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수업"이 계속 머리를 맴돌기만 하니 열심히 지도해 주시는 이선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네요.
그나마 에세이라도 올려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하렵니다.

수일이와 수일이

생김새가 같은 아이가 하나는 학원 가방을 들고 끌려가듯 서 있고, 또 하나는 축구공을 들고 장난스레 웃
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쥐가 한 마리....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 도시 아이들의 슬픔일까? 답을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쥐의
해결사로 등장하는 고양이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 낸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네가 그 쥐를 길들였는데, 이제는 그 쥐가 너를 길들이려고 한단 말이지?"
"길들인다는 거 모르니?, 자기 마음에 들도록 남을 다듬어 고치는 거."
"남을 길들이려고 하면 안 돼, 무턱대고 남한테 길이 들어도 안 되지."
"이겨야 해 , 네가 이기지 못하면 그 아이들이 너를 길들이려고 할 거야."

처음엔 작가의 적확한 상황설정과, 잘 다듬어진 대화문에 놀랄 따름이었다. 그리고 다수의 아이들이 원래의
"나"가 아닌 길들여진 "나"로 살고 있구나 싶었다. 어쩌면 나는 사교육, 글쎄 민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길들여짐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진짜 나다움"
내가 만나는 아이, 그리고 내 아이, 이론적으로는 아이 자신을 찾게 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잘 포장된 나의 길들여짐이 아니었을까? 아이 자체로서의 감정보다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정해 놓고 아이를
거기에 맞추려고 한 것 뿐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아이의 감정을 중시했던 것도 같은데, 가끔씩 내 길들여
짐 목표에 가린 맑은 아이들의 얼굴은 없었을까 ? 되돌아본다.

아이들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이들 자신을 찾아주고자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목
표에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조금씩 퇴색해 가고 있는 느낌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때 가졌던 목표와 느낌들을 위해 , 그리고 내 방법으로 아이들을 길들이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만나는 방
법들을 연구하고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해 가는 것이 내 일이라 생각하며 글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