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 샘의 역사통합논술 제3강 요약 2014.04.17

1. 신화로 본 그리스 사회

신화를 역사논술 시간에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신화에는 사료에 나타나 있지 않은 역사를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그 시대 그 지역의 문화, 정치, 경제 등이 녹아 있으므로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촉발 원인은 실제와 달랐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빼앗긴 왕비 헬레나로 인해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연구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에게해 해상권을 둘러싼 분쟁이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는 청동기 제작에 필요한 주석을 얻기 위해서 흑해 연안으로 가야했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데 트로이에게 통행세를 지불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요충지를 손에 넣어야 했던 그리스가 트로이와 전쟁을 벌였어야 했는데 그 빌미가 헬레나였던 것이다. 이라크에 “위험한 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이유로 걸프전을 일으킨 미국도 그 속내는 바로 검은 황금 “석유”쟁탈이 숨어 있던 것과 유사하다.

신화 속 세 여신의 상징은 헤라(권력), 아테나(지혜), 아프로디테(미인)로 영웅의 조건이었다. 신화로 보는 그리스 사회의 특징은 명예와 자존심을 목숨보다 중시하였다는 사실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컸으며 장례 때 경기행사를 열어 남은 자들의 사기를 올리며 전쟁기술을 높일 수 있었다.

<트로이전쟁과 목마>, <오뒤세우스의 방랑과 모험>, <엄마의 역사편지>를 읽으며 알게 된 고대 그리스 사회의 특징을 정리해 본다. 청동기시대, 귀족사회,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신탁이 존중되었고 신체를 연마하는 운동경기를 중요시하였다. 절개를 지키며 오디세우스를 기다린 페네로페같은 여자는 이상적인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남자는 전쟁하고 여자는 조신하게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남녀 차별이 엄격한 가부장사회이기도 했다.

그리스신화가 아직도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극히 인간적인 신들과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친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존재와 삶의 불가사의한 면에 대한 갈등과 모순이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대나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본질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신화만큼 그 사회의 가치관, 인간관, 도덕관을 농후하게 반영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2. 제국의 탄생

기원전 5세기 ~기원전 2세기는 왜 중요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국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양 고대 제국은 다른 점이 있다. 서양은 주력 지역이 이동하면서 발전됨으로써 다양성과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동양은 지역이 고정적이었다. 그 때문에 집중성이 강하여 중앙집권체제가 서양에 비해 1500여 년이나 앞섰다. 그러나 서양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고 역동성과 변화가 적다.

기원전 5세기 ~

그리스 - 지중해 무역권을 놓고 페르시아와 벌인 패권 다툼에서 어이없게도 그리스가 승리했다. 그러나 그리스 내부에서 분열(아테네-델로스동맹편과 스파르타-펠로폰네소스동맹편의 다툼)이 일어나 그리스는 쇠퇴하였고 그 즈음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마케도니아에 의해 병합되었다.

인도 - 정복자 아리아인이 저항적인 토착민을 지배하기 위해 브라만교를 널리 퍼뜨렸다. 브라만의 지도에 따라 욕심을 버리고 착하게 살면 다음 세상에 높은 신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회유(?)하였다. 카스트제도에 기인한 불평등 사회는 아리아인의 지배가 3000여 년간 계속 되면서 인도사회의 근간이 되었다.

중국 - 춘추전국시대 500여 년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나라는 진이었다. 기원전 221년 통일을 한 후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진나라 시황제가 선택한 사상은 “법가”였다. 엄격한 법을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을 하였다. 화폐와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였다. 만리장성을 완성했으나 지나친 사치로 시황제 사후 그의 나라는 곧 무너지고 만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서양 최초로 10년 원정 끝에 헬레니즘시대를 연다. 헬레니즘문화란 그리스문화+오리엔트문화를 말한다. 알렉산더가 가져온 그리스석상을 보고 인도인들은 최초로 불상을 만든다. 이로써 간다라미술이 탄생하는데 간다라 불상의 특징은 그리스인들처럼 윤곽이 뚜렷하고 머리털이 곱슬거린다. 이것은 1천년이 지난 후 통일신라의 석굴암 본존불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로마제국의 탄생 - 기원전 5세기 경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 주민 아이네이아스가 탈출하여 로마에 정착한다. 그가 바로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형제의 선조이다. 도시국가 로마는 공화정으로 출발한다. 제정으로 변화하게 된 주요 사건이 있다. 포에니 전쟁이다. 에게해 무역권을 놓고 그리스-트로이 전쟁이 있었고, 지중해 무역권을 놓고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이 있었다면 포에니전쟁 또한 페니키아인이 세운 카르타고와 로마의 지중해 무역권 쟁탈전이라고 볼 수 있다.

포에니전쟁은 기원전 264~기원전 146년인 12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이라는 영웅이 있었기에 로마는 멸망 직전까지 가지만 2차, 3차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지중해 무역권을 손에 쥐게 된다. 이 사건으로 로마는 도시국가에서 대제국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된다.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에선 귀족들이 노예들을 이용한 대농장 경영이 확대되었다. 자연히 자영농은 몰락하고 세금이 감소된다. 자영농을 키우자는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이 기득권 귀족들의 방해로 실패하고 로마는 삼두정치 시대로 돌입한다. 그 중 야심과 능력이 만만하였던 카이사르는 황제를 꿈꾸지만 암살된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라이벌 안토니우스와의 전쟁(악티움해전)에서 승리한 후 로마는 제정시대로 들어선다. 100여 년 후 오현제 시대를 거치면서 로마제국은 지속된다.

3. 종교와 사상

불교 - 기원전 6세기 붓다의 사상이 종교가 되었다. 불교는 인간차별을 영구화하는 카스트제도에 반대하여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고통 받는 피지배계급에 대해 구원을 설파하고 자비를 강조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개혁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유교 - 기원5세기 경 춘추시대, 중국의 혼란 속에서 전쟁이 아닌 “禮”“仁”이라는 철학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공자이고 그의 사상이 유교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예절禮 (君臣, 父子, 夫婦, 朋友, 長幼)이 바로 서고 각 개인이 어질게 (仁)산다면 세상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300여년이 더 된 주나라 봉건제를 모델로 삼고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주의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후일 고려의 정치철학이 되었고 조선의 생활철학이 되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