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이민숙  첨부파일

Subject  초등논술 17기 15차시 수업일지(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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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은 매체 읽기의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관한 수업 계획안을 작성하는 것이 이번 시간의 큰 과제였죠. 세 조의 계획안이 선생님의 기대 이상으로 잘 계획되었고, 또 각각 색깔을 달리 하고 있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선생님의 평가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그럼, 이제 정리를 시작해 볼까요.

다양한 매체를 통한 수업을 계획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쇄 만화입니다. 만화는 지금까지 터부시되어온 게 사실이죠. 그러나 창의성을 기르는데 만화는 유용한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재동 씨의 "만화 내 사랑"에서는 먼저 만화 베끼기를 권장하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은 우리가 흔히 들어오던 주장과는 배치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는 만화 베끼기를 통해서 나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또 오랫동안 이런 작업을 하면서 선을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아이들이 직접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보는 것인데요. 이솝우화처럼 주제가 분명하고 짧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기승전결의 네 문장으로 추려서 그에 해당하는 4컷 만화를 그려보는 것입니다. 중학년 이상이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하죠.
만화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2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단순화와 과장입니다. 이러한 왜곡을 통해서 만화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쇄 만화를 텍스트로 하여 수업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이 먼저 만화를 보셔야겠죠. 어떤 만화를 선정할지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화라고 해서 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먼 나라 이웃 나라"와 같은 만화는 아이들이 앞서서 역사 공부를 충실히 했을 때 재미있고 알찬 수업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세영 씨의 "부자의 그림일기" 같은 경우도, 다른 각도이긴 하지만, 먼저 선생님들이 잘 보시고 수업을 계획하셔야 합니다. 그는 한국 현대사를 꿰뚫으면서 예리하게 다종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초등생들에게 보이기엔 그 수위가 너무 높죠. 이 단행본 내용 중에서 "부자의 그림일기" 정도는 아이들과 논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 못지 않게 그 깊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차별의 문제, 즉 촌지 문제, 아이들과 엄마들에 대한 선생님의 태도, 농부와 도시 사무직 종사자와 같은 직업에 있어서 그 중요도에 대한 편견 등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난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의 실체를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주제로 수업을 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만으로라도 가난의 양산 구조를 알 수 있다면, 그 조차도 모르는 아이와는 어느 시점에 가서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사가 보기에 흡족하지 못한 수업일지라도 그 수업은 그 어느 시점에서 그 아이가 가난의 구조를 깨달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가난을 주제로 할 때 노점상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업 적용면에서는 왼쪽 그림만 보여주고 오른쪽 그림을 재구성해보도록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발문 한 가지는 "부자(주인공)"가 행복한지를 묻는 것입니다. 부자는 가난하고 아빠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어 너는 행복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가난하지도 않고 아빠도 있는 아이들이 또한 대부분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이 물음들을 통해 아이는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더불어 묻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다음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관해서입니다. 선생님은 이 영화를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소통의 문제와 기존관념의 파괴가 바로 그 두 가지 코드입니다. 빌리를 축으로 한 소통의 문제는 아버지, 형, 선생님, 오디션 때 빌리에게 맞았던 아이 등과의 사이에서 발생하여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그리고 그 고조되던 갈등선이 극점까지 갔다가 급강하하는 과정, 즉 소통의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통해 빌리의 꿈도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소통의 문제로는 광산 노조와 자본가 사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노조가 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물러나고 맙니다. 결국 소통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불통으로 결말이 난 것입니다. 영화는 빌리가 힘들게 발레 연습을 하는 장면과 광산 노조와 경찰이 서로 대치하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꿈의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꿈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고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읽기의 두 번째 코드인 기존관념의 파괴적 측면에서는 성 개념·성 역할 파괴와 분노를 춤으로 표출하는 것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자칫 대립되는 양측을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로 전개시켜 나갈 수 있는데요.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흐름으로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립되는 양측이 서로 교직되고 인정되면서 상승되어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척박한 광산촌에서 노조에도 지고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빌리를 돕기 위해 아버지가 어머니의 유품을 파는 것에서 나아가 탄광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여비를 마련해 주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자기의 의지와 노력이 일차적으로 물론 중요하지만 주위의 도움과 희생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도움과 희생을 발판으로 꿈을 이룬 빌리를 통해 현재도 미래도 어둡기만 할 것 같은 그들 역시 우회적이지만 그들의 꿈을 이룬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넓죽한 등판을 가진 건장한 남자가 백조 분장을 하고 도약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