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아름다운 하늘을 보았어요

한재용 | 맑은샘 공부방 교사

* 해오름 홈페이지(http://heorum.com)의 해오름 사진방에 아이들의 빛그림을 천연색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았습니다.

바람 부는 날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태풍 나비가 온다고 합니다. '나비'가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텔레비전에서 예보를 하는 걸 보니 걱정이 됐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오는 태풍은 곡식나락과 열매들을 망쳐놓고 소중한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걸 해마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비 바람이 우리나라에 온 그날, 바람은 스산하게 휘몰아치고 모래가 일어 눈을 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상쾌합니다. 마을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회오리바람이 바닥에 맴을 돌다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나뭇잎과 비닐이 따라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휘감깁니다. 동그랗게 뭉쳤다가 풀리고 뭉쳤다가 다시 풀리고 이내 사라집니다. 몸에 감기는 바람도 기분 좋게 시원합니다.
'이런 날은 바람을 맞으러 가야지.'

공부방에서 아이들의 숙제와 매일 하는 공부를 대충 보아주고 먹고 싶다고 조르기에 잔치국수를 말아주었습니다. 한참 먹을 나이, 참 잘도 먹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산에 바람을 맞으러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반색을 하며 리코더를 들고 뒤따라 나섭니다.
산으로 가는 길, 산 초입에 있는 밤나무에서 바람을 이기지 못한 밤송이들이 떨어져 풀 섶에 뒹굴고 있습니다. 알밤이 되려면 아직 조금 있어야 하는데 실한 밤송이가 아직은 초록빛인데 떨어졌습니다. 여기가 이러니 과수원과 논들도 무사하지는 않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밤송이들을 주워서 길가의 단단한 바닥에 놓고 단단한 나무를 주워 밤을 깝니다. 여문 밤은 신발 뒤꿈치로 문대면 금방 까지겠지만 아직은 풋밤이라 잘 안 까집니다. 초록의 가시껍질을 벗기니 하얀 밤톨이 들어있습니다. 바다와 마루도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열심입니다. 지현이와 산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리코더를 붑니다. 물결이는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아 가렵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스무 송이 남짓 되려나 다 까고 나니 아이들손에 큰 밤 한 톨, 작은 밤 두 톨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길가의 나무등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함께 풋밤의 겉껍질을 벗겨 봅니다. 마지막 남은 속껍질은 엄지손톱으로 살살 밀어내면 잘 벗겨집니다. 그런데 생밤을 까다 옷에 문지르면 옷에 갈색 밤 물이 드니 조심해야 합니다.
속살 하얀 풋밤, 그 맛은 달큰하고 고소하고 물기가 많아 야들야들합니다. 잘 여문 밤의 툭툭한 고소함과는 아주 다른 색다른 맛입니다. 달궁달궁 냠냠냠 밤을 먹다보니, 아차! 산으로 가기엔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습니다. 바람맞으러 산으로 가던 길이 엉뚱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바람은 잠잠하고 하늘에 노을 빛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산으로 가는 대신 하늘이 잘 보이는 하니샘 집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