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벤야민의 몇 편의 글을 읽고, 100년이라는 시대를 훌쩍 초월한 위대하기까지 한 벤야민의 통찰력에 오늘도 감탄합니다. 무엇보다 당대의 보편적 지식인이 아닌 구제비평의 선구자, 벤야민의 철학적, 문학적 개념을 깊고 넓은 관점으로 멋지게 해석하시는 이창우 선생님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분석의 탁월함에 감동합니다! 

 

자본주의 관점으로만 생각했던 모던타임즈의 노동의 소외, 노동의 반복, 애니메이션 탱고를 통해 일상의 반복, 생성, 소멸, 개별성, 붕괴, 연대, 관계성등등 폭넓은 개념으로 확장되는 다양한 관점의 변화, 새로운 경험, 창조의 시간이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 유화*

 

두번째 배움자리에서  - 고대 직립의 비문이었던 탁자 위에 누운 문자들이 경제적 카오스에 의해 거리로 내쫓기고 이를 통해 정보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 강화된 플랫폼 자본주의는 정보 생산과 유포를 독점함으로써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4장 메시지 자체로서의 미디어를 통해 문자의 발전이 과학과 경제에서 어떤 카오스적 운영 - 독점 자본주의 거대 기업이 휘두르는 권력에 종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양이 질로 전환되는 변증적 상황이 조금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5장 반복의 의미에서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통해 소외와 창조의 두 세계가 어떻게 분리되면서도 연결되는 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탱고’를 통해 읽을 수 있었던 압축, 동시성, 단절성, 처음과 끝의 유기적 상황이 강렬했습니다. 각 인물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다가 퇴장하는 장면의 반복은 인물의 등장이 계속 추가되고 늘어남에 따라 작은 공간이 아주 비좁은 공간으로 축소되고 변질되는 현상으로 보였습니다. 등장인물 각자의 역할에 따라 공간이 전혀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은 일상을 변주하는 개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공간에 다양한 행위를 집어넣고 한 켠에 물러서서 관찰하는 과정은 특정한 공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반복은 창조다’ 명제 안에 빈 공간을 지배하는 존재의 등장은 빈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창조가 된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6장 짧은 그림자들 – 명징한 개념에서 정오에 다가서는 그림자의 압축성이 충만함으로 전화된다는 점과 짜라투스트라의 시간으로 도래한다는 점은 무릎을 치게 합니다. 정상 궤도에 다다른 태양처럼 가장자리의 소멸이 본체의 명징을 더 또렷하게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인식의 느슨함을 곧추세우게 하는 전율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펼쳐질 봉우리와 계곡 - 지형도와 위상학도 무지 기대됩니다. 텍스트를 몇 번이나 읽고 참여해도 이창우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겨우 깨우치게 되는 시간들, 기다리게 됩니다 - 박형만

 

제게는 벅찬 수업이라 끝나고도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수업중 흥미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자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삼차원적 문자로의 형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문자 구성이 이루어 지는 영역들 통계적 기술적 영역을 개척하여 국제적인 이동문자의 시대가 와야한다는 주장과 Metabus사의 페이스 북이 이미 국제적 이동문자의 지위를 확립한 사실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앞으로 문자의 형태의 변화로 문학 경제 공학 비지니스의 모습마저도 짐작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의 수단을 따라가기 벅찬 시대의 한가운데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