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주택마련 자금을 빌려 주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한 펀드와 금융회사가 연쇄적으로 손실을 보면서 신용 경색 우려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번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가 전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우리 나라도 그 파장에 휩싸이고 있다. 이 자료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금융문제가 왜 전세계 시장에 파급력을 가지는지, 이런 문제가 우리 삶에는 어떤 문제와 상관성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구성했다.
아래 글들을 읽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Sub-prime Mortgage)” 부실화가 몰고 온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자료는 시사주간지 한겨례 21을 참고했다. (다른 언론사나 잡지사가 내보낸 기사에 비해 월등히 심층적이고 전문성을 지니고 있어서리...)


문제제기 :  미국발 경제위기, 어디서 시작되었나  

창비주간논평. 2007-08-28 전창환(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위기에 대해

미국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위기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증시와 나스닥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자 미국 증시와 긴밀하게 연계된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증시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위기에 따른 파급효과가 예상 밖으로 크게 나타나자 미연방준비은행(FRB),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중앙은행(BOJ), 캐나다 중앙은행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증시의 추가적인 동요와 파국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유동성을 투입했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나아가 재할인율을 0.5% 포인트 인하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일본중앙은행도 재할인율 인상을 유보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증시는 점차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양상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견해가 강하다. 왜 그럴까?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란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고객 및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의미한다. 일반인은 물론 경제전문가에게도 아직은 생소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먼저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기본틀을 살펴보자.

빈곤층 주택구입의 기회? 금융약탈의 덫?
미국인들은 주택가격의 20~30%의 자금(초기계약금)만 확보하면 대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즉 구입할 주택을 담보로 융자를 받고 그 융자금을 30~40년에 걸쳐 상환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주택구입을 용이하게 한 것은 일찍부터 발달해 있는 주택금융시장과 담보대출제도였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두 종류로 나뉜다. 신용도가 높고 위험이 낮은 차입자에게 제공되는 대출(prime mortgage loan)과 신용도가 낮고 상환리스크가 큰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대출(subprime mortgage loan)이 그것이다.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는 높은 금리 외에도 상당히 엄격한 부대조건이 따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약탈적 대출’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이를 악용한 대부자들과 브로커들이 다수 존재해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개 소수민족을 포함한 이민노동자와 빈곤층이다. 기존의 담보융자 자격을 확보하기 어려운 무주택 하층서민에게 주택소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금리 등 대출여건이 일반 주택담보대출 혹은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 대한 대출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도도 높다.

높은 대출금리와 까다로운 상환조건이 도미노 붕괴로
그렇다면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왜 문제가 되고 있는가? 또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서 연체율이 증가하고 부실이 발생하며, 나아가 담보주택의 압류 등으로 인해 금융시장 전반에 큰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의 시발점은 써브프라임 융자를 받은 주택구입자들이 상환금을 제때 내지 못해 연체율이 높아지다가 결국 융자로 구입한 담보주택을 압류당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저축대부조합, 상호저축은행, 상업은행, 보험회사 및 저당 금융회사 등 담보를 기초로 융자를 제공한 1차 모기지 대출기관의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파산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 1차 모기지 대출기관에 투자한 거대 투자은행도 큰 손실을 입어 이들 은행의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주택금융 관련 정부 지원기관, 민간 증권회사 등 2차 모기지 관련기관으로의 피해 확산이다. 이들 2차 관련기관이 1차 모기지 대출회사로부터 대출채권을 인수하고 이를 기초로 모기지 담보부증권(MBS)을 발행하면(증권화) 거대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 등 투자가들이 매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1차 모기지 대출회사의 경영위기 및 파산가능성이 2차 관련기관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담보부증권 몇가지를 묶어 재편입한 채무담보증권(CDO)의 발행(재증권화)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 역시 거대 증권회사 및 헤지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이 된다. 앞으로 우리가 예의주시해야 할 것은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위기가 바로 이 증권화 기제를 통해 언제든지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원칙 없는 저금리· 주택경기부양이 부실 키워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급속한 확대와 부실화는 2003년 미국 부시정부의 극단적 저금리정책으로의 선회와 이에 따른 주택가격 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시정부는 2000년대 초 IT·주식거품의 붕괴와 9·11테러사태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단적인 저금리정책과 주택경기부양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2003년 저금리하에서 주택가격이 상승하자 신용도가 낮고 위험도 높은 사람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전체 주택융자에서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2%에서 2006년 4/4분기에는 13.7%로 증가했다. 2006년말 미국가계가 보유한 주택융자 총액이 9.7조달러인데 그중에서 써브프라임 대출 잔액은 약 1.3조달러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미국 명목 GDP의 10%에 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써브프라임 대출의 연체율이 2005년 가을부터 크게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주택압류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주택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금리인상 이후 주택붐의 붕괴와 주택경기 침체가 시작된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특히 금리인상에 따른 상환부담이 가중되면서 상환금 연체율이 10%를 넘어섰다. 보통대출인 프라임론의 연체율 2%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써브프라임 대출 위기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미국내 주별?지역별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다른 주에 비해 미국 중서부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미시건, 오하이오, 인디애나 주에서 상환금 연체율과 주택압류율이 현저히 높다. 자동차산업의 침체와 이에 연동된 경기침체가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화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주된 이용자들이 저소득층, 이주노동자 등 금융소외 계층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써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위기는 지역문제인 동시에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틀림없다.

미국경제의 위기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
미국과 동아시아 금융·자본시장의 긴밀한 통합은 이번 미국발 써브프라임 위기가 동아시아로 아주 신속하고 용이하게 전파될 수 있다는 문제를 낳았다. 당분간 미국의 금융불안과 경기침체 압력이 불가피함에 따라 우리 증시나 경기에도 적신호가 켜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써브프라임 대출의 증권화?재증권화로 써브프라임 대출의 부실이 언제 어느 정도의 후폭풍을 몰고올지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써브프라임 문제와 함께 엔-캐리 트레이드(저리에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기법)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아주 심각한 사안이다. 이제 우리 경제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뿐 아니라 일본중앙은행의 금리정책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정말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 미국 독감, 세계 시장에 전염되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촉발된 신용경색, 유럽·아시아 경제에도 위기감 감돌아

출전 ; 한겨레21 2007년8월16일 제673호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촉발된 금융시장 충격이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잠잠해지는 듯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경색 우려는 지난 8월9일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ABS)에 투자한 3개 펀드의 환매와 가치 산정을 일시 중단하면서 다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BNP파리바는 “미국 신용경색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 펀드들의 자산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BNP파리바 쇼크로 미국과 유럽 증시는 급락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당장 혼란에 빠져들었다. 8월10일 코스피지수는 1828.49로 거래를 마쳐 전날보다 80.19포인트(4.20%) 폭락했다.
연준 낙관론, 이틀 만에 반전
이틀 전만 해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는 금리를 인하하지 않고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하면서 “주택대출 부실화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그 영향도 제한적”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연준의 발표로 국제 금융시장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만에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감은 극도로 고조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장이 미국을 넘어 유럽 시장에까지 전염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 FRB, 캐나다은행은 신용경색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ECB는 8월9일 유로머니 마켓에서 리보금리가 BNP파리바 충격으로 인해 6년 만의 최고치(5.86%)로 치솟자 950억유로를 풀어 시장에 긴급 지원했다. 연준도 금융시장에 초단기 자금 120억달러를 추가로 공급했다. 중앙은행들의 이런 이례적인 조치에 대해 투자자들은 “신용경색 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3월 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처음 제기될 때는 미국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됐다. 물론 BNP파리바는 부실 기준을 미국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ECB가 타깃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싼 자금을 구제금융으로 공급한 측면은 있지만, 이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미국을 넘어 글로벌 투자자들의 문제라는 점이 유럽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미국 모기지업체들은 주택 가격 하락세 속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의 연체율이 17% 안팎에 이르자 최근 몇 개월 동안 문을 닫고 상품 판매를 중단한 채 파산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의 모기지업체는 50여 곳인데, 뉴센트리파이낸셜은 지난 4월 청산에 들어갔고 아메리칸홈도 최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특히 아메리칸홈은 비우량(서브프라임)과 우량(프라임) 사이의 ‘알트A’ 등급 모기지를 전문으로 해왔기 때문에 주택금융 부실이 우량 모기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6월 기존 주택 판매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택 차압도 늘고 있다.

미국발 신용시장 경색이 예상외로 심각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럽·아시아 경제에도 위기감이 돌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투자은행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1억89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쿼리 은행도 고수익 펀드에서 투자 자산의 최고 25%까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만의 최대 보험사인 캐세이파이낸셜도 4500만달러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고 공개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아시아 금융시장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이다.

전세계 헤지펀드와 투자은행까지 덮쳐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헤지펀드들은 줄줄이 위기를 맞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운용하는 노스 아메리칸 에퀴티오퍼튜니티펀드는 7월에만 11%의 손실을 입어 자산을 매각했고, 골드만삭스의 최대 헤지펀드인 글로벌알파펀드마저 일부 포지션의 청산 압력을 받고 있다는 루머가 돌면서 뒤숭숭한 모습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미국 모기지 대출업체뿐 아니라 전세계 헤지펀드, 나아가 사모펀드와 우량한 투자은행에까지 덮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주식시장과 모기지 관련 채권(CDO)뿐만 아니라 삽시간에 글로벌 신용시장 전반에 퍼지면서 투자자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998년 전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한다. 러시아에 대대적으로 베팅했던 대형 헤지펀드 LTCM은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직면하면서 루블화가 폭락하자 그대로 무너져버렸고, 전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미국 전체 모기지론 시장의 12%, 미국 전체 금융 자산의 1% 미만이다.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1천억달러(연체율 15%로 가정)로 추정하면서 경제적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규모는 아직도 제대로 드러난 상태가 아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금융경제팀장은 “미국 주택시장이 계속 나빠지면서 서브프라임 문제는 잠재적 불안 요소로 계속 돌출될 것”이라며 “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L) 연쇄 파산과 98년 롱텀캐피탈 사태에 비해 위험 수준이 낮긴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파생상품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부실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전세계 투자은행들이 보유한 미국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의 규모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고, 투자은행들이 사들인 모기지 자산유동화증권(서브프라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등급이 높은 알트A 또는 프라임모기지)까지 부실의 불길이 옮겨붙게 되면 모기지 부실은 놀라운 규모로 증가하게 된다. 중앙은행들의 긴급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서브프라임 부실이 쉽사리 꺼지지 않는 불씨로 작용하면서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높다는 뜻이다.
세계 금융시장에 드리운 ‘딜레마’
각국 금융당국은 “냉정해야 한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직 건강하다” “자산가격 위험의 재평가는 조정 과정일 뿐”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고, 위험자산을 버리고 안전자산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재무부채권은 수요가 몰리면서 채권 가격이 급등하고 수익률은 급락했다. 신용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투자 심리는 급속하게 얼어붙고, 유동성 확보 차원의 펀드 환매 요청 등 자금 회수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김세중 팀장은 “사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규모도 관심사이지만, 이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이 실물에까지 영향을 미쳐 민간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인지가 미국 경제와 전세계 경제의 관건”이라며 “하지만 미국 경제가 이로 인해 급속히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미국 경제주간지 <배론스>는 “지난 97년 세계경제를 위험에 빠뜨린 ‘아시아 독감’(Asian Flu·아시아 외환위기)이 있었다면, 지금은 미국발 악재에 아시아가 전염되는 ‘미국 독감’(American Flu)이 우려된다”면서 이번 사태가 이머징 마켓에 옮겨 붙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금융권도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은 8억4천만달러의 미국 주택 관련 채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약 2억5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률을 17∼18%라고 추정하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손실 규모는 4천만달러를 넘어선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부는 8월9일 콜금리를 올려 시중 통화를 흡수할 정도로 국내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이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9%(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하는 등 국내 경기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인한 자금조달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신용경색이 확산되면 금리가 급등하고 미국 등의 경기가 침체되면 수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 블랙메사는 8월8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우리 전략에도 없는 이상한 일들이 시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전세계적인 저금리 물결 속에서 글로벌 유동성은 넘치는데도 갑작스럽게 신용경색 현상이 퍼지고 있는, 어떤 ‘딜레마’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덮치고 있다는 것이다.


2. 글로벌 금융위기의 묵시록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캐리 사태로 세계적으로 주가·부동산 거품 꺼지나

출전:  한겨레21 2007년08월23일 제674호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1996년 12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당시 정보기술(IT) 주식에 대한 투자 과열을 가리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경고했다. 활황을 타고 있던 미국 증시는 딱 이 두 단어로 하루아침에 폭락했다. 물론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이후 10년 동안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주가지수는 91% 더 상승했다.

프라임 모기지와 기업어음으로 부실 확산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엔캐리’(¥ Carry Trade)가 또다시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다 엔캐리 자금 청산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되고, 이에 따라 “전세계적인 주가·부동산 거품 해소 과정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높았던 것이 이제 정상화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신용 경색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서브프라임 부실 파장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것일까?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전세계로 전염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택담보대출)나 기업어음(CP) 쪽으로도 부실이 확산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불똥이 프라임 모기지 판매업체에까지 튀면서 우량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는 미국 소른버그모기지는 지난 8월15일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배당금 지급을 연기했다. <로이터통신>은 “2조2천억달러(약 2046조원) 규모인 미국 기업어음 시장도 모기지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급속히 퍼지고 있는 공포는 세계 곳곳의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날마다 시장에 터져나오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단 자금을 빼고 보자는 불안 심리가 극도로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인우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서브프라임 문제의 근원은 미국 부동산 시장 하락 가능성에 있다. 올해 미국 부동산 가격은 3~5%가량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데, 이처럼 담보가치가 떨어진데다 1%대였던 미국 연준 기준금리가 최근 몇 년간 5%대까지 인상되면서 대출금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70% 정도를 파생상품을 통해 유동화해놨기 때문에 이자율 인하 등 정책수단을 동원해 직접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신용 경색이 전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엔캐리 자금 청산 움직임까지 나타나자 국내 증시도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엔캐리 자금 청산이라는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회수되면 외환위기와 같은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로 바꿔 주식·채권 등 고수익·고위험 자산에 투자한 투기자금이다. 그동안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힘입어 엔캐리는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 자금조달원 역할을 했고,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자산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문제가 단기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엔캐리 청산이 또 대두되고 있다”며 “국내 자산시장에 버블이 끼어 있다면 빠르게 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세계 금융의 최대 복병인 엔캐리 자금의 일본 회귀 현상을 부추기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국면이다.
엔캐리 청산 가능성은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 행진은 멈춘 반면, 경기 회복세에 따른 일본의 금리 인상 전망이 나오면서부터 제기됐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서 고금리 시장에 투자하는 엔캐리의 청산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 글로벌 증시가 상승 랠리를 펼치면서 엔캐리 청산 가능성은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 경색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다시 높아지면서 엔캐리 청산 분위기가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엔캐리 자금 청산 본격화됐나
세계 금융시장에 퍼져 있는 엔캐리 자금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추산은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7년 4월 현재 엔캐리 자금 규모를 약 1700억달러(약 158조원)로 추정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2년간 국내로 유입된 엔케리 자금을 6조7천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엔화가 다른 나라의 통화로 바뀐 뒤 유입된 것까지 고려하면 규모가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다.
엔캐리 자금 청산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로는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 8월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00엔당 30.20원 폭등한 844.6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8월13일 이후 3거래일 동안 무려 58.40원 폭등한 것인데, 7월9일(744.80원)에 견주면 최근 한 달 새 100원 가까이 급등했다. 투자금을 회수해 엔화로 환전하는 수요가 늘면서 외환시장에서 엔화 매수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8월14~15일 보유 채권 매각 방식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3조엔가량의 자금을 회수한 것도 해외에서 엔화 투기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된다. 최근의 엔화 강세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며, 엔캐리 청산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안전자산 선호가 확산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화 사재기 여파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금융센터 김동완 상황정보실장은 “신흥시장에 투자된 엔캐리 자금의 경우 최근 몇 년간의 신흥시장 주가 상승 덕에 아직도 플러스 수익률을 내고 있으나,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자금을 빼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 불안과 엔캐리 청산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경제 성장은 과잉 유동성이 이끌어온 측면이 크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그만큼 소비가 늘어 이것이 생산을 부추기고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이다.

한국시장, 가장 먼저 빠져나간다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덴버의 압류 조처된 부동산.(사진/ REUTERS/ RICK WILKING)

캐리 자금 청산이 급속히 진행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빠르게 위축되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엔캐리 자금 청산이 세계 경기를 둔화시키고, 이것이 국내에서는 콜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실물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당장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이것이 경기둔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흔들려 펀드 환매 사태가 터질 경우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은 일반적으로 이머징마켓부터 자금을 빼내 환매자금을 마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펀드매니저들은 신흥시장 중에서도 올해 전세계 주가상승률 1위를 기록한 한국 시장에서부터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사실 국내 금융기관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물린 돈은 극히 적다. 그런데도 한국 주식시장이 진앙지인 미국이나 유럽·일본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덩치가 작고 변동성이 높은 한국 주식시장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타깃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도 한국에 제일 먼저 하고 빠져나갈 때도 가장 먼저 팔고 떠나는 것이다.
“완만한 속도의 엔캐리 청산은 한국에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금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려 원화가치가 절하되면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고, 원-엔 환율이 상승해 대일본 수출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수출 주도의 경기 회복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엔캐리 자금의 대규모 청산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도 있다. 재정경제부는 “현재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금리는 0.5%이고 미국 연준 기준금리는 5.25%로 4.75%포인트 격차가 있는데, 일본이 한 차례 금리를 인상해도 주요국과의 금리 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에 엔캐리의 급격한 청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현재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장의 눈길은 미국 연준과 일본 중앙은행에 쏠리고 있다. 김동완 실장은 “일본 중앙은행이 8월에 금리를 올릴 것으로 봤는데, 이번 사태가 확산되면서 금리 인상이 연말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연기되면 그만큼 엔캐리 청산 움직임도 약화될 수 있다. 또 미국 연준이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저지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인상 연기가 최대 관건인 셈이다.

1986년, 1998년, 그리고 지금
저축대부조합 파산·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파산 사태와의 관련성
‘서브프라임 사태’와 견줄 수 있는 미국 금융위기의 사례로는 1986년의 저축대부조합 연쇄 파산, 1998년의 대형 헤지펀드(개인모집 투자신탁)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가 꼽힌다.
CJ투자증권의 김승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 원인’으로 보아선 1980년대 후반의 저축대부조합 연쇄 파산과 비슷하며, ‘진행 상황’에선 LTCM 사태와 닮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국 부동산 경기 둔화와 이로 인한 대출 부실화의 문제로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LTCM 사태 때처럼 대출 부실화가 헤지펀드의 파산 위험을 자극하고 이에 따라 투자은행이 연쇄 부실화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긴급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데 대해 김 애널리스트는 “개별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이 아니라 단기금리 급등이라는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아직 구제금융이 제공됐던 LTCM 사태 때와 동일한 단계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세계 경기와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 또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으로 지적된다. LTCM 사태는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와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선언 등 신흥시장의 금융시장 불안에서 비롯된 반면, 이번 서브프라임 위기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경기 호황으로 세계 경제가 안정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빚어진 미국의 금융위기라는 점에서다.
다만, 현재 금융시장의 문제가 헤지펀드의 신용 파생상품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확실성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LTCM 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고 있다. 김승한 애널리스트는 “LTCM 사태 당시 신용경색이 확산되며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 급등과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일본 엔화로 고금리 통화를 매입해 운용한)의 청산을 가속화한 바 있다”며 “서브프라임 위기로 엔-달러 환율 변동폭이 커져 엔캐리 청산을 자극할 것인지가 주요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3. “위험 크기보다 불확실성이 문제”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의 진단과 전망…“과민반응이나 지나친 우려는 금물”

자료출전 : 한겨레 21  2007년08월23일 제674호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미국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각국으로 퍼지는 양상은, 긴밀하게 얽혀 강한 전염성을 보이는 국제 금융시장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미국 → 캐나다 → 독일 → 오스트레일리아 → 프랑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에 살얼음 기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한바탕 퍼부은 뒤 지나갈 소나기일까,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쳐 치명상을 입힐 충격파가 될까? 다양한 국내외 금융 정보가 모이는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동걸(54) 원장에게서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들어봤다. 이 원장은 인터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규모가 크지 않아 감내할 수준이라고 본다”면서도 “이게 증권 발행으로 이어지면서 파생금융 상품으로 전환돼 위험 규모를 잘 파악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은행들이 충격을 흡수할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어 과민반응이나 불필요한 우려는 금물”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올 7월부터 한국금융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인터뷰는 8월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8층 원장실에서 이뤄졌다.

쓸데없는 위험 증폭시키지 말아야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진 배경은 뭐라고 봐야 하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준 뒤 그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다. 그것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증권화해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 이른바 MBS(주택저당증권)다. 주택담보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원리금을 잘 갚는 이들은 ‘프라임’으로 묶고, 신용도 떨어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 게 ‘서브프라임’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 덕에 신용도가 낮은 이들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혜택을 얻는데,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다 보니 경기가 나빠지면 ‘디폴트 레이트’(부도율)가 현실화한다. 그런 과정에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과민반응한 것 아닌가 한다. 담보대출의 상환이 제대로 되겠나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그러니 (MBS를) 환매하려고 하는데 가격 계산이 제대로 안 돼 환매에 응하지 못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쇼크(충격)가 온 거다.

미국 경기가 그렇게 나빴는가?
=경기는 늘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디폴트 레이트가 올라갔다기보다는 올라갈 확률이 커지면 금융시장이 미리 반응하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 강도는 어떻게 보는가?
=대략 알려진 걸 보면, (미국)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비중은 10% 남짓이고, 그중 부실이 17~18% 정도이다. 부실한 서브프라임은 전체적으로는 1.7~1.8%라는 얘기다. 실제 부도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충격을) 흡수하고 감내할 상황이라고 평가함에도 현실적으로 그 부분에서 부도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 과민반응 → 환매 사태 → 유동성 위기의 악순환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게 금융시장이다.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적절히 공급하면 본질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문제만 남아 감내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나 또한 그렇게 본다. 그런데 문제는 모기지가 증권 발행으로 이어지면서 파생금융 상품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파생금융 상품의 특성은 위험을 잘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게 더 큰 위험으로 발전한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극 나선 게 오히려 위기감의 신호라는 견해도 있다.
=여태까지 나타난 전체 모기지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또 그중의 부실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부실 부분이 전부 손해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금융시장의) 과민반응을 진정시켜 쓸데없는 위험을 증폭시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주식시장, 조정 국면 펼쳐질 듯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의 민간소비를 비롯한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줄 요인이라고 보는가?
=경기 전문가가 아니어서 단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힘들지만 각계 의견을 취합해 판단해볼 때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의 엔화로 고금리 통화를 매입해 운용한) 청산에 따른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갑자기 청산돼 돈이 빠져나가면 동요가 생기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로 생기는 문제일 테니, 선진국의 금융당국 수장들끼리 조정해야 할 사안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이미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전체 금융시장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사안이라고 봐야 하는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입을 손실액은 크지 않다(국내 은행권이 미국 주택저당증권 및 이에 기반한 자산담보부증권(CDO)에 투자한 금액은 7억달러 정도로 파악돼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본다. 그래도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영향은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아직 서브프라임의 위험 크기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있다. 그런 불확실성이 걷힐 때까지 널뛰기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상당 부분 올라 조정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세 요소가 겹치면 일정 기간 주식시장에서는 조정 국면이 펼쳐지지 않을까 한다.

서브프라임의 위험 크기가 불확실하다는 얘기는 어떤 뜻인가?
=파생상품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전체 부실률이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파생상품의 위험성은 예측하기 곤란하다. 파생상품이라는 게 이리저리 꼬아놓은 것이어서 파악이 잘 안 된다는 본질적인 속성이 있다. 움직임의 진폭도 크고…. 예컨대 100조원의 주택담보 대출이 나갔고, 90조원은 원리금 상환이 잘되는데 10조원은 잘 못 갚는 상황이라고 하자. 대출 나간 걸로 끝났다면 10조원 부분에 대해서만 위험을 감내하면 되지만, 100조원 전체가 증권화됐다면 사정이 다르다. 이게 안 돌아가기 시작하면 100조원 전체가 충격을 받아 직격탄을 맞는다. 일종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다.

국내에도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300조원에 이를 정도로 많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주택담보 대출의 증권화 속도가 느려 MBS는 거의 없다. 이제 막 역모기지(주택연금)가 시작되는 단계다. 주택담보 대출 자산을 증권화해 판 미국과는 시장 구조가 다르다.

주택담보 대출 충격 없을 것
국내 금융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인가?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주택담보 대출로 충격을 받는다? 국내 경기가 정말로 나빠져서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다든지, 집값이 엄청나게 폭락해 집을 팔아서도 상환을 못하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은행들이 충분히 충격을 흡수할 능력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에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게 있다. 망한다, 망한다 하면 진짜로 망한다. 과민반응이나 쓸데없는 우려는 금물이다. 금융기관의 자본금이나 이익 규모, 현재 경제 상황으로 보아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크지 않다고 본다.

은행들이 주택담보 대출 금리를 8% 가까이로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주택담보 대출 규모가 300조원이라면 1%포인트만 올라도 3조원의 부담으로 돌아오기에 작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충격으로 받아들여져 부실의 연쇄화로 위기를 불러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전체 집값에서 담보대출의 비중은 50% 아래다.


4. 신용파생상품, 그 탐욕의 폭주

자료 출전: 한겨레 21 675호 2007년8월30일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0년도 안 되는 사이 57.7배 증가, 저금리로 불어난 여유자금이 통제 없는 금융시장에서 내달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빌미이자, 현대 국제 금융시장의 속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자산담보부증권(CDO)이다. 이름부터 고약한 이 증권은 ‘주택대출을 비롯한 담보 자산을 신용등급별로 나눠 자산과 그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는 신용파생상품’으로 대략 설명된다.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일종이며 주택저당증권(MBS)과 거의 비슷하지만 좀더 복잡한 구조를 띤다.
2004년 1월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전염성 탐욕>의 지은이인 프랭크 파트노이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법대 교수는 책에서 ‘초콜릿 바’의 예를 들어 CDO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의 초콜릿 바 100개를 녹인 뒤 한 단지에 넣고 성분별로 재구성하는 것에 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재구성된 초콜릿 바는 케이크 장식에 쓰이는 고급 가나슈, 코코아와 우유 성분, 아몬드 몇 개 그리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 찌꺼기 부분으로 나뉜다.
초콜릿 바를 재구성하는 CDO
서브프라임 사태에 빗대면, 애초 초콜릿 바가 주택담보대출 자산이며 재구성된 초콜릿 바가 CDO에 해당한다.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해준 쪽(모기지 업체들)은 100개의 초콜릿 바를 재구성하는 것처럼 신용도에서 차이를 띠는 대출 자산들을 묶어 품질(신용도)에 따라 분류해 투자자들에게 판다. CDO 시장에서 조각의 품질은 신용평가기관들이 매기며 일반적으로 AAA등급에 해당하는 상급 조각, 투자적격인 AA~BB등급에 해당하는 중급 조각, 그리고 핵폐기물이라고 불리는 하급 조각 등 세 부류로 나뉜다. 돈을 꿔준 쪽에서 대출 자산을 이렇게 재구성해 파는 것은 그대로 쥐고 있을 경우 맞닥뜨릴 수 있는 떼일 위험(디폴트 리스크)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 그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금융감독 당국의 규제에서 벗어나는 목적도 달성하게 된다. 이는 개인 주택담보대출 시장뿐 아니라, 기업과 은행 사이의 자금거래를 비롯한 금융시장 전반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현대 국제 금융시장의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재구성된 각 등급의 조각에 해당하는 증권(CDO)의 위험도와 수익률에는 물론 차이가 난다. 상급 조각에 해당하는 증권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떼일 위험은 낮은 대신 저수익에 만족해야 하며, 중·하급 조각에 투자한 이들은 그 반대다. 예컨대, 미국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지난 5월에 발행한 자산담보부증권을 등급별로 보면, 위험을 피하는 경향의 투자자들은 5% 초반대의 상급 조각을 사들였고,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의 투자자들은 7%대 중반에 해당하는 중·하급 조각을 매수했다. CDO가 기존의 일반적인 채권과 달리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띠게 되는 속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동양종합금융증권 리서치센터의 이동수 팀장은 “CDO 상품의 문제는 담보자산의 가치 훼손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을 파악하기 힘들고,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상품 특성상 다양한 성향을 지닌 투자자들에게 위험이 분산되는 장점이 있지만, CDO의 손실이나 이익 계상은 담보자산에 대한 신용평가기관들의 등급 ‘조정’ 뒤에나 반영되기 때문에 손실 규모를 파악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불거진 게 2월인데,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 파산과 같은 후폭풍은 6월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게 단적인 예로 꼽힌다.

CDO보다 큰 CDS,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CDO 발행에 따른 신용위험의 분산은, 강력한 폭발력의 ‘대전차 지뢰’ 1개를 해체해 ‘발목 지뢰’ 100개로 전환한 뒤 곳곳에 배치한 모습에 비유할 수있다. 지뢰 하나하나의 폭발력은 크게 줄었고 산술적으로 합친 전체 폭발력에선 변화가 없지만, 지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파악하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이는 대출자산이 CDO 같은 파생상품으로 형질 변경되는 과정에서 중대한 환경 변화를 맞기 때문이다. 애초 대출자산인 대전차 지뢰 1개 상태로 머물 경우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 아래 놓이는 반면, 100개의 발목 지뢰에 비유할 수 있는 파생상품으로 전환되면서 금융감독 당국의 손길을 벗어난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민간 부문의 신용평가기관들이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의 부실한 신용평가로 체면을 왕창 구긴 신용평가기관들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 와중에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게 바로 이런 이유다.
CDO와 함께 현대 국제 금융시장의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꼽히는 신용파생상품의 두 기본형을 이루는 게 CDO에서 파생된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이다. 이는 대출과 보험을 결합한 것으로, 채권의 부도 위험에 대해 보험을 드는 방식이다. 실제로 부도가 난 경우 ‘디폴트 스왑’을 통해 디폴트 리스크를 ‘보호 매수한 사람’은 이득을 보지만, 프리미엄(보험료)을 받은 데 따라 디폴트 금액을 갚아야 하는 ‘보호 매도자’는 일거에 손해를 입을 수있다. 베어스턴스 헤지펀드 사태 당시 베어스턴스는 CDS 계약을 맺지 않아 손해를 본 반면, 도이체방크처럼 CDS 계약을 통해 프리미엄을 지불했던 업체들은 이득을 보기도 했다.

“통제되는 금융시장은 허구”
이동수 팀장은 CDS 시장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로 “기초 자산에 해당하는 CDO보다 규모가 훨씬 커 엄청난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든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CDS 시장의 크기는 28조달러를 웃돌며, 미국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채를 포함한 미국 전체의 채권시장 규모가 22조달러, CDO 시장(미국 기준)은 1조9천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ABS나 회사채 시장 규모를 감안하더라도 CDS 시장이 기초자산 시장에 견줘 2배 이상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수 팀장은 “몸통(CDO)보다 꼬리(CDS)가 큰 격이어서 CDO에서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CDS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주택경기 하강세의 파장이,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쪽과 대출금을 내준 쪽 사이의 국지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고, 파생상품이란 매개체를 통해 미국의 금융시장 전반, 나아가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장은 대체로 CDO 시장까지 이어졌고, CDS 시장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번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금의 국제 금융시장 상황을 진정세가 아닌 불안감의 잠복으로 보는 배경이다.
CDO와 CDS로 대표되는 ‘신용파생상품’ 시장은 1990년대 들어 비약적인 성장세를 나타내며, 현대 국제 금융시장을 그 이전 시대와 구별짓고 있다. 신용파생상품은 대출채권, 회사채 등 금융자산에 내재하는 ‘신용’ 위험을 분리해 매매하는 상품이란 뜻을 담고 있다. 대출자산을 매각하거나 유동화하는 기법에선 차주(돈을 빌린 쪽)의 동의 아래 신용위험을 이전하는 반면, 신용파생상품은 차주의 동의 없이 신용위험을 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띤다. 영국은행협회(BBA) 자료를 보면, 이런 국제 신용파생상품 시장의 규모가 2006년 20조2070억달러(잠정)에 이르렀다. 1998년만 해도 3500억달러에 머물렀던 데 견줄 때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려 57.7배 수준으로 커진 셈이다. 신용파생상품 시장의 대부분은 CDS(71%), CDO(16%) 두 가지가 차지했다.
이런 파생상품들은 표준화돼 거래소 시장에서 매매되는 일반적인 선물이나 옵션과 달리 ‘장외’에서 거래 당사자가 합의한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거래된다. 각국 감독 당국은 ‘계약 자유’와 ‘금융시장 효율성’을 이유로 장외 파생상품 거래에 대해선 별다른 규제나 통제를 하지 않고 있다. 위기 때 손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고 불안감의 증폭과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고 있다. 프랭크 파트노이 교수가 <전염성 탐욕>에서 “‘통제되는 금융시장’이란 말은 허구이고, 뉴욕 증권거래소의 폐장을 알리는 종은 무의미해졌다”고 일갈한 것은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1990년대를 거치고, 2000년대 들어 파생상품이 급격하게 증가한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이 꼽힌다. 랜드마크자산운용의 김일구 이사는 “사회에 여유자금이 많아져야 파생상품이 생겨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저금리에다 주가가 장기 호황을 보이면서 여유자금이 많아졌다. 이것을 다 투자하기엔 현물 시장이 너무 왜소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상품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옴으로써 파생상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돈이 많아지면, 욕심의 범위가 넓어진다.”
이동수 팀장도 “현재 5%대인 미국 국채 금리가 1990년대만 해도 8% 정도였다”며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가 파생상품을 급격하게 늘렸던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최근년까지 금리가 하락했다. 이는 파생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크게 확대시켰다. 금리가 높으면 레버리지(차입 등 타인자본을 지렛대 삼아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엔 레버리지를 통해 파생상품 시장을 비약적으로 늘릴 여건이 조성됐다.” 여기에 저금리로 마진이 낮아진 데 따라 투자 기법을 더 고도화하는 쪽으로 금융환경이 변했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윤석 연구위원은 파생상품 시장을 키워놓은 또 하나의 주요인으로, “세계화·자유화라는 명목 아래 진행된 금융 규제 완화”를 꼽았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초기인 1993년의 이른바 ‘세계화’ 깃발과 그로부터 4년 뒤에 맞게 되는 외환위기 또한 이런 큰 맥락 속에서 벌어졌던 셈이다. 이 위원은 “금융기관들이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탈규제로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려는 유인(인센티브)들이 있었다”며 “각국의 금융감독 당국 처지에서도 상품 종류가 많을수록 소비자 후생이 증가한다는 좋은 명분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변함 없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신용파생상품 급증으로 대표되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금융의 본질은 ‘높은 수익에는 높은 위험이 따른다’(하이 리스크-하이 리턴)는 점이다. 하준경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금융상품이 증가해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문제가 터지는 근본 원인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것은 근본적으로는 대출 심사를 제대로 않고 유동성을 방만하게 공급하며서 부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 대부조합 사태 때 부동산 투기 붐이 일자 돈을 찍어서 주듯 마구 대출해준 게 근본 원인이었듯, 이번에도 주택대출자들의 신용 상태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대출해준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불안을 모니터링하라

FRB의 재할인율 인하 이후 증시 진정되는 듯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8월17일을 기점으로 지표상 일단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이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재할인율을 6.25%에서 5.75%로 0.5%포인트 내리는 조처를 단행한 데 따른 영향이었다.
FRB의 재할인율 인하 조처 당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 위주의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는 200포인트 이상 오르며 7거래일 만에 처음 올라 1만3천대(1만3079.08)를 회복했다. 금리 인하를 둘러싼 전망이 혼란스럽게 엇갈리는 가운데 오르락내리락하던 다우존스 지수는 8월23일(현지시각) 전날 종가보다 0.25포인트(0.00%) 내린 1만3235.88에서 거래를 마쳤다.
국내 증시도 ‘검은 목요일’로 일컫는 8월16일의 충격을 딛고 일단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8월17일 1638.07까지 떨어졌던 코스피(종합주가) 지수는 이후 나흘 연속 오름세를 타면서 8월23일에는 1799.72로 1800선에 바짝 다가섰다. 8월24일 종가는 전날보다 8.39포인트(0.47%) 내린 1791.33이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패닉(공황) 양상이 어느 정도 진정된 건 버냉키 FRB 의장이 전임 의장 그린스펀보다 금리 인하에 소극적일 것이란 예측을 불식시킨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시장 상황은 추가 부실의 징후 때 FRB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위원은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이 확실히 진정 국면이라는 시각은 지배적이지 않다”며 불안의 잠복으로 풀이했다.
국제금융센터도 FRB의 재할인율 인하 조처 뒤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에 대해 “소폭 진정되고는 있으나 서브프라임 관련 불안 요인이 해소된 게 아니라 잠복 중”이라며 “불안 요인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감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투기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려라

고도의 리스크 기법을 동원하던 헤지펀드에서 시작된 위기, 세계적으로 규제 강화하고 있는데…
국내 금융회사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손실 규모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국내 주식시장은 사상 최대 폭락이라는 기록적인 변동성을 보이는 등 이번 사태의 파도에 가장 크게 휩쓸렸다. 경기가 빠른 회복세를 타며 기초경제여건(펀더멘털)은 별다른 결함이 없는데, 왜 한국 금융시장은 국제 금융시장 상황의 불리한 변화에 크게 출렁거리면서 위기가 빠르게 감염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한국의 급속한 금융·자본 자유화 조처가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면서 단기 투자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자본이 급속히 유입·유출되는 국제 자본 이동의 속성이 위기를 낳고 있다는 얘기다.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자본 이동 자유화라는 망망대해에서 신흥 개도국 경제는 노를 저어가는 배다. 국제적 자본 이동으로 완벽한 배까지도 강력한 파도의 힘에 밀려 침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현대 금융의 총아로 불리던 헤지펀드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신용·자산 시장은 현대 금융의 총아로 불리는 헤지펀드, 엔캐리 트레이딩 등 ‘금융혁신’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이 국제금융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호황을 누려왔다. 1990년대 말 급부상한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와 같은 ‘고도금융’ 플레이어들은 정교하고 복잡한 신종 신용파생상품을 고안해 위험을 회피해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부실이 전세계에 일파만파로 번진 것도 이 때문이다. 모기지 대출을 기초 담보자산으로 한 자산담보부증권(CDO)과 모기지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한 신용불이행스왑(CDS) 등 1·2차 파생금융상품이 복잡하게 발행·유통돼왔는데, 이런 사슬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헤지펀드를 비롯한 각종 펀드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연기금·보험사·은행 등 다양한 투자자도 이런 복합파생상품 투자 경로를 통해 미국 모기지 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결국 미국 모기지에서 터진 부실이 연쇄 사슬을 타고 전세계적인 동반 부실화를 한층 가속화한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곽영훈 연구위원은 “실물경제의 수요를 웃도는 유동성 과잉 공급에도 불구하고 금융혁신을 기반으로 인플레이션은 억제되고, 위험 프리미엄이 낮아지고, 자산 가격은 상승해왔다”고 말했다. 또 단기 고수익을 좇는 헤지펀드(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자금이란 뜻)는 고도의 리스크 관리 기법을 동원하기 때문에 금융기관들도 헤지펀드에 대한 대출을 크게 늘렸다. 미국 연기금이나 투자은행, 유럽 생명보험사 등이 수익률을 높이려고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는데, 이제 헤지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그 위험이 금융기관에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혁신’과 관련해 모기지 부실로 큰 손실을 입은 펀드 대다수가 ‘퀀트’(Quant)펀드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골드만삭스의 대표 퀀트펀드가 최근 8월 들어 28%의 큰 손실을 입었고, 이것이 주식시장의 대폭락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헤지펀드의 일종인 퀀트펀드는 고도의 수학적 금융공학을 동원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에 근거해 위험을 최소화하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펀드로 금융시장의 총아로 평가받아왔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부실이 터지면서 정체불명의 ‘괴물’(퀀트펀드)이 주식을 대거 처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미국의 자산운용회사 글렌메드 트러스트의 고든 파울러는 “여러 퀀트펀드들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규모의 사자와 팔자를 일으켰다”며 “마치 한 무리의 코끼리 떼가 작은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전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개별적으로 투자자들을 모아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감독기관의 규제가 약하고, 투자 내용이나 운용실적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공개하기 전에는 부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매입과 매각을 동시화, 변동성 커져
엔캐리 트레이딩 자금도 대표적인 국제 투기자본이다. 삼성선물 리서치팀은 “엔캐리 트레이딩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금융시장에서 시장 위험이 낮아지고 기대수익률은 급등했다. 그러자 투기자본들이 차입을 더욱 높여 유동성이 확대재생산되면서 금융시장 과열이 나타났다”며 “그러나 엔캐리 기대수익률이 최근 정점을 지난 듯하고 시장 위험이 증가하면서 급격한 신용경색이 초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 1초의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면서 지구 전역을 옮겨다니는 글로벌 금융시장은 어떤 시장보다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 헤지펀드와 엔캐리 자금 등 투기자본은 극도의 위험회피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약간만 위험하다고 느끼면 언제라도 자금을 빼내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투기자본은 특히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위험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에 자산 매입 시점과 매각 시점을 거의 동시화 하는 차익거래(고평가와 저평가의 가격차)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기대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레버리지(차입 조달)를 과감히 활용하고, 위험이 보이면 경쟁적으로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시장에서 자기 실현적 위기가 현실화된다.
투기자본 등 단기 자금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흔히 거론되는 건 토빈세(Tobin Tax)다. 토빈세는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인데, 모든 국가의 자본유출입(외환거래)에 대해 단일세율로 거래세를 부과함으로써 매입·매도를 반복하는 단기 투기거래의 거래비용을 높여 투기적 거래를 줄이고자 하는 자본 거래세이다. 만일 1%의 토빈세가 부과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왕복거래를 하는 자본의 경우엔 1년에 50번 정도의 왕복거래가 있게 되므로 연간 약 100%의 세금을 내게 된다. 그러나 5년 만기 장기투자의 경우는 연간 0.4%의 세금만 내면 된다. 투기라는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려’ 그 거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토빈세는 매우 간명하지만 △역외금융시장과 조세도피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모든 국가가 토빈세를 도입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미국이 호응하지 않는 현실에서 과연 도입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질서 있는’ 자본거래 자유화를 표방하면서도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더욱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는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2003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자산운용 규모 2500만달러 이상인 헤지펀드는 증권거래위원회 등록을 의무화했다. 등록 대상 헤지펀드 운용사들은 증권거래위원회의 정기적인 검사 및 회계감사에 응해야 한다. 또 유럽의회는 헤지펀드뿐 아니라 실물자산, 환율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규제할 감독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는 1994년 ‘독특한 위험성을 지닌 펀드’ 개념을 도입하고 헤지펀드도 연방은행위원회에 등록하도록 했다. 홍콩의 경우엔 2002년 5월부터 운용자산 규모가 미화 1억달러 이상인 헤지펀드 운용사는 증권선물위원회에 헤지펀드를 등록·판매할 수 있도록 하되 투자신탁설명서 표지에 투자 위험에 대한 경고 문구를 반드시 넣도록 의무화했다.

반대로 한국에선 더욱 규제 완화
그러나 거꾸로 우리나라는 ‘동북아 금융허브’를 외치면서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를 더욱 완화하고 있다. 일부 기간산업을 제외하고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취득한도는 1998년에 완전 철폐됐고, 한국 증시의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해 △펀드의 금융감독원 신고제 폐지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장중 대량매매 허용 등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규제가 추가로 완화됐다. 글로벌 자본이동의 자유가 한국 금융시장을 일거에 휘청거리게 만드는 상황에서 “한국을 동아시아의 새로운 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포부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