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창작과 비평사

‘블루 아메리카’와 ‘레드 아메리카’는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에서 민주당 후보가 이긴 지역은 파란색, 공화당 후보가 이긴 지역은 붉은색으로 표시한 데서 보편화한 개념이다. 그러나 블루와 레드는 꼭 민주당과 공화당 우세지역이 아니라 세계화의 암과 명을 상징하며 미국사회의 양극화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보통 ‘레드 아메리카’는 세계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성공한 계층이 사는 지역이어야 하지만 정작 미국 지도에 붉은색으로 채색되는 곳들은 그런 성공과 거리가 먼 농촌이거나 쇠락한 공장지대다.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는 그런 아메리카, 즉 겉으로는 ‘레드 아메리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블루 아메리카’인 곳을 직접 발로 뛰며 탐험한 기록이다.
저자 홍은택은 신문지상에 오르는 미국의 겉모습이 아닌 미국사회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그가 찾아간 미국은 웬만한 관광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곳이며 그가 만난 사람도 유명한 사람은 없다.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저자는 미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사회에 접근하되 전문적인 용어들로 해설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직접 만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한 모자이크 그림을 자연스럽게 완성해냈다. 또한 직접 찍은 사진들로 쓸쓸하고도 황량한 미국의 뒷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004년 이라크전쟁과 미국 대통령선거로 불붙은 미국에 대한 관심으로 수많은 미국 관련 도서가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미국의 외교와 정치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이었고 국내 저자가 쓴 책도 드물었다. 미국에 대한 학술적인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런 ‘사람냄새’ 나는 기행서가 미국사회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버려진 땅, 남은 사람들
저자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미국의 중심이다. 광활한 미국땅의 지리적 중심인 캔자스주 레바논과 2억 인구의 중심인 미주리주 에드가스프링스. 그러나 중심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그곳에서 만난 것은 사람들이 떠난 미국 중부 대평원의 버려진 농장들이었다. 관광수입이라도 올리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초라한 기념탑만이 외부인을 맞는다. 그 중심에서 저자가 만난 한 청년은 “우리는 그것을 미국의 똥구멍이라고 부른다”라고 자조하고 만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도, 회사는 더 싼 임금을 찾아 떠나버려 사람들도 사라지고 빈 공장만 남았다. 한때는 ‘가장 행복한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린이의 40%가 절대빈곤층에 속하게 된 비참한 현실만 남은 것이다. 탈산업화는 산업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을 품고 있던 도시에 깊고 오랜 흉터를 남긴다는 사실을 이제는 잡초밭이 된 제너럴모터스 공장을 보며 저자는 절감한다.

성공한 자본주의의 이면
맥도날드 형제는 원래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었던 햄버거에 스피디 써비스 씨스템이라는 완전한 노동분업을 적용하여 기술력 있는 노동이 더이상 필요없는 저임금 시간제 노동시대를 열었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미국인들의 몸, 피폐화되는 농촌, 획일화되는 식성과 문화를 되짚으며 맥도날드 박물관을 찾아간 저자는 거기서 일하는 경비원을 통해 대학을 나오고도 주정부의 실업수당을 보태 근근이 살아가는 저임금 시간제 노동자로 전락한 미국의 많은 화이트칼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형이 된 월마트는 양질의 물건을 싼값에 팔며 조건없이 반품해주는 소비자 지상주의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원칙은 인건비를 낮추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된다. 저자가 만난 월마트의 전 직원도 카트를 옮기는 일을 ‘허리가 부러질 만큼’ 했지만 의료보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월급도 쥐꼬리만큼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그는 월마트에 간다. “일하기는 나쁜 곳이지만 쇼핑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그의 일상이 월마트의 싼값에 숨겨진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법치국가 미국?
사형집행의 수도라고 불리는 텍사스주 헌츠빌의 감옥박물관에서 사회문제를 범죄척결로만 접근하는 미국의 실상을 목격한다. 미국은 서방선진국 중 유일하게 사형제도가 있고, 인구 10만명당 재소자가 715명으로 다른 나라의 4~5배 수준이다. 이는 범죄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감옥비즈니스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쇠락하고 있는 농촌마을이 교도소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고, 미국 어딜 가도 감옥박물관이 있어서 감옥이 이색체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이러한 격리가 더 심한 대립을 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엄격한 법집행의 반대편에서는, 1800년대 시대를 풍미한 열차강도 제씨 제임스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저자가 찾아간 아이오와주 애데어의 제씨 제임스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도 그를 완전한 문화적 우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출생지, 박물관이 관광지가 되고 축제도 벌어지며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일개 강도가 연방정부와 북부 자본가의 상징인 철도와 은행이라는 권력에 도전한다는 성격의 개인주의적 영웅, 서부활극시대의 낭만적 영웅으로 미화되는 것이다.

진짜 미국인은 누구인가
미국 속의 또다른 인디언의 나라 체로키국이 있다. 체로키부족은 금광 일대의 땅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땅을 몰수하려한 백인들에 의해 1600킬로미터 떨어진 탈레쿠아까지 강제이주되었다. 넘치지 않았지만 부족할 것도 없었던 100년 전 공동체생활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성공이라는 최고추장의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인이 놓치고 있는 삶의 질의 본질을 짚어본다. 또한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보호구역에 도박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면서 폭증한 카지노에 저자가 직접 들러 현장을 스케치한다. 월마트에 가듯 카지노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빈민들이 가서 일부는 파멸의 길로 빠진다. 정직하게 땀흘려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게 불가능해진 것은 결국 아메리칸드림이 퇴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멕시코 국경의 리오그란데강에서는 매년 최소한 300명 이상이 새 삶을 찾아 미국으로 넘어오다가 목숨을 잃는다. 미국 내에서는 이민자들의 유입을 ‘보이지 않는 침략’으로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과거에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성취의 그늘에는 끊임없이 밖에서 충원되던 이민자들이 있었다. 미국사회의 이방인이기도 한 저자는 죽음의 국경을 마주하며 미국내 중산층의 감소와 소득격차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돌리고 있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저자가 찾은 희망의 근거는 자동차로 흥했다 자동차로 망한 디트로이트의 ‘포커스호프’라는 시민인권단체이다. 500여명의 상근활동가들과 5만1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배고픔과 경제적 불평등, 인종갈등, 교육 불평등 같은 난제들을 풀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그 단체의 책임경영자인 엘리노어 조싸이티스. 그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어느날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충격을 받아 흑인인권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조싸이티스가 비록 디트로이트를 잿더미에서 일으키지는 못할지라도 힘과 돈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중, 부의 기계적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 등 좀더 크고 근본적인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그것이 바로 ‘블루 아메리카’의 희망을 상징하는 가치라는 게 저자의 메씨지이다. [인터파크 제공]  

  
작가 소개  / 저자 |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89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뒤 국제부 기자, 노조위원장, 워싱턴특파원(1996∼2000년)으로 근무했다. 2005년 현재 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 석사과정에 있으며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글로벌 저널리스트'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를 부르는 숲>, <천천히 달려라>, <리틀 비트와 함께한 여섯번의 여름>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블루와 레드, 길에서 만난 두개의 미국

01 아기 울음소리 끊긴 지리적 중심
캔자스 레바논

02 아직도 서부로 가고 있는 인구의 중심
미주리 애드가스프링스

03 미국 농민도 밑지고 농사짓는다
미주리 페이에트

04 박제된 맥도날드 햄버거 1호점
일리노이 데스플레인스

05 미국인이 지불하는 맥도날드 성공의 댓가
일리노이 오크브룩

06 약속의 땅에 탈산업화가 남긴 상처
미시간 플린트

07 자동차로 흥하고 자동차로 망하다
미시간 디트로이트

08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형 월마트 1호점
아칸쏘 벤톤빌

09 월마트의 본사는 왜 남루할까
아칸쏘 벤톤빌

10 닥터페퍼가 아닌 자본주의를 마신다
텍사스 웨이코

11 미 보수주의의 본산 텍사스 그리고 엔론
텍사스 휴스턴

12 세계 사형집행의 수도
텍사스 헌츠빌

13 무장강도 제씨 제임스가 우상이 되는 나라
아이오와 애데어

14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눈물의 길'
오클라호마 탈레쿠아

15 '쇠락'한 아메리칸드림, '급증'한 인생역전의 꿈
캘리포니아 테메큘라

16 사선을 넘어 미국으로, 미국으로
리오그란데를 따라

17 스마일리가 대신하는 미국인의 고달픈 웃음
아이오와 애데어

18 돈 주고 유권자를 살 수 있는 나라
워싱턴 DC

19 총성 없는 보수의 쿠데타와 장기집권
워싱턴 DC

20 더 붉어진 아메리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미시간 디트로이트

[알라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