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안에서 삶 가꾸기
- 선생님들이 꼽은 동시

그 따스한 울림으로 잠이 들고

황정희 | 논술교사

은자동아 금자동아
    
백창우 시.곡  

은을 준들 너를 살까 - 금을 준들 너를 살까 -
하늘 아래 보배동이 - 땅 위에 으뜸동이 -
마루 밑에 검둥개야 콩-콩콩 짖지 마라
쌔근쌔근 우리 아기 그 소리에 잠 깰라
쥐도 자고 새도 자고 해바라기도 잠든 대낮
싸리 울타리-넘어 하늬바람이 불어온다
할머니는 어디 갔나 - 고추 따러 밭에 갔지 -
할아버지는 어디 갔나 - 아기 꼬까 사러 갔지 -
은자동아 금자동아 얼싸동아 절싸동아
산 같이 높거라 바 - 다같이 깊거라

은을 준들 너를 줄까 - 금을 준들 너를 줄까 -
하늘 아래 기쁨동이 - 땅 위에 사랑동이 -
외양간에 송아지야 움머움머 울지 마라
칭얼칭얼 우리 아기 그 소리에 꿈 깰라
달도 자고 해도 자고 호-박별도 잠든 대낮
꼬불꼬불 고개 넘어 먹-구름이 몰려온다
삼-춘은 어디 갔나 - 풀-베러 들에 갔지 -
이--모는 어디 갔나 - 돈-벌러 서울 갔지 -
은자동아 금자동아 얼싸동아 절싸동아
샘 같이 맑거라 소나무 같이 크거라

- 『백창우 동시에 붙인 노래들』(보림) 중에서
  
"누구요?"
외할머니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셨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볼 줄 알았는데 그 믿음을 깬 외할머니는 지금도 생각하면 야속하다. 그 이후로 외할머니를 뵈러가기 싫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달려가서 질금질금 울었다. 그 한 해가 다 차도록 아랫목 벽에 정말 똥칠을 하시다가 가실 때에는 정작 정신이 맑아져서  내 이름을 자꾸 부르셨다고 했다.  
나는 외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머니들은 노래를 소리라고 한다. 외할머니는 가끔 소리를 하셨다. 내 귀에는 그것이 응응대는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한숨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모두 들일 나가고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는 줄줄이 외손주들을 맡아 키우셨다. 젖먹이는 업어서 어미가 있는 들에까지 가서 젖을 빨게 하고, 낮잠 자는 서너 살배기는 흥얼흥얼 자장가로 잠투정을 달래주셨다. 모두들 그렇게 컸다. 그렇게 다 크고 나니까 백 살까지 사실 것 같은 분이 구십을 조금 넘기고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외할머니의 자장가는 「은자동아 금자동아」보다 더 구수하고도 달큰했다. 가끔 한숨소리도 들어가고, 혼잣말도 들어갔기 때문에 숨도 안 차는 자장가였다. 내가 좀 더 자라서는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으셨다. 대신 "포오, 포오"하는 독특한 숨소리로 나를 재워주셨다. 다 크도록 학교에서 아무리 늦어도 도둑고양이처럼 할머니 방으로 숨어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더듬더듬 할머니 얼굴을 찾아 주머니에 숨겨온 사탕을 까서 입 속에 넣어드렸다.  

"할미, 맛있나?"
"그래, 그래, 참 맛나다. 젤로 맛나다."

그걸 다 빨아먹고 주무셨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참 오래 되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우선 업어준다. 또 몸을 흔들며 투정을 부려도 업어준다. 병이 나서 축 처져 있어도 업어준다. 길 가다가도 아무도 없으면 다 큰 애를 얼른 업어준다. 그리고 내 외할머니처럼 웅얼웅얼 노래를 해준다. 그 울림이 얼마나 좋은지, 등에 얼굴을 대면 그 울림이 얼마나 따스한지 느끼라고 자꾸 노래를 불러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숨소리 같은 내 외할머니의 자장가가 참 그립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얹혀사는 딱따구리 나무 궁에 잠을 자고          
꼬불꼬불 할마씨는 영감 품에 잠을 자고          
어제 왔던 새아씨는 신랑 품에 잠을 자고
우리 같은 아구네는 엄마 품에 잠을 자네      

*남게 : 나무에
*궁게 : 구멍에                          
*아구네 : 아이들은

- 『전래동요를 찾아서』(홍양자 지음 / 우리교육) 중에서

저녁이면 아기가 멀뚱멀뚱 잠을 안 잤다. 어미인 나는 그 낮에 큰살림 꾸려가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는데 아기는 멀뚱멀뚱 잠을 통 안 잤다. 방방마다 불이 꺼지고 다 잠들었는데, 나도 그만 자고 싶은데, 그만 아기가 미워졌다.
새는 남게 자고, 쥐는 궁게 자고, 얹혀사는 딱따구리는 나무 궁에 잠을 자고, 할마씨는 영감 품에 잠을 자고, 새아씨는 신랑 품에 잠을 자고, 아구들은 엄마 품에 잠을 잔단다.
아기는 무얼 알고 웃는 걸까? 하물하물 눈이 감기다가도 배시시 웃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나는 다시 처음부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었다. 내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실은 나도 어린애였다. 밤마다 불러주던 자장가는 어쩌면 나 자신에게 불러주던 자장가였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 내가 처음 아기였을 때에는 내 외할머니가 나를 달래주었건만, 다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 때는 그전 같이 호화로운 자장가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마 내 손으로라도 자장가를 불러내야 했을 것이다. 노랫말이 우스워 나도 아기처럼 웃음이 나왔다. 아기와 마주보고 그렇게 웃다가 잠이 드는 밤이었다.
그때는 밤처럼 편안한 것도 없었다. 나는 날마다 세상을 배우느라 녹초였고, 내가 누구였는지 잃어버렸다가 누군가 문득 내 이름을 불러주면 눈물이 왈칵 났다. 밤마다 자장가를 부르며 내가 누구였는지 자꾸 기억을 더듬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그리웠던 건 친정에 두고 온  엄마 아빠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제일 그리웠다.
밤마다 새는 남게 재우고, 쥐는 궁게 재우고, 아구들은 내 품에서 재웠던 시절이었다. 새로 나이를 먹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

부르는 사람이 임자인 노래

아 - 침 - 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구요
저 - 녁 - 에 우는 새는 엄마 보고 싶어 울지요

아 - 침 - 에 조는 개는 잠을 못자 졸구요
저 - 녁 - 에 조는 개는 심심해-서- 졸지요

잘 - 익 - 은 복숭아는 한슬이를 주구요
덜 - 익 - 은 복숭아는 까짓것- 내가 먹지요

잘 - 생 - 긴 가-지는 가시네를 주구요
못 - 생 - 긴 모-과는 머슴애-를- 주지요

아주 매-운 고-추는 아버지를 주구요
아주 예-쁜 고-추는 언-니-를- 주지요

아주 커다란 광주리엔 메-주를 담구요
아주 조그만 소쿠리엔 호-두-를- 담지요

- 『새로 다듬고 엮은 전래동요』(보림) 중에서

밤마다 잠을 안 자 속을 태우던 아기가 이제 열두 살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열세 살이 된 셈이다. 아기가 열 살을 넘기면서 어미에게 대들었다. 나도 내 어미에게 대항을 했다. 열 살이 된 아기는 "엄마도 그러면서……." 하며 따지기 시작했고, 나도 내 어미에게 "이건 아니지요." 하면서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 얘기를 하면서 이젠 다 컸다고 혀를 내둘렀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을까?
아이에게 사춘기가 올쯤이면 내게도 그런 시기가 올 것이다. 내가 그 옛날에 처음 앓던 사춘기는 마치 환절기 감기 같았다. 겉으로 유난스럽지는 않았지만 안으로는 날마다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것이 너무 길게 가서 나중에는 비염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바람결만 달라지면 튀어나오곤 했다. 이제 나는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 사춘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 아이가 자기 자신만 사랑하며 살다가 어느 날 예쁜 여학생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도 역시 그쯤이면  더 큰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가슴으로 품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부르는 사람이 임자인 노래도 다 있다. 아주 커다란 소쿠리엔 메주만 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임자면 내 마음대로 담는다. 아주 조그만 소쿠리엔 호두말고도 담을 건 무지하게 많다. 잘 익은 복숭아는 마음가는 대로 아무에게나 줘도 되고, 덜 익은 복숭아는 까짓 것 내가 먹어도 억울할 건 없다. 부르는 사람이 임자인 노래를 아이들 앞에 놓고 내 마음대로 불러주니 나도 즐겁고 아이들도 배가 부르댄다.
세상이 옛날만큼 두렵지 않다. 사는 일이 옛날만큼 어렵지 않다. 부르는 사람이 임자인 노래처럼 세상도 내가 살면 내가 임자다. 노래처럼 팍팍하지 않고 인심 좋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내가 지어 부르는 노래 때문에 웃어 주었기 때문이다.

꽃에서 건져 올린 동시  

한재용 | 맑은샘 공부방 교사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보리) 중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은 인간극장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창희와 다희라는 아이가 작은 연인들처럼 지내는 모습이 섬진강 어귀 마안분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그 아이들 곁에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계셨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을 강변의 나무그늘로 데리고 나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아이들을 선생님의 집에 데리고 가 재우기도 하시더군요. 학교와 자연과 아이들 선생님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던 그 이야기의 중간 중간 이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참 단순하고 소박해서 한 번 들으면 그냥 입에 붙어 버리는 노래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때 나온 노래들이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지은 시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햇빛 환한 봄날, 들판에 앉아 작은 들꽃을 들여다보면 꽃마다 얼마나 환한 빛을 지니고 있는지 이 꽃을 보아도 저 꽃을 보아도 질리지 않고, 눈을 들어 저 멀리에 나무들마다 꽃등을 밝힌 나무들을 보면 이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꽃이 피는 것은 봄날만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냇가에 나리꽃이 도드라지고 울안에는 봉숭아가 흐드러집니다. 가을에는 해바라기가 하늘과 어우러지고 깊은 가을 들판에 핀 감국은 그 향기에 취하게 합니다. 그러니 이 노래의 참맛을 보려면 들녘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들녘에만 꽃이 피나요?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틈만 있으면 모든 꽃들이 피어납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돋보기를 챙겨들고 집밖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내 주변에 피는 꽃들을 만나 인사하는 날입니다.

꽃을 만나러
동네 빈터에 있는 작은 꽃밭을 만났습니다. 이 터는 얼마 전 까지 쓰레기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동네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걷어내고 밭을 만들었습니다. 길가에는 과꽃, 채송화 백일홍을 심고 안쪽에는 푸성귀를 가꾸고 있습니다. 돌무더기를 쌓은 한켠에는 아주까리가 울타리를 친 듯 둘러서 있습니다. 진초록 잎을 자랑하듯 가지런히 자라는 가을무와 배추밭에서 이곳이 예전에 쓰레기를 버리는 땅이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깔끔하게 지어진 빌라 계단에 정갈하게 놓인 화분을 만났습니다. 화분에는 때를 만난 가을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던 민지가 "꽃 속에 벌집이 들었어요." 합니다. 함께 들여다보니 수술들이 동그랗게 촘촘히 붙은 모습이 벌집을 닮았습니다. 꽃들은 빛을 받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벌집모양을 하거나 피보나치수열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수학에서 말하는 그런 개념을 이렇게 자연물을 들여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붉게 피어오른 이태리 무궁화도 아이들은 처음 보았습니다. 여느 암술과 달리 꽃술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모습이 특이합니다.
길가에는 민들레와 바랭이가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가을과 겨울을 나고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겠지요.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구고 작은 풀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땅에 가장 가까이 납작 엎드립니다. 하니 우리도 자연에서 배울 일입니다. 힘이 부치면 작은 풀잎처럼 자세를 낮추어 견딜 일이지요.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집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꽃밭이 있습니다. 꽃밭에는 봉숭아꽃이 한창입니다. 지난여름, 아이들 키만큼 자란 봉숭아가 무성하여 꽃씨를 받고 뽑아냈는데 그때 떨어진 씨앗들이 다시 자라 여름 꽃만큼 피었습니다. 민지가 따로 키운 하얀 봉숭아꽃도 있습니다. 여름에는 하얀 꽃이 없었는데 그 꽃씨를 받아 다시 키운 꽃대에서 하얀 꽃이 피니 참 신기합니다. 민지는 자기가 키운 하얀 봉숭아가 제일 큰 자랑거리입니다.
나팔꽃은 두 포기가 자랐는데 그 줄기는 안테나 기둥을 타고 올라가 큰 덩굴을 이루었습니다. 나팔꽃 줄기 두 개가 그렇게 큰 꽃 덩굴을 이룰지 정말 몰랐습니다. 아침마다 해를 향해 활짝 나팔을 불던 꽃줄기에는 열매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습니다. 화분 하나에는 목화솜이 팝콘처럼 하얗게 달려 있습니다. 목화꽃은 처음에 연한 노랑나비 날개 같은 꽃이 핍니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꽃잎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꽃 날개 아래서 연한 초록 봉오리가 나오며 꽃잎이 말라붙습니다. 꽃봉오리 같던 열매 봉오리가 아기 주먹만 해지고 갈색으로 변할 무렵, 봉오리가 툭 터지면서 뽀얀 솜이 봉오리를 비집고 나옵니다. 그러니 목화는 꽃이 두 번 피는 듯 보입니다. 저는 목화를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동리의 집집에는 목화 솜을 빼는 씨아가 있었고 할머니는 솜을 물레에 돌려 길고 긴 실꾸리를 만들곤 하셨습니다. 목화 따는 할머니를 따라가 어정대면 채 익지 않은 초록 봉오리에서 풋풋한 목화다래를 따서 맛을 뵈 주곤 하셨습니다. 달짝지근하고 비릿하며 아삭아삭한 목화다래, 달랑 두 그루 자란 목화를 바라볼 때마다 물레질을 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참 오래 전 일입니다.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약수터로 가는 길모퉁이에서 아이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우와! 저게 뭐예요? 호박이에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세미가 담을 타고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이거 먹는 거예요?"
"아니, 이건 수세미라고 하는데 열매를 잘 말린 다음 씨를 빼내고 수세미를 만드는 거야." "그럼 우리 집도 이걸 심을래요. 수세미 안 사도 되잖아요."
수세미 옆에는 아이들 키보다 웃자란 토란잎이 무성합니다.
"이건 우산 같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런 걸로 우산을 썼나요?"
"글쎄다. 급하게 비를 만나면 밭에서 이걸 따서 머리에 썼겠지?"
아이들은 우산을 쓰듯 토란잎 아래 서 봅니다. 그 작은 밭에 취꽃도 피어있고 잔대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이 밭을 가꾼 사람은 나이 드신 어르신일 거라 짐작해봅니다. 조금 더 가다보니 분꽃이 고개를 함초롬 내밀고 피어 있습니다. 분꽃 열매도 까맣게 영글어 있습니다. 약수터에 닿았습니다. 약수터 주위에 누군가 심어 놓은 칸나가 병정처럼 둘러 서 있습니다. 주연이는 밀림에 온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부러진 대에서 잎들을 떼어주니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고 인형 이불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주연이는 잎을 다 떼어내고 칼을 만들어 휘두릅니다.
칸나의 넓은 잎을 자랑스레 들고 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날이 가물어 내딛는 걸음마다 먼지가 하얗게 풀썩거립니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고 어린 나뭇가지는 초록 잎을 한 채 잎 가장자리가 타들어갑니다. 산에서 내려오시는 어르신이 혼자 말처럼 인사를 하십니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그러게요"
하고 지나치니 혜연이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물어봅니다.
"응 비가 너무 안 온다는 말이야."
"비가 안 오니까 나무들과 풀들이 다 말랐잖아."
"선생님 그럼 우리가 물주면 되잖아요."
"이 많은 산에 우리가 물을 다 주라고?"
"약수터에서 물 떠오면 되잖아요."
혜연이 말대로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산에 주고 싶습니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이더니 가을 들어 한 달쯤 비가 내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산에 말라가는 나무와 풀들을 보니 이전처럼 신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하게 견디는 나무들이 열매를 달고 가을을 알려줍니다. 보랏빛 좀 작살나무 열매와 붉은 팥배나무 열매를 보았습니다. 으름 덩굴과 댕댕이덩굴 인동초도 보았습니다. 단풍나무 길은 잎이 무성해서 대낮에도 컴컴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작은 바위 옆에 누군가 돌탑을 쌓아 놓았기에 주변의 돌을 주워 올려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들도 소원을 빌며 두 손을 모읍니다.

주연이가 자기네 집에도 꽃이 많으니 함께 가자고 합니다. 산에서 내려와 주연이에 집에 함께 갔습니다. 옥상에는 화분에 고추며 토마토가 심겨져 있고 집안에 녹색식물이 곳곳에 자라고 있습니다. 홍콩야자, 벤자민, 제라늄, 사철나무, 선인장이 있습니다. 혜연이는 자기가 본 꽃 중에서 선인장 꽃이 제일 예뻤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바쁘실 텐데 부지런히 화분을 잘 가꾸어 놓으셨습니다. 주연이네 집 앞 공터에도 가을배추와 무들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땅위로 삐죽이 올라와 연한 녹색을 띤 무 밑동이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다해는 자기 집의 옥상에서 자라는 호박이야기를 합니다. 해마다 다해네 옥상에서 기른 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옥상 농사가 망했나봅니다.
"우리아빠 농사가 망했어요."
"왜?"
"잘 몰라요. 그냥 잘 안됐어요."
그냥 잘 안됐다는 아이의 말에 왠지 가슴이 찡합니다.

공부방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으며 방금 보고 온 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지가 많이 나는 산길에서 자라는 작은 풀도 누군가 고이 가꾼 꽃들도 아이들 마음속에 남았나 봅니다. 아이들은 칸나를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나들이로 이끌어준 이 노래를 함께 가만가만 불렀습니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어업~다."

아이들이 쓴 시

이름 모를 꽃
연다해

맨 마지막으로 본 이름 모를 꽃이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오늘 본 것은 칸나, 마, 보리풀, 산초나무, 홍콩고추, 봉선화, 목화, 장미 등이 있다.
오늘 재미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예쁘다고 하는 꽃은 무척이나 작았다. 가운데에 큰 꽃잎이 있고 그 양옆에 또 꽃잎이 달려 있다. 또 꽃은 분홍색을 띄며 가운데에 있는 꽃잎에는 하얀색으로 줄기 모양이 있었다.

칸나
김민지

칸나 꽃이 정말 이쁘다.
나는 칸나를 키우고 싶다.
칸나 꽃도 아루처럼 옛날엔 작았겠지?
나중에 꼭 칸나를 키워봐야지!

칸나
최주연

몬지 잘 모르는 꽃이 많았다.
칸나 갖고 무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뿌러졌다.
그래서 망했다.

좋은날
최혜연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왜냐면 꽃을 보았기 때문이다.
꽃이 정말 예뻤다.
종류도 많았다.
칸나, 이태리 무궁화, 국화, 방동사니, 민들레, 분홍봉숭아, 수세미, 취, 분꽃
이것보다 더 많이 있었다.
꽃을 많이 보니까 재미있고 즐거웠다.

산동네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골목은 작고 집은 허름해서 스산해 보이지만 집 주변 흙 기운이 스미는 곳마다 어김없이 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맨드라미 금 송화, 분꽃…. 그곳에서 사는 사람을 말해주듯 소박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이 골목어귀를 지나면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흙을 담는 그릇이 비록 스티로폼 상자나 빈 통이지만 그곳에 흙을 담아 생명을 키우는 손길들이 참 고맙습니다.
쓰레기를 걷어내고 꽃을 심는 사람들, 약수터 주변에 꽃은 심은 누군가의 손길, 작은 풀꽃을 사랑하는 아이들, 꽃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아이들의 고운 마음, 삶의 주변 한 자락을 꽃들에게 내어주는 알뜰한 사람들, 하늘과 바람과 해님. 이 노래에는 그 모든 생명의 귀함과 고마움이 담겨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