했던 이들은 지금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얘기한다. 과연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주 멀고 먼 여행을 떠나보자.

태초에 세상은 어떠했던가. 하늘과 땅은 서로 뒤섞여 하나였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 알 수가 없는, 처음과 끝도 없고 안과 밖도 없는, 삶과 죽음도 선과 악도 없는 그 세상은 끝 모를 혼동이었다.

1막 2장 거신과 세상
그 혼동의 우주에 어느 순간 대역사는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작았다. 아마도 그 세상 어딘가에 작은 틈이 생겨났던 게다. 전에 없던 신비한 기운이 새록새록 피어나오는 작은 틈.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틈을 발견한 거구의 신은 그것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가 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 불끈 힘을 주는 순간, 굉음과 함께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이 파문처럼 무한히 뻗어가면서 우주는 둘로 나뉘었다.

천지개벽! 맑고 가벼운 기운은 훌쩍 날아올라 하늘이 되고, 어둡고 무거운 기운은 쑥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아니, 둘이 아닌 셋이었다. 갈라진 하늘과 땅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으므로. 그 세상은 끝 모를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천지간에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2막 세상이 만들어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빛이 솟아오르면서 세상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모두 네 개의 구멍에서 빛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둘에서는 불덩어리처럼 뜨겁고 강렬한 빛이, 둘에서는 얼음처럼 차갑고 은은한 빛이.

거대한 물체가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온통 푸른빛을 한 그 물체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네 개의 구멍은 바로 그의 눈이었다. 앞이마의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뒤 이마의 두 눈에서 은은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찬란한 밝음과 무거운 어둠이 교차했다. 그 생명체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처럼 뜨겁고 눈부신 빛을, 또한 얼음처럼 차가운 빛을 거신은 견딜 수 없었다. 푸른 생명체로 돌진한 거신은 온 힘을 다해 눈을 빼내어 하늘로 집어던졌다. 그 네 개의 눈은 구만 리를 날아가 하늘 가운데 박혔다. 앞이마의 두 눈은 두개의 태양이 되고 뒤 이마의 두 눈은 두 개의 달이 되었다. 눈을 잃은 푸른 생명체는 커다랗게 몸부림을 친 뒤 허물어져 흩어졌다. 다시 움직이지 않은 채 드넓은 땅과 혼연 한 몸이 되었다.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새로운 세상에 갖가지 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청이슬이 피어올라 푸른 구름을 이루고, 땅에서 검은 이슬이 피어올라 검은 구름이 되었다. 동쪽에 청구름, 서쪽에 백구름, 남쪽에 적구름, 북쪽에 흑구름이 뜨고 중앙에 황구름이 떴다.

세상이 작은 틈조차 없이 오색구름으로 가득 찬 순간, 구름이 허물어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몇 날 몇 달이었는지,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억수비가 쏟아졌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빛이 나자 세상은 새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낮은 곳은 물이 고여 바다가 되고 호수가 되었으며 높은 곳은 육지가 되고 산이 되었다. 육지 사이사이에 물이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 곳곳에 크고 작은 섬들이 생겨났다

3막 사람이 태어나다
어떻게 내가 천사처럼 여기에 내려왔을까?
여기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눈부시다네!
내가 나타났을 때 천사가 맨 처음으로 한 일이라네.
오, 그들이 지닌 찬란함으로 나에게 어떤 왕관을 씌워주었는지!
세상은 그 영원함을 닮았고
내 영혼은 이 세상 안으로 걸어들어 갔다네.
그리고 내가 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네.
너희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이곳 멋진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세상을 마주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바르게 서려하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세상이 열립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마주보며 세상이 시작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바로 서며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왔어요.
안녕, 지구.
안녕, 해님과 달님.
안녕, 돌들과 꽃들 모두.
안녕, 바쁜 벌들과 나무에 있는 새들아.
안녕, 당신도 안녕 나도 안녕.

꽃잎으로 물들인 손수건 탁본

어제 밤부터 내린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아침에 다시 굵은 빗줄기를 뿌립니다. 아이들과 우산을 쓰고 비 오는 운동장과 밭 옆 오솔길에 꽃과 잎을 뜯으러 나갔습니다. 우산이 작아 비가 들이쳐 몸이 다 젖는데도 아이들은 마냥 좋은지 걷고 또 걷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오솔길을 주욱 걸어 올라갔다 내려오며 여러 가지 이파리와 꽃을 모았습니다. 모둠방에 와서 펼쳐 놓으니 종류가 제법 다양합니다. 비비추, 봉숭아, 애기똥풀, 가락지나물, 닭의장풀, 며느리 밑씻개, 질경이 잎, 고들빼기 잎, 코스모스 잎, 쑥, 익모초, 해바라기. 이것들이 모두 우리들 곁에서 옹기종기 피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온 꽃과 잎을 손수건 위에 놓고 숟가락으로 잎이 뭉개질 정도로 두드리면 꽃잎의 모양이 손수건에 곱게 물들어 예쁜 꽃잎 손수건이 됩니다. 봉숭아를 두드리면 주홍색 물이 들고, 애기똥풀을 두드리면 노란색 물이 듭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조심스럽게 꽃잎을 다루며 숟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더니 하나씩 꽃잎이 손수건에 스며드는 것을 겪자 신이 났던지 숟가락이 부서져라 두드려댑니다. 처음의 어설펐던 꽃잎은 점점 모양을 갖추고 곱게 물드는 것을 보자 아이들은 신기한 모양입니다. 완성된 손수건을 활짝 펼쳐 보이며 스스로 만든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