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등급제 혼란, 입시 서열화 탓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이장무 총장님은 ‘수능 등급의 폭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해야 한다’며 대교협 총장단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마다 입시 혼란은 있어왔지만 올해는 특히 수능 등급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수능 등급제가 동네북인 것처럼 등급제 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등급제 폐기 주장은 과거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점수제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수능 등급제 취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2008학년도는 수능 성적만 9등급제가 아니라 내신 성적도 9등급제입니다. 같은 등급제인데 내신등급에 대해 조용한 것을 보면 내신이 철저하게 무력화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학생들이 내신 9등급제에 3년간 적응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내신 중심 입시를 강화한다던 2008 입시안의 예상대로라면 강남 학부모들이 한바탕 난리를 부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수능 9등급제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본고사 부활과 3불 폐지 등 목소리를 내온 대학 총장단, 사립대 입학처장단도 이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대학들은 스스로 자해를 한 셈이니까요.

  상위권 대학들은 2008 입시에서 내신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키고 수능 등급제까지 무력화시키려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수능 시험 결과 전체영역 1등급 학생은 전체 수험생 55만명 중 644명(0.15%)이고 언·수·외 세 영역 1등급은 3747명(0.75%)이어서 상위권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기엔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솔직히 4, 5, 6등급 중위권(54%) 학생들의 대학 선택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중위권 대학들은 논술시험도 없습니다. 변별력 불만은 이들 중위권 대학과 학생 그룹에서 나오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데도 상위권 대학에서 수능 등급제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2008 입시제도를 흔들어 본고사를 부활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는 읽히지 않습니다.

  점수 차이를 무디게 하려는 수능 9등급제 도입 취지는 수능 점수 차이를 극대화하려는 대학의 이기주의 앞에서 무력합니다. 같은 등급은 같은 학업성취를 나타낸다는 것이 수능 등급제의 요지이지만, 한 문제를 더 맞히면 수험생의 잠재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이 한 문제만큼 더 낫다는 무모한 확신이 판치는 상황에서 수능 9등급제는 논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는 치열한 입시 경쟁과 처절한 서열화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입 문제 해결은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지 경쟁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이장무 총장님, 수능 9등급제는 문제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시행되어 결국 등급을 줄이고 자격고사로 가야 합니다. 국립대학만이라도 서열화를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해 국·공립대 통합전형과 수능 자격 시험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서 주십시오. 이총장님이 바라는 대학 내 다양한 구성원은 다양한 입시전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균등선발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얻어집니다. 지금은 대학 입시에 종속된 중등학교 교육이 창의·탐구적이고 토론식으로 올바로 자리잡기 위해서 국립대학부터 선발경쟁에서 벗어나 교육경쟁을 할 때입니다. 그 중심에 이장무 총장님과 국립서울대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전 / 경향신문 2007년 12월 12일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