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시]  새해, 너를 맞는다

고  은

가야 할 처음이 왔다 새해가 왔다
인내의 끝
예감의 시작으로
묵은 한라에 올라 너를 맞는다
숭고하거라

온 비겁
온 천박 토해버리고
단 한번 숭고하거라

이 한반도 어디로 가느냐
목 없는 형천(刑天)에게
다 맡겨버리겠느냐
다 파헤쳐지겠느냐
다 꿀꺽 삼켜지고 말겠느냐

아니다 그간 쓰레기 널린 거리를 왔다
홑옷으로 우는 골목을 왔다
포효하는 열길 벼랑 파도 끝자락으로
저 죽어가는 개펄 달빛 쓰라린 신음으로 왔다

아니다
갈라져 주린 오장육부로 왔다

새해
너를 맞는다
흉금의 안쪽
지리 노고단 올라 너를 맞는다

장엄하거라
온 배척과 인색 내던지고 장엄하거라


그간 무엇을 하였더냐
무엇으로
숨찬 세상 한 모퉁이 여기를
마른 풀밭으로 남겼더냐
그런 것을 묻지 않거늘

이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리 내달려온 꿈 뚜렷이 있을진대
무엇으로 살겠느냐
컹컹 짖어 못 박아 묻는
새해 처음이 왔다

보라 막 솟아올라
뚝뚝 물 떧는 햇덩이 앞
내가 맨몸으로 멈춰서서
부르르 부르르 떨며
너를 맞는다

말 다음
뜻 다음으로
설악 소청에서 중청에서 대청에서
너를 맞는다

제발 덕분
지지리 못난 패거리 우둔 물리쳐 수려하거라
지금 설악 동쪽 푸른 바다
지금 저 서편 바다
고군산 밑 칠산바다 다 썩는다
오대 적멸보궁
치악 황장목
계룡 골짝
감악 안개 다 한 맺혀 천둥 밴다
이와 함께 한반도 각처의 넋들 망한다
밤 붉은 네온
붉은 십자
대낮 미친 형광 광고 아래
어느 넋도 얼도 기괴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할 수 없다
멍멍 멍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새해가 왔다
너를 맞는다
삼가 만년 장래에 피어날 백발 같은 존엄으로
백두 장군봉 올라 너를 맞는다
극히 신령하거라

지금 신령치 못하다면
언제까지나
너 노비이리라
너 거지이리라
너 도적이리라
너 고자 노릇 속여대리라
눈알 빠진 해골 웃음이더냐
그 허망한 히히 웃음이더냐
너의 말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으리라

새해가 왔다
이 한반도의 남과 북
오래 지친 꿈 속여서 너를 맞는다
확연한 바
다 내놓아야
어깨 겯고 찾아오리라
다 버려야
무릎 펴 채워지리니
새해가 왔다 새해가 와 너를 맞는다

온 누리 일곱 빛깔 활짝 펴
한 해 벽두 입 다물고
너를 맞는다
‘건강한 나라’를 설계하자




경향신문 신년사설 2008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지만 태안의 바다는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하지만 절망의 바다에서 인간띠를 만들어 생명의 불씨를 살리려는 행렬은 그래도 역시 사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태안 사태는 앞만 보고 달려온 인간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사람들은 세상 만물이 끊임없이 진화·진보한다고 믿어왔지만, 미래만 쳐다보다 등잔 밑 현실을 보지 못한 인간의 방심과 부주의는 종종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새해는 건국 60년을 맞는 해다. 대한민국이 그간 걸어온 길은 실로 놀라운 진화의 과정이었다. ‘압축 산업화’ ‘압축 민주화’라는 말 그대로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오만과 독선 때문에 숱한 시련과 위기를 겪어야 했고, 그에 따른 국민들의 희생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민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이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빈부격차, 부정부패, 집단이기, 불신과 증오 등이 청정 바다에 퍼진 검은 기름처럼 대한민국을 위협해 왔다.
2월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권은 ‘선진화’를 화두로 내세웠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이끈 시대정신이 건국, 산업화, 민주화였다면 앞으로는 선진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다. 그러나 경계할 것은 역대 정권의 경험이 말해주듯 유토피아적 미래만 얘기하면서 현실의 문제와 고통,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면 예기치 않은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새 정권은 또 ‘경제성장’을 기조로 한 ‘실용주의’를 주창했다. 실용이란 무엇인가. 중국 실용주의의 원류인 후스(胡適)는 말했다. “문제를 더 많이 연구하고 주의를 더 적게 이야기하자.” 만약 문제를 제대로 보고 개선·개혁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 또한 진정한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
새 정권이 내건 최대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선 근본적으로 나라 경제가 건강한 체질을 갖춰야 한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 경제사회적 민주화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97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를 계기로 개발독재시대의 유산과 신자유주의 체제가 뒤섞이면서 무한경쟁, 황금만능주의,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경제사회의 건강성은 더욱 악화되었다.

-선진화는 잘못된 관행의 청산에서-
선진화 구호가 울려퍼지는 한국 사회는 지금 매우 도전적 상황에 놓여 있다. 결코 낮지 않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늘지 않고 국부(國富)의 증가와 국민생활의 향상이 따로 논다. 사회경제 전 부문에 심화되는 양극화는 단선적 처방으로는 풀기 어려울 만큼 구조화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도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새 정권이 내건 성장주의와 시장자율화만으로는 ‘선진화’ 단계로 도약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복합적 갈등구조의 현실을 바로보고 극복해나갈 때 비로소 ‘선진화’와 ‘실용’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가 만사’라는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경제구조의 건강성, 관행과 의식의 건강성이 확보돼야 경제의 지속적 성장, 나라의 선진화도 가능한 것이다. 특히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쟁 풍토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지배구조의 선진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등 기업경영의 구시대적 관행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한층 가속화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 전 분야에 법치와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문화적 자산을 갖춰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특히 신뢰성과 진실성은 핵심 자산이다. 노무현 정권이 쏟아놓은 수많은 정책적 아젠다들이 왜 추진동력을 잃었는지 실패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불신 사회에서는 ‘목표 지향’이 결여되고 부와 신분을 숭배하는 ‘지위 지향’의 가치가 판을 친다. 때문에 소신 있는 리더십은 물론 모험과 도전에 바탕한 기업가 정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건강한 나라는 법과 제도, 규범과 관행을 통해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법과 원칙, 공정한 경쟁, 공정한 보상, 이해와 관용 등이 윤활유처럼 연결되어 사회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사회다. 국민들이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세금을 자기 돈처럼 소중히 하는 공무원과 정부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국민 반 이상이 세금을 덜 내거나 안 내고 있다. 국가기관에서는 돈 받고 세무조사를 면해주고 예산을 사금고처럼 퍼다 쓰는가 하면 매관매직 같은 망국적 행태가 ‘관행’이란 미명하에 자행되기도 했다. 교육·문화계도 가짜, 표절, 입시비리 등 악취로 가득하다. 급기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이 불법적으로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해 권력과 유착관계를 맺고 법치를 농단해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새 정권이 경제사회의 건강성을 갉아먹는 이러한 구조적 병폐와 부조리한 관행들을 제거해나가지 못한다면 현 정권처럼 ‘신뢰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삼성과 대통령 당선자라는 우리나라 정치·경제의 정점에 있는 두 권력이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게 된 것은 상징적 함의가 있다. 나라의 불명예이고 국민에겐 고통이지만,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과 잘못된 관행 타파의 전기로 삼을 기회이기도 하다.
남북 문제 역시 스스로 내세운 ‘선진화’ ‘실용’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민족적 과제인 동시에 국제적 현안인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결코 당파적 주의와 이념, 이해에 따라 좌지우지돼서도, 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정책, 대운하 등은 국론분열이 우려될 만큼 큰 파장을 초래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들이다. 임기 내 가시적 성과와 업적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하다간 또다시 혼란을 자초할 수도 있다.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심도 있는 연구와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개혁도 중요하다. 공직사회의 신뢰회복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다. 과거의 정권은 권력 기반의 취약성 때문에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지만 새 정권은 높은 지지율을 내세우는 만큼 이번 임기가 적기다.

-낡은 정치의 패러다임 바뀌어야-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보수와 진보도 과거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 이유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선에 참패한 신 야권세력은 모든 것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구체적 대안과 처방 없이 유토피아적 구호와 흑백논리에 의존해서는 더이상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신 정권도 구시대의 보수가 이 나라에 남긴 구조적 병폐, 개혁·진보 세력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잃어버린 세월’ 운운하는 것은 실용과는 정반대의 정치적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지난 10년의 진통과 시련은 국제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의 적폐를 치유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일찍이 칼 포퍼가 말했듯이 추상적 선(善)이나 행복의 추구보다 구체적 악(惡)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사회 공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막연한 희망에 기대 대책 없이 살아가기보다 시대 흐름과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면서 낡은 껍데기를 깨고 벽돌 한 장 쌓듯이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심어가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선진화’이자 ‘진보’라는 생각이다.  



국민 마음에 긍정(肯定)의 불을 다시 지피라 ( 조선일보 )

2008년 새해 새 아침 深呼吸심호흡을 한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긍정과 進取진취의 氣像기상을 몸 안 가득 받아들이고, 숨을 내쉬면서 否定부정과 미움의 가스를 뱉어낸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새 대통령과 함께 지난 10년의 국가 진로를 크게 틀어 먼 바다로 나가는 첫해다. 2008년은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는 해다. 대한민국이 ‘가난과 전쟁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훌훌 벗고 한강의 기적이 뿜어내는 光彩광채를 전 세계에 피력했던 ‘88 서울올림픽’ 20년이 되는 해도 올해다.

국가진로 크게 바꾼 첫 해  
우리는 지난 5년 부정과 미움의 가스를 태워 움직이는 권력이 나라와 국민을 어디다 내려놓고 말았는지를 절절이 체험했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는 국민이 부정과 미움에서 긍정과 진취의 기상으로 나라의 動力동력을 바꾸자고 결심한 결과다.
대한민국 건국 60년史사는 지난 5년 국가 경제의 답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저하, 제자리걸음하는 삶의 질 개선, 정치·사회·문화적 혼란과 분열에 부딪혀 나라 장래를 불안해해왔던 우리에게 빛을 던져주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에 긍정의 불과 진취의 기상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머리 위를 맴도는 불안의 벽은 저절로 허물어지고 말리라는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남쪽에 대한민국이, 9월 9일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지 6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무역대국·산업대국으로 올라섰다. 국민소득 60달러의 最貧國최빈국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현대산업국가로 탈바꿈했다. 발전 경제학의 세계 표준교과서는 대한민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발전의 표준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無資源무자원국가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힘은 대한민국 역대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나누어 가졌던 ‘긍정의 힘’과 ‘진취의 기상’이다. 부정과 미움을 국가 동력으로 삼아온 北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6·25 침략으로 한반도를 廢墟폐허의 땅으로 만들고 이제 국민을 배곯게 하는 세계 유일의 핵 보유 공산독재 世襲세습국가로 殘命잔명을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 언 마음부터 녹여야  
새 대통령의 첫 임무는 국민 마음에 긍정과 진취의 불꽃을 지피는 일이다. 국민 마음에 불을 댕기려면 언 마음을 먼저 녹여야 한다. 1년 넘은 선거운동 기간에 유례가 드물 정도로 집중 공격에 시달렸던 당선자 마음에 응어리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당선자가 미움과의 싸움에서 무릎을 꿇게 되면, 긍정과 진취의 불길은 타오를 수 없다. 국민은 사상 최대의 票差표차라는 선물로 당선자 마음속 응어리를 이미 풀어주었다. 그 국민이 포용의 손길을 내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새 대통령을 기다리는 문제는 하나같이 벅찬 문제뿐이다. 무너진 법과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기 어렵다. 잠재성장률마저 저하돼버린 한국경제에 새로운 성장 엔진을 달아 주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老齡化노령화의 물살에 밀려 ‘근로자의 나라’에서 ‘연금생활자의 나라’로 退化퇴화와 축소의 뒷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라 밖 경제환경이나 나라 안 경제환경 모두가 힘겹기는 한가지다. 핵을 손에 쥔 김정일위원장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도 새 대통령의 의지와 전략을 시험하려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연말부터 정치·경제의 兩面양면협력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 역시 한국의 국가전략을 묻는 도전이다. 거기다 1월부터 당선자 대상의 특검과 삼성그룹 특검이 시작된다. 곧 이어질 4월 총선은 새 대통령에게 새 시대를 이끌어갈 바퀴를 달아주느냐 아니면 그 앞길에 쐐기를 박고 마느냐의 갈림길이다.

나라의 존망, 교육에 달려  
중국과 일본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공간은 대한민국 역대 지도자에게 언제나 삼엄한 상황인식을 강요해왔다. 나라의 活路활로를 앞장서 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인구는 우리의 26배, 일본은 2.5배다. 국토면적은 중국이 100배, 일본이 4배다. GDP는 중국이 3배, 일본이 6배다.
우리 앞에는 외길뿐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중국의 4배 일본의 3배로 키우는 수밖에 없다. 나라와 국민의 存亡존망이 교육에 달렸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일본에서 세계 100위권 대학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두 나라 지도자들은 교육혁명에 국가의 운명을 걸 태세다. 우리에겐 교육을 계급적 평등이념의 노리개로 삼을 여유가 없다. 교육을 바꾸는 일이 나라의 역사와 운명을 바꾸는 일이라는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역사적 평가는 과연 이 정부가 교육 선진화의 血路혈로를 뚫어 국가 선진화의 基地기지를 마련했느냐에 걸려 있다. 건국 60주년과 서울 올림픽 20년을 맞는 2008년, 새 대통령은 국민 마음에 긍정의 불과 진취의 기상을 다시 지피는 것으로 이 국가적 과업에 도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자 /  한겨레 사설(2008년 1월1일)  

새해 한반도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해 있다. 지난 대선에서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4월에는 총선도 예정돼 있다. 6자 회담 합의 이행이 지연되고 있으나,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현실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을 맞는 새해 아침,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쌓아온 역사적 경험에 터잡아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설정할 때 비로소 올바른 변화의 방향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0년, 우리는 온 국민의 분투노력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성과가 아직 단단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소득은 2만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국민 대다수는 소득·자산, 직업 안정성, 가족유대 감소로 말미암은 불안감 등 구조화된 불안에 시달리며 물질주의적 가치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를 화두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많은 도덕적 흠결에도 압도적으로 당선된 배경이기도 하다.

견제와 균형…민주주의 내실 채워가야
그러나 지나친 물질주의 경도는 우리가 힘겹게 이룩해 온 민주주의의 토대는 물론, 공동선 등 우리 사회가 키워 온 소중한 가치 기준조차 위협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두 차례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언뜻 보면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듯하지만, 우리 민주주의의 실제 수준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민주정치의 근간이 돼야 할 정당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또 각급 선거에서 집권당의 패배가 축적돼 중앙과 지방의 행정권력은 물론 의회권력까지 일당 지배 아래 들어가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될 견제와 균형 기능이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
사회경제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지난 한 해 우리는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신뢰 위기를 겪었다. 우리가 자랑으로 여겼던 세계적 기업 삼성의 치부가 폭로되고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이나 국세청장의 수뢰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사회 각 부분이 거짓의 성채 위에 건설돼 있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좀더 품격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할 공동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모습’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분의 2가 ‘복지가 잘 갖춰져 있고 힘없는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라고 답한 <한겨레> 새해 여론조사 결과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이를 풀어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회’다. 그 일차적 요건이 질좋은 일자리와 사회 안전망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경제문제 해결은 품격의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못 된다. 태안반도 기름띠 제거에서 나타난 우리 국민의 공동체 의식과 역동성을 더 큰 힘으로 묶어내자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과 대기업 등 사회 주도세력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이명박 특검과 삼성 특검이 유야무야돼선 안 될 이유다.
사회주도층 신뢰회복이 역량 결집 조건
대한민국 60년은 분단 60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북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한반도 남쪽만의 질적 변화를 이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북한과 평화·상생의 관계를 수립하는 일은 안보위기 해소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 동력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새 정권이 유념할 일은 그동안 북-미 관계에서, 그 진전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동력을 제공해준 남한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6자 회담 당사국들의 상응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새 정권마저 행동을 머뭇거릴 경우 평화체제 구축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려면 의견이 다른 상대의 말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 땅의 언론은 그동안 상대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합리적 토론을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대신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기고 이념 대결을 조장하며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한겨레>도 신뢰받는 언론으로 소임을 다하고자 했지만 그 비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한번, 냉철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품격있는 언론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미래를 향해 다시 뛰자 / 중앙일보

2008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맞는 새해 아침이건만 무자년(戊子年) 첫날의 감회는 각별하다. 우리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선진화 시대로 향하는 역사의 변곡점에 지금 서있기 때문이다. 건국 60주년을 맞아 역사의 한 굽이가 끝나고 막 새로운 시대로 뻗어 가려는 엄숙한 순간을 맞고 있다. 보수 세력이 10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는 따위의 정파적·이념적 소회가 아니다. 국민의 기대와 염원이 쌓이고 쌓여 대한민국의 재도약이란 목표를 향해 정열을 뿜어낼 시간이 드디어 왔다는 데서 우러나오는 흥분과 설렘이다.
국민은 다시 뛸 준비를 다 갖췄다. 그 의지를 지난해 연말 대선에서 보여줬다.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한나라당이나 이 후보가 예뻐서가 아니었다.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꿈과 희망을 찾고 싶어서, 40∼50대 실직 가장과 청년 실업자의 풀 죽은 모습을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어서, 분열과 대립으로 선진국 문턱에서 역주행한 세월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떨치고 일어선 것이다. 이제 당선자가 국민에게 보답할 차례다.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다. 국민이 기꺼이 동참할 태세가 돼 있고, 방향만 옳다면 사소한 허물쯤은 무시하면서라도 밀어줄 각오도 섰다. 이런 시기에 나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경제를 살리는 일이 최우선이다. 올해를 경제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과 새 정부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면 재도약은 못 이룰 꿈이 아니다. 지난 10년간의 성장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다시금 활기 넘치는 경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우선 동력을 상실한 성장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몫은 경제에 자생적 추진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이 의욕적으로 다시 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규제를 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은 지금 온갖 규제에 발목 잡혀 투자 의욕을 상실한 상태다. 기업 투자의 물꼬를 트기만 해도 경제의 성장 엔진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기업의 활발한 투자에서 시작된 경제 성장의 과실은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새로운 성장 동력의 싹을 찾아 키워내야 한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문화서비스 산업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지면서 10년, 20년 후에 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미래의 주력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국민과 기업도 이제는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힘을 합쳐 경제 재도약의 대장정에 동참해야 한다. 새로운 희망과 열의로 재충전하고 다 함께 저성장의 질곡에서 탈출해 선진국으로 재도약하는 위대한 역사의 서막을 열자.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문이 헝클어진 노사 관계다.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뒤틀린 노사 관계는 우리 경제의 큰 족쇄 가운데 하나였다. 노조가 무분별한 불법 파업과 명분 없는 정치 파업으로 일관하는 투쟁 위주의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국민은 물론 노조원의 지지도 얻기 어렵다. 기업도 불투명한 경영과 무성의한 협상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원만한 노사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국가경쟁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그래서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자율과 경쟁원리에 기초한 교육개혁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도 교육정책을 ‘규제와 평균주의’에서 ‘자율과 경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망가진 공교육을 살리고 ‘대입 대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이 길뿐이다. 새 정부는 과감하게 대학입시를 자율화하고, 문제가 심각한 수능 등급제도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을 보완해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강화해야 공교육의 경쟁력도 회복할 수 있다. 정부는 교육현장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믿고 맡겨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다양성을 살려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재정립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맹목적 북한 포용 정책은 남북 관계의 질적 개선에 한계가 있음이 증명됐다. 그렇다고 남북화해의 기조에 역행할 수도 없다. 국민과 새 정부의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대화 자체에 연연하는 대북 접근은 그만두되 인도주의적 지원과 전략적 지원을 구분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남남갈등도 줄어들고, 북한도 설득할 수 있다. 국민도 새 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의 틀을 만들어갈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미, 한·일 관계는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 한·중 관계 발전도 굳건한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정치권은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한·미 FTA 비준을 마무리해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군이 본연의 자리를 찾는 것도 급선무다. 안보에 적신호가 울려도, 군의 명예가 훼손돼도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모습이 더 이상 지속돼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뒤흔든 과거사 청산 바람은 이제 미래지향적 국민통합 차원에서 정리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언제까지나 과거사에 얽매여 분열과 반목을 되풀이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역사 문제는 학계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문화·예술계도 이제 철 지난 이념에 휘둘리거나 권력에 빌붙어 자리다툼이나 벌이던 행태를 그만둘 때가 됐다. 그러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권력의 시녀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이제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발목 잡는 야당, 정부의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여당으로는 선진화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야당도 일정 부분 국정에 협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에게 민주적 리더십, 합리적 정치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민은 다시 뛸 각오로 신들메를 고쳐 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도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다. 기업도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회 각 분야가 제자리를 찾아 맡은 몫을 해낸다면 재도약은 결코 꿈이 아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모아 미래를 향해 다시 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