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 위에 한 줌 모래를 올려놓았다. 흰색, 검정색, 회색, 검푸른색, 갈색, 붉은색,
다양한 색깔과 빛을 가지고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양이 오곡밥 같다.
돋보기 안에서 소금크기의 결정으로 커진 모래는 내게 말을 건다.
‘예전의 나는 바위였어요. 산에 있었죠. 바닷가에 있었죠. 어느 집 장식장을 꾸며주는 사랑받는 존재였어요.’
모래를 살살 펴보니 그 속에서 눈에 띄는 모래 하나가 손짓을 한다.
모래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지만 예전엔 그 무엇인가였을 반짝임을 가진 모래였다.
쉽게 찾아진다. 하지만 많은 모래 속에서 그 작은 모래 하나를 골라 손바닥 위로 가져가기는 쉽지 않았다.
몇 번을 헤맨 끝에 내 넓은 손바닥에 올려진 모래를 가만히 내려보니 그 존재가 더욱 소중하다.

불현듯 김소월 님의 ‘엄마야 누나야’라는 싯구가 귓가에 맴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평소 모래는 내게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화초를 좋아하는 터라 분갈이를 할 때 물 빠짐이 좋으라고 흙에 섞는 정도로만 여겨졌던 모래였다.
그런데 모래는 시인의 눈 속에서 마음에서 이미 생명을 갖고 반짝이는 금모래빛으로 다시 태어났던 거다.
모래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모래 속에 반짝이는 광물체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살 뻔 했다.

수십년 아니 수백년을 거쳐 형태는 변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모래.
내가 찾은 모래 속에서 나는 나의 모습과 만난다.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나만의 색깔로써 빛을 내어 주의를 밝게 해주고 싶은 작은 소망.
내가 모래를 불러주었더니 그는 내게 빛이 되었다.
까슬까슬 소리 내어 어느 바닷가 갈매기 소리 담고 있을 모래가 지금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