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더라구요.
결혼 첫 해, 명절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았는지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면서 죽을 힘을 다해 했지요. 세상이 아득해 보이고 평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구덩이 속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한 십년 지나니까 제 목소리가 슬금슬금 먹히고 요령도 생기고 지낼만 합디다. 그렇게 무섭던 시아버님도 가끔 그 고집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시어머니의 의뭉함이 우스워질 때도 있더라구요. 시누이들의 간섭을 방어할 순발력도 생겼죠. 물론 흠잡히지 않을라고 장보기도 순식간에 해 치우고, 빈대떡 한 다라이(^-^)도 거뜬히 해 내고... 탱탱해진 배와 우람해진 팔뚝으로 "뭐 까짓 것" 하면서 말입니다.
이제 시아버님도 안계시고, 시누이들도 제각기 살기 바빠 뭐 별로고...팍삭 풀죽어서 가여운 우리 어머님은 그저 편한대로 하자고 하십니다. 명절이면 오히려 더 쓸쓸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들도 없고 찾아올 사람도 없으니 음식준비도 아주 조금, 한나절이면 다 끝납니다. 어머니, 남편, 나, 이렇게 달랑 세 식구가 아침 예배를 봅니다. 그리고 우리 두 내외가 뻘쭘하니 어머니께 새배드리고 나면 할 일이 없지요. 멍하니 텔레비젼이나 보다가 자다가 먹다가 그럽니다.
버릇은 들이는대로 가는거라 이제 너무 편해져서 일하기가 싫습니다. 더군다나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생각만 해도 힘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은 참 그립습니다. 누군가 새해라고 인사오겠다고 하는 전화가 그립고, 그러면 무엇무엇을 준비하라고 꼼꼼하게 이르시던 시아버님이 그립고, 강정들고 다니면서 흘린다고 야단쳤던 아이들 어린 시절이 그립고, 저녁에 남편에게 가자미 눈을 해대던 젊은 날의 제 모습이 그립습니다.
명절의 부산함이 그립습니다.


아직 그 부산함 속에 계실 우리 선생님들, 모쪼록 마음이 즐거운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15기 글쓰기 선생님들, 자꾸 휴강이 생겨 마음이 흐트러질까 걱정이 되지만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