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의 관계

** 현대 사회에서는 실용적 지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문적 소양은 어떤 중요성을 가집니까? (경북대 기출문제)

해결의 실마리 찾기

이 질문은 실용 학문만을 선호하고 순수 학문은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를 전제로 인문적 소양이 어떤 중요성을 지닐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실용 학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 사회를 예로 들어 보면, 실용적 지식에 해당하는 학과인 경영학, 법학, 사범대, 교육대, 신문방송학, 광고학, 의학 등은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순수 학문에 해당하는 문학, 철학 사학, 심리학 등의 인문학부와 물리학, 화학, 수학 등의 이학부의 입학 경쟁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와 같은 실용 학문의 편식 현상 속에서 인문적 소양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의 관계가 상호 대립적인 성격의 것이라면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의 관계에 대해서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고, 인문적 소양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스스로 경쟁력 있는 학문이 되기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용적 지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적 소양이 어떤 중요성’을 갖느냐는 질문은 이미 그 둘의 관계가 상호 대립적인 측면보다는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 둘의 보완적인 관계의 성격을 잘 짚어 낸다면 어렵지 않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실용적 지식과 인문학의 상호 보완적 관계

현대 사회는 분명 실용적 지식을 소지한 사람을 환영하고 있다. 실용적 지식이란 일상생활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말한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거리로 나서려면 교통 신호 체계가 어떤지,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차선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반면 자동차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에 해당하는 운동 법칙이나 역학 등의 지식은 자동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자동차를 움직이고 운전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아니다. 자동차에 대한 모든 지식 중에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지식은 극히 일부분에 국한한다. 하지만 그 지식만으로도 일상생활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것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수리하는 데 종사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 뿐더러, 운전자들에게는 운전 지식과 같은 자동차에 대한 부분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고도로 분업화된 현대 사회의 특성상 실용적인 지식은 부분적인 지식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반면, 자동차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의 운동 원리는 전체적인 지식이다.

그리고 이 전체적인 지식은 기계가 운동하는 모든 부분적인 지식에 적용시킬 수 있다. 즉, 전체적인 지식은 끊임없는 변주가 가능한 지식이다. 예컨대, 기계의 운동 원리는 자동차뿐 아니라 자전거, 포크레인, 비행기, 선박 등에 모두 적용시킬 수 있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지식만으로는 다른 교통수단을 다룰 수 없다.

이러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광고의 예를 들어 보자. 대학에는 광고인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광고홍보학과가 있다. 이 광고학은 실용적인 학문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교과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전공과목으로 ‘사회심리학 개론’,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등이 개설되어 있다.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학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광고의 실제 기획, 제작 능력뿐만 아니라 가장 인문학적인 과목인 ‘심리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광고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가장 유효적절한 상품 홍보 활동이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문적 소양은 실용적 지식을 통해 그 빛을 발한다. 실제로 가장 인문적인 학문은 가장 실용적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류학이다. 인문학의 한 분과인 인류학은 서양 제국주의의 요구가 반영된 대단히 실용적인 목적의 학문이다. 서양과 달리 기록 문화를 통해 그들의 역사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소위 미개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구조를 파악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 생겨난 학문이 인류학이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일본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맡긴 인류학적인 결과물이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앞에서도 예로 든 것처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광고 산업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데, 이를 위해 심리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상품 구입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 물건을 구입했을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려면, 인간의 심리 구조에 대한 이해가 빠질 수 없다. 또한, 세계화가 진척될수록 기업들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설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해당 국가에 대한 연구를 반드시 해야 한다.

인문학은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다양한 학문 분과를 활용하여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준다. 또, 최근 각광받고 있는 다양한 시뮬레이션 게임 역시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즉, 가상의 적 비행기를 맞춰서 떨어뜨리는 초기의 단순한 게임과 달리 이제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 구조를 게임에 반영하여 게임 안에서 한 편의 인생이 펼쳐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게임에는 이야기 구조가 필수적이어서 각종 고전들을 재해석하여 게임의 줄거리로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비롯한 각종 전쟁사들을 재해석하여 게임의 전체적인 틀을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지식은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이 상호 대립적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을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용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의 상호 대립적 측면

◎ 분과 학문 체계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실용적 지식과 인문적 소양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실용적 학문을 전공한 이들에게 인문적 소양은 자신의 인식 체계를 돌아보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가늠하게 해 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조망하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 학문과 인문학을 마치 분리된 것처럼 여기는 이유는 분과 학문 체계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학문은 체계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려 한다. 학문의 세계가 발전하여 세분화되면서 세분화된 학문들이 기존의 학문 체계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언어로 일정한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즉, 또 하나의 성을 쌓고 독립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학문 간의 벽은 더욱 두텁고 높아져서 상호 교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가치는 사실 전체를 아우르는 그 폭과 깊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과 학문 체계 안에 안주하면서 인문학은 세분화된 학문 체계 내에서 전공자들만이 주고받는 담론 체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문학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실용 학문과의 소통을 소홀히 했고, 인문학 안에서도 철학과 사학, 사학과 문학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데에도 실패했다. 즉, 인문학이 실용적 지식과 동등한 일개 학문으로 전락하고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 상당한 책임은 인문학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 실용 학문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여기에서 실용이란 말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실용이란 ‘실제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이란 뜻이고, 실용적 지식이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대 사회의 분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각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당연히 인문적 지식보다 당장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문 지식과 실용 지식이 짝을 이룰 때의 ‘실용 지식’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지식 체계를 일컫기도 한다. 대학 진학의 목적은 해당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대학의 졸업장을 취득했느냐는 사회적 권력 체계에서 어디에 입지할 수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 주기까지 한다. 실용 학문을 선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이나 법학, 의학을 전공해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법조계, 의학계에서 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상류층에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와 같이 실용 학문을 선호하는 이유는 실용 학문이 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용 학문의 성격이 사회적인 가치, 즉 자본의 축적이나 명예의 획득에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