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배틀 로얄, 그리고 한국의 20대

                                                    광성고1 김 민 석


  "우리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지니지 않아도 좋을 많은 상념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들의 자그마한 희망마저 짓밟는 잔혹한 시대를 폴란드의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암울한 운명, 막 사회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그들에게 사회의 잿빛 하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여기 폴란드의 그들과 동일한 고뇌에 잠긴 젊은이들이 우리의 곁에 있다. 그들은 소싯적에 간직했던 새파란 꿈을 접은 채, 오늘도 철저한 승자 독식 사회에 영혼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청소년기부터 계속되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신음하는 대한민국의 20대들, 우리는 그들을 이제 ‘88만원 세대’로 부르려 한다.
그들의 처절한 운명은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포스트 포디즘의 개막으로 이어진다. ‘다품종 다량생산’을 내세우던 헨리 포드의 ‘포디즘’이 대내외적인 위기를 맞자, 세계는 그에 대한 후속 조처로 전과는 다른 유연한 생산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다. 기업은 국가와 사회의 제약에서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사회의 근간을 유지해오던 연공 서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동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공룡’이 아닌 다수의 ‘개미’들이 필요했건만, 한국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강자들의 횡포를 그저 방관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5%의 엘리트를 위한 95%의 고통과 투쟁은 시작되고 말았다.
금년으로 10대를 단 2년 남겨둔 나에게, 이러한 현실은 결코 단순한 가십거리만은 아니다. 이 책 ‘88만원 세대’를 통해 우석훈 교수가 들려주는 담론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곧 20대로 새로운 사회생활을 맞이하게 될 나에게도 해당되는 심각한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으로 새로운 조국의 미래를 개척해야 할 20대들이 ‘88만원의 덩어리’로 전락해가는 상황에서, 그들의 후배격인 나라고 어디 마음 놓고 쉴 수야 있겠는가. 그들의 시대에 고용이 안정화되고 최소한의 예우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10대 신세대들의 미래 또한 암울하기는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었다. 직장에서 또는 대학에서 힘겹게 자기 개발에 힘쓰고 있을 청년들을 위해서, 그리고 지나가버린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위해서라도 2008년 한국의 승자 독식 시스템은 장렬한 종말을 고해야 한다. 그 거대한 목표를 위해서 20대는 최전선에서 ‘짱돌’을 들고, 40대는 후배를 위해 자신의 권한을 과감히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제도 개혁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확실한 합의 기준점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때, 한국은 비로소 ‘배틀 로얄’의 악몽에서 벗어나 진정한 시장주의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인수위의 정책 발표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노무현 정부보다도 더욱 강한 신자유주의와 친재벌 정책을 강조하는 인수위측 대변인의 말 한 마디에 지식인들은 벌써부터 회의론을 제기하고, 국민들은 그에 대한 깊어져가는 불안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물론 이명박 당선인은 나름대로의 명분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88만원의 세대들에게 그의 논리는 아무런 설득력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이 당선인에게도 빈민가를 전전하고 기업의 말단 직원으로 살아야 했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면, 재벌이 아닌 그 아래의 88만원 비정규직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중산고1 박종연  

  요새 우리 사회에서는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 과 청년백수 전성시대라는 뜻인 ‘청백전’ 등의 신조어가 유행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지고 있다. 20대들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토플, TEPS등의 시험을 준비하며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때는 낭만적이고 인생의 황금기라는 말로 통하기도 했던 대학생활도 취업이라는 가혹한 문제의 뒤로 사라진 지도 오래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어렸다면 이런 말에도 별 느낌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88원 세대’ 를 읽은 지금의 나에겐 이것이 남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알리는, ‘포디즘’은 화려하게 개막했다. 여러 선진국들은 경제의 황금시대에 이르렀으며 실업률은 거의 없다시피 떨어졌다. 그러나 영원이 지속될 것 같던 ‘포디즘’도 자본축적 논리에 의하여 한계에 도달하였고 점차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포디즘’의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이 ‘포스트 포디즘’이다. 이 체제는 잘 나아가는 듯 했으나 경제영역을 넘어 사회 정치 문화 영역까지 확산되면서 결국에는 경제는 물론 사회 정치영역을 포함한 국가사회 전반의 불안정 구조를 심화시키고 만다. 그리고 그 피해에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기업 중심의 사회가 되었고 연공서열 제도가 무너졌으며 승자독식 게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경쟁이 주변의 친구들과 하고 있는 경쟁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의 20대는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40대, 50대와 ‘세대 간의 경쟁’을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즉, 새로운 세대는 정해져 있는 양을 가지고 기성 세대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20대의 몫으로 남겨둔 소위 ‘좋은 직장’을 급속도로 줄어들게 하고 있으며 많은 20대를 비 정규직과 실업으로 이끄는 셈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10대도 빗겨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이 책을 읽던 나를 큰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도 20대가 될 때가 올 텐데 그때도 그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미래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주저앉아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 나는 물론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10대로서 노력할 계획이다. 새삼스럽게 마지막 부분에 쓰여진 작가의 글이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승자독식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최후의 그리고 최적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젊은이들을 위해서? 물로 겉보기엔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 김나연

처음 이 책을 손에 들고, ‘머리 식힐 필요가 있을 때 텔레비전을 틀지 말고 이 책을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희망은 책을 훑어보기 시작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무너졌다. 적어도, 이 책은 ‘머리를 쉬게 해 주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현제 20대들이 탈출구 없는 승자독식 게임에 내몰리게 된 현실을 일깨워주며, 과거 세대에 비해 현재 20대들이 얼마나 노력에 비해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지, 또 그 현상이 10대들에게는 더욱 잔인하게 작용할 것인지 내게 이 책은 말한다.
제목인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해서 나온 금액인 88만원 근처에서 평생 맴돌게 될 수많은 20대들을 뜻한다. 이 세대들은 한국의 ‘영광의 30년’ 이라고 불리는, IMF전의 한국경제 황금기의 혜택을 맛보며 자라난 윗대들과는 달리 냉혹한 노동시장에 내몰리고 여기저기 치이는 세대라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처자가 한국의 20대를 너무 평가절하하고, 그들이 처한 시대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386세대나 유신세대에 비해 현재 20대가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지금은 새로운 일자리들도 부족하고 보수도 적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정도로 절망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거 독재시절 우리 나라가 굉장한 발전을 한 만큼,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에는 보편화된 많은 권리들을 포기했어야만 했다. 꼭 모든 면을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마치 우리나라의 20대들을  ‘88만원 세대’ 로 정의한 뒤 모든 현상과 이론들을 여기에 끼워  추는듯한 인상을 준다.
나라 전체로 보면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구직자가 넘처나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히려 전문 인력이 필요한 부문들은 국내의 인력이 모자라서 난리라고 한다.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지금의 20대들은 대학졸업장만으로는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대학진학율은 터무니없이 높지만 기업들은 하나같이 요즘의 신입사원들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 20대들이 얼마 돈을 받지 못하고 일하게 되는 현실을 무조건 사회구조의 탓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이 변화하는 사회상을 따라가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는 점점 발전하여 여러 각도에서 인재를 필요로 하는데,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런 사회에 들어맞는 인재를 배출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20대의 실업문제가 근본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닐까. 정말 실력이 있고 경쟁력이 있다면, 국내 노동시장이 아닌 해외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전체적 시각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동력을 잃은 우리나라와 그에 따른 타격을 입고, 취업시장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20대의 현실은, 실제로도 이 정도로 처참한 줄은 몰랐던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과장없는 현실이라면 현상을 분석만 할 것이 아니라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로잡으려 애써야 할 것이다.

<<88만원 세대>>  성시영

  ‘88만원 세대’에서 여러 사회문제들을 많이 다루었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과 의견을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나의 생각과는 반대되는 부분도 꽤 많았던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제는 ‘인질 경제의 현장’에 관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현재 한국의 10대들이 처해있는 현재 상황을 인질극에 비유하였는데, 이 인질극에서 인질범은 학원과 교육부의 역이고, 인질은 학생과 부모의 역이다.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이 발달하고, 학원이 학생과 부모를 착취하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인질극에 비유한 점이 인상적었다. 책의 저자는 인질극을 끝내기 위해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는 10대들을 인질극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대학체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다.
  후자의 해법인 대학체계를 정상화시키는 방법은 전면적 개편 방식과 부분 개편방식으로 나뉘는데, 전면적 개편 방식의 대상은 국립 대학교 외에 사립 대학교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부분 개편방식과 다르다. 만약 정부가 사립 대학교를 사들일 제정이 있다면 전면적 개편 방식이 더 좋겠지만, 정부는 교육문제 이외에도 돈을 써야 하고 무작정 세금을 올릴 수는 없으므로 부분 개편방식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대학 사이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학생들이 매년 진학할 때마다 학교를 옮길 수 있게 한다는 방안을 내세웠는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현재 국립 대학교도 학교마다 수준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인데, 여기서 학생들이 학교를 옮길 수 있게 된다면, 좋은 국립대로만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 치열한 경쟁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뜻하게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네트워크 내에 있는 학생들이 순환되면서 학교 간 서열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얻어지는 편익에 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네트워크 내에 있는 대학교에서 학교마다 특정 과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의대가 좋은 대학교는 어디어디, 경영대가 좋은 대학교는 어디어디 이런 식으로 대학교마다 과별로 특화(?)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분야별로 약간의 서열이 생길 수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 특화를 갖은 학교가 하나가 아닌 이상 절대적인 서열보다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서열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종합적인 대학서열 역시 제한적이지 않을까 생각되었었다.
  책의 군데군데에서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상황을 끼워 맞추는 알 수 없는 논리를 피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의할만한 관점에서 여러 사회 현상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설명된 사회 현상에 대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괜찮은 해결책들이 제시되어있는데, 전에 내가 생각해보지 못하였던 해결방법들도 있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 조성흠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두려움 그 자체였다. 과연 1년 뒤에 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만든 책이었다.
우리나라의 10대와 20대는 유신시대나 계엄시대를 지난 시대다. 따라서 시대적 사명감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 상층부는 유신시대와 계엄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미래의 구성원인 10대와 20대를 억압하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쓰이는 것은 바로 위기론이다.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좁은 문을 만들어 버리는 무한 경쟁시대로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려는 정책이 아닌가싶다. 이렇게 무한경쟁시대에 놓이게 되면 세대 간 갈등과 세대내 갈등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면 자칫 경쟁이 아닌 파국으로 이를 수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과 적절한 사회 보장제도가 적절하게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작가는 세대 간 갈등을 줄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데 여기서 공진화, 즉 다함께 진보하자는 개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 같은 나라에서 지방자치제와 지역 공동체를 통해 세대 간 갈등을 해소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 때의 독일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안은 큰 정부가 소외세대를 지원하는 것이다. 큰 정부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대사회는 너무도 복잡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면 세대 간 갈등은 겉잡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 최선의 방안은 될 수 없겠지만, 차선책으로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1318마케팅에 관한 것이었다. 1318마케팅은 13세부터 18세 까지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만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여기서 청소년은 거대기업이 유혹하는 갖가지 사치품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데, 나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쓰리기도 하다. 20대가되면 기업은 럭셔리 마케팅과 쇼비니즘을 이용하여 고객들을 유혹하는데, 아무리 그 상술을 자각하더라도 경제의 큰 틀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 개인의 입장이라 기분이 착잡해진다.
작가는 지금의 10대 20대가 참조할 만한 세계의 10대 20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나라는 프랑스의 사르트르 시대다. 사르트르시대는 국가의 불합리성에 항거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은 사람들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하다. 그러나 지금의 10대들이 과연 그런 열정이 아직도 있는지는 미지수다.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은 중남미형 경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경쟁의 극대화에도 시스템의 효율은 끝없이 떨어지는.  .  . 우리나라가 이 시련을 이겨내려면 세대 간의 갈등극복도 중요한 요소겠지만, 개개인의 정확한 현실인식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구호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88만원 세대 감상문- 정재화

한국 88만원세대에게 전하는 혁명의 메세지

이글을 읽으면서 우리사회가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지 자칭 민주세력이라 외치는386세대의 진실은 무엇인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20대로 살면서 상위5%안에 들지 못한다면 평생 100만 원 가량의 돈밖에 못 번다는 것에 가장심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사태가 비단 정치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모순된 교육체제 사회제도 모든 방면에서 다 문제가 발생한 것 이지만 나는 특히 정치 분야의 잘못을 꼽고 싶다.
   일단 국회의원 이라는 사람들은 나라와 사회의 걱정이 아닌 자신의 당선여부에만 신경을 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철의 경우 20대를 위한 정치적 고려가 하나도 없다.
당연히 그들은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고등학생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적이 과연 한번이라도 있을까, 또 대학생의 저임금알바 에 대한 궁극적 논의가, 비정규직에 대한논의가 본회의장에서 그들을 멱살잡게 했는지 나는 궁금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고등학생을 투표권이 없으므로 무시하고 20대를 투표를 잘하러 나오지 않으므로 다시 말해 나의 득표에 별 도움을 주지 않으므로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표의계산은 세계 어느나라 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방식을 채택한다. 스웨덴이나 유럽의 경우 국회의원들은 정기적으로 고등학교를 방문해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그들도 고등학생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그럼 그들이 왜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고 평가 받는 것일까? 단순한 이미지 만들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곧 나중에 고등학생들이 투표권자가 되며 그들이 또 성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도 해보면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선거에서 정책에 반영시킨다. 다시 말해 그들이 평가받는 방법이 무슨 당 이냐가 아닌 이념이 아닌 정책이라는 수단인 것이다.
결국 정치 분야에서 우리들을 위한 제도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잘못도 크다는 결론이다. 비단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옥죄는 경우는 정치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소비행태를 보더라도 우리는 ‘88만원 세대’ 라는 책에서 지적한바와 같은 소비행태를 마치 읊조리고 있는 듯 하다. 대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차를 갖고 싶어한다. 그래서 수능 끝나고 바로 운전면허부터 따고 부자가 아닌 이상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차를 산 뒤  4년내내 빛 값기에 바쁘다.  또 대학생이 되면 왠지 꾸며야 할것 같고 쇼핑은 강남이 기본이고 멀티숍을 다녀야 한다는 혹은 겔러리아 west에서 쇼핑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또 ‘대학에 들어가면 쌍커풀 없는 사람이 없다’ 라고 하겠는가. 오죽하면 미국의 무슨 주간지는 이화여대 정문에서 찍은 사진을 표지화면으로 실은 뒤 이런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창녀인가 대학생인가’
이글이 물론 당사자나 대학에 엄청난 모욕을 주었겠지만 그 정도로 우리의 행태가 너무하도 지나치단 얘기이다.
또 위에서 내가 말한 돈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가 빛을 내든 무엇을 하든 거의다 부모에게서 나오는 돈일 것이다. 결국 우리스스로 경제종속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대학교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공론화 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모두 몸을 사린다. 나만 좋은 기업들어가고 나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되지. 괜히 대모 주도했다가 입사시험 떨어 질수도 있고, 아마 이런 식으로 모두들 386세대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열심히 우리는 스스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68혁명을 기준으로 가히 엄청난 성과를 올리며 사회의 기본틀을 전부 바꾸어 놓았다. 정부가 꼼짝하지 않으면 프랑스와 같이 혁명이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원래 성질이 그렇다고? 아니다. 우리나라도 근현대사는 반일, 반독재 투쟁의 역사 아니였는가!  우리는 정말 토플책을 덮고 바리게이트와 짱똘을 들고 거리로 거리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386세대가 이뤄놓은 자유, 민주의 세계는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유신시절 억압받고 핍박받는 형국이다. 다만 예전에는 박정희가 386을 옥죄였듯 지금은 386이 우리를 옥죄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종의 자세로 있지 않은가!! 젊은이여 가래침을 뱆자라고 외친 시를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시준비를 하고 있지않은가!! 지금이다.  대학생들이여 봉기하자!!~~~나가 싸워 자유를 쟁취하자!!~~혁명을 일으켜 역사에 길이 남기자 우리는 싸웠노라고 그리고 쟁취했노라고~~~ㅋ ㅋ( ㅠ,ㅠ)




88만원 세대  / 이장원

이 책을 약 2주간에 걸쳐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 처음에 소개된 사례처럼, 청소년들의 동거, 독립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작가가 말한 프랑스의 사례가 과연 정말일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10대, 20대들은 부모에게서 쉽게 독립할 수가 없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나도 예전에는 20대가 되면 독립을 하고자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20대가 부딪혀야 할 벽들을 보고나니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를 포기하게 만든 이유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로는 대학등록금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등록금이 너무나도 비싸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록금 인상을 놓고 대학생들과 학교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 등록금 천만원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대학생이 과연 부모의 도움 없이 천만원을 벌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부모에게 도움을 받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마저도 불가능 하면 휴학을 해야 한다.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버는 돈이 88만원이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되긴 잘못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집 값 때문이다. 위에 말한 방법들 중 하나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번에는 살 집이 없다. 내 집 마련은 사치이며 월세로라도 쪽방, 반지하, 옥탑 밖에 갈 곳이 없다. 내 생각에 이런 곳에서 사는 20대들은 부모와 편안히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올 것 같다.
세 번째로는 독립에 대한 시도 자체가 없어진 것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문제만 보더라도 이미 독립하고 싶은 의지는 사라진다. 그리고 시도도 해보기 전에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막고 나선다. 반지하에서 살겠다는 자녀를 그냥 보고 있을 우리나라의 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문화가 생긴 탓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지금의 20대를 88만원 세대로 규정하기에는 이르다고 본다. 20대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이며 그만큼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 좁은 취업의 문을 뚫고 나가 권력을 획득하여 그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부분이 고학력을 갖춘 이들이 참고 88만원을 받고 있을 리는 없다. 다만, 지금의 20대들은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심화되어 20대가 현실의 모순을 인식한다면 작가의 말처럼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고’ 나와서 그들의 권리와 새로운 이름을 요구할 것이다.


최진주

논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88만원 세대를 접하게 되었는데 우리 반의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 알고 보니 이 책은 발간될 때부터 굉장히 이슈가 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의 전체적인 느낌은 정말 놀랍고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88만원 세대는 현 20대들의 평균 임금이 8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에 의하면 앞으로의 20대는 더욱더 처절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책은 ‘한국형 승자독식 체제’라는 용어를 이용해서 한국 사회의 독과점화와 그 속에서 설 곳이 없는 20대들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대들은 세대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을 이겨내야만 한다. 특히 세대 간 경쟁에서는 20대들이 철저히 불리하다. 이 책은 20대들이 불리한 경우를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면서 설명했고 여러 가지 직업의 예를 들면서 각각의 예에서 20대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선진국과 비교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비극의 시초가 너무 빠른 경제성장과 그 기간 동안 일본의 제도와 미국의 제도가 어설프게 결합해서 변형되고 또 그 제도를 다수의 합의로 이끌어낸게 아니라 소수에 의해 주입당해서인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이 책에서 소개한 1318마케팅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청소년들을 위한 잡지인 보그걸이나 엘르걸을 자주 사보고 있다. 그 잡지는 사실 어른을 위한 잡지인 보그나 엘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잡지를 대충 살펴봐도 화장품이나 브랜드를 광고하는 것에 지면을 할애할 뿐 청소년을 위한 정보 같은 것들은 찾아 볼 수 없다. 나는 보그걸이나 엘르걸을 보면서 그 화장품들을 너무나도 사고 싶어 했고 어른이 되면 살 것이라고 마음먹은 제품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의 전략적인 마케팅에 내가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하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국 사회의 제도에 너무나도 화가 났고 저항하고 싶어졌다. 사실 기성세대의 제도를 고치는 주체는 청소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저항은커녕 저항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나또한 마찬가지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제도에 순응하면 저항하는 것보다는 편하고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순응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그러면 피해보는 것은 청소년들일 뿐이다. 앞으로 여러 제도들을 당연시하는 것보다는 항상 의심을 품고 비판해야겠다.

홍소리나

현재 이 시각, 미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은 변화를 간절하게 원하는 젊은 층들의 열정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이러한 열기가 필요하다.

        한국의 20대들이 바라보는 미래에는 희망의 빛보다는 어둠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져있다. 입시 지옥을 거쳐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지옥에서 벗어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일 뿐, 곧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문을 뚫기 위해 다시 전선을 갖추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청년들의 독립생활은 우리의 20대에게는 비현실적인 꿈이나 다름없다. 계속해서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도 바쁜 대학생들에게 방 한 칸 마련할만한 재정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젊은이들이 점점 독립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이다.

        88만원세대의 저자는 기성세대들의 시장잠식 하에 차기 세대들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럴수록 20대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잘 투영되도록 해야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 20대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되는가. 김영삼 대통령 등 기존 세대에서는 20대의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를 장악했었다. 비록 정치에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88만원 세대들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가면서라도 자신의 권리 신장을 위해서 정치계에 신선한 바람을 계속해서 불어넣어 주어야한다. 30, 40대들의 관심사가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관심사와 같을리 없다. 자신은 물론이며, 자신의 뒷 세대들이 보다 낳은 삶을 누릴 수 없도록 우리 사회에도 변화를 외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20대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