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에 뿌리는 씨앗 한 톨
- 중학생 글쓰기 수업

김소영|논술교사

글쓰기 지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교사로서의 경험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 교사로서 제 자신에 대하여 많은 회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올해 대학교 1학년이 된 딸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저와 함께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여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함께 논술 공부를 했습니다. 그만큼 딸에게 미친 영향이 컸다고 딸도 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딸이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대학을 휴학하겠다고 했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은 무척 컸습니다. 수험생의 몸으로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친구와 단 둘이서 국토 횡단 도보여행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투성이인 현실의 잘못된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조금이나마 고쳐 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며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떠맡기려는 딸을 이번에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딸은 "엄마는 논술 선생님으로서의 말과 엄마로서의 말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거짓말만 한 것 아니냐"고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또 다른 제자가 딸과 뜻을 나누고 싶다고 딸의 연락처를 물었을 때 가르쳐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 망설였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의 평탄하고 여유로운 삶을 바라는 욕심과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상의 괴리는 무척 컸습니다.
글쓰기 공부, 1주일에 한 번씩 잠깐 얼굴을 마주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거나 학생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저는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부르짖은 공자님 말씀들이 막상 현실에서 드러날 때, 더구나 저의 자식에게서 드러났을 때 더욱 괴로웠습니다. 논술 시간에 뿌린 씨앗 한 톨이 싹이 트고 자라서 더 이상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요. 제 학생들 중 어느 한 사람이 힘든 인생 길을 가려고 한다면 그 부모 또한 저처럼 마음 아파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는 논술 수업하기가 두렵습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학생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교사와 함께 읽은 책, 함께 나눈 말들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 수업 - '공감하기'를 중심으로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의 글쓰기 수업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은 많지만, 제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공감하기'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무척 빨리 읽습니다. 제법 두꺼운 책을 선정했는데도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다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내용을 깊이 들어가 보면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작중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구상을 하고, 자료를 찾고, 관계 있는 인물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정리를 한 후 글을 쓰겠지요.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출판사에 넘기고, 삽화가와 의견 조정을 하고, 교정을 보고 인쇄를 하여 책이 되면 또 나에게 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한 사람의 글을 쉽게 읽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를 느껴 보게 하면, 조금이나마 분위기 조성을 할 수 있습니다.

1. 작중 인물 되어 보기
독서시간에 주로 산문을 보지만, 글에 깊이 공감하는데 있어 시는 아주 좋은 자료입니다. 시를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아이들 자신이 시속의 한 인물이 되어 보는 방식입니다. 잘 알려진 시인들의 명작 시도 좋지만,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는 자기 또래들의 심상을 이해하는 것이 솔직한 감상을 이끌어 냅니다.

점심을 먹고 앉아서 숙제하던 현규
주위를 둘러보네
갑자기 뽕 하는 소리 들리네
코를 찌르는 구린내
구렸다 구렸어 현규가 구렸어
친구들의 합창
아무렇지도 않은 저 얼굴
뻔뻔한 놈
그래도 나는 그 방귀를 은근히 기다린다.

-「방귀」, 김재규(서산중학교 2학년)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지만 왜 은근히 방귀를 기다리는지 여학생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규의 키가 큰지 작은지, 덩치는 큰지 작은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지, 우리 반의 누구와 비슷한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커다랗고 뚱뚱하고 능글맞은 현규의 방귀 뀌고 시침 뚝 떼는 모습이 떠오르는 모양이었습니다. 다음은 이 시를 읽고서 '현규'의 입장이 되어 일기처럼 풀어쓴 학생의 글입니다.

♣ 지루한 2~3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의 정신상태가 만땅이 되는 4교시 끝나기 5분 전, 엉덩이가 들썩거리다가 드디어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엄청난 버퍼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하지만 윽, 오늘 메뉴는 전부 맛없는 것이네. 오오옷! 고구마 맛탕이 있군. 흐흐, 많이 받아야지. 이런, 현규가 엄청 많이 가져가네. 나도 질 수 없닷!
(식사 중에)
호호, 역시 맛탕은 맛있다니깐. 이제 좀 놀아볼까? 어휴, 현규 저 녀석은 점심시간에도 숙제를 하나? 하여튼.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두리번거리지? 수상해, 한번 가 볼까? 어어, 점점 얼굴이 핼쑥해지네. 앗, 그렇담 아까 먹은 고구마로 인한 방귀?
아악~ "부~웅"
으윽, 늦었다. 교실로 퍼져나가는 이 냄새, 아이들도 맡은 것 같군.
"아이구, 이게 무슨 냄새냐?"
"누구냐, 누구니?"
"바람의 방향으로 보아 현규다!"
"구렸다~ 구렸어~ 현규가 구렸어~"
히히, 창피하겠다. 아니, 저 뻔뻔한 철면피 좀 보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래도 재미있다. 한 번 더 뀌었으면….

소가 차에 올라가지 않아서
소장수 아저씨가 "이랴" 하며
꼬리를 감아 미신다.
엄마소는 새끼 놔두고는
안 올라간다며 눈을 꼭 감고
뒤로 버틴다.
소장수는 새끼를 풀어 와서
차에 실었다.
새끼가 올라가니
엄마소도 올라갔다.
그런데 그만 새끼소도 내려오지 않는다.
말을 묶어 내릴려고 해도
목을 맨 줄을 당겨도
엄마 소 옆으로만
자꾸자꾸 파고들어간다.

결국 엄마소는 새끼만 보며 울고 간다.

-「팔려 가는 소」, 조동연(경북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

서울에서 자라고 시골을 별로 접하지 않은 학생들은 어미 소도, 새끼소도 가게에 진열되어 있다가 손님이 오면 팔리는 줄 아는 모양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소를 소장수가 트럭을 타고 와 사 가는 장면이 아니라 손님이 사러 왔을 때 소 장수가 팔려고 트럭에 싣는다고 상상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꼬리를 감아 미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내가 이 상황 속에 있다고 가정해 보면 아이들이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금방 드러나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소장수의 심정이 되어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소를 팔러 나간다. 트럭을 끌고 외양간으로 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반항하는 소들 틈에서 매일 이렇게 저렇게 소리 지르는 것도, 붙잡는 것도 힘이 든다. 오늘 팔 소들을 거의 다 올리던 중 소 한 마리가 심하게 반항하며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제발"하고 외치는 것 같다. 이 소가 왜 이러나, 이랴 하며 계속 외쳤지만 소는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새끼가 있었다. 불쌍하지만 우리 새끼 밥 먹이려면 어쩔 수 없다. 새끼소를 차에 올렸다. 그러자 어미 소도 얼른 차에 탔다. 나는 잽싸게 새끼소를 차에서 내리려 했더니, 저도 어미가 쳐다보듯 쳐다본다. 계속 어미 품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나는 어미 소를 팔아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뭔지 모르는 아픔을 느낀다.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경북 경산 부림초등학교 6학년)


♣ 내가 집안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쉴 때도 엄마는 다 떨어진 헌 옷을 입는다. 내가 왜 그런 헌 옷을 입고 다니냐고 하면 엄마는 대꾸도 안 한다. 남이 보면 어떡하나,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와서는 엄마의 옷을 찢어 버린다.
"그런 초라한 옷 입지말고 내가 사 준 새 옷 입고 다녀!"
엄마는 아직도 두 번 정도 더 입을 수 있는데 뭘 그러냐고 했다. 엄마 아빠가 너무 말싸움을 하자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나가 보니 둘이 부부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엄마의 헌 옷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희한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끝날 때까지 쥐 죽은 듯 책만 읽었다.

시속에는 헌 옷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서민 가정의 애환이 잘 드러나 있지요.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고 가난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아이의 눈에 보인 사실적인 모습이기에 더욱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이 시를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유복하게 자란 남자아이가 엄마의 헌 런닝구를 찢는 아버지의 복잡한 마음을 쉽게 알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헌 옷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희한했다고 느끼는 대목은 무척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자는 닷 돈짜리 금가락질 해줘야 와서 살겠단다
싸전에 맡겨두었던 딸아이 찾아
합동정류소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으며
홀아비에겐 바보 딸이 그래도 위안이 된다
군불 지펴 구들 덥히고 베개 나란히 누울 사람
궁상스런 냄비밥이나마 함께 먹어 줄 사람
침흘리개 딸뿐, 거꾸로 쥐고 흔들어도
싸라기 금 한 톨 나오지 않을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저녁
싸전 앞 버스 정류장에 겨울비 내린다
땟국 흐르는 조막손 제 아비에게 맡긴 채
딸아이는 무엇인지 즐거워 흙탕물 튀긴다

-「맞선 본 날」, 최은숙

다음은 이 시에 나타난 딸아이의 입장이 되어 학생들이 적어본 글입니다.

♣ 오늘 우리 아버지가 선을 봤다. 아버지는 나를 평소 잘 알던 싸전에 맡기고 선을 보러 갔다. 아버지가 선을 보는 내내 오늘은 웃는 얼굴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이런 내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올 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버지를 보았다. 얼굴이 안 좋다. 또 잘 안 되었나 보다. 선 본 아줌마가 딸 있는 홀아비라고 싫다고 했나?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싫은가?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나 때문에 선을 본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정류소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온다. 내 생각을 아버지에게 들킬까봐 괜히 즐거운 척 흙탕물을 튀긴다.

철없는 딸아이가 흙탕물을 튀기는 장면이, 감상하는 학생의 글에서는 속 깊고 조숙한 딸의 속내로 바뀌었군요. 바보 딸이 아니라 너무 똑똑한 딸의 얘기에 글 쓴 학생은 머쓱해 했지만 다른 학생들은 재미있어 했습니다. 어쩌면 시인도 어릴 적에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은 웬일인지 아빠가 멋있어 보인다.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함께 어디로 가려는 걸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를 싸전에 맡기고 혼자만 가 버린다. 나만 빼고 아빠는 도대체 어딜 가는 걸까? 나는 하루 종일 아빠만 기다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아빠만 기다렸다. 아빠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아빠는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나는 다시 아빠와 함께 가게 되어서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너무 행복했다.

또, 아버지가 딸을 맡겨둔 싸전가게 아주머니의 시선도 있습니다.

♣ 싸전가게 아줌마
저쪽 아랫집에 사는 홀아비는 나에게 그의 딸을 맡기고 오늘 어디론가 부리나케 나갔다. 그의 딸은 바보이다. 전에도 가끔씩 맡아준 적이 있는지라 난 거절하지 않고 맡아주었다. 솔직히 나도 이 아이가 오는 게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이 아이가 오면 시간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은 없다. 나 혼자 있을 땐 그냥 손님 오면 달라는 것 주고 손님 가면 나 혼자 있어야 한다. 저쪽 새 쌀가게가 들어서기 전엔 손님도 많고 해서 심심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젠 손님 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버려서 요즘은 영 심심하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있으면 바보라고 해도 말은 알아들으니까 말도 붙여보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다. 가끔씩 이 애가 일을 저지르면 곤란하긴 하지만…. 우울하고 힘들 때 계속 웃고 있는 이 아이를 보면 괜스레 내 얼굴에도 미소가 띈다. 나도 물론 남편과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은 저 세상으로 가 버리고 아들은 다 커서 서울로 가 버렸으니 심심할밖에…. 아까 온 손님한테 듣기론 애 아버지가 맞선을 본다는데 이번에는 성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순해 터져서 요즘같이 발랑 까진 여자들이 살려고나 할지…. 이 사람 돈은 없지만 마음은 알고 보면 비단결 같은데, 이만한 신랑감이 어디 또 있을까.

시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인 싸전가게 아줌마의 생각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지요. 하지만 시의 내용보다는 주변인물인 싸전가게 아줌마의 신세 한탄이 많아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감정이입하기 힘든 과부 아주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어른 세계의 상투적인 상황을 끌어온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 아이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해 근사하게 글이 나올 만한 방법을 택하는데, 그런 방식이 자신의 솔직한 감상과 표현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아버지와 선을 본 여자의 입장에서 쓴 감상입니다. 상황을 그리는 학생의 세심한 시선이 무척 잘 느껴집니다. 성인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지만 앞의 글과 달리 상투적이지 않고, 여자로서의 심리를 이제 이해하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 5분이나 기다리게 하더니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내 앞에 앉았다. 망했다. 눈만 껌뻑 거리다 날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답답해 죽겠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느닷없이 같이 살자고 한다. 나는 한동안 그 남자의 쭈뼛쭈뼛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당황해 하며 그 아저씨도 따라 일어선다. 내가 계산하고 나가려하자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내 앞으로 나선다. 옷모양새를 보자니 달랑한 바지가 빌려 입은 옷처럼 몸에 맞지도 않는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하나하나 센다. 짜증나고 창피하다. 내가 먼저 문밖으로 나서며 닷 돈짜리 금가락지를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톡 쏘아붙였다.
"에라이, 나도 어려운데 내가 뭘 어쩌겠어." 어깨를 축 늘인 채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저씨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2. 연극대본 만들어 보기
소설을 읽거나 신문기사를 읽을 때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골라 연극대본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독후감 쓰기를 싫어하는 학생도 연극대본을 만들고 배역을 정해 읽으면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주제파악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의 초가교실』(차오윈 쉬엔 / 새움)이라는 소설을 읽고 한 부분을 썼습니다. 엉뚱하고 자연 그대로인 상상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상상의 초가교실』(차오윈 쉬엔 / 새움) : 중국 '유마지'라는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상상이라는 귀여운 소년이 성장하며 겪는 이야기. 개구쟁이들의 경쟁, 시기, 질투, 우정의 이야기와 그들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 아이들이 쓴 대본

첫 번째 글.
장소 : 강가, 집
나오는 사람들 : 상상, 아노, 친구1, 친구2, 어부들, 주변사람1, 2

강가에서 어부들이 배를 띄워놓고 고기를 잡고 있다.
상상, 아노와 친구들이 지나가다 어부들을 본다.
아노 : 우와 저 많은 고기들 좀 봐.
상상 : 우리도 저렇게 고기 잡아볼까?
친구1 : 어? 상상! 니네집에 그물있어?
상상 : 아니.
친구2 : 그러면 어떻게 물고길 잡니?
상상 : 다 방법이 있지. 나를 따라와 봐!

상상은 친구들을 이끌고 집으로 가 그물로 쓸 물건을 찾다 모기장을 찾아 가위로 쓱쓱 잘라 그물을 만든다.

친구들 : 와 대단하다!
상상 : 자, 출발!

주변사람 : 상상, 그물은 어디서 났니?
상상 : 당연히 모기장으로 만들었죠!
주변사람 : 너네 엄마한테 혼나는 것 아니니?
상상 : 앗!
(상상의 얼굴에 그늘이 생긴다.)

두 번째 글.
장소 : 상상의 교실
등장인물 : 상 차오 교장, 온유국, 아이들, 진씨 할머니, 타교 교장
해설 : 온유국 선생님의 반에서 조용하게 참관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닭들이 교실에 들어온다.
상 차오 교장 : 아니, 웬 닭이지? 설마 또 진씨 할머니가 풀어놓은 거 아니야?
(닭들이 교실 흙바닥을 파헤치며 먼지 기둥을 만들어 내자 아이들의 코를 막고 눈을 가린다.)
학생 : (닭을 발로 차며) 이놈의 닭, 저리로 가지 못해?
(닭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 교실이 소란스러워 진다. 갑자기 타교 교장 발 옆에 똥을 싼다.)
상 차오 교장 : 흠, 흠, 죄송합니다. 워낙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다 보니.
타교 교장 : 젠장, 이게 얼마짜리 신발인데! 도대체 이 학교 양계장이야, 학교야?
(닭이 갑자기 한 아이를 콕 쫀다.)
학생 : 아얏!
온유국 : (당황한 목소리로) 빨리 닭을 내쫓지 않고 뭘 하니?
아이들 : (큰 소리로 외치며 모두 일어나) 와! 닭을 잡자!
상상 : 야, 얼른 빗자루를 들고 책상 위로 올라가.
아이들 : 그래그래. 책도 흔들어.
타교 교장 :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이 학교 정말 미쳤군. 다신 오지 말아야지.
진씨 할머니 : (문 뒤에 숨어서) 흐흐, 꼴 좋다. 나를 이곳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로 못 떠나. 여긴 내 집이야.

번듯한 학교를 만들어 자랑하고픈 교장선생님과 힘들여 가꾼 농토를 학교부지로 빼앗긴 진씨 할머니의 갈등을 잘 잡아내었습니다. 중1 남학생답게 가장 소란스럽고 정신 없는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들었답니다. 본래 이야기체 구성인 소설을 연극대본으로 바꿔보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아이들이 생생한 현장묘사로 구성해야 할 필요가 큰 것은 신문기사나 뉴스에 나타나는 시사적인 사실들입니다. 논술수업에서 신문사설과 같은 텍스트는 수업자료로 흔히 쓰이지만, 그 쟁점에 아이들이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많은 선생님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연극으로 꾸밀 수 있는 시사소재가 다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지만, 다룰 수 있는 소재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렵고 공감이 가지 않는 사회적인 이슈를 아이들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와 출산율을 왜 높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연극 대본을 써 보았습니다.

♣ 아들 : 엄마, 나 동생 하나만 낳아 줘요.
엄마 : 이놈아, 너는 아이 하나 낳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
아들 : 힘들긴 뭐가 힘들어! 텔레비전에서 아이 나오면 예뻐 죽으려고 하더니.
엄마 : 그럼 돈은? 양육비, 교육비는? 지금보다 두 배는 늘어날 텐데. 쥐꼬리만 한 아빠 돈
으로 생활비랑 너 학원비 쓰면 없단 말이야.
아들 : 벤처기업 회장이면 못 살지, 암 못살아. 엄만 매일 백화점 다니며 아줌마들과 놀면
서….
엄마 : 어, 어쨌든 안 돼. 너 하나 키우기도 얼마나 힘든데.
아들 : 이러니까 문제지.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1.08명으로써 세계 최저 수준 근접, 선진
국 평균인 1.57명에 못 미친다고요. 비록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실효는 없지만 출산율이 계
속 떨어진다면 생산 가능 인구는 감소되고 노인 인구는 늘어난대요.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
가 많아지면 국내 소비 시장이 위축되어 국가의 성장 잠재력도 떨어져요.
엄마 : 아유, 시끄럽다. 저리 가.

쉬운 말로 풀어쓰기 힘들어 신문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꼴이 되었지만, 아이들도 가정에서 목격하는 서민층의 교육비 부담 현실이 드러나 있습니다.

3. 내용 이어쓰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신시아 라일런트 / 사계절출판사)를 읽은 후 돌아가신 메이 아줌마께 주인공 써머가 되어 편지를 써 보자고 하였습니다. 메이 아줌마가 써머를 데리고 와서 같이 살게 된 게 얼마나 좋은지 주인공이 말하는 부분을 자세히 읽은 후 글쓰기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메이 아줌마. 저희는 잘 지내요. 물론 아줌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긴 하지만 요. 아줌마가 저를 트레일러로 데리고 오셨을 때가 생각나요. 그 때 저를 위해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놓으시고…. 마침내 내 집을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오브 아저씨와 함께 저를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해주셨으니까요.
아줌마 돌아가신 후 오브 아저씨는 정말 이상하셨어요. 제가 온 이후 처음으로 늦잠을 주무셨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잘 계세요. 클리터스란 아이와 죽이 척척 잘 맞아 샘이 나요. 아줌마도 분명 그 아이를 좋아하실 거예요. 클리터스 덕분에 아저씨도 힘을 되찾으셨고 다시 평소처럼 돌아오셨어요. 저는 아저씨가 너무 슬퍼하셔서 되도록, 아니 무척 힘들게 눈물을 참았지만 올빼미가 지나가는 순간은 아줌마가 생각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그 때 기억나세요? 제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난다고 해서 나가 봤더니 올빼미가 우리를 지나갔을 때.
지금도 너무너무 보고 싶지만 나중에 만날 때까지 참을게요. 처음 모습 그대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그대로 계세요. 그럼 그때 뵈요.
-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파예트 군 한복판에 자리 잡은 딥 워터 마을 산자락에 박혀 있는 낡고 녹슨 트레일러에서, 써머 올림

4. 내 생각 쓰기
신문 기사를 읽은 후 내 생각 쓰기를 하면 기사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9월 2일자에 실린 커피 공정 무역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 소비 안 하는 하루를 정해 실천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고 내 생각 쓰기를 해 보았습니다.

♣ 샤프, 아이스크림, 음료수, 떡볶이. 이런 것들이 내가 주로 사는 것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면서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나는 별 생각 없이 간식을 산다. 또 샤프가 고장나거나 지우개가 없어졌을 때 몇 번 고쳐 보지도, 찾아보지도 않고 새 것을 사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산 것 대부분이 필요 없는 것을 충동적으로 구매한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내가 충동적으로 사지 않고, 한 번쯤 그것이 진정 나에게 필요한가 생각해 본다면 많은 이익이 따라 올 것이다. 우선 나와 우리 가족의 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 물건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면서 쓰이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 물건을 태우거나 묻어서 썩기를 기다리는 동안 생기는 공해도 막을 수 있다. 나의 소비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아끼면서 사는 생활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정해서 실천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 아무것도 안 사는 날이 있다면 좋은 사람도 있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슈퍼의 주인이나 문방구, 악세사리 점의 주인은 하루 동안 돈을 못 벌어 피해를 입는다. 내 생각에는 소비가 경제를 돌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의사가 가게에서 무언가를 산다면 그 행동의 결과는 의사에게는 소비지만 가게 주인에게는 수입이다. 그 가게 주인이 아파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돈을 내니 따지고 보면 의사가 소비한 돈이 다시 수입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즉 소비가 수입이 된 것이다. 이렇게 적당한 소비는 우리의 경제를 살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경제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안 사는 날을 정할 게 아니라 적당한 소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신문기사만큼 현실적이면서도 소설처럼 극적인 구성을 갖고 있는 매체가 '영화'입니다.
영화 <괴물>이 흥행한다는 기사를 읽고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사회 현상에 견주어 보는 활동을 해보았습니다.
♣ 옛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절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한 가족의 권위 있는 아버지였기에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괴물>에 나오는 송강호와 변희봉으로 대표되는 오늘의 아버지 상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행동한다. 이런 아버지 상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옛날과 지금의 아버지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일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집안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고 모두 여자들이 맡아서 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고 아버지들이 집안 일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식들과의 대화도 더 많아지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점점 아버지들도 권위 있고 엄격한 아버지 상에서 친근하고 재미있는 아버지 상으로 바뀌면서 사랑 표현을 하는 아버지도 많이 생긴 것 같다.

♣ <괴물> 영화에서는 그런 내용이 없지만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재벌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만남 일색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서 생각할 수 없다. 사실상 재벌과 평범한 사람이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가난한 여자가 취직을 하러 와 면접을 본다든지, 호텔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재벌 남자와 눈이 맞는다. 솔직히 생각해 보자. 재벌 남이 면접 보는 여자에게 반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호텔에서 피아노 치는 여자를 거들 떠나 볼까? 이것은 재벌 남을 만나 인생 대 역전을 노리는 여성들의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런 드라마가 여성의 생각을 바꿔 놓기도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드라마틱한 삶을 바라고, 보통의 남자는 거들떠보지 않으려 한다. 남자가 재벌 남처럼 척척해 주지 않으면 남녀간에 의견 차이가 생기고, 그 사이는 나빠질 뿐이다.

첫 번째 글은 여학생이 쓴 글이고, 두 번째 글은 남학생의 글입니다. 중학교 1학년과 수업을 하다 보면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준 차이가 나서 이야기가 잘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했지만, <괴물>이란 영화를 본 후 두 학생이 보인 연상 작용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가족애'를 확장시켜 과거의 아버지 상과 현재의 아버지 상을 비교한 점이 눈에 띱니다. 영화와는 다른 내용을 쓰고 있지만 비슷한 맥락을 찾아내어 자신의 생각을 덧씌웠습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글은 아이의 생각은 흥미롭지만 자신이 이 영화와 어떤 소통을 했는지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무언가 느끼고 쓴 것이 아니라 평소 자신의 주장을 던져놓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편견이 드러나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신문기사 등 수업자료를 활용할 때에는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참 성장하는 중이고 생각이 언제든 바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새로운 내용과 경험을 만날 때에는 그것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학생들이 이런 행위를 비교적 더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 같습니다. 남학생은 사춘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여학생은 처녀가 다 된 조숙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학생들과 수업 진행을 할 때 저는 '동감하기'가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함께 느낄 때 의견이 부딪혀도 훨씬 부드럽게 풀릴 수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사회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요즘, 동감이란 씨앗 한 톨이 아이들의 마음 밭에 심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