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민영의료보험 도입 논란

 

 

* 들어서기 -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 설정하기)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민영의료보험 도입 이슈 ISSUE를 다루는 이유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병·의원, 약국, 보건소 등 요양기관이 건강보험 환자의 진료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돼 있으며,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거의 대부분의 병·의원과 약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 등 이해 당사자들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줄기차게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선택진료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를 위해 민영의료보험제도를 확대하자는 주장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유시민 장관 때는 이 문제에 대해 검토를 한바 있으나 여론 악화를 빌미로 제도도입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보류시켰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기 전 정권인수위에서 이 문제를 다뤄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인수위는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민영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당연지정제와 선택진료제를 5:5 비율로 완화하는 방침을 결정하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주요정책과제로 설정하여 적극적인 추진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인수위는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완화해 성형이나 피부 미용 등 여러 건강보험 적용 외 의료서비스만 제공하는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의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건강보험에 가입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가 완화되면 건강보험과 계약을 하지 않는 병원은 경제적 수익이 큰 환자만 골라 받을 수 있다. 또 해당 병원과 계약을 맺은 민간보험 가입자만 진료할 수 있어, 이 병원을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은 이중으로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그동안 당연지정제의 완화를 요구해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대선 기간에 이명박 당선인 등 대선 후보들에게 건강보험과 관련된 질의서를 보내 “건강보험은 꼭 필요한 의료행위만을 대상으로 하고, 필수가 아니면서 건강보험 적용 외 진료는 시장에 맡길 수 있도록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선택계약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의사협회는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당연지정제가 영업활동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으나, 2002년 합헌으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경제적 이익 추구보다 환자 진료를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비영리 의료기관이 충분히 들어서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상당수 병원들이 돈이 되지 않는 건강보험 환자를 거부해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신 경북대 의대 교수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중소규모 병원이 대규모 보험회사와 결탁해 의료서비스 상업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며 “동시에 의사단체가 건강보험과의 진료 가격 계약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게 돼 진료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편 최근 개봉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영화 ‘식코’(Sicko)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화제를 일으키면서 시민단체 주도로 정부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와 민영의료보험 도입 추진에 반대여론이 불붙었다. 급기야 지난 2008년4월10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의료시스템 기본 틀은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기본 틀’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재해석 여지를 남겨두어서인지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대체형 민간보험’의 필요성에 대해서 조금씩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은 절대 눈길도 줘서는 안 될 제도인가? 아니면 여기에도 장점은 있기에 받아들일 부분은 검토해야 하는가? 한번 물꼬를 트면 우리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가? 민간의료보험을 비롯한 미국식 의료시스템 도입에 대해 찬반론자의 의견을 살펴보자.

 

 

 

 

* 펼치기 - 왜 문제인가? (문제분석하기)

 

1.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

 

(1)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등 규제개선 요구

의협, 건강보험 등 주요 현안 규제개선안 진흥원에 제출

출전/대한의사협회 누리집 소식란

 

대한의사협회(회장 주수호)는 지난 2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수가계약제도, 임의비급여 문제 등 의료계 주요 현안에 대한 규제 개선 방안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제출했다. 의협은 의료제도 규제개선 방안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개선하여 단체계약제를 도입하는 사안을 최우선 순위로 선정하여 제시했다.

의협은 의료기관 개설 시 현행과 같이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건강보험요양기관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건강보험 진료를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사회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필요성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현행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획일적 의료서비스 조장,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 배제, 헌법재판소에서조차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당연지정제의 강제 적용이 비효율적임을 인정하는 등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국민과 의사의 선택권이 축소되어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에 상당한 문제점을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선방안에서, 의협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설립한 의료기관 같은 공립의료기관은 현행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되, 민간의료기관은 의과·치과 등 각 직능별 중앙단체장과 공단 이사장이 계약의 주체가 되어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의협은 건강보험 수가계약제도와 관련해서도, 요양기관 단체계약 시 의료행위분류, 상대가치점수,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 요양급여기준 등으로 계약의 범위를 확대하여 일괄 계약할 수 있는 요양급여기준 및 심사기준 계약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정보 비대칭문제 해소 및 동등계약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수가계약의 기초가 되는 요양급여비용 관련 자료의 효율적 활용을 통한 동등계약제 구현을 위해 직능별 중앙단체가 심평원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구성과 관련, 요양급여비의 70~80%를 차지하는 의료계의 비중을 감안하여 의료계측 위원구성을 확대·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임의비급여 문제와 관련, 현행의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Negative List System)을 운영, 포괄적 보험급여 대상을 설정하여 제도상의 보험급여 대상과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보험급여 대상과의 괴리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현행의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보험적용 대상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ositive List System)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급여기준의 현실화를 위해 상설 급여기준개선위원회를 신설하고, 환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환자 동의 시 급여기준 초과사항에 대해서는 비급여를 인정하여 줄 것을 강조했다.

의협은 의료인의 소신진료를 저해하고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는 요양급여 적정성평가 및 급여비용의 가감지급 규정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허위·부당청구로 확인된 의료기관의 경우 동일사안에 대해 다중처벌을 적용받거나 과도한 과징금 부과기준을 적용받는 불합리한 사례가 많다며 허위청구와 부당청구의 개념정립을 통한 처벌대상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의료법 및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정비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업무정지 행정처분 효과 양수기관 지속규정 삭제’, ‘허위청구 의료기관 명단공표 규정 삭제’, ‘허위청구 고발 포상금 지급규정 삭제’등 허위청구와 관련된 불합리한 사항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차등수가제 폐지’, ‘의료인 회원자율징계제도 입법화를 위한 의료법개정’, ‘태아성감별행위 처벌규정 삭제’ 등도 개선하여 줄 것을 제안했다.

김주경 의협 대변인은 “의협이 보건산업진흥원에 제출한 의료제도 규제개선을 위한 방안은 기존에 의협이 무수히 건의해 왔으나 제대로 반영된 경우가 없다”며 “정부 산하기관에서 규제 개혁을 위한 의견을 요청한 만큼 이번에는 의료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여 의사의 자율성과 전문성 보장을 통한 국민의 건강권이 향상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008년4월1일 대한의사협회

 

 

(2) 의협·서울의사회, ‘당연지정제’ 폐지 성명

출전/ 국민일보(2008.04.30)

 

현행 당연지정제를 고수할 것이라는 복지부 공식 발표에 의료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의사협회(회장 주수호)는 복지부 발표에 대해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게, 국민 선택의 폭에 따라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의 획일적, 보편적 진료를 행하도록 강제하는 현행 강제지정제를 철폐해 의학적 전문성이 반영된 합리적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의료공급 행태의 왜곡 및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방지하고 국민과 의료공급자 등 건강보험 참여 주체 간에 균형적인 의무수행과 권리보장이 전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 및 계약제로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필수의료행위만을 건강보험대상으로 하고, 나머지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시장에 맡기는 체제로 변환한 후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선택계약제로 바꿔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의 계약 의료기관이 될 것인지, 자유로운 기관이 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의협은 "현 정권마저 전문가단체의 합리적 판단을 무시하고 선정적이고 싸구려 인기 영합주의에 편승해 나간다면 획일적 의료사회주의를 고수해온 지난 10년간의 좌파정권보다도 못하다는 국민의 혹독한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비난하고 "의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보건의료의 토대를 무시하고 의료사회주의자들이 주창하고 있는 당연지정제를 고수한 채 새로운 선택의 길을 막아버린다면 현 정권 또한 한국의료를 영원한 퇴보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시의사회(회장 문영목)도 성명서를 통해 실망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서울시의는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해 국가는 필수의료 보장과 선택의료 육성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며 "이를 통해 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를 도모하고 의료 시장 확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와 고급의료서비스 수요층의 기대만족 등을 통해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은 다양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나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부는 인정하라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개선과 의료산업 활성화 그리고 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통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동등한 지위의 단체계약제로 전환하라 등 대정부 요구안을 채택했다.

 

 

(3) “의료보험 강제가입은 개인권리 침해"

 

최명기 (부여 다사랑병원 원장, 경희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겸임교수)

 

미국에는 외국인 시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총기 소유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외국인 눈으로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의료보험제도다. 무어는 ‘식코(Sicko)’를 통해 이 문제를 신랄히 공격했다. 한국인 시각에서 이 영화가 쇼킹할 수도 있지만, 소위 비판적 지식인들이 미국 의료제도를 공격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 의료제도가 현재와 같이 유지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 국민 상당수가 현재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 전국민의료보험이 안 되는 이유가 단지 보험회사와 의사들의 반대 때문이라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미국은 커뮤니티 사회다. 마을사람들이 뽑은 보안관과 카우보이들이 지켰던 사회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간섭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미국인 상당수는 억지로 의료보험을 가입하도록 강요하는 법이 생긴다면 그것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건강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음, 줄담배, 마약복용으로 인해서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이들의 의료비를 왜 다른 사람이 부담하느냐는 것이다.

1년에 15%가 보험 미가입자라는 통계도 과장된 감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험이 없는 사람이다. 단지 비싼 보험료 때문이 아니라 건강하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 국민은 고갈될 것이 분명한 국민연금에 강제로 가입되는데, 이것이 절대선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보험이 없더라도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하면, 병원은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설혹 진료비를 못 냈더라도 환자의 재산을 차압해서 돈을 받아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일단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그 수준에 대해 감탄한다. 진료비가 높은 반면, 의사가 환자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더 신경 써서 진료를 한다. 진료비의 고저는 항상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과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수가가 높은 만큼 최첨단의 다양한 실험적 치료들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첨단 의료기술은 모두 미국에서 나온다. 만약 미국에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수가를 낮추어서 의료산업이 쇠퇴한다면 그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단체에서는 의료제도를 평가할 때 한쪽 척도로만 본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에게 비용의 문제는 이차적일 수도 있다. 막대한 돈을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쓰는 것이 현실 아닌가?

건강은 자신이 먼저 챙겨야 한다. 금연, 운동, 절주 등을 통해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흡연, 마약, 폭주 등으로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는 사람보다 보험료를 적게 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소득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현재 방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30~40대의 성실한 직장인은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아마도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험사들은 건강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더 혜택을 주는 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대체형 민간보험 도입이 모든 이들에게 이익을 주지는 못하지만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료제도나 민간의료보험 등과 관련한 논쟁을 접하며 정치적 관점을 떠나 내 처지에서 무엇이 이득이 되는지 곰곰이 따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필자는 이들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잘 도입하면 우리 의료시스템의 모순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2. 당연지정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의 견해

 

 

(1) "당연지정제 폐지는 '부자 병원' 허용 밑거름"

 

"당연지정제 폐지 시기상조...의료공공성 강화돼야" / 유혜원 건강연대 정책국장 인터뷰

정부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광우병에 걸린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쇠고기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병원에 안가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당연지정제가 무엇인지 알기는커녕,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려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당연지정제 폐지는 총선에서도 이슈화되지 못했고 주요 언론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무능하고 언론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4월 25일 금요일, 마포FM의 시사방송 '100.7 시사집중 오늘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유혜원 건강연대 정책국장과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MC 이웅장(이하 이웅장):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무엇인가요?

 

유혜원 건강연대 정책국장: "현재 국민들이 병원이나 약국 등을 이용하실 때 (의료보험 이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의료기관, 병원이나 약국 등이 설립이 되면 전부 다 건강보험에 적용을 받아야 하고 당연히 건강보험증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전국에서 어떤 병원을 이용하더라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요양기관 계약제'라고 해서 건강보험을 관장하는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계약을 맺은 병원에서만 건강보험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분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증을 가지고 만약에 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이 안 된 병원을 찾아가면 건강보험증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 당연지정제 폐지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제도가 폐지되면 경쟁을 통해 의학수준이 발달하고 의료서비스가 오히려 발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은 당연지정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어떤 결과가 예상이 되나요?

 

"당연지정제 폐지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의료서비스 선진화 이런 얘기를 하는데, 선진화의 내용은 고급 의료 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을 일부 계층에게 주자, 이런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얘기는 조금 더 잘 사는 사람들이나 이런 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들의 주장은 일부 몇 개 병원이라도 건강보험과 관계를 맺지 않는 병원을 허용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특수병원, 고급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계층을 위한 제도입니다. 당연히 그런 병원은 시설이 고급화될 수밖에 없고 비용 자체도 상당히 높게 책정될 것입니다."

 

-서비스 부분에서 더 좋아지는 것은 맞는 것인가요?

 

"그런데 그 '서비스'라는 부분이,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병원에 있어서 외관이라든가 시설에 있어서의 고급화를 서비스의 격차라고 보면 안 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의료기술이나 의사들의 의료수준이 상당히 높은 상태입니다. 지금 생각하기에 외부적으로 좋다는 병원들은 시설이 상당히 그럴듯하고 서비스 자체가 고급화되어서 1인실 병원이라든가 식당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든가, 이런 것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죠."

 

-의료실을 고급화하면 입원비를 더 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그렇죠. 그래서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공단하고 계약하지 않는 일부 병원이 생기게 되면 그런 병원들은 고급 서비스를 지향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금처럼 내는 건강보험료를 받고 운영할 수는 없겠죠. 그러다보면 별도의 아주 고급의 민간 의료보험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민간의료보험도 상당히 비싸게 책정될 것입니다. 외국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연지정제 폐지는 아주 고급의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고급병원들이 허용되는 토대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국민들과 이용하지 못하는 국민들, 이렇게 양극화 되는 현상들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건강연대나 기타 시민단체들은 당연지정제를 폐지했을 경우 이익이라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건강보험공단이라는 것은 결국 국민을 대리해서 병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요양기관 계약제를 하게 되면, 국민들이 힘이 아주 세고 계약의 주체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힘이 있을 경우에는 의료기관과 계약을 하는 사이에 아주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공공병원이 10%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전부다 민간 병원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공적으로 병원들이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갈 수 있는, 견인할 수 있는 제도 자체나 인프라 자체가 상당히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 하나만 가지고 일정 정도의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계약제로 돌린다고 했을 경우에 국민들에게 유리하게 (의료제도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상당히 시기상조라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이런 것들(당연지정제 폐지)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만 한다면, 그럴 수 있는 토대는 사전에 일정 정도 의료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들을 끌어갈 수 있는 공공병원의 인프라가 좀 더 확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통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장률'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반이 조금 넘어가는 60% 수준입니다. 이 보장성도 획기적으로 확대가 된 이후에나 이 부분(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도입을 고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시민단체와 보건전문가들의 입장입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식코>)도 있는데요.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건강보험을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공공의료기관이라고 하는 것들이 영국 같은 경우에는 거의 60에서 100% 정도의 수준이고, 하물며 아까 말씀하신 <식코>의 배경이 되는 미국 같은 경우에도 30% 이상은 됩니다. 저희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10% 수준인 것이고, 보장성이라고 하는 것도 다른 나라는 '필수의료'(일반의료에서 고급의료,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것)-아프기 때문에 당연히 진료받아야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거의 건강보험에서 커버해주고 있기 때문에 거의 80% 이상의 보장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의료비 지출이라는 면에서만 놓고 보면 OECD 국가들 중에 상당히 많은 의료비를 투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의료수준이 상당히 낮은 상태입니다. 개인이 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국민이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30%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건강연대 측에서는 제도 폐지에 대해 찬성을 하시겠다는 건가요? 시기상조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검토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구요, 제도라고 하는 것은 그 제도를 시행하는 사회 상황이라든가 이런 것에 따라 상당히 긍정적으로 내지는 독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일반 서민 입장으로서 당연지정제 폐지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의료양극화나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가기가 쉽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논의할 가치가 없는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의료=산업'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자율경쟁을 통한 의료 산업 선진화',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의료와 관련해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부분은 딱 두 가지입니다. 자율경쟁을 통한 의료 선진화를 추진하기 위한 실질적인 과제로 얘기한 것은 병원의 영리법인화,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입니다.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당연지정제 폐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국민들 생각에 '지금 병원들이 전부 다 영리화 되어있는 거 아니냐' 하고 얘기하실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비영리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창출한 이윤 자체를 타 산업으로 전용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 의료산업에 재투자해서 의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것을 비영리 법인화하면 '주식화 병원' 같은 경우도 가능해집니다.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는 그런 병원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의료기관들이 영리행태를 많이 보이고 있는데 더 강화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민간보험 같은 경우도 국민의 거의 세대별로나 반 이상이 한 개씩 들고 있고 그 액수도 어마어마합니다. 건강보험의 재정에 맞먹을 만큼의 비용을 민감보험에 투여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현재 민간보험 시장이 (건강보험에 막혀)상당히 제한적으로 운영되다 보니까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해서 이런 민간의료보험의 좁은 시장들을 개척하려는 흐름들이 보험사를 통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병원의 영리법인화, 민간보험 활성화, 당연지정제 폐지는 '의료 민영화' 정책의 패키지인 것이며 그 결과는 아까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의료 민영화가 국민들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정치권은 지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인거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세요.

 

"이것은 그쪽(언론, 정치권)에 물어보셔야 하겠습니다. (웃음) 의료를 일부의 '시혜' 아니면 개인적으로 이용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데서 오는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공기를 마시듯, 그리고 밥을 먹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만 생활이 가능하듯이 병을 고치는 부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필요에 따라서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기본적 의식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권리의식이 없기 때문에 정책 입안하는 사람들도 그런 식의 제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부족한 것이고 바로 이 '의무감 부족'에서 생긴 일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론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국민들이 권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고취하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2008.04.29 10:14 ⓒ 2008 OhmyNews

(2) “민영보험 도입 땐 국민 의료비 지출 늘 것”

 

윤태호(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또는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으로는 소비자의 공급자 선택의 자유 보장, 소비자의 다양한 보험 상품 선택권 보장, 경쟁 유발을 통한 공공의료의 효율성 증대, 의료의 질 향상에 대한 기대,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안정화에 대한 기대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로 인한 긍정적인 점이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제대로 작동할지는 매우 의문시된다.

첫째, 소비자의 공급자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 OECD 보고서에서는 영국 등 공급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국가에서 선택권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공급자 선택이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국가들에서는 별 영향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의사를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너무 많이 의사를 선택해서 문제이다. 더군다나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선택진료제를 통해 저명한 의료인을 제한 없이 만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보험상품의 선택권 보장과 관련하여 너무 많은 상품은 오히려 가입자에게 혼란만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의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침해를 받지 않으려면, 상품의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미약하다.

셋째, 공공의료서비스의 효율성 증대와 관련하여 호주, 영국 등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공공병원의 입원 대기시간을 줄이는 등 공공의료서비스의 서비스 제공 속도를 향상시킨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대부분 공공의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공의료가 10% 남짓에 불과하다.

넷째, 의료의 질 향상과 관련하여 미국을 제외한 OECD 선진국들의 경우, 민영의료보험회사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동기 부여가 낮고, 투자 가능성도 낮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의료의 질 향상 노력은 대부분 국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민영의료보험사에서 관리의료라는 제도적 틀에서 평가와 감독을 통해 의료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관리의료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서 불만이다. 더군다나 전국민건강보험 체계인 우리나라에서 민영의료보험회사들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란 어렵다.

다섯째,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안정화보다는 적정한 수준의 국민의료비 지출에 있다.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또는 도입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안정화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또는 도입은 정부의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고소득층들의 탈퇴 동기가 부여되어 국민건강보험의 기능을 위축시킨다. 동시에 의료공급과 의료수요, 그리고 진료비를 모두 증가시킴으로써 국민의료비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된 미국, 스위스, 독일 등이 전 세계에서 국민의료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국가군에 속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오히려 의료보장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는 의료양극화, 국민의료비 지출의 폭등 등 부작용만 더 키울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 중인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또는 도입에는 정부의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책임 회피, 의료 공급자의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의 탈퇴, 그리고 민영의료보험회사의 이윤 창출 등의 복합적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의료의 상품화를 부추기고, 의료를 양극화시키는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또는 도입이 아니라, 부담 없는 비용으로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바이다.

 

 

 

(3) ‘돈 안되는 환자 사절’…갈 곳 없는 건강보험

‘건강권’ 위협하는 의료산업화(상) 비급여 진료 치중하는 병원들

출전/한겨레 신문

 

 

 

 

 

 

 

 

 

 

≫ 비급여항목 전문 클리닉

서울시 성형외과 93% 건강보험 청구내역 ‘0’, ‘전문화 바람’ 일반 진료는 아예 거부하기도

당연지정제 완화 땐 보험환자 기피 심화 지적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아무개(34·주부)씨는 최근 딸을 치료할 성형외과를 찾아 헤매다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는데, 집 근처 성형외과들에서 모조리 치료를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강남역 근처에 널린 게 성형외과인데 다들 ‘예약제’라거나 ‘수술 중’이라며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며 “미용 성형 전문이란 건 알지만, 아이가 예약해 놓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정말 난감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건강보험 환자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의료산업화 가속 페달을 밟자, ‘돈 안 되는’ 건강보험 진료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미용 시술 같은 ‘돈 되는’ 비급여 의료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의료 분쟁 등 부작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간 진료비 청구실적 자료를 보면, 서울시내 의원급 성형외과 315곳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진료비 청구 내역이 전혀 없는 곳이 93%인 293곳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등 비급여 시술이 즐비한 치과는, 7.5%인 331곳에서 건강보험 청구가 아예 없었다. 피부과도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연간 5천만원도 안 되는 곳이 30%에 육박하는 등, 비급여 진료에 주력하는 곳이 급증하는 추세다. 건강보험 환자 중심인 내과의 경우 건강보험 진료 총액이 5천만원 이하인 곳은 5.1%에 지나지 않는다.

《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 청구실적 》

 

 

 

 

 

 

 

 

 

 

 

 

 

 

 

 

 

 

비급여 의료에 치중하는 의료기관이 늘면서 건강보험 진료가 마뜩잖은 ‘계륵’으로 홀대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미용 시술이 아닌 외상 치료를 위해 성형외과를 찾거나 피부염 치료를 위해 피부과를 찾았다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김지현(26·판매원)씨는 최근 아말감 치료를 거절하는 의사와 다퉜다. 김씨는 “의사가 ‘아말감은 안 한다’고 했다”며 “아말감의 단점은 알지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몇 천원이면 되는데 22만원짜리 금을 하라고 밀어붙이니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등 상업의료가 득세한 지역에 드리워진 ‘의료산업화의 그늘’인 셈이다.

성형·피부·치과 등에서는 진료비의 10∼15%를 인센티브로 챙기는 상담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의료 소비자들의 피해도 늘고 있다. 고객 유치에만 급급해 시술 효과를 과장하거나 부작용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탓이다. 사금융 업체를 통해 ‘성형 대출’까지 알선해가며 무리한 시술을 부추기는 일도 있다. 강남 성형외과에서 팔자주름 시술 뒤 통증으로 고생만 했다는 김아무개(61·주부)씨는 “무통증에 30분이면 된다는 상담실장 말에 홀려서 590만원짜리 시술을 받았다”며 “카드 결제를 하고 나서야 의사를 만났고 부작용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강주성 대표는 “미용 시술 등 ‘비급여 의료’를 앞세운 의료산업화는 폐해가 적지 않고 지금도 거의 통제를 받고 있지 않다”며 “의료산업화를 빌미로 당연지정제 폐지 등 건강보험의 기본적인 뼈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은 ‘보험 예외지대’…의료 양극화 우려

외국계병원에 한해…“국내환자 진료 땐 공적 의료체계 흔들려”

‘상업의료 특구’로 이름난 서울 강남 지역은 ‘예약제’ 같은 구실을 대면서 ‘돈이 안 되는’ 환자를 걸러내지만 법적으로 허락된 ‘건강보험 예외지대’도 있다. 인천 송도나 제주도 등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외국 의료기관들이다.

이들은 국내 의료기관들과 달리 건강보험이 정하는 의료수가에 묶일 필요없이 각종 의료 시술의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하는 게 가능하다. 또 영리법인이라서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병원사업에 재투자 하지 않고 본국으로 송금하는 등 이윤 추구도 자유롭다.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이들이 믿고 드나들 외국 병원 유치가 필수적이라는 명목 아래 건강보험을 뼈대로 한 국내 의료 체계와 전혀 다른 의료 시스템이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외국 의료기관들은 국내 환자도 진료할 수 있어, 국내 의료 체계에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제한적 의료 개방을 통해 국내 의료수준을 향상시키고 생명과학산업을 부양하는 등 ‘의료산업화’를 추진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의료기관들은 값비싼 의료비를 치를 국내 환자들을 흡수하면서 우수한 의료 인력을 빨아들여 ‘의료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이와 관련해 “이중 의료 시스템을 허락한 것만으로 국내 의료에 끼칠 파급 효과는 만만치 않다”며 “경제자유구역 의료기관 국내환자 진료 허용에 이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까지 건강보험 예외지대를 늘려갈 경우 최소한의 공적 의료체계가 흔들리게 된다”고 말했다.

 

(4) 이명박 시대, 국민의 건강권보다 경제성장이 중요한 국정좌표인가?

 

출전: 한겨레신문 왜냐면 / 김 창 보 (건강증진연구소 소장)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각 부처별로 보고를 받으며 정식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부처별 보고와 함께 주요한 정책 방향을 밝힌 바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새로운 부처의 장관이 임명된 이후 보다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일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라는 제목의 ‘2008년 실천계획’은 전체적인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보인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어떻게든 ‘6% 내외’라는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밀어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골자다. 그 안에 물가인상이라는 부작용은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 아래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결과중심, 성과중심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의 건강할 권리,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정도는 국민들이 좀 참아도 될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계획서 안에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적극 추진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기획재정부는 경기회복과 경상수지 흑자를 위해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등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팔아 경제성장을 하자는 것이냐’는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이와 같이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이용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정책을 보건복지가족부도 아닌 경제부처가 주도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경제부처가 밝힌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국민건강보험의 정보를 이윤추구를 위해 사업하는 민간보험회사에 넘길 수도 있다는 식의 사고는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할 경우 의료서비스를 돈벌이 수단화하는 경향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어서 의료서비스의 상업화를 부추기며, 마찬가지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회사와 결탁하게 되면 대단히 상업적인 의료체계가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처럼 공공병원이 취약하고 민간병원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의료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차별을 받게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건강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위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관되어 있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및 질병, 치료에 대한 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넘기겠다는 생각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권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오만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질병과 의료이용, 그리고 치료내용에 대한 정보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중요한 개인정보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국가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특수한 목적에서 극히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만이 정보를 다룰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국민의 정보 역시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적 사용과 의료서비스 제공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국민건강보험을 관리하는 보험자의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그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그 정보를 삭제해야 한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매년 통계연보를 발간하고 있으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식별이 가능한 의료이용 및 질병 관련 정보는 더 이상 보관할 필요도 없으며, 보관해서도 안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국민의 허락없이 5년 이상 지난 개인식별이 가능한 자료를 삭제할 것을 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이와 같은 민감한 국민의 정보를 국민의 동의도 없이 민간보험회사에게 상품개발을 위해 내어줄 수 있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보험회사는 ‘상품개발’에 사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만일 이와 같은 개인정보가 보험 마케팅에 사용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심지어 부모의 병력이 자식의 보험가입 여부에 차별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획재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추진하겠다던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는 결국 차별과 배제, 그리고 의료이용의 불평등 - 건강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아무리 경제성장에 좋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런 정책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결국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먼저 고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순리대로 문제를 풀지 않고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경제발전에 종속적으로 두고 고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방법은 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한편에서 경기회복을 이루고 싶다면, 가장 효율적인 보험시스템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건강불평등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이 사회적 임금으로 작동하여 국민소득 향상과 경기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특히 보험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점에서 전국민이 가입된 국민건강보험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점도 있다.

 

국민들은 당장 눈앞의 성과를 위해 물가인상을 감내하거나 건강불평등을 무시할만큼 바보가 아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튼튼한 사회안전망 위에서 꾸준한 발전을 기대한다. 이명박 정부의 첫발,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열매맺기 - 대안 모색하기 (문제 해결방안 찾기)

* 이처럼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민영의료보험 도입” 이슈 ISSUE는 이해 당사자간 첨예하게 대립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슈 바탕에는 국민개개인 건강주권이 이러한 제도도입에 따라 강화될 것인지, 아니면 악화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따져보는 것이 이 논쟁을 가르는 핵심이 될 것이다.

두 견해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대립된 견해 사이에 타협점은 없는지, 당연지정제를 고수하는 것이 왜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선택진료제 도입이 타당한 것인지를 검토하여 대안을 모색하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