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최근 인터넷 신문 '오마이 뉴스'에 실린 어떤 학부모님의 고민을 담은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 교육 현장 문제를 다시 곱씹게 됩니다.



제목 : 왜 저한테 주십니까?

-학년 말에 선물을 받은 어느 담임선생님의 인사


새 학기가 시작됐다. 며칠 건너 한 번씩 암울한 교육현장의 적나라한 실태가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돈이면 성적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타락한 교사와 학부모. 조폭사회의 점조직처럼 대학진학을 위해서라면 수능 정답 조직도 문제없이 가동하는 무서운 학생들.

이 아이들이 자라 무엇이 될까 등골이 서늘해지는 현실이다. 뒤에서 분통만 터뜨리고 한탄만 할 만큼 한가한 현실인가? 뜻있는 학부모들이 교육현장에 참여해 함께 고민하고 바로잡아 가야 한다는 현실인식. 바로 그 고리가 학교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운영위원으로 뽑힌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인 어제 일이다. 교육을 걱정하는 이러저러한 이야기 속에서 마침 교사의 자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에 고등학교 수학교사를 했던 친구가 딸 담임선생님께 선물을 주러 갔다가 당한 황당한 상황을 재연했다.

자신도 교사였기에 학부모들이 건네주는 촌지와 선물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선물을 하더라도 꼭 학년 말에 하는 것이 철칙이었는데 딸아이 담임선생님이 선물을 받으면서 그러더란다. "그런데 왜 저한테 주십니까?"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어 너무 당황했지요. 그런데 그 말이 영양가 있는 2학년 담임에게 주지 끝나는 자기에게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그런 뜻이겠지요. 너무나 황당해서… 참, 그렇게 솔직한 선생도 드물 거예요. 하하하."

"정말,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 겨울 방학 시작 전에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왜 이제 왔냐고 하더라구. 학기 초에 왔으면 잘 봐줬을 거 아니냐는 뜻인지 원! 대단한 선생이더라."

지금은 대학교수인 지인이 딸아이 초등학교 때 일을 털어놨다. 하기야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학부모가 어디 한둘인가. 내 친구 선배인 어떤 교수 부부는 자기 아들 초등학교 때부터 고3 때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담임선생님을 챙겼다고 자랑을 하더란다.

교수도 그냥 교수가 아니라 교대 교수가 그 모양이니 말해 무엇하랴. 그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수많은 교대생들이 무엇을 배울까 정말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온갖 지극정성을 다해 키운 그 아들이 다행히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학창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고 명문대학에 진학해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재수도 안하고 한번에 덜커덕 붙었으니 그 교수가 촌지 준 것 부끄럼 없이 떠들 만도 하지 않은가. 교육자에 대한 자질검증이 제대로 안 되는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

10년 전, 지방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이삿짐을 쌀 때 초등학교 교사인 후배가 이사준비를 거든다고 찾아와서 내게 간곡한 부탁을 했다.

"언니, 아이들 전학시킬 때 담임선생님한테 단돈 5만원이라도 꼭 봉투를 줘. 지방은 서울보다 차별이 더 심하거든. 가뜩이나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이 힘들 텐데 담임마저 챙겨주지 않으면 아이들 왕따 당하기 딱 알맞단 말이야. 아이들 기죽이지 말고 성의껏 봉투 준비해야 돼."

"아니 너도 그런 말 하니? 선생들이 정말 그 정도야?"

"사람 마음이 참 그래. 나한테 잘 해주는 학부모의 얘들은 눈길 한번이라도 더 주게 된다니까."

아이들 손잡고 전학수속을 하기 위해 찾아간 학교에 나는 맨손으로 달랑달랑 갔다. 5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기가 싫어서였다. 행여 우리 아이들 따돌림 받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후배의 마음은 알겠지만 내 아이가 그런 방법으로 특별대우를 받게 하는 것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운수 사나워 촌지 밝히는 담임을 만난다 해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 씩씩하게 제 대접 받는 길 찾는 뚝심. 그것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교육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자식 가르치느라 고생하신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선생님껜 눈치 보지 않고 내 성의껏 선물을 준비했다. 음악 CD나 작설차, 때로는 책 선물을 하기도 했다.

딸 아이 고2 때 담임선생님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 분은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과목에 안 어울리게 유난히 순한 성품의 선생님이셨단다. 순한 성품의 담임을 쉽게 보고 함부로 기어오르는 아이들이 많았던지 딸아이는 집에 들어와 담임이 불쌍해 죽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엄마 기집애들 꼴 보기 싫어 죽겠어. 어쩌면 선생님한테 그렇게 싸가지 없이 대드냐. 자가용 없는 선생님은 우리 담임뿐이야.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데 사모님이 건강이 안 좋대. 티셔츠도 2개밖에 없는지 그것만 번갈아 입고 다닌다니까."

딸 아이 말을 듣고 보니 그 선생님이 계속 걸렸다. 티셔츠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전할 방법이 난감했다. 그럴 즈음 추석이 다가 왔다. 그렇잖아도 선생님께 명절선물을 챙기고 싶었는데 우리 집에 갈비세트가 들어 왔다.

지지리궁상으로 사는 후배 식구들에게 갈비짝이라도 먹이고 싶었던지 남편 선배분이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그 선물을 본 순간 딸아이 담임선생님이 생각났다.

포장도 뜯지 않고 냉장고에 모셔둔 뒤 선생님 주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소확인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어느 동네 아파트까지는 알았는데 단지와 동 호수를 알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자경이 엄마입니다. 사모님 편찮으시단 소리 듣고도 찾아뵙지 못해 많이 걸렸거든요. 마침 오늘 제가 선생님 동네를 갈 일이 생겨 사모님 얼굴이라도 뵙고 싶은데 동 호수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뜬금없는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의 당황한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예상했던 대로 선생님은 정중하게 거절을 하셨다.

"자경어머님 고맙습니다. 저희 안사람 이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는 선생님께 나도 암 투병중이라 아픈 사람 마음 너무 잘 알아 그런다고 생떼를 써 간신히 주소를 알아내곤 한걸음에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다.

20평 조금 넘음직한 작은 아파트. 방 2개에 좁은 거실, 나 사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학부모 방문은 처음이었는지 사모님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아파 봤기에 사모님이 얼마나 힘드신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요. 부담 갖지 마시고 맛있게만 잡수십시오. 저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약, 좋은 음식 챙겨줘 그 덕에 잘 버티고 있답니다."

난생 처음 딸아이 선생님께 갈비짝 선물을 안기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부끄럼 없는 선물이라면 그것이 돈이든 선물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문제는 일부 질 나쁜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 사이에 은밀히 거래되는 커넥션으로 인한 불신의 시대가 교육을 망치는 것 아닐까.

아무리 법과 제도를 수없이 개발해도 마음먹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악한 인간은 막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교실 안 폭력을 경찰 몇 명으로 막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제 자식을 위해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교사를 매수하는 불량 학부모들을 법과 제도로 막을 수 있을까?

돈에 눈멀어 교육자의 양심은 약에 쓸래도 없는 일부 교사들은 또 무엇으로 제재할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최소한의 지각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 처음과 끝이 교육, 그 안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

오마이뉴스  조명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