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논술꺼리 경제 이야기

잡히지 않는 구름, 우리들의 '아파트'
요즘 서울 시내 어느 곳을 가도 높이 솟은 아파트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은 상상을 초월한 정도의 고가를 자랑하고, 그런 아파트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 합니다. 정부는 몇 년 전, 새로운 부동산 안정 정책을 내놓았지만 집 값은 내려올 줄을 몰랐고, 이에 정부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시원치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태에는 오래되어 썩고 문드러진 병폐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우리의 삶을 되짚어 봅시다.

제시문 1 집 값 폭등은 예정된 것.
부동산 정책은 정치인들의 승부수다.

한나라당의 도시 전략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면 나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않고 강금실에 대해서도 손톱만치의 애정도 갖고 있지 않다. 다음 번 글에 밝히겠지만 강금실과 오세훈을 비교하라면 강금실이 더 악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소한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이 강금실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워낙 강금실이 알고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책의 맥락만 놓고 보면 강금실 정책이 워낙 천박해서 상대적으로 오세훈이 나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세훈의 서울 전략은 한나라당의 약간 역사가 있는 도시 공략전법의 정공법 위에 서 있고,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아주 간단한 전략인데, 한나라당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40평 이상의 아파트를 보유하게 된 사람은 대부분 한나라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대도시 공략전략이 대체적으로 정리가 된 것이 4년 전 정도의 일이다. (이에 맞서는 노무현 전략은 '충청도만 잡으면 전국을 잡는다'였는데,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단타성 정책이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이 '개발대학원'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있었고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 대학원이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게 된 폭풍의 근원지였다. 서울인근의 부동산 관련 대학원 교수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이렇게 간단한 논리를 만들어내었다. 얼마나 간단한가. 사람들에게 40평 이상의 아파트를 보유하게 해주자….
여기에 덧붙인 구호가 "아니, 우리는 언제까지 작은 아파트에 살란 말이냐"라는 30대의 정서를 자극하는 감성코드가 덧붙여지면서 한나라당의 도시 전략이 완성되었다. 정말 쉽고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절대로 한나라당이 힘쓰기 어려울 것 같은 종로에 아파트가 들어가고, 대체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했던 강북의 몇 개 지역에도 한나라당이 뚫고 들어갔고, 목동과 일산에도 40평 이상의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면서 선거 판세가 뒤집어지는 중인데, 이런 변화는 비가역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도시 정책은 대체적으로 성공한 편이다. 한마디로 대박이다.

뉴타운의 정치적 맥락
약간 복잡한 전사가 있기는 하지만 뉴타운과 청계천 사업의 원형은 원래 시민단체가 제안한 사업들이다. 청계천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뉴타운도 시민단체가 제안했다니….
여기에도 역시 도시공학과 교수들과 부동산학과의 인맥이 적극 개입했다.
"난개발 때문에 사람 살수가 없다"는 말은 용인 수지지구가 개발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난개발은 원래는 없는 용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때 급조된 말이다. 난개발의 반대가 공용개발인데, 정부에서 직접 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심정으로 시민단체가 공용개발을 하자고 했고, 이걸 이명박이 덜컥 받아서 뉴타운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열린우리당의 얼치기 개혁파들이 여기에서 일차로 당한 건데, 뉴타운 지구가 늘어날수록 한나라당 지지세력이 전통의 야당성향을 보였던 서울에서 커지게 되니까 한나라당이야 목숨 걸고 뉴타운을 추진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뉴타운법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만들었다. 찬란한 삽질 1번 되겠다.

이명박 작품, 강남·북 균형개발
여기까지가 시민단체가 앞뒤 잘 재보지 않고 무턱대고 '난개발 반대'로 나섰다가 도시공학과와 부동산학과 교수들한테 말려드는 과정이다. 그런데 강남·북 균형개발만큼은 순수하게 이명박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은 단어 하나가 한나라당을 대부호들의 정당으로 완벽하게 서울에서 작동하게 만든 1등 공신이다.
물론 강남의 일부 지역은 맨하탄 수준으로 잘 산다. 통계가 동별로 혹은 아파트 단지별로 나오지 않아서 일괄되게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아마 소비 수준으로는 맨하탄급일 것이다.
강북이라는 말도 웃기기는 하다. 강서구도 있고, 강동구도 있고, 신림동, 봉천동, 기타 등등 동네가 있는데, 강남이 아닌 서울의 모든 지역을 이명박은 강북이라고 규정한다. 파리 시장 시락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파리의 '센느강 왼쪽'과 '센느강 오른쪽'을 베껴온 우파에 붙은 프랑스 유학파들의 작품이다.
강남에 비해서 못 사는 동네로 정의한다면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의 신주꾸거리나 홍콩의 일부 빌라타운을 제외하면 강북 아닌 데가 없을 것이다. 국민소득 4만 불이 되어도 한국 경제 규모에서 강남 같은 동네가 또 생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강북이 우리나라 전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못 사는 거냐구? 소위 강북지역 부동산값이 지방에서 부자들 모여 산다는 대구나 광주 같은데 보다 낮은가 질문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생활수준도 낮지 않다.
강남이 전국을 착취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지방이 이 정도인데, 소위 일부 강북의 부도심 지역까지 그렇게 가면 우리나라의 지방이 남아나겠느냐는 간단한 질문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일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강남·북 균형개발이 필승 전략이다. 강북에 40평 아파트를 늘리면 역시 지지자들이 늘어날 것이고, 여기에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대체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높으니까 강북에서 전세 사는 사람들이 강북에 집 값 올라가서 버틸 수 없어서 서울 외곽으로 옮겨가도 자신의 지지자들이 늘어나고, 도시빈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한나라당은 더 좋은 일이다.
정말 무서운 이 간단한 도시공략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롯한 도시공학 전문가들이 정치공학 한다고 만날 앉아서 사람 머리 수만 세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양아치들보다는 100배는 효율적이었고, 지난 3년 동안 권토중래, 와신상담 중이었다. 술도 안 마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략만 세우는 한나라당의 몇몇 전략통들은 만날 성추행 같은 걸로 신문에 나오는 한나라당 정치꾼들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무서운 종류의 인간들이다. (한나라당의 진짜 무서운 분들은 신문 정치면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오세훈의 선택
오세훈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은 이 한나라당의 40평 아파트 전략을 한층 강화시켜서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대기니, 수질이니, 수도니, 아니면 청계천이니 하는 말들을 고급스럽게는 데코레이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냥 하는 말'이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확 둘로 나눠버리면, 40평 이상도 한나라당, 도시빈민도 한나라당, 그야말로 필승의 전략이다. 대학물 먹었다는 일부 하위의 중산층 일부만 고립시키면 한나라당의 필패지역이었던 서울이 필승지역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계급의식 같은 게 들어가는 걸 차단하거나, 생태주의자들이 좀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만 차단하면 누구도 오세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전략에 시비를 붙기가 어려운 구조이다.
계급의식이야 낡은 시대의식으로 구시대 유물 취급하면 그만이고, 생태적 질문은 내가 환경주의자라고 버팅기면 그만이다. 게다가 좋은 방패막이까지 쫙 줄서 있는데, 좀 좋아?
생태주의에서는 청계천이니 서울 도시숲이니 하는 걸 전부 웃기는 걸로 본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런 거 강조하는 사람은 배신자로 분류한다.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을 생태근본주의자 진영에서 사람취급 안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론 적으로는 '수용능력(carrying capacity)'이라고 부르는 계산해서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좀 어려운 개념이 있다. 방정식에서는 K로 표현된다. 도시라는 공간 즉 광역 생태계로 정의된 서울이 어느 정도의 경제활동과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같은 건데, 수용할 수 없는 한도를 넘어간 선에서는 대책은 '규모축소'가 1차적 대책이다. 그런데 수용능력을 몇 배를 넘어선 상태에서 약간의 장식 정도 붙인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생태주의자들이 서울을 보는 기본 관점이다.
오세훈이 선택한 것은 외형적으로는 생태주의는 아니고 '환경 이미지 전략' 정도이다. 여기에도 몇 가지 서로 다른 길이 있기는 하다. 전면에 내세운 뉴타운 50개라는 의미는 이명박이 지배하고자 했던 25개 뉴타운을 2배 "세게" 하겠다는 말이다. "나는 이명박보다 두 배로 센 사람이예요" 라는 말을 정책적 용어로 풀어서 하면 '뉴타운 50개'로 표현된다.
뉴타운 25개는 어차피 전임자가 하던 거니까 그대로 두고, 다른 정책들을 조율하겠다고 하는 길이 하나 있기도 하다. 이 경우에 오세훈이 한나라당 골수정책인 40평 아파트주의자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이명박보다 더한 분이라는 말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당선된 첫 날 '뉴타운 50개'라고 선전포고한 건 생태적 수용능력은 안중에 없고, 40평 아파트를 엄청나게 늘려서 한나라당 지지자, 그리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지금부터 적극 만들겠다는 내심을 첫 날 밝힌 셈이다.
약간 과장해서 해석하면 서울시장 취임 인사말이 아니라 차기 대선 선포식에 해당하는 말이다.

도시공학적 해석
뉴타운 25개에서 생겨나는 뇌물이든 떡고물이든 하여간 뭐라도 전부 이명박이 대선에 나오면서 챙겨 가지고 갈 것이다. 사실 오세훈이 새로 해먹을 남은 게 별로 없다. 뉴타운 25개라고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은평뉴타운과 나머지 것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서울시사업으로 대략적으로 결국 10조원의 돈이 들어갈 은평뉴타운이 이명박 대선 프로젝트의 진짜 핵심인 셈이고, 나머지 것들은 예산과 토지규모로 비교해보면 잔챙이들이다.
그러니까 오세훈에게는 다시 뉴타운 25개가 필요하게 된다. 잔대가리는 엄청나게 오세훈도 굴렸다. 1주일만 시간을 주고 뉴타운 50개를 발표해도 되는데, 왜 당선 당일 날 그 발표를 했을까?
본인이 의도했는지 아니면 누군가 옆에서 조언을 했는지는 나도 잘 파악하기 어렵다.
이건 조력자들에게 "나에게 붙어!"라는 말이다. '나는 언젠가 대선에 나갈 사람이고, 그걸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길게 보고 자신에게 붙으라'는 말에 해당한다. 조금 더 있다가 발표해도 되는데, 뜸을 들이면 잠재적 조력자들이 오세훈에게는 "큰 뜻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건이나 박근혜 쪽으로 줄을 서게 되는 곤란함이 벌어진다. 진짜로 이런 것까지 오세훈이 차분하게 기획을 했을까? 의도된 기획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자신은 없다. 하여간 결과는 그렇게 나왔다. 이 발표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움직여서 새로운 판이 형성되는 데까지 딱 1주일이 걸렸다.
정치공학은 머리 수만 세지만, 도시공학은 용적률, 아파트 평수, 주민 평균소득 그리고 입주주민들의 정치적 성향과 "하이엔드 마켓" 취향 같은 걸 중심으로 계산이 움직인다.
서울은 어떻게 될까?
이명박을 거쳐서 오세훈까지 대통령 한다고 뉴타운 50개를 정말 하겠다고 방방거리면 앞으로 10년 간 정말이지 서울은 공사판의 생지옥이 된다. 녹색후보?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렇다면 새마을 운동했던 박정희는 녹색대통령이고, '녹화사업'에 정권의 운명을 걸었던 전두환은 녹색장군이다.(녹두장군이 관에서 뛰쳐나올 소리이다.) 나름대로 녹색대통령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그린벨트를 이명박이 파헤쳤다면 여기에 명줄을 끊으러 등장한 사람이 현 구조에서는 자칭 녹색후보 오세훈인 셈이다.
이명박은 악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선한 생각도 가끔 하기는 하는 것 같다. 성남의 서울공항에 대해서 강남구와 송파구가 그렇게 생난리를 쳤어도 이명박이 반대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이명박 보다 나빠질 것인데,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기간 동안에 성남공항이 남아있을 것인지가 오세훈 악랄함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원래 좀 복마전이기는 하다. 고건 전 서울시장은 아주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건설사의 등쌀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전략을 썼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생각보다는 강하게 건설사들의 손을 잡았는데, 그래도 아주 먹혀버린 편은 아니다. 재임 후반기 2년 동안은 약간의 유화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사장 출신이었다.
변호사인 오세훈은 처음부터 건설자본의 손을 아주 굳게 잡고 시장 당선되자마자 멋진 일갈을 날렸다. "나는 뉴타운 50개, 2 곱하기 25는 50, 난 두 배 쎄…." 변호사와 자본이 만나면 최고의 궁합이 된다는 워싱턴 로비스트들의 전설이 서울에서 꽃 피는 셈이다.
크게 보면 서울에 아직 정치적인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은 50% 이상의 서울 시민이 전월세주민이라는 점일 것이다. 오세훈의 뉴타운 50개가 끝나면 이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의 50% 정도가 아토피나 천식과 같은 면역성 만성증후군에서 조금 더 심각한 혈관계통과 호흡기 계통의 질병을 앓게 될 것이다. 지금도 유아 아토피와 천식을 기계적으로 더하면 40%가 넘는다. 이명박 4년에 오세훈 4년을 더한 기간 동안에 서울은 지옥처럼 될 것이고, 녹색후보 오세훈 재임기간 중 아이들에게는 서울은 아주 곤란한 지역이 될 것이다.
게다가 10% 미만의 주민이 새로 생길 뉴타운에 재입주하게 될 것이고, 해당 지역 90%의 주민은 도시빈민으로 떠돌게 된다. 특히 낙후지역이 대상인 이 지역의 70∼80%의 시민들은 열등지로 밀려나게 되는데, 워낙 낙후지역이라 서울에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 새로 생긴 뉴타운과 재개발지역에서는 누가 살아? 아이들도 이젠 잘 안 태어난다는데? 누가 살거나 말거나 이제는 대통령만 되면 되는 오세훈 머리 속에 그런 고민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원래 로펌의 변호사들은 그런 장기적인 고민을 하도록 훈련되지 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문수가 "그럼 나는?"이라는 질문을 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 통합하자고 한 걸 주목하시라).
한나라당의 40평 프로젝트가 국가를 병들게 하고, 강남과 강북 일부를 제외한 전국민을 도시빈민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니 전 국민이 40평 아파트에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올 수 있는 지상의 낙원이 자본주의에서는 구조적으로 펼쳐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모든 국민들이 40평 규모에서 질병 걱정 없고, 쾌적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인 '서민 중심국가'가 펼쳐진다면 나부터라도 다 접고 한나라당 후원회원이라도 하겠다.
서울은 지옥이 되고, 전국은 아마존 한 구석에서 현대판 노예가 다시 작동하는 중남미처럼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제시하는 정책 프로그램은 근본적으로 한나라당과 거의 같은데, 베낄 걸 베껴야지 40평 프로젝트까지 베끼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 좋은 일만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 문제에 대해서 공략 포인트가 녹색당과 민주노동당은 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원래 지지세력과 중심노선과 조직 작동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똑 같은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녹색당이야 당장 오세훈의 녹색후보 파상공세에 숨넘어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이니까, 뜻은 가상하지만 당분간 이 세력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민주노동당이 오세훈과 각을 잡는 전선을 형성해주는 것이 시급하게 지옥으로 변할 서울에서 몇 군데라도 방어막을 형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여력 닿는 대로 희망사회당까지 포함해서 공동전선을 펼치는 것에 나의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이 있다 (그렇다고 자꾸 들어와서 하라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근본철학이 달라서 엄연히 가는 마지막 종점이 다르다. 오래 전부터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는 한데, 자꾸 들어와서 하라는 소리에 이제 탈당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논리적 선택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50% 정도의 월세입자에게 어떤 정치적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집을 주겠다고 하는 정주영 방식도 한 가지 방식이고,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어 있는 이 사람들을 대변해서 단순한 주택문제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도시빈민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는 것이 한 가지 길이기는 하다. 철학이 잡히면 정책 프로그램들은 약간의 경험과 현실을 가미해서 기계적으로 도출되는 측면이 있다.
이제 와서 아쉬운 생각이지만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의 모두에게 집을 주겠다는 공약은 원론적으로는 정주영식 방식을 택한 것인데, 단기적으로는 해볼 만하기는 하지만 철학이 담긴 공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집이 효자'라는 강남에서 유행하는 말을 역으로 뒤집어보면 갈 길에 대한 답이 좀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2주 후가 지나면 최열 인수위원장의 인수결과가 어떻게든지 간단한 보고서 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뉴타운 숫자를 다만 10개라도 줄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관전 포인트이다. 10개라도 줄었다면 논쟁이 있었던 것이고, 하나도 줄지 않고 50개 그대로 발표된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나머지 모든 것들은 대체적으로 장식이라고 보면 크게 과하지 않을 것 같다.
원래 환경으로 포장을 하려고 움직였던 정치인들이 몇몇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김상현과 이부영이다. 왜 이 사람들은 안 되고 오세훈은 되었을까?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설자본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이부영은 다른 정치는 못했을지는 몰라도 건설자본과 결탁하는 일을 안 하는 정도의 에티켓은 지켰다. 그러다 보니 뒷심도 없고, 철학도 오락가락해서 진짜 환경정치인으로 입지를 만들 힘을 만들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오세훈의 철학적 본질을 표현하자면, 새만금 방조제 위에 붙어있는 "환경친화적 매립, 새만금의 미래"라는 현대건설의 녹색표지판 위에 적혀 있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동네에서 깡패들이 환경 활동가와 자꾸 친하려고 하는 것과 오세훈이 뉴타운 얘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구조적으로는 오세훈이 조금 더 죄질이 나쁘다. 생계형 타락이 아니라 적극적 타락에 해당하는데, 타락한 건지 원래 그런 것인지 라는 좀 어려운 질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오세훈이 한나라당의 40평 아파트 프로젝트의 손을 굳게 잡고 확대 재생산시키는 동안 서울 시장선거에서 강금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강금실은 오세훈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누가 더 악질일까? 강금실은 건설자본이 아니라 도시자본 그리고 토목자본 그 자체와 손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한 마디로 평하면 오세훈은 악질이고, 강금실은 천박했다. '악질이 천박을 이긴 것'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10자 평이다.
『레디앙』(2006/06/09)

제시문 2 토지 소유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 값과의 전쟁'을 벌여온 참여정부가 집권 말기에 이르러 '분양원가 전면 공개'라는 카드를 꺼내고, 서울시가 '후분양제'를 전격 도입했다. 사실상 부동산 정책의 마지막 카드가 시장에 던져졌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월28일 문화방송에 출연해 "(예전에는) 반대했는데, 국민들이 분양원가 공개를 바라니까 그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겠느냐"며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건설교통부는 이르면 내년 3월부터 공공택지는 물론, 민간택지에 공급되는 아파트까지 분양원가를 전면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곧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분양원가 시행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분양가 논란을 빚은 은평 뉴타운을 포함해 앞으로 시가 공급하는 모든 공공아파트에 대해 공정이 80% 이상 된 뒤에 분양하는 '후분양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서울시는 시가 조성한 택지를 분양 받아 시공하는 민간건설 업체에도 토지계약을 맺을 때 아예 후분양제 실시를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각각 내놓은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가 하나의 세트는 아니다. 원론적으로 '선분양-후분양' 제도가 '원가공개-비공개'와 서로 밀접하게 연동돼 함께 움직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번 조처는 서울시가 후분양제를 전격 꺼내자 정부가 이에 뒤질세라 급히 분양원가 공개를 들고 나온 형국에 가깝다. 실제로 건설교통부는 후분양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설교통부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앞으로 1∼2년 간 서울시에서 주택 공급 물량이 사라져 집 값 불안 등 부작용을 일으키고, 금융비용 증가분이 분양가에 전가될 수 있다"며 "후분양제가 고분양가의 해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무튼 열쇠는 원가 공개든 후분양제든 과연 분양 가격을 실제로 크게 떨어뜨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후분양제부터 보자. 현행 주택공급 방식이 '선분양'으로 획일화돼 있는 건 아니다. 선분양이든 후분양이든 건설업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선분양은 과거 주택 대량 공급이 절실했던 시기에 소비자 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건설업체에 준 특혜인데, 대신 분양가를 규제했기 때문에 입주 뒤에 시세차익이 기대됐다. 이에 따라 주택 구입자들은 선납입금에 대한 금융비용 이상을 주택가격 상승에서 챙길 수 있어서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부터 분양가는 자율화됐다. 경실련은 "건설업체의 폭리와 특혜를 없애기 위해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는 후분양으로 전환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윤순철 국장은 "예전에는 지도에 선 그어놓고 '얼마에 지어줄 테니 사라'고 분양해 팔았고, 그래서 원가라도 까보라고 요구했다"며 "후분양제로, 벽지를 바르기 전 수준까지 거의 완공된 주택을 분양하면 추정된 분양원가가 아니라 실제로 영수증 정산된 것을 갖고 분양원가를 따져볼 수 있기 때문에 분양원가 뻥튀기가 사실상 차단된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자금 문제없어
사실 후분양제 도입이 갑자기 떨어진 폭탄은 아니다. 민간업체들은 저마다 값싼 공공택지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내년부터 공정률이 40% 이상 진행된 뒤에 분양하면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정부가 2004년에 이미 마련한 공공주택 후분양제 도입 일정을 보면, 내년에는 공정률 40% 이상, 2008년에는 60%, 2009년에는 80% 이상으로 후분양 공정률을 단계적으로 높이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후분양제 실시와 상관없이 이미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는 민간업체들도 있다. 특히 분양시장이 침체되면서 중소업체들은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후분양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백성준 연구위원은 "지금도 분양이 잘 안 되는 지역은 사실상 후분양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후분양제 아래서 건설업체의 금융비용이 증가해 오히려 분양가를 높일 수도 있고, 신규주택 가격이 주변 아파트 시세에 더욱 맞춰져서 입주 프리미엄까지 포함해 분양 가격이 책정될 공산이 크다. 또 눈으로 실물을 비교하고 차이를 확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값비싼 마감재를 써서 분양가가 높더라도 고급 브랜드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자금 조달의 경우 중소 건설업체는 후분양제 아래서 어려움을 겪겠지만, 웬만한 대형 건설사들은 은행 등과 손잡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를 일으켜 자금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 후분양이 주택건설 시장을 강타할 태풍은 아닌 셈이다. 물론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에서는 토지매입 대금부터 공사대금까지 건설업체가 모두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회수 기간이 길어지고, 따라서 사업규모 축소는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후분양제+분양원가 공개'가 되면 최상이겠지만, 후분양제에서는 굳이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분양가의 적정성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분양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고분양가 논란 속에서 2004년 서울 상암지구, 올해 판교 새도시와 은평 뉴타운 분양원가 공개가 잇따르면서 분양원가는 더 이상 공개를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현재 공공택지에 짓는 아파트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택지비, 설계비 등 7개 항목(전용 25.7평 초과 민영주택은 택지비와 택지 매입원가 두 항목)의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원가연동제(분양가상한) 아래서도 판교 새도시가 100% 청약을 마쳤듯이, 주택을 보유하는 것이 다른 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 투자 수익이 훨씬 더 높다는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분양가 폭리를 통해 '집장사'하는 현상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파주 운정지구의 경우 정부가 주변 시세보다 30∼40% 정도 더 비싼 평당 1300만원을 승인해 줘 고분양가 논란이 일어났음에도 초기 계약률이 90%에 이르렀다.

'주거 복지' 측면에서 변화 있나
토지정의시민연대 남기업 사무처장은 "분양가가 떨어지면 초기 분양자들만 즉시 로또 당첨 같은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게 된다. 원가 공개나 후분양제를 고분양가 문제의 해법이라고 보는 건 착각이고 함정"이라며 "현재 주택시장에서 기존 주택이 99%이고 신규 주택이 1%라고 할 때 전체 주택시장 가격은 기존 주택 값이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규주택은 전체 주택 가격을 움직일 힘이 없고, 결국 가격을 '하향 안정화' 하지 못한 채 기존 주변 시세를 그대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업체가 적정 이윤을 책정했는지, 폭리를 취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판교 새도시는 원가 공개 대상인 공공택지에서도 민간업체가 적정 수익을 내면서 얼마든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원가 공개가 실효성은 없이 아파트 공급만 위축시킬 것"이라는 말이 과장된 우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원가 내역이 검증되더라도 적정 이윤 대목에 들어가면 계산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아파트 분양가는 건설업체의 이윤을 포함한 '생산원가'와 시행사의 개발 이윤을 포함한 '개발비용'으로 이뤄진다. 건설업체의 아파트 공사의 이윤율은, 공개된 자료는 없지만 상장 건설업체 사업보고서를 보면 약 3∼5% 안팎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원가율은 건설업체마다 제각각 다르고, 주택사업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자체 개발사업이냐 단순 도급공사냐에 따라 리스크도 다르다. 이런 리스크 비용을 이윤율 계산에 어떻게 집어넣을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특히 주택 건설 때 대지비용이 가장 큰데, 땅값이 내리지 않는 한 분양원가를 공개해도 분양가를 떨어뜨리는 효과는 작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택지 조성원가부터 건축비까지 낱낱이 공개되고, 민간택지의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시행사와 건설업체가 분양 가격을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행태는 발붙이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원가 공개든 후분양제든 효과도 있지만 한계도 있다. 둘 다 투명성을 확보하고 주택시장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서민들의 '주거복지' 측면에서는 두 제도가 참여정부 주택정책의 결정판이 될 수는 없다. '환경정의'의 토지정의센터는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분양가 자체에 있지 공개된 분양원가 자료의 신뢰성 여부에 있는 게 아니다"며 "분양원가가 공개돼도 반드시 분양가가 하락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은평 뉴타운이 보여주듯, 강남 집 값을 잡으려고 저소득층을 몰아내고 그 대신 비싼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 '분양로또'를 나눠주는 식의 제도가 유지되는 한 후분양제 도입이든 원가 공개 도입이든 정작 서민 주거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게 하라
토지정의시민연대는 "후분양제나 분양원가 공개 같은 미봉책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며 "토지 소유권은 계속 공공이 갖게 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주택 구입자는 분양주택 건물 분 초기 비용만 부담하도록 하는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적용하고 토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연대는 또 공권력을 이용해 강제 수용한 뒤 분양하는 '토지·주택 시장가격'이 아니라 국민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정책가격' 혹은 '복지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21』(2006/10/13)

제시문 3 '내 집'에 대한 우리들의 욕망
내가 서른 살이고 집이 없다면 지금은 집을 사지 않겠다. 자고 나면 천이니 억이니 오르는 아파트 시세를 보고 배아파하거나 충격을 받지 않겠다. 내가 마흔이 넘고 아이들도 커서 넓은 평수로 이사가야 할 형편이라도 아파트는 사지 않겠다. 미쳐 돌아가는 부동산 폭주열차에 절대로 올라타지 않겠다.
아파트 한 평에 1억 원인 시대가 온다는데 서울의 아파트 한 평을 살 돈으로 시골에 땅을 사겠다. 서울에서 한 두시간 되는 곳에 헌집이 딸린 땅을 발품만 팔고 연구만 잘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길은 전국 어디나 잘 뚫렸고 차만 있으면 서울에서 주말마다 다닐 수 있다. 산골에서도 무슨 선생 영어과외도 할 수 있고 인터넷도 유선방송도 잘 터진다. 서울에서는 전세를 살거나 좁은 집에 복닥거리고 살아도 주말마다 아이들과 넓은 시골집을 가꾸며 사람답게 폼나게 살겠다.
집 값 하나는 잡고 말겠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집 값은 마구 뛴다. 이 정부 들어 가장 혜택을 본 건 부동산 부자들이다. 공급 확대니 하면서 새도시 발표를 하면 그 땅들은 주로 서울 땅부자들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땅값 보상을 받아 강남에 아파트를 산다. 강남에선 5억 원에 산 아파트가 5년 사이에 20억 원이 되었다. 되팔 때 5억 원 정도의 세금을 내라니까 세금폭탄이라며 정부에 삿대질을 한다. 돈벼락을 맞았으면 세금도 폭탄을 맞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10억 원의 불로소득이 생긴다. 그러나 내년이면 틀림없이 정권이 바뀌고 새 정권이 새로운 정책으로 자신들을 세금폭탄에서 구해 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집을 안 팔고 매물을 거두어들이니까 집 값이 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분포를 보면 지금이 생애 처음 집을 장만하려는 나이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다. 좀 넓은 곳으로 이사가려는 40에서 50살까지의 인구도 곧 정점에 왔다. 10년 혹은 15년만 기다리면 주택 수요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속도와 규모로 서울근교에 새도시를 만들면 지금의 30대가 50대가 되고 40대가 60대가 될 시점이면 서울의 아파트는 남아돌 수밖에 없다. 그때 서울에 집을 사서 시골집은 소위 별장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자. 지금 집을 사려고 안달을 하면 할수록, 초조해하면 할수록 속으로 웃는 사람들이 바로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래 너희들이 수십 채 씩 갖고 있거라 나는 모른다 해버리면 전세금도 내려가고 집 값도 내려간다. 그들만의 '놀이'를 하라고 놔둬 버리자는 것이다.
시골의 땅은 50평도 괜찮다. 주변 경관이 전부 내 것이거니 생각하면 된다. 노년엔 자녀들 다 키우고 그곳에 살겠다는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이 좋다. 그때쯤이면 수십 채 수백 채씩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은 전세가 안 나가 고민할 테고, 전세금도 집 값도 똥값이 될 것이다. 십 몇 년 배아파했던 것이 가라앉을 것이다. 요즘 동남아로 은퇴 이민을 가서 귀족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는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농촌에도 아이들 교육시키고 부부가 한 달에 백 만원이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가정부를 둘씩 두고 골프를 치고 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몰라도.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부동산 거품은 오늘내일 잡히지 않겠지만 10년 안에 잡히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자는 말이다. 30년 전 신혼살림을 수유리 근처에서 20만원 보증금에 월세 10만원으로 시작해서 집 장만과 은행융자 갚느라 뼛속까지 시렸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적어본다.
『한겨레신문』(2006/11/15)

*토론해 봅시다

1. 제시문 1은 지난 서울 시장 선거가 있기 얼마 전 시문에 기고된 글이다. 이 글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서울시장 출마자들의 주요 공략이 '모든 시민의 내 집 마련'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서민이 40평 정도의 새집에서 사는 것이 가능한가, 또 이를 위해 아파트를 우후죽순 짓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묻고 있는 것이 이 글의 쟁점이다. 결국엔 아무리 아파트를 서울 시내 모든 지역에 골고루 많이 짓는다 해도 그 수혜는 중산층 이상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서울 시민의 반 이상은 중산층에 속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제시한 후보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이들의 정책을 사람들이 믿어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음 참고자료를 읽고(이 책을 직접 읽으면 더욱 좋다) 이 글의 문제의식과 관련지어 논지를 발전시켜보자.

(미국)민주당원들은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데 충격을 받거나 당혹스러워합니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이 자기 이익과 일치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쪽으로 투표할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글 / 삼인) 중에서

2. 제시문 1과 2를 보면 집 값이 폭등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사람들의 재산 증식에 대한 욕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 구조에서는 집 한 채를 더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이익이 돌아온다. 이는 부동산을 통한 재산 축적이 '불로소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본래 사유재산에 대한 자유권을 존중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기에, 이러한 소득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규제할 방도가 아직은 없다. 예를 들면, 서민을 위한 아파트 분양권을 내놓아도 이미 한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계층에서 높은 가격에 분양권을 사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람들의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장기적인 해결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3. 집 값 이상 사태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제시문 1에서는 그러한 문제점의 하나로, 정권을 잡기 위해서 단기적인 정책만을 세우는 정치인들의 철학 부재를 들고 있다. 이러한 정치 철학의 빈곤함은 사회의 다양한 입장들, 의견들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사회 전체의 '획일적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무척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과 획일적 욕망'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철학이 담겨있는 논술문을 써 보자. 작성한 글을 친구들과 돌려 읽어가며 서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