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돌아와 문을 열면 캄캄함속에서 나를 향해 미칠듯이 온몸을 흔들며 반깁니다. 아아! 누가 이렇게 열렬하게 나를 환영해 줄 것인가! 나도 눈물나게 반갑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온종일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우리 강아지를 위해 내가 해 주는 일은 단지 잠깐 안아주고 밥 챙겨주고 용변 본 것 치워주고... 이것 뿐입니다. 그런데도 강아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신뢰가 가득합니다.
내가 책상앞에 앉으면 옆에 와서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있고, 내가 소파에 앉으면 또 따라와서 한참을 쳐다봅니다. 다시 움직일 것인가 아닌가를 나름대로 판단한 다음, 의자 옆에 앉거나, 또는 나를 따라나오거나... 내가 냉장고 쪽으로 가면 혹시 자기에게도 간식을 줄건지 아닌지 엄청 기대에 찬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어쩔때는 내가 강아지를 돌보는게 아니라 강아지가 나를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므로 밥도 먹고싶을 때 먹고, 한밤중에도 잠안자고 딴 짓할 때가 많지요. 그러면 우리 강아지가 몹시 신경에 거슬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반가와서 꼬리가 안보일정도로 흔들어대며 어쩔줄을 모릅니다. 배고프면 자기 밥통을 발로 벅벅 긁으면서 심하게 항의를 합니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 안자고 있으면 계속 쳐다보며 기다립니다. 저 밥 주면서 나도 밥 먹고, 아이구 그래 자자 하면서 함께 잠들고...
어릴 때, 할머니가 늘 나를 부를 때 하시던 말씀이 "어이구, 우리 강생이"였습니다. 강생이는 강아지의 경상도 사투립니다. 나는 할머니의 강생이여서 그랬는지 엄마보다 할머니 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내편인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나 강아지나 마음으로 알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도 아주 작은 것일 겁니다. 뭐그리 대단한 거 해 준다고 생색을 있는대로 내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우리를 봐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 만나 뭘 얼마나 큰 걸 줄 수 있을까요?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지요. 뭐가 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근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 선생님은 나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영락없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생각없이(?) 떠드는 말에도 귀기울여주고, 들어주고, 대단한 글 쓴 것처럼 신기해해주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고, 조금만 더 하면 아주 훌륭하겠다고 북돋워주고....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를 잘 봐 주려고 애를 쓸 겁니다.
11기 선생님들, 내일 만나요.
- 안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