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능멸당해야 하나 / 곽병찬칼럼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견공 쇼’에서 가장 많은 상을 차지하는 애완견이 푸들이다. 인기가 높다 보니,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영국 사이에선 원산지 싸움도 사뭇 치열했다. 독일에선 푸델 지방에서 새 사냥에 이용되던 것이 푸들의 원조였다고 주장하고, 이탈리아에선 푸들이라는 지명이 유일하게 존재한다며 원조 논쟁에 가담했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프랑스에서 널리 길러진 개라며, 프랑스 손을 들었다.

  푸들은 이미 17, 18세기부터 유럽 최고의 애완견이었다. ‘더 작은 푸들’ 요구에 따라 스탠더드 푸들, 미니어처 타입(키 높이 25.5~38센티미터), 토이 타입이 나왔고, 20센티미터 이하의 티컵 푸들까지 생산됐다. 온갖 장식도 등장해, 잉글리시 셔들 클립, 컨티넨털 클립, 더티식 혹은 콜리드 푸들 등이 있다. 푸들의 성가는 이렇게 제멋대로 개조될 수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6월25일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대체할 가장 강력한 ‘부시의 푸들’ 경쟁자로 꼽았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도 있지만, 경쟁 대열에 끼지도 못했다. 불쾌했지만, 부시와 만날 때마다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대꾸할 수가 없었다. 미국 축산업자의 요구를 몽땅 들어준 뒤 부시의 골프 카터를 몰며 의기양양해했고, 쇠고기 고시를 밀어붙인 뒤엔 대견스레 등을 두드려 주는 부시 앞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더 착잡한 건 일말의 자존감을 가질 법한 이 나라의 힘센자들이 일제히 푸들 타입으로 스스로 종자 개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수반의 뒤를 이어 입법부 수장과 국무총리가 경쟁이나 하듯 푸들 짓을 했다. 한승수 총리는 ‘손주와 먹어 보니 참으로 맛있더라’고 미국산 쇠고기 선전 방송을 시작했고,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시식회까지 열어 ‘한우보다 더 맛있다’고 침을 튀겼다. 내장이 수입되면 곱창파티를 열겠다는 심재철 의원은 그날 최고의 푸들이었다. 스테이크를 써는 이들의 칼날에 갈가리 찢겨나가는 농심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튿날 상공회의소 회장단도 시식을 하며 황홀한 반응을 쏟아냈다. 그 자리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의 간부들도 참석해 아부 경쟁을 벌였다. 영리법인 허용 문제에 코가 꿰인 탓이라 생각은 하지만, 지난 4월 쇠고기 협상 타결을 맹렬히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했던 걸 떠올리면, ‘인격’ 대신 ‘개격’을 택한 것이나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공무원들이 미국산 쇠고기 홍보에 나선 것은, 영혼을 잃어버린 집단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서울 교육청, 교총 등 학생의 건강을 걱정하고 책임져야 할 교육계마저 꼬리를 치고 다니는 건 참기 어렵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조작한 사진까지 게재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권력기구는 이런 푸들을 보호하느라, 사람 잡는 도사견 구실을 하고 있으니, 한국은 영락없는 푸들의 나라다.

  제아무리 재롱을 잘 피워도 애완견한텐 미국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쇠 뼈다귀나 하나 더 얻어먹을 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발언은 한국형 푸들의 장래를 잘 보여준다. 그는 영국 방문에 앞서, 그곳에 가면 ‘영국이 미국의 푸들이라는 인상을 지우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하겠노라고 미리 밝혔다. 자존심을 회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잘못했다가 그런 소리를 듣게 된 영국이야 그렇다 치자. 우리는 주권·자존심·인격을 모두 내주고, ‘인간이 되라’는 손가락질만 당하게 된 것이다. 오죽 얕보였으면,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을 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독도 영유권을 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했을까.

출전/한겨레 2008년 7월15일   글쓴이: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