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
- 전통 놀이를 활용한 연극놀이

박정열 | 연극놀이터 '해마루' 교사, 신나는 문화학교 교육위원

동아 사러 왔다 / 씨 사러 갔다
동아 사러 왔다 / 인제 사 가지고 왔다
동아 사러 왔다 / 밭에 갈았다
동아 사러 왔다 / 씨가 트인다
동아 사러 왔다 / 꽃이 맺었다
동아 사러 왔다 / 열매가 달렸다
동아 사러 왔다 / 인제 익어 간다
동아 사러 왔다 / 인제 익었다
동아 사러 왔다 / 익은 거 따 가거라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길게 늘어선 두 편이 이렇게 서로 묻고 대답하는 노래를 부른 후 서로의 꼬리를 잡는 꼬리 따기 놀이를 시작한다. 이 놀이는 자기편 줄이 끊어지지 않게 노력하면서, 모두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움직이며 상대편 꼬리를 잡는 놀이이다. 이 노래는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즐거운 생활』에 나오는 노래다. 연극놀이터 '해마루'에서 그동안 이 놀이는 여럿이 함께 움직이기, 다양한 몸짓표현, 역할놀이, 상상여행 등의 연극놀이로 개발되어 활용되었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표현 정도를 달리 하면서 다양하게 놀았다. 다만 요즘은 동아를 보기가 어려워 자주 볼 수 있는 호박 따기 놀이로 변형했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놀이 명칭도 대부분 호박 따기 놀이로 되어 있다.
놀이는 규칙과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의 놀이로 분류된다.
서로 편을 갈라 겨루는 놀이, 잡고 잡히는 술래형 놀이, 그리고 일정한 역할과 이야기가 있는 서술형 놀이가 그것이다.(놀이 연구가 이상호 선생님의 분류) 아이들과 놀아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술래형 놀이를 좋아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겨루는 놀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서술형 놀이는 이야기에 따라 장난감이나 주변의 소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타인의 동작이나 활동을 모방해서 마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과장해서 행동하는 놀이다. 이는 '마치 ∼인 것처럼' 극적 상황 속에서 행동하는 연극적 행위와 같다. 오늘 소개하는 '호박 따기'는 대표적인 서술형 놀이다. 서술형 놀이에는 소꿉놀이로 진행되는 풀 각시 놀이, 포수놀이, 도둑잡기 등의 놀이가 있다. 이런 서술형 놀이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아이들의 눈으로 본 어른 세계의 자연스런 모방에서 출발한다. 생활을 모방함으로써 서로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하고 사회적 관계를 터득해 간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감정을 표출하고 조절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이렇듯 놀이를 통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창조력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개인의 역량으로 발전해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놀이들이 점점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전래놀이의 많은 부분을 연극놀이로 개발하고 있다. 전래놀이가 갖고 있는 자발성과 재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 우리 아이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새롭게 창조되고 계승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호박 따기' 놀이
여기서는 그동안 진행된 몸짓표현놀이 중심의 '호박 따기'와는 조금 다르게, 서술형 놀이의 골간을 유지하면서 놀았던 '호박 따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은 해마루 연극놀이학교를 1년 이상 다니고 있는 동아리 반 아이들로 2학년부터 4학년으로 구성된 어린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이미 몸짓표현 놀이로서의 '호박 따기'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풍물장단이 나오면 몸을 자연스럽게 놀리며 춤을 추고 기본 장단을 칠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미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서술형 놀이로서 '호박 따기'는 '꼬리 따기'나 '숨바꼭질'로 이어가는 앞 놀이에 해당한다. 꼬리 따기 놀이는 호박을 사러 온 손님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호박을 내주지 않다가 호박이 다 익으면 손님이 호박의 꼬리를 하나씩 따 가는 놀이이다. 숨바꼭질 놀이는 익은 호박을 손님이 따다가 숨겨 놓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계속 호박을 따가, 호박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고 화가 난 할멈이 호박을 찾으러 가는 놀이로 이어진 형태다.

1. 놀이를 위해 마음열기
우선 아이들은 교사가 나누어 준 호박씨를 관찰하며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 씨는 무슨 색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색의 꽃을 피울까? 그 꽃은 클까? 작을까? 이 씨가 피우는 꽃은 무슨 향기가 날까? 이 씨의 열매는 어떻게 생겼을까? 맛은 어떨까 먹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탐색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호박씨가 되어 여행을 시작한다. 몸 속에 들어간 호박씨 꺼내기, 땅 속에 호박씨 묻어주기, 땅 속에 묻힌 호박씨 되기, 교사의 이야기구연을 들으면서 자라나기, 호박꽃과 지렁이 나비의 역할놀이, 열매 맺기….
아이들은 캄캄한 땅 속의 좁고 답답함을 경험하고 지렁이가 있음으로 해서 땅의 흙이 부드러워지는 것,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주인집 딸 순이(이야기 구연에 등장하는 인물)의 보살핌으로 몸이 점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경험, 그리고 나비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는 경험을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다 자란 호박들은 드디어 바깥구경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역할놀이가 시작된다. 교사는 호박 장수가 되어 호박을 사라고 외친다. 손님역할을 하는 역할교사가 등장하여 재주 많은 호박을 사고 싶다고 한다. 둘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자발적인 몸짓표현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주인을 위해 자신들이 꼭 손님에게 팔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주를 뽐내며 통통 튀기 데굴데굴 구르기·소리내기·춤추기 등의 자기표현을 열심히 한다. 이렇게 하여 손님은 이 호박들을 모두 사간다. 여기서 다시 한번 꼬리 따기 놀이를 하며 호박 따기 놀이로 진행하는 연극놀이를 마친다. 후속활동으로 호박과 같이 했던 여행을 생각하면서 일기 써보기, 나눠준 호박씨를 심은 후 관찰 일기 쓰기 등을 할 수 있다.

2. 할멈 할멈 호박 사러 왔수
우리는 호박 따기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꼬리 따기 놀이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역할을 정한 다음, 호박 사러 오는 손님과 호박이 자라나는 과정을 노래로 진행하던 것을 손님과 할멈의 문답놀이와 호박들의 몸짓표현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우리 반에서 제일 맏형인 4학년 경도와 수연이가 손님과 호박 장수를 하겠다고 나섰다. 다른 아이들도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쉽게 승복할 수 없는 2, 3학년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한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손님 역의 경도가 호박을 사러 호박장수인 할멈 역의 수연이에게 간다.
"할멈 할멈 호박 사러 왔수."
"인제 밭을 갈고 있는데 무슨 호박이야? 나중에 오슈."
손님은 돌아가고 할멈과 호박역할의 아이들은 밭을 가는 흉내를 내며 즐겁게 웃는다.
"할멈 할멈 호박 사러 왔수."
"씨 사러 갔으니 나중에 오슈"
손님은 또 거절을 당한다. 할멈과 호박들은 이제 씨를 심었다, 싹이 났다, 꽃이 피었다, 열매가 달렸다, 아직 안 익었다하며 손님을 거들 떠도 안보고 자기들끼리 재미나게 논다. 거절을 당할 때마다 손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밖에서 이 모양을 보고 있으니 할멈과 호박들이 손님을 왕따 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손님은 지치지 않고 무료한 기다림을 참아낸다. 그리고는 또 간다. 언젠가는 호박이 익어서 따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결과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거다.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믿음 속에서 지루한 기다림을 참고 다시 도전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어린이도 마찬가지리라. 작은 호박씨가 호박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듯이 어린이도 씨앗에서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상태지만 세상에서 제 몫을 해내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거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 준다면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할멈 할멈 호박 사러 왔수."
"이제 다 익었으니 따 가시우."

드디어 호박을 하나 얻었다. 할멈은 왜 순순히 호박을 내주는 걸까? 아마도 지루한 기다림을, 혼자외톨이였던 상황을 잘 견뎌낸 것에 대해 보상해주고 살펴주는 마음이 아닐까?

"할멈 할멈 호박 하나 주시우."
그런데 손님이 또 왔다. 호박을 또 달라는 거다.
"어제 가져간 호박은 어떻게 했수?"
할멈이 묻는다.
"아 글쎄 이웃에 사는 사촌이 하도 먹고 싶다고 해서 줬지 뭐예요."
"그럼 하나 더 가져 가슈."
사촌을 줬다는데 안줄 수가 없다. 또 하나 내준다.
"할멈 할멈 호박 하나 주시우."
손님이 또 왔다. 할멈은 이제 줄 수 없다고 버틴다.
손님은 '잘 보관하려고 선반에 올려놨는데 쥐가 다 파먹었다.', '가다가 자동차랑 부딪힐 뻔해서 떨어져 깨졌다.', '이웃에 혼자 사는 노인이 불쌍해서 주었다.' 하며 계속 와서 호박을 달라고 한다.
할멈은 자신이 정성 들여 키운 호박인데 자꾸 와서 달라고 하니 점점 화가 나는 모양이다.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 나에게 달려 왔다.
"선생님, 이거 꼭 다 줘야하는 거예요? 주기 싫어요."
수연이가 정말 화가 많이 났다. 그렇다. 원래 놀이는 할멈이 손님에게 호박을 다 내주기로 되어 있고 손님은 호박을 가져가서 자기 집에 숨겨 두는 놀이다. "어떻게 하고 싶니?" 하고 수연이에게 물었다.
"안 줄 거예요."
"그럼 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야겠네? 너는(혼자 남은 호박) 어떻게 하고 싶니?"
"저도 가기 싫어요."
"그럼 서로 어떻게 할지 상의해 보세요."

자기 것을 그냥 내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자신이 노력해서 정성 들여 얻은 것은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른도 그런데 하물며 아이들이야…. 수연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도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키운다.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풀도 뽑아주고 이렇게 저렇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비가 한동안 안 오는데 못 가보면 채소가 다 말라 있을까봐 걱정,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썩을까봐 걱정, 이렇게 작은 땅을 부치면서도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많다. 어쩌다 나가서 한 두 시간 일하고 나면 무척 힘이 드는데 새삼 농사짓는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크고 고마운 것인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생명을 키워내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내가 한 만큼 먹을 것을 주는 땅의 정직함과 고마움이다. 아니 내가 노력한 것 보다 더 풍성한 먹거리를 주는 은혜로움이다. 나의 노력으로만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누어야 한다는 소중한 마음을 가르쳐주어 더 그렇다. 내가 키운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하늘과 땅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리고 씨앗 속에 이미 숨어있는 생명의 위대함을 보았기에 그냥 혼자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이런 놀이가 생겨났나 보다. 달라고 하면 그냥 다 내어 줄 수 있는 심성이 그 안에 있다. 그리고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삶의 철학이 놀이 안에 베어 있다. 그러나 놀이에서는 노동과 수확의 과정이 빠져있으니 그냥 무작정 다 내어준다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더 크고 그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깝고 속상할 것이다. 주기 싫은 것이 솔직한 자기표현이다. 결국 수연이는 마지막 남은 호박을 자기가 먹어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경도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순순히 물러서는 수밖에….

3. 귀중한 것을 주고받으며
여기까지 오면 할멈이 손님 집으로 호박을 찾으러 가면서 숨바꼭질 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루에서는 연극놀이로 상황을 계속 이끌어 갔다.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 호박은 할머니가 먹은 것으로 되어 수연이랑 같이 할멈 역을 맡았다. 할멈들은 화가 나서 손님인 경도네 집으로 가서 호박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호박역할의 아이들은 경도네 집에 있는 물건들로 몸 조각을 만들어 변신해 있다. 할멈이 호박을 가져가려 할 때마다 경도는 옆에서 이건 책상이요, 이건 의자요, 이건 냉장고요 하면서 할멈을 방해한다. 할멈들은 화가 나서 "잘 먹고 잘 살아라."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호박들과 손님은 화가 나서 돌아간 할멈을 걱정하여 맛있는 음식을 해서 할멈을 초대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일제히 할멈 집으로 몰려간다.

"할멈 할멈, 맛있는 호박전이 있으니 우리 집에 같이 갑시다."
"싫소, 안가요."
"호박전이 싫으면 호박죽은 어떻소?"
"다 필요 없으니 돌아 가시오."

이런 저런 대거리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음이 급해진 호박들이 할멈을 강제로 끌고 간다. 그러나 할멈은 다시 도망쳐 나온다. 옆에서 보고 있던 3학년 찬우가 급하게 오더니 종이와 색연필을 달라고 한다. 찬우는 종이 위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더니 할멈에게 간다.
"자, 보물 지도요. 화를 풀고 우리 같이 보물 찾으러 갑시다." 한다. 그러나 할멈은 "필요 없소, 난 안가요."하며 막무가내다. 슬슬 손님과 호박들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에게 달려온다. 아무리해도 할멈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일단 진행을 중단하고 모였다. 호박과 손님은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할멈은 왜 무작정 가지 않겠다고 하는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호박과 손님은 정말 진지하게 했다고, 계속 여러 가지 제안을 했는데도 할멈이 계속 거절을 해서 강제로 데려가기도 한 거라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이제 할멈이 대답을 해 주어야 할 차례다. 과연 왜 그랬을까? 수연이의 대답은 간단하고 확실했다. 호박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손님편이 되어서 손님을 도왔다는 거다. 그래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랬다. 이 상황은 손님과 할멈의 처지가 역전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할멈과 호박들이 손님을 따돌리는 듯 했는데 뒤로 갈수록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그래서 할멈이 느끼는 배신감은 곱절이 넘었던 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배신감으로 화가 잔뜩 나 있는 할멈의 마음을 풀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은 또 말한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배신으로 받은 상처는 아주 큰 것이라서 우리도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하자 희연이가 갑자기 "그럼 가마라도 태워 갖고 오란 말예요?"하며 크고 또렷또렷하게, 조금은 볼멘 목소리로 말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다들 눈을 반짝인다. 벌써 일어나서 매트를 준비하는 녀석이 있다.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이라는데 동감하며 희연이도 기꺼이 일어선다. 할멈을 태우던 가마는 어느새 모두가 한번씩 타보는 모두의 가마가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다시 한 번 해보면서 호박 따기 놀이는 조금 변했다. 호박을 계속 달라고 하는 핑계도 좀더 정교해졌고 마지막 남은 호박은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손님이 가져간 호박들은 할멈이 왔을 때 순순히 할멈을 따라 가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왜 다시 가고 싶으냐고 하니까 손님이 불친절해서 기분이 나쁘단다. 그러자 손님도 마음이 많이 언짢아졌다. 자기는 많은 돈을 내고 호박을 샀는데 할멈이 다시 호박을 달라니 말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자 할멈 역을 했던 녀석이 위조지폐였다고 둘러댄다. 이날은 할멈보다 손님의 기분이 더 상했다. 아이들은 바로 매트를 꺼내오더니 바이킹을 태우자며 난리다. 차례대로 매트 위에 올라가면 모두가 매트를 잡고 출렁출렁 움직이며 바이킹을 태우고 위로 3번 헹가래를 치며 덕담도 해준다.

"오늘 다친 사람 아픔은 다 날아가라."
"기분 나빴던 감정도 다 날아가라."
"말도 잘하고 씩씩해 져라."

호박 따기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똑같은 상황과 인물이 존재하지만 아이들은 놀이의 주체인 자신들에게 맞게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위로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것은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누군가 달래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다친 마음을 가늠하여 적극적으로 위로 할 줄도 알게 되는 것이리라. 아이들은 실감나는 놀이상황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의미를 자연스레 깨달아 간다.
그것은 이 놀이가 어린이에게 필요한 말하기, 듣기, 상황판단하기 등의 눈에 보이는 교육이기보다는,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서 어린이의 정서적 성장과 밝은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에서 배운 것
종종 어른들은 자신의 성숙한 자아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또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기준에서 아이들의 미숙한 행동이나 생각에 답답해하고 화를 내며 가르치려 든다. 이럴 때 조금만 기다려 보라.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이유 있는 것이었는지를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미숙한 존재임을 직면하게 해주는 아이들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고 또 무섭다.
아이들과 진행한 호박 따기 놀이를 통해 나는 아이들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그리고 너무나 착하고 예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상황과 관계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지 또 그런 마음을 내가 얼마만큼 이해하고 수용하며 건강하게 관계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장난감이란 필요 없다. 무엇이든 필요한 장난감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은 일단 달리고 본다. 전에 안보이던 물건이 있으면 거기로 가서 새로운 탐색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내 매달리고 앉아보고 끌고 다니다가 다른 애도 해보고 싶다고 하면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 안 된다고 하며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잠시 후에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같이 매달려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장난감으로 만들어 논다. 심지어 부채에서 떨어진 깃털을 입으로 불어 날리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손으로 바닥을 쳐서 넘기기, 바닥에 뒹굴기, 교실 양쪽을 왕복 달리기, 불 끄고 귀신놀이, 그러다 어느 정도 구성원이 되면 얼음 땡 놀이, 그물치기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논다. 이 아이들의 어디에서 이렇게 끊임없는 재미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전래놀이도 이런 아이들과 닮아있다. 똑같은 놀이를 매일해도 할 때마다 새로운 놀이가 된다. 무엇이든 재미거리를 찾아내어 정말 흥겹게 놀 줄 아는 아이들의 비상한 재주를 다 포용하기 때문이다. 궁합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다.
이런 아이들의 재주에 기대를 걸어본다. 지금은 많이 놀아지지 않아 잊혀져 가고 있는 서술형 놀이를 아이들과 재건해 보자. 현재 아이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상황과 인물을 등장시켜 놀이에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고 아이들이 즐겨 놀 수 있는 놀이로 만들어 보자.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이야기로부터 이 놀이가 시작되었을까를 상상하며 대거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어린이를 즐겁게 만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놀아질 수 있을 것이다.
서술형 놀이는 연극놀이에서 자주 활용하는 역할 놀이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다. 탈춤의 구조처럼 이미 사건의 전개 과정과 등장인물, 대사의 내용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놀아졌던 도둑 잡기 놀이도 누가 범인인줄 뻔히 알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져나가는 도둑이 있고, 이에 말의 재미와 상황을 구성하여 즐기는 것이다. 그 안에서 시대적 상황이 표현되고 인물이 풍자되면서 우러나오는 신명을 맘껏 즐기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신명과 진솔함이 그대로 베어있는 서술형 놀이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