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과 남편, 그리고 나 우리 네 식구가 제각기 떨어져 살다가 한데 모여 여름을 났습니다.
몇 달씩 저 편한대로 지내다가 한 덩어리로 살려니까 쉬운 일이 아닙디다. 자기 의사 분명한 아이들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렇다고 화내는 남편이 되게 쪼잔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아쉽습니다. 서로 아웅다웅거리면서도 즐거웠기 때문이지요. 뭘 하나 하러가도 넷이 다 한꺼번에 몰려다녔습니다. 영화도 함께 보고, 장도 보러가고, 바다도 가고, 집안 일가 병문안도, 심지어 문상도 함께 다녔습니다. 애들 아빠가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였지요. 말하자면 우리 남편은 "나를 따르라"주의자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별 말없이 따라 다녀 주어 내심 고마왔지요.
호주제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남편은 몹시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어하더니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고 야단이었습니다. 그 폐단은 이해를 하고 고쳐야 한다고 하면서도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다고 생각되는 모양입니다. 이태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호주 승계를 하면서 스스로 굉장히 비장해졌던 남편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집안 행사에 대한 관심이 그 전과 많이 달라졌던 남편입니다.
남편이 아들에게 물었어요.
"너는 장가가서 아이가 생기면 누구 성을 쓸거냐?"
아들이
"아내하고 의논해 봐야죠."
"그럼 아내가 원하면 아내 성을 쓸거냐?"
"뭐, 그러든지요."
하하하, 우리 남편이 완전히 풀이 죽었어요. 착하고 성실하고 누구보다 책임감 강한 남편이 딱해서 아들에게 눈짓을 했습니다. 엄마 눈치를 보던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 너무 걱정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이제 방학이 끝나 아이들은 다 떠났어요. 둥지를 떠난 새처럼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갈 거예요. 몇 달 후에는 또 더 커버린 딸, 아들을 보게 되겠지요. 나는 그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안됐기도 합니다. 인간적으로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을 가지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엄마로서는 너무 빨리 집을 떠나 안됐기도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목을 꼿꼿이 세워 가장의 권위를 외쳐도 아이들은 제 세상을 찾아 갈 겁니다. 다만 자신의 비상을 도와 준 아버지에게 감사할 뿐.
휴대폰 창에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라고 쓰고 다니는 우리 착한 남편. 남편이 더 깊이 생각한 뒤, 스스로 마음이 편해지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 숨 돌리고 좀 시간이 편해졌습니다.
더위도 한 풀 꺽이고, 비도 그치나 봅니다.
13기 글쓰기 선생님들
모두 다시 뵙기를 기대합니다. - 안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