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근대(1)


1. 과학의 시대

: 천동설, 지동설, 만유인력을 통해 시대와 과학의 관계를 알아본다.


1) 천동설, 지동설, 만유인력의 뜻 알아보기 : 기본 개념 한자로 정리

- 천동설(天動說) : 하늘이 움직인다

- 지동설(地動說) : 땅이 움직인다

- 만유인력(萬有引力) : 온갖 만.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2) 천동설이 퍼지게 된 시대적 배경은?

- 1500년간 천동설이 지배 (지동설은 500년)

(창조론은 인간 중심. 따라서 천동설과 맞닿아 있으므로 천동설=창조론)

- 서양과학사의 거성(BC 330) 아리스토텔레스 천동설 주장,

→ 프톨레마이오스가 이론으로 정립

→ 중세 교회에서 수용하며 확고화 (1500년간 불변의 진리가 됨)

(뉴턴, 케플러 등 잘못된 이론으로 고생)


3) <천동설 이야기>에서 중세적 특징 찾기

① 교회의 지식 독점(성직자, 라틴어...) : 문맹의 시대

- 인간은 죄인이므로 (특히 여자는 선악과 원죄를 지님) 중세에는 인간의 희노애락 표현을 금했다.

cf)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

② 페스트와 마녀사냥 : 십자군전쟁으로 실추된 교회의 권위 회복 목적, 교회의 공포 분위기 조성

③ 어용지식인, 점성술사 (=오늘날의 폴리페셔, 정치어용교수, 어용과학자)


4) 이런 중세의 교회 중심적 생각과 천동설이 조금씩 흔들리게 되는 계기

: 동화 <천동설 이야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아무리 막아도 빛은 들어오기 마련이다”

- 동화 배경 : 처음에는 평평했던 땅이 점점 둥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변화를 표현했다.

- 동화 내용 : 책을 같이 읽으면서 인물 이름 맞추어도 좋다.

(팬더를 보았다는 마르코 폴로, 북쪽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괴짜 수도승 부르노, 동쪽으로 갔던 콜롬버스, 마젤란, 피사의 사탑 갈릴레이 등) 

 

5) 갈릴레이오가 지동설을 확신하게 해준 발명과 발견은? 참조할 책 : 피터 시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 발명 : 망원경 (네덜란드의 확대경을 연구하여 망원경 발명)

- 발견 : 목성을 중심으로 4개의 위성이 돌고 있음을 발견

- 증명 : 진자 실험(진자의 끝에 펜을 달아 보면 타원을 그리면서 둥근 원을 그림)


6) 갈릴레오의 명성이 커질수록 교회의 우려가 커진 까닭과 결국 갈릴레오가 교회 앞에 무릎 꿇은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는?

: 피터 시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 갈릴레오의 명성이 높아지고 찬사가 쏟아질수록,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갈릴레오의 이론이 성서와 옛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고, 곧 교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김

- 를 함께 봄. 감옥에 가두어진 채 고뇌하는 갈릴레이의 두려운 마음을 표현한 장면. 온통 성직자로 둘러싸인 재판정에 무인도에 외롭게 서 있는 갈릴레이는 결국 주장을 굽히고, 목숨을 건짐. 가택연금(10년간 집에서 살다 밤낮 별 관찰, 장님이 돼서 죽었다)

- 갈릴레이는 1642년 죽었다. 죽을 때 그가 가졌던 고민(한계)은 지동설이 맞다면 이 땅과 돌이 어떻게 떠 있을 수 있는지. 이 고민은 이듬해 1643년 태어난 뉴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으로써 해결이 된다.


7) 갈릴레오의 고뇌를 읽어본다면?

① 교회의 처벌을 기다릴 때

“감성과 이성, 지성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그러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강요하신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도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험이나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는 물리적인 현상에 대해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부정하도록 요구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나는 왜 멍청이처럼 강요된 것만을 무턱대고 믿어야 하며, 내가 틀렸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내 자유로운 지성을 복종시켜야 하는가?”

“만일 옛날의 철학자들이 우리가 지금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들도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했을 것이다.”

② 죽을 무렵의 고뇌 : “우리가 자연에 대해 토론할 때에는 글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감각을 통한 경험과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


8) 갈릴레오가 받은 형벌과 교회가 1992년에 내린 사면의 의미는?

- 1633년 가택연금 된지 10년 뒤인 1642년 사망

- 1992년 360년만에 갈릴레이 사면. 그만큼 폐쇄적!!


9) 갈릴레오의 한계와 뉴턴의 기여

- 갈릴레오 : 지동설을 주장했으나 증명하지 못했다.

- 케플러 : 지동설은 맞다. 그런데 지구는 동그란 원이 아니라 ‘타원’으로 돈다.

- 뉴턴 : 모든 물체는 인력이 있다(만유인력). 사과는 떨어지는데, 왜 달은 안 떨어지지? 질럄의 힘은 크기와 비례한다. 태양은 크니까 인력도 크다. 각 행성의 궤도는 태양과 행성이 인력이 맞닿는 지점에 생긴다. 그러나 뉴튼도 만유인력을 증명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200년 후 태어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증명해낸다. 빛은 직선운동만 한다. 그러나 일식이 일어난 날, 태양 옆에서 별빛이 태양 쪽으로 휘는데, 이것은 빛을 휘게 만들 정도로 태양의 중력이 세기 때문이다.


10) 16~17세기 서양 과학발전이 가능했던 역사적 배경 생각해보기

① 천문학의 발달 : 당시 향신료 무역의 열망이 컸다. (1g 황금=1g 향신료) 그러기 위해선 원거리 무역을 해야 하는데, 항해술은 그에 못미쳤으므로 과학(천문학)이 발달했다.

②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과학자들의 대거 유럽 이주


11) 서양 과학 발전이 서양 근대사 발전에 끼친 영향은?

① 항해술의 발전 → 지리상의 발견 가능 → 자본 축적 (동화 <위대한 강> 참조) → 상업혁명 → 산업혁명

② 근대 이성의 시작, 근대 개인의 탄생 : 신의 뜻 거부하고, 합리주의 지배하는 세계로!

(신이 설명했다. 고로 진라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2)

활동1 : 천동설, 지동설, 만유인력에 대하여 시대적 배경과 관련해 설명글 쓰기

활동2 : 갈릴레오의 재판과정을 바라보는 각 계층의 입장 써보기


2. 대항해 시대

: 서세동점의 시발점이 된 서유럽 대항해의 역사를 배운다.

: <세계탐험 이야기/푸른숲> <세계 대탐험/기린원>


1) 서유럽이 신대륙에 상륙하기 전 어떤 문명이 발달해 있었나?

- 멕시코 고원에는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안데스 고원에는 잉카 문명

- 인디언은 인도사람이란 뜻.

- 신대륙의 원주민의 뿌리는 몽골인의 후손. 간빙기 때 얼어붙은 베링해를 통해 이주.


2) 이들 문명이 무너지게 된 요인은?

: <총,균,쇠>로 설명 가능. 동서로 넓었던 구대륙은 교류가 많았던 반면, 남북으로 길었던 신대륙은 교류가 적었다. 이것은 지형적 특성 때문.

① 총 : 위협용. 총소리=천둥소리.

② 균 : 전염병에 취약. 구대륙에서 온 세균(천연두 등)으로 신대륙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사망.

- 세로로 길었던 신대륙은 지역별로 기후가 달라 식물과 동물이 다양하지 못했다. 가축과의 빈번한 접촉은 인간을 병들게도 하지만, 그에 대한 면역도 생기는데, 신대륙은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상태였다.

③ 쇠 : 유럽의 쇠는 곧, 칼. 전쟁이 많았던 유럽은 제련기술도 그만큼 발달하여 길고 가는 칼로 잔인하게 원주민을 죽였다. 반면 아메리카의 칼은 청동기 혹은 초기 철기 수준으로 짧고 뭉뚝했다.

=> 비판 : 유럽의 면피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3) 1575년에 그려진 <아메리카의 발견> 그림에 담겨진 상징성 찾기

: 1492년 콜롬버스의 발견 이후 약 80년 뒤에 그린 그림으로 백인들이 화가에게 주문한 그림

- 범선 : 유럽의 발달된 과학기슬

- 십자가 그려진 깃발 : 종교적 열망. 유럽에서 기울고 있는 기독교를 땅끝까지 전파. 기독교인의 절대 인구를 줄이지 않겠다.

- 서양인 숨겨진 갑옷과 무기 : 강력한 유럽의 힘

- 서양인의 손에 든 것 : 천문, 항해도구

- 멀리 타오르는 연기 : 인간을 구워 먹는 원주민 = 원주민의 야만성 강조 (사실을 과장한 것)

- 벌거벗은 여인 = 무방비 상태의 원주민

- 흔들리는 해먹 : 나약한 원주민

=> 하나님과 문명의 이름으로 미개한 원주민을 정복하는 것은 정당하다 (유럽인의 잔인함 미화)


4) 지리상의 발견을 가능하게 한 요인들

① 과학의 발달 : 항해술

② 무역에 대한 욕구 : 오스만투르크의 독점으로 육로 불가, 지중해 무역은 이탈리아 독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욕구

③ 종교적 열망 : 기독교 확산에 대한 욕구

④ 절대 왕정의 지원 : 동양의 왕은 세습이 당연지사였으나 서양의 왕은 영주와 차이가 별로 없었다. 봉건영주를 누르고 절대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상비군과 관료’가 필요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돈(자본)’이 필요했고, 상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에 이른다.

 

5) 대표적 탐험가들

① 콜롬버스 1492 : 이탈리아 상인. 스페인 이사벨여왕의 지원(배3척, 산타마리아 호). 당시 지구의 크기를 현재의 1/4쯤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닿을 것이라 여김(신대륙의 존재 모름), 무려 4번이나 갔는데도 죽을 때까지 신대륙이 인도인 줄 알고 있었다. 한때 신대륙의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하나 폭동이 일어나 감옥에 갇혀 죽게 된다.

② 바스코 다가마 1479~1498 : 최초로 아프리카 거쳐 인도로 가서 향신료를 사옴. 새로운 길 개척. 아프리카 서해안은 융기해안으로 배를 댈 수 있는 항구가 적당치 않아 처음 쉰 곳이 희망봉(hope peak)이었음

③ 아메리카 베스푸치 1499 : 이탈리아인. 포르투갈에서 출발.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임을 알고 (콜롬비카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로 명명함

④ 마젤란 1519~1522 : 스페인을 출발하여 지구 한바퀴를 돌아 3년만에 도착. 남아메리카 맨끝 태평양(당망대해)를 발견했다. 필리핀에서 기독교 전파하다가 마젤란 죽음. 출발할 때 260명 선원 중 18명만이 살아 돌아와 떼돈을 벌었다. 

 

6) 새 항로 발견이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

① 무역의 중심 이동 : 지중해(이탈리아 르네상스) → 대서양(북유럽 르네상스)

② 새로운 작물 전파 : 옥수수, 감자, 코코아, 담배

③ 물가 폭등 : 금은의 다량 유입으로 돈이 흔해짐 → 빈부격차 시작 → 상인 자본 축적 → 산업혁명 기초

④ 교회의 중재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땅 정리.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교회의 영향이 세서 자유로운 상업 활동 불가, 사치와 향락, 교회 짓는 데 돈을 많이 써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일찍부터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났던 영국와 신교 중심지 네덜란드에서는 무역이 활발했다. 네덜란드는 최초의 보험과 은행, 동인도회사로 유명하다.)


7)

활동1. 지도에 탐험가들의 항로를 표시해본다.

활동2. 서유럽 중심적 역사관 극복하기 (<---기억이 안나네요. ㅜ.ㅜ 별지가 따로 있었나요? ^^;;;



3.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 르네상스가 서양사에 끼친 영향과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들에 대해 배운다.


1) 르네상스의 뜻

- 이탈리아어 Re : 다시 → 부활, 복귀

- 3미신 그림의 변천 살피기

고대 그리스로마

중세

르네상스

인간 중심주의

神 중심주의

원색 X. 인간 억압, 무표정

(희노애락 감정 표현X)

인본주의

고대의 3미신 :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여겨 모두 벗음

중세의 3미신 : 원죄의 화신인 여성. 타월(?)로 몸을 감쌌다.

근대의 3미신 : 보티첼리의 그림. 그리스 신화의 부활. 입은듯 안입은듯 씨스루 타입

→ 17C 루벤스 모두 벗음


2) 르네상스가 일어날 당시 유럽 상황과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까닭

① 십자군 전쟁의 종결 : 기존질서(교회 중심) 파괴,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 필요하게 됨(막연한 갈망)

② 이탈리아 : 지중해 무역 통해 자유로운 분위기 + 고대 로마 문명이 그대로 남아 있음

③ 원거리 무역하는 상인들이 교회 못간 미안함으로 돈으로 보상, 그들의 헌금으로 교회 꾸미기 시작

(십자군 전쟁 이후 교인이 줄자 이전 엄숙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 아기자기한 성당으로 바뀌는 중심에 그림,화가가 인기였음)


3) 르네상스를 왜 천재들의 시대라고 하나? 역사적으로 유사한 경우를 예로 들면?

- 천재 : 상상을 뛰어넘는 사람,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사람

cf) 엉뚱한 사람은 궤변론자

① 새로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 17세기는 미술(화가), 18세기는 음악, 19세기는 문학

②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아서 :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4) 중세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의 차이점, 대표적 인물

중세 미술

르네상스 미술

신의 세계, 상상의 세계

(자기 생각대로 위대할수록 크게)

무채색 무표정 (p71)

인간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실에 가까워짐

화려한 색채

살아 있는 표정(희노애락) (112,114p)

① 조토 : 르네상스 미술의 시초

- <성 프란체스코의 죽음> : 벽화. 르네상스 첫 작품. 맨 좌측 사람이 조토 자신. 나는 더 이상 신 중심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는 표현. 이후 생생한 그림, 화려한 색채로 변했다.

② 마사초 : 원근법 창시

- <성 삼위일체> : 종교 그림에도 사실적인 표현

- <성모와 아기예수> : 조토와 비교, 훨씬 자유롭다. 원근법으로 성모마리아 강조됨.

③ 보티첼리 : 그리스 신화의 부활

- 메디치가의 전속화가로 우피치미술관(메디치 개인 미술관)에 작품 많음

- <비너스의 탄생> : 메디치가의 아들 결혼할 때 방에 그려달라고 했던 그림. 스탕달신드롬이 시작된 그림

④ 레오나드로 다빈치

- <모나리자> : 도난 후 유명해짐. 미완성에 얽힌 이야기. 웃을듯말듯한 미소는 스푸마토 기법 사용

- <최후의 만찬> : 원근법의 완성. 광배 대신 예수 뒤 창문. 예수와 유다의 모델은 1명.

- <앙기아리전투> : 피렌체. 2014년에야 진품 찾음. 벽 사이 내시경 투입

⑤ 미켈란젤로 : 조각가로 유명. <미켈란젤로/지경사> 참조. 89세 사망. 까칠한 성격

-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 괴테 曰 신이 왔다갔구나. 횟가루 마르기전 칠하는 방식인 프레스코화라서 보존이 잘됨.

- <최후의 심판> : 벽화.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에게 겁주기 위해 주문. 처음에는 올누드였는데, 미켈란젤로 사후 팬티를 입힌 것. 눈으로 확인해볼 것. 일본의 후원으로 복원. 사진은 Japanese Only!

- 바티칸성당의 <피에타> : 르네상스 절정기, 인본주의였으나 여전히 신의 세계를 그렸다. 젊은 시절 제작.

- <론다리니 피에타> : 혼란기(근대 이성은 오기 전. 진짜 신이 없을까?). 나이가 들었을 때. 인간의 이성이 최고라는 확신이 없는 혼돈 그대로 표현

⑥ 라파엘로 : 온유한 성격. 교회에서 좋아함.

- 가장 사실에 가까운 그림. 교황 초상화를 가장 많이 그림

- 베드로 성당 벽 : 1cm크기 천연대리석을 붙여 만든 그림

- <아테네 학당> : 교황 방에 그린 그림.

⑦ 카라바조 : 르네상스 문닫은. 종결시킨 사람

- <의심하는 도마> <끝내 용서받지 못한자> <성모마리아의 죽음> 등

- 더 이상 교회(성경)의 흔적 없음. 이후 속세의 인간 그림

- <바쿠스신> : 자화상. 언젠가 월계관 쓰리라

- 카라바조의 빛과 어둠은 램브란트에게 영향


5) 르네상스가 서유럽사에 끼친 영향

① 미술 뿐 아니라 문학, 정치,사회 등 모두 바꿈. 탈 종교적 세계관 뿌리내림

②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장

③ 이탈리아 르네상스 → 북유럽 르네상스에 영향 : 인문 사상의 혁명. 에라스마스 <우신예찬>


6)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은?

① 교회의 타락 : 베드로 성당 짓기 위해 면죄부 판매(500년 전) ->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② 왕과 귀족이 교회 견제하기 위해 루터 지원


7) 루터 종교 개혁의 의의와 한계

① 의의

- 종교는 세상의 근본원리라 보았는데, 이제는 삶의 일부로 보게 됨 (생각의 전환)

- 종교개혁은 곧, 인간 중심 르네상스의 완성

② 한계

- 일반 농민과 무관했다. 루터는 농민 반란 진압 명령을 내리기도.

cf) 뮌처 “평등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말고 살아 있는 여기에서 만들어라”

- 막강해진 구교 견제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


8)

활동1 : 르네상스의 뜻, 영향, 천재들, 그림상의 특징들 정리하기

활동2 : 농민이 루터에게 보내는 항의문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