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금평, 그 뜨거웠던 날의 기록

조회 수 3610 추천 수 0 2005.07.30 04:12:20
안정희 *.149.106.167

-2005년 여름 해오름 살림학교를 다녀와서-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 (구) 금평분교가 해오름 살림학교입니다. 오래도록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졌던 곳입니다. 그 곳에 올 여름, 와글와글 생명의 소리가 울려 퍼져 새들도 벌레들도, 뱀들조차 아마 놀랐을 겁니다.
해는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그 뜨거운 한낮에 풀이 숭숭난 운동장에서 공을 찼습니다. 마음놓고 뻥뻥 찼습니다. 잠자리를 잡느라 뛰어다녔습니다. 소리소리 질러도 괜찮았습니다. 길옆으로 흐르는 개울에서 소금쟁이를 보았습니다. 송사리도 보았습니다.
매미소리 요란한 나무밑 평상에서 콩주머니 놀이를 했습니다. ‘콩심어라’놀이도, 도깨비 씨름놀이도 했습니다. 소리지르며 노느라 목이 다 쉬었습니다. 등에인지 벌인지 하루살이인지 자꾸만 날아드는 벌레를 잡느라, 쫓느라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냄새나는 변소에서 코를 막고 엉덩이를 들고 오줌을 누었습니다. 밥먹느라 줄을 길게 섰습니다. 감자를 캐는 건지 도로 파묻는 건지 밭이랑을 다 파헤쳐놓았습니다.
리코더를 불었습니다. 혼자 내는 소리보다 여럿이 함께 내는 소리가 아름다웠습니다. 리코더를 불면서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래서 스스로 잘 보살펴야 한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리코더 집에 그림도 그렸습니다. 천에다 그림을 그리니 참 예뻤습니다. 공책도 만들었습니다. 바느질로 공책을 만들다니 세상에서 하나뿐인 공책이라 좋았습니다.
밤에는 찐 감자를 먹었습니다. 감자먹고 수박먹으니 더 맛났습니다. 아침에는 저쪽 먼 산을 가로지르는 아침 안개를 보았습니다. 보랏빛 도라지꽃이 지천으로 피어었는 것도 보았습니다.
노래도 참 많이 불렀습니다. 갈 때 차에서부터 사흘동안 짬만 나면 노래를 불렀습니다. 물감으로 그림도 그렸습니다. 빛그림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뭔지 잘 몰라도 그저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가는 대로 그리니 좋았습니다.
트럭을 탔습니다. 트럭위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았습니다. 강에서 놀았습니다. 선생님들과 물싸움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친구들도 금방 친해졌습니다. 물가에서 먹는 옥수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맛났습니다. 물 한 바가지로 몸을 다 씼었습니다. 그래도 끄떡없었습니다.
세 마리 강아지들이 피곤하도록 못살게 예뻐했습니다. 온 몸을 놀려 노느라 밤이 되면 골아 떨어졌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는 자연의 리듬에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시간을 생각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사흘, 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아주 짧은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잘 다듬어진 공간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불편하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을 테지만 아마도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조용해진 금평에 아이들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겨울을 , 내년 여름을 기다려 봅니다.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책 구합니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현대경제연구원 [1] 마니샘 2011-12-18 157940
26 배움의숲에서 함께 일하실 활동가를 모십니다. 배움의숲 2005-07-09 3997
25 철학논술에 대해 조수정 2004-12-18 3996
24 하남 꽃피는학교 체험 여름동네 안내 및 자원교사모집 배움의숲 2005-07-09 3987
23 2004/07/06-이라크에는 무장병력 대신에 평화를 보내야 한다 해오름 2004-07-08 3869
22 2004/03/03-살림학교 교사 양성과정 안내 해오름 2004-07-08 3869
21 <우리교육> 가을아카데미가 곧 시작됩니다! 조지연 2006-09-20 3774
20 '웰빙과 소비병, 그리고 피자매 연대'라는 '느림' 님의 글(퍼옴) 전영경 2005-06-01 3747
19 교육과 인권은 하나입니다! 권오석 2006-09-15 3731
18 배움의숲 5기 여름교사교육 안내 file 배움의숲 2005-07-09 3679
» 금평, 그 뜨거웠던 날의 기록 안정희 2005-07-30 3610
16 한가위 사과 사이소! 권오석 2006-09-17 3403
15 인지학은 어디서부터 인지학 2023-07-21 223
14 Look At This Write-up On Soccer That Provides Several Sound Advice ekewavahu 2024-02-24 110
13 인지학의 기초는 dd 2023-08-22 76
12 어디서부터 인지학을 dlswl 2023-11-15 57
11 Really like Football? You Have Got To Read This! ovemebe 2024-03-03 50
10 에이티에셋(주) 대구.경북 청년 컨설턴트 모집 박재현 2024-03-05 44
9 학습·토론하는 성인 동아리 모집…3년간 활동비 지원 kj2h3f 2024-03-13 15
8 다들 어떻게 진로를 잡으셨나요? 진로 2024-03-11 15
7 운영자님보세요. secret 이정현 2007-05-0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