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인문사회과학

*** 문화의 발견/김찬호 지음/문학과 지성사

KTX, 편의점, 찜질방, 피시방 등은 생겨난 지 불과 십여 년이 되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우리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아파트, 학교, 백화점, 공원 등 근대적인 도시 풍경과 뒤얽히면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다시 그려나가고 있다.

이 안에서 우리 일상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또 어떻게 변화해나가고 있을까? 지은이는 우리 주변을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의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른 개의 공간을 택해 대한민국의 풍경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를 짚어나간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지은이가 던지는 질문을 공유하는 순간 사회와 문화를 성찰하는 자신의 모습도 새로이 만나게 될 것이다.


**지은이: 김찬호
1962년 대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신학으로 시야를 넓히면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기독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일본 오사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했다. 2005년 현재 대안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백의 질서>, <사회를 보는 논리>가 있으며, 옮긴책으로는 <작은 인간>,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등이 있다.

      
* 글 차례

제1부 이동과 교통
지하철- 애써 무관심한 척하지만
버스- 아저씨, 잠깐만요
승용차 자기만의 궁전, 달려라!
KTX- 창밖을 보지 않는 여행
공항- 하늘 네트워크의 포털 사이트

제2부 유희와 교류
노래방- 온 국민이 카수왕!
찜질방- 프라이버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피시방- 방 속의 방들
놀이공원- 과학과 마술의 경계를 따라
스타디움- 월드컵을 넘어서

제3부 유통과 서비스
편의점- 욕망을 검색하는 도시의 야경꾼
식당- 밥맛은 살맛이다
커피숍-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곳
백화점- 일층에 패션 잡화가 있는 까닭은
시장- 사고파는 것 말고도

제4부 거주와 돌봄
아파트- 나를 감추면서 과시하는 기호체계
집- 하우스인가, 홈인가
경로당- 늙음을 경외하느니
노숙-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을- 관심과 관계의 그물망 짜기

제5부 창조와 성장
학교- 배움의 인연으로 자아를 빚는 그릇
캠퍼스- 낭만과 불안 사이
교회- 예배는 멀티이벤트?
문화회관- 아마추어들의 매력을 찾아서
길거리- 문화유전자의 고밀도 집적 회로

제6부 몸과 자연
화장실- 더러움, 그 깨끗함에 대하여
병원- 치료에서 웰빙으로
동물원- 인간의 서식지를 예감한다
공원- 시간이 머물러 쉬는 곳
강- 물과 사귀려면
  
** 서평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천변풍경>은 당대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듯이 표현하고 있다. 기록 필름이나 영화의 몫으로만 여겨지는 일들이 문학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언어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소설은 현실의 정확한 세부 묘사와 재현에 역점을 두고 문학 작품으로 성립 가능한 부분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아쉽고 그리웠던 시절들에 대한 추억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사진처럼 선명하게 부분을 보여주는 것보다 일련된 하나의 흐름을 통해, 그 상상의 힘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독자들에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특히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입장에서 집단 전체의 문화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숲속 나무 그늘에 앉아 산 전체의 형세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은 그래서 당돌한 책이다.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뿐인데 그것을 발견했다고 하니 말이다. 무엇을 발견했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우리들 삶의 모습을 모두 이해하거나 제대로 들여다 보기는 힘들다. 알고 있으나 나름의 방식대로 규정짓고 이해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아니면 아예 지나쳐버리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를 보는 논리>로 비판적 시각과 예리한 분석력을 보여주었던 김찬호의 새 책은 ‘KTX에서 찜질방’까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들 일상에서 늘상 지나쳐왔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과 진지한 접근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크게 30가지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 작게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지하철에서부터 공항까지, 노래방에서 찜질방까지, 편의점에서 시장까지, 아파트에서 경로당까지, 학교에서 교회까지, 화장실에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공간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나 객관적 사실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성적인 문장과 수필에 가까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주제들을 대표할 수 있는 첫머리 인용글들은 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면서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시각의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 각 장마다 붙어 있는 생각해 볼 문제는 대학 교재나 논술 교재로도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신경을 썼다. 하나의 문화 현상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대변한다. 유행처럼 번지는 공간과 사람들의 생각은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시대정신으로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개똥녀 사건으로 인터넷과 세상을 달구었던 일들은 지하철과 핸드폰과 인터넷의 익명성이 결합한 현상으로 네티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까지 소개되었다. 된장녀로 불붙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커피전문점들의 문화적 현상들은 소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하는 것 같다. 별다방 스타벅스, 콩다방 커피빈에서부터 파스쿠찌, 할리스 커피에 이르기까지 만남과 놀이의 문화가 부재한 현실의 현상들을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주제들의 공통점은 ‘공간성’이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동과 교통, 유희와 교류, 유통과 서비스, 거주와 돌봄, 창조와 성장, 몸과 자연으로 구분해서 주제들을 묶어내고 있지만 모두 구체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문화란 시간과 공간의 만남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을 보면 문화가 보일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모두 우리들의 문화인 것이다.

  우리들이 발딛고 서 있는 삶의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대와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것을 살펴보는 일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목적과 방향도 없이 흔들리는 삶에 대한 경계를 위해서 필요한 책은 아닐까 싶다.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