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간판, 영어간판  

                                         출전 / 한겨레 2008년 2월1일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

  
  ‘영어’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돌이켜 보니 영어 광풍이 몰아치기 전야에 대학을 다녔다. 대통령의 입에서 ‘세계화’란 단어가 처음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배낭여행이 유행했고, 눈치 빠른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떠났다. 대학들은 우후죽순 국제대학원 건물을 지어 올렸다. 그래도 영어 스트레스는 한참 덜했다. ‘이태백’ 세대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어쨌든 그때도 취업용 영어 점수는 필요했다. 토익 도사들은 시험장을 매달 들락거리면 문제가 쉬운 ‘대박 달’을 만난다고 일러줬다. 예언대로 어느 날 대박 달이 도래했고, 얼추 취업 원서에 쓸 만한 토익 점수를 만들었다.
  직장인이 되고 보니 너도나도 ‘샐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를 들먹였다.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는데 영어 회화가 대세였다. 뉴토익에는 말하기 시험이 추가됐고, 영어면접에 익숙한 후배들이 줄을 이었다. 영어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이태백 세대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요즘 세상에 영어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툭하면 들이대는 경쟁력 잣대라는 게 영어 구사 능력이다. 어떤 구청은 어설픈 영어로 정기 간부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어떤 공무원은 승진 심사에 위조된 토익 성적표를 냈다가 파면에 사법처리까지 당했다. 이러니 자식의 조기 영어교육에 매달리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문득 이상하다. 경쟁력을 재는 잣대로 영어가 그토록 쓸 만한가?
  모두가 경쟁력을 외치는데, 잣대가 영 어설프다.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려면 평가자의 역량과 책임이 우선이다. 평가자가 그 자리, 그 직무, 그 공부에 필요한 인재상을 그려내고, 맞춤한 사람을 뽑거나 교육하면 될 일이다.
  옷을 잘 입으려면 잘 보는 눈이 필요하다. 옷의 원단·색감·디자인이 두루 좋은 옷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누가 옷을 입을 거냐, 어느 옷과 맞춰 입을 거냐, 어느 자리에 입고 갈 거냐에 따라 좋은 옷은 달라진다. 이를 알아보는 게 ‘패션 감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평가 권력들은 도무지 이런 감각이 떨어진다. 한때는 대학 간판을, 이제는 영어를 획일적 잣대로 맹종한다.

  새벽 별을 보며 영어학원 문턱을 밟고, 가족이 생이별을 해가며 영어를 배우러 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어렵게 배운 영어는 ‘쓸모’라기보다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을 줄 세우는 ‘번호표’에 가깝다. 실제로 얼마나 영어가 필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없는 일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기 위해 앞 번호에 서야 한다. 이런 우리끼리 경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간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런 영어 스트레스를 덜어주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꺼내든 카드가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이란다. 콩나물 교실에서 영어로 입 뗄 기회가 얼마나 될까. 값비싼 학원에서 7~10명씩 수업을 해도 영어는 쉬이 늘지 않는다.
  핵심은 영어 말하기가 학생을 ‘한줄 세우기’에 급급한 대학 입시의 새 잣대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국민이 영어를 ‘말’해야 할 등짐을 지게 됐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를 둔 ‘개천의 용’한테는 특히나 버거운 짐이다.

  글로벌화와 함께 영어가 필요한 분야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왜’ 모든 국민이 영어를 말해야 하나. 영어가 경쟁력을 재는 유일무이한 잣대일까. ‘대학 간판’에 더해 ‘영어 간판’도 따야 한다니 푸념만 길어진다.

                                                                                       seraj@hani.co.kr



* 새 정부의 영어교육안, 무엇이 문제인가  

                      창비주간논평. 2008-02-12   신경구 / 전남대 영문과 교수

2008년초 우리나라를 몰아치는 화두는 단연 '영어몰입교육'이다. 똑같은 현상이 1995년에도 작은 규모로 있었다. 김영삼정부가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실시하기로 했을 때다. 그때도 2년 뒤부터 실시했고, 현재의 계획도 2년 뒤부터 실시된다고 한다. 그때도 많은 전문가들이 설득력있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으나 결국은 실시되었고, 지금도 더욱 설득력있는 반대가 제시되고 있으나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영어공교육으로 영어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실적으로 4조 이상의 사교육시장을 확장시켰다. 새 정부도 공교육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나, 이미 영어 사교육시장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영어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어리석은 국민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영어교육 방침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몰입되어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소수이기는 하나 영어몰입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통찰력있는 지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윤숙자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인수위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럴 수도 없지만) 아무리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잘 한다고 해도 영어가 중요하게 간주되는 한 사교육비의 증가는 불을 보듯 환한 일"이라고 예상했으며, 박거용 교수는 "학생들이 영어로 말하기, 듣기, 쓰기 등을 하려면 영어 사용시간이 지금보다 몇배는 늘어야 하는데 학교에서 영어만 배울 수는 없지 않느냐. 새 정부의 영어교육정책은 '탁상행정'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김흥숙 시인은 "세상엔 영어보다 중요한 게 많고 학교는 영어 말고도 가르칠 게 많다. 우선 우리말을 제대로 하는 법을 가르치고,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친 후에, 영어를 가르쳐도 늦지 않다. 언어는 그릇이며 담을 게 없는 그릇은 쓸모가 없다"면서 우리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영어몰입교육

새 정부의 '획기적인' 영어교육정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이미 온 국민을 영어광풍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와 아울러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첫째, 교육현장에 대한 고려가 없다. 토목공사는 한두해에 마칠 수 있지만, 교육과 문화는 그럴 수 없다. 몰입교육을 2010년부터 실시하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 맞추어 관련 교과서를 만들고 교사를 재교육시켜야 한다. 2년에 3,000명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전국 모든 대학의 영어 관련학과를 동원해야 하는데, 교사교육은커녕 자기 대학 학생들에게 영어를 제대로 교육할 대학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약방의 감초처럼 외국인 강사를 들여오면 된다고 주장하나, 외국인 강사로 영어교육이 완벽하게 성공한 사례를 들어본 일이 없다. 한국의 교육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강사도 많고, 외국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교현장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교사에 대한 수준있는 교육과 함께 합리적이고 효율성 높은 교과운영이 필요한데, 이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문화발전에 장애가 된다. 문화는 언어이다. 2000년 전후에 불기 시작한 한류는 젊은 세대의 창의력에 바탕을 두었다. 영어바람에 편승하여 영어를 동경하고 우리말을 소홀히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말에 대한 감수성이 둔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 말과 문화가 숨이 죽고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을 개발해야 우리 문화가 꽃필 텐데, 영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잃고 자기의 특성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 영어바람의 강도에 정비례해서 우리 문화의 몰락도 앞당겨질 것이다.

셋째, 경제손실이 크다. 1997년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실시되면서 영어 사교육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져, 2000년에는 영어교육비가 8조원에 이르렀다. 작년 7월 3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영어교육 비용은 현재 약 15조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영어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면서, 공교육비 사교육비로 필요 이상의 돈이 투입되고 있다. 국가적 자원이 적절하게 배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비용과 달리 영어교육 비용의 절반가량은 음으로 양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현재 10만명이 넘게 해외연수를 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사람당 1,500만원씩만 잡아도 1조 5천억원이 해외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인수위의 영어몰입 교육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넷째, 국민을 계층화하고 국민간의 의사소통을 막는다. 홍콩 등의 지역에서는 영어가 사회적 계층 상승의 수단이 되면서 영어격차(English divide)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영어능력이 곧 사회계층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영어가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국제사회에서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것인데, 나라 안에서는 영어 사용이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거나 어렵게 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한 것은 같은 언어를 쓰는 일체감과 함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우할 통상교섭본부장이 한국어로 국회보고를 못해 무안당한 일이 있었는데, 머지않아 그 반대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이 실시되면, 그동안 세계적으로 1, 2등을 다투던 한국 학생들의 수학능력은 하위권으로 밀려날 것이다. 대학에서 원어강의가 늘어나면서 전문분야에 대한 이해수준이 크게 떨어질 것이고, 결국은 우리 산업현장에서 고급인력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소수의 고급인력은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아지고, 기업의 효율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대학교육 개혁과 좋은 교사 양성

문제점은 이렇게 심각한데도 이에 대한 처방은 쉽지 않다.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관련 당사자들 즉 학생, 학부모, 교사, 정책과 행정 담당자 등이 합의하고 이해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해가 없으면 선의가 왜곡되고 좋은 정책이 잘못된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현재 인수위는 선의에서 이런 정책을 내놓았을지도 모르지만,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기가 어렵고, 그래서 더 많은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 밀착한 다음과 같은 대안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대학교육을 바꿔야 한다. 영어교육정책의 초점은 주로 중고등학교에 한정되었다. 이는 중고등학교 교사에게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가 형식적으로나마 먹혀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작 교육개혁의 시작은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 영어교육 개혁의 시작은 영어 관련학과의 역할 강화와 개혁이 따라야 한다. 단순한 양적 팽창은 질적인 개혁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를 합리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대학교육이 바뀌지 않은 채 영어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정부의 영어 관련정책이 초중등학교에만 집중된 것이 중요한 실책 중 하나였다.

다음으로 좋은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대학교육의 개혁이 이뤄져야 교사의 양성이 가능하다. 이 일에는 적어도 6년이 소요된다. 대학 학과를 바꾸는 데 2~3년이 걸리고 좋은 교사를 교육하는 데 4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어교육 강화는 새로 확보되는 우수교사 수에 비례해야 한다. 좋은 교사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영어교사 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의사 면허제와 같은 제도로서,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적용하며 학원이나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려면 꼭 필요한 자격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면허제는 사교육시장의 강사들을 공교육으로 편입할 때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필요한 만큼 영어를 가르치는 사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영어의 사회적 중요성을 낮추는 것이다. 영어가 대학입학과 취업에서 인재평가의 잣대가 되는 한, 영어는 필요 이상으로 대접받게 된다. 즉 수단인 영어가 목표가 되는 한, 역설적으로 영어를 잘할 수는 없다. 대학입시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낮춰야 한다. 영어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영어강의가 많은 대학에는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영어가 꼭 필요한 업종과 직종에서는 보너스를 주면서라도 우수한 영어인재를 쓰도록 지원하되, 영어가 필요 없는 직종에서 영어를 진급이나 입사에서 평가의 잣대로 삼는 기업에는 세금 등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이제 영어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지배계층 자신들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온 국민을 영어제국의 신민으로 영어에 복종케 하고 있다. 평생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직종에서도 영어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국민은 영어의 노예가 돼버렸다. 영어제국의 관료들과 정치지도자들은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늘리고 고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을 밀고 나갈 것이다. 그 결과는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가 되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경제·정치·문화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의 자손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교육 개혁과 좋은 교사 양성을 통해 영어교육의 질을 높이고 영어의 사회적인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정책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며, 정부에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의식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08.2.12 ⓒ 신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