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일이 매먕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 속에 들어가면 하나하나 다 느낌과 생각이 다르지요.
늘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야기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알려줄까
어떻게 하면 더 자세히 알게 해 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느끼게 해 줄까
그러나 이런 방법론들은 참 사람을 허상에 빠지게 할 때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해도 시간이 끝나면 허탈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제 수업소감에 그림책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림책 참 좋고 재미있지요.

하지만 제 수업의 중심은
어떻게 하면 책 속의 의미를 나에게로 가져와 내 삶의 문제로 인식할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내가 속해 있는 곳, 내 둘레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을 때 그 삶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많은 것들이 진정 나의 것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곧 나를 이룰 때, 내가 아는 바대로 몸으로 옮길 수 있을 때 곧 앎과 삶이 일치하는 삶이겠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성찰하며 고민하는 것이지요.
적어도 우리 순수한 아이들은 앎과 삶이 하나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책을 통해서, 공부를 통해서 아는 모든 것들이 자신과 분리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 사물, 사회를 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데 바탕이 되어야 하지요.
풀꽃을 관찰하며 거기 있었던 줄도 몰랐던 풀꽃을 바라보고, 알게 되고, 내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악기를 배우는 것이 어떤 기능적 표현, 두뇌의 계발에서가 아니라 내 신명이 날 때, 내 혼이 울 때 악기를 통해 나를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책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감히 이게 바로 해오름 논술의 기본 출발점이라고 말씀 드리고싶습니다.
수업 시간에 노래 부르고, 놀이 하고, 노작 하고, 책도 읽고,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매체도 경험하는 것이 다 뭐에 쓸려고 하는 것인가요? 가뜩이나 배우는 것이 많아서 주체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일까요?
더 많이 아는 아이가 더 똑똑한 아이가 되고 그래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나은(?) 삶을 누리리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이런 바탕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혹시 우리 수업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서머힐의 창시자 니일은 "자유는 사랑을 키워 평화를 낳지만,
억압은 증오를 키워 싸움을 낳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억압에 물들어 있나요? 터지기 직전의 고무 풍선 같지 않은가요?
우리가 슈타이너를 배우지만 슈타이너를 학문으로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슈타이너를 통해 아이들을 바로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도 바로 보고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앞서 나를 바로보고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초등 논술19기를 끝내신 선생님들.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성실과 열정의 거울 앞에서 저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필요치 않고 쓸데없는 말들도 많이 했지만
선생님들께 꼭 필요한 것들만 걸러서 가지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 선생님으로 인하여 환히 밝아지길,
또 선생님이 만나는 아이들, 어른들이 선생님으로 인하여 그 빛을 전해 받길, 그래서 다 각자의 빛을 발해 온 누리가 환해지길 기도합니다.
지금 거울 한 번 들여다 보세요.
선생님들의 눈 속에 촛불 하나 빛나고 있을 겁니다.

아울러 그동안 초등논술 들으셨던 선생님들 ,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