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아인슈타인

                                         출전/ 한겨레신문 2008년 2월1일 정남기 (논설위원 )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헬렌 켈러의 공통점은?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다. 일단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아인슈타인은 1879년, 헬렌 켈러는 1880년생이다. 이들은 똑같이 20세기 초반 격동의 세기를 살았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이다.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였다? 많이 소개되진 않았지만 꽤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가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언어의 의미를 깨닫고 감격해하는 순간은 그에게 새로운 생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1909년 사회당에 입당해 평생을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공개서한을 통해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반전파업을 주도하고 뉴욕 한복판에서 러시아 혁명을 찬양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자본주의를 혐오했다. 그는 1949년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쓴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무질서야말로 악의 근원”이라고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주장했다. 빈부격차를 키우고, 호황과 불황의 경기변동을 만들어내며, 심각한 실업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미국 정부와 의회가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메카시 선풍을 일으켰을 때도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당기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감시 대상 1순위였다.

두 사람을 사회주의자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사회적 여건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의 실상은 참혹했다. 독점기업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빈곤해졌다.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20% 가량을 차지했다. 기업들은 임금을 줄이고자 어린 10대 노동자들까지 동원했다. 그뿐 아니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터진 대공황은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아갔다. 유럽도 비슷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나고 6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자본주의 체제가 다시 한번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거대 금융자본이 국가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거기서 발생한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위태롭다.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사회적 대립과 갈등도 커지고 있다. 마치 20세기 초반의 위기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27일 스위스에서 폐막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수십년 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론이 다시 등장했다. 가장 충격적인 발언은 조지 소로스한테서 나왔다. “세계는 60년 만의 최대 위기를 겪게 될 것”이란 경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역설했다.

우주의 신비를 풀어낸 아인슈타인도 사회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는 못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자본주의는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적극 수용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줄이면서 중산층을 육성하고, 사회복지 체제를 갖추면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의 물결이 다시 한번 과거의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 해소 없이 자본주의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정남기/논설위원 jnam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