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게...    

                     정현준 (한성고2)


바리야
이곳은 얼마전 초복을 지나고
갈수록 날씨가 더워지는데
그곳 날씨는 어떠니?

폭염으로 전국 순회를 하던 대학생이 죽고
폭우로 수십 명이 빠져죽는
염화와 물의 지옥에서.

너는 이곳에 오더라도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 한빙지옥 물지옥 땅지옥
무간 팔만사천 지옥을 지나
이미 서천의 끝에 갔으니

잘 견디겠구나...

바리야,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바리야.
너는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지.
사랑하는 가족들도, 알리의 동생도,
네가 다시는 용서 못할 증오에 갇혀버린 사람들도.

그러나,
네가 수많은 지옥과
죽은 자들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현실이 지옥 같고 지옥이 현실 같은
이 세상에서

서양의 신화에서 판도라가 그러했듯이
마지막까지 남기고 간직한 것은
바로 희망이었구나.

아직 아버지가 있었기에,
칠성이와 할머니가 있었기에,
사랑하는 남편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동료가 있었기에
넌 희망을 잃지 않았어
그러나 바리야.
아직 이곳의 사람들은
너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같아.

무엇이 어린아이들에게 흰 종이막대를 태우게 했는지
무엇이 아버지가 유리병을 붙잡게 했는지
무엇이 흑인들에게 초록 액체를 마시게 했는지
무엇이 미국에서 만명의 목숨을 총알로 앗아가게 했는지
무엇이 한국에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불꽃이
스스로
꺼져가야 했는지를

바리야, 너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해주렴.

그리고
중국에서, 영국에서 그러했듯이
할머니의 낙화를,
희망이라는 낙화를
이곳 저곳에 뿌려주렴

불길이 물러나고
물 폭풍이 사그러들고
굶주린 영혼이 사라지던
그 낙화를

이제 이곳과,
비록 바다를 거닐던 가엾은 영혼을
두 개인지 세 개인지 모를
손가락만한 쇳덩이로 앗아가버렸지만
그러나 그래도 우리의 이웃인
너의 고향 땅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분홍빛 눈이 내리듯이
뿌려주렴.

아직도 철조망 근처에선
화약 냄새 물씬 나는
이 땅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