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랑이 끝나고 또 다른 유랑이 시작되었다

 

출 전 : 창비주간논평. 2008-10-29

글쓴이 : 김선우 /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죽었다. 팔월이었다. 나는 일기장을 펼치고 이렇게 썼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그가 죽었다. 하나의 유랑이 끝나고 또다른 유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르위시의 부음 앞에서 나는 오래 머뭇거렸다. 그는 아무래도 세상에 다시 와야 할 것이다. 그때, 그는 어디로 올까. 설마 다시 이스라엘 점령하의 팔레스타인? 오, 이런! 탄식과 착잡함이 나를 흔들었다. 세상에 던져지는 개인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무슨 말을 더하랴.

  "팔월에 그는 돌아갔다. 유월에 다시 오기 위하여"라고 나는 다시 일기장에 썼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냥, 그렇게 썼다. 그의 사망을 전하는 외신기사에 첨부된 몇장의 사진에서 운구 헬리콥터 주변에 가득 모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를 향해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운구되는 그의 시신을 향해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이는 팔레스타인 소녀도 보였다. 그들은 한사코 V자를 만들었다. 아, 저들은 다르위시의 마음으로 다르위시를 보내고 있구나! "시는 자유를 향한 거대한 광기입니다. 아무리 삶이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그 안에서 빛을 찾고 희망을 만드는 게 시인의 사명입니다"라고 말하던 그.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불치의 병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그의 방식으로 그를 보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았다.

  아직 아프지만, 그래도 당신은 외롭지 않다…… 나는 그에게 속삭여주었다. 그 밤에 오랫동안 하늘을 보았고, 별똥별을 찾았지만 별을 볼 수는 없었다. 오월부터 내내 작업실 베란다에 켜놓았던 촛불 옆에 초 하나를 더 밝힌 밤이었다. 삼일장(三日葬). 내 식대로! 삼일 동안 켜둔 다르위시를 위한 촛불은 삼일 후 바닥에 심지만 남기고 납작하게 접시에 달라붙었다.

 

 

내 어머니께

 

어머니의 빵이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커피도

어머니의 손길도

아이의 마음이 내 속에서 자라납니다

하루 또 하루

저는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제가 죽으면,

어머니의 눈물이 부끄러우니까요!

 

저를 받아주세요, 언제고 제가 돌아간다면

어머니 속눈썹의 장식 띠로

당신의 순결한 영광으로 세례를 받은

풀로 저의 뼈를 덮어주세요

그리고 저의 몸을 꼭 묶어주세요

당신의 머릿단으로

당신의 치맛자락에 나풀거리는 실밥으로

어쩌면 저는 신이 될 거예요

신이 될 거예요,

당신의 가슴 그 깊은 곳을 만지기만 한다면!

 

저를 써주세요, 제가 돌아만 간다면

당신의 빵틀에 불 지필 땔감으로

당신 집 지붕의 빨랫줄로

당신의 낮 기도가 없으면

저는 어디에고 머무를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늙었습니다, 그러니 유년의 별들을 돌려주세요

당신이 기다리는 둥지로

돌아가는 오솔길에

어린 참새들과 함께하도록!

 

-1966년 시집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에서

 

1941년 갈릴리 호숫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니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이 시를 쓴 것은 25세 전이다. 25세도 안된 젊음이 "저도 늙었습니다"라고 노래할 때, 그 땅의 젊음들이 그처럼 고단했으리라. "당신이 기다리는 둥지로/돌아가는 오솔길에/어린 참새들과 함께하도록!" 이토록 단순한 표현에 마음이 울컥하다니.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그들의 고단한 생에 스며든 마음이라면 저러한 시어 하나가 어떻게 눈물과 회한으로 연결되는지 읽을 수 있다. 때로 묻는다. 도대체 좋은 시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나(개인)들'이며 우리는 모두 대지에 속해 있는 자들. 나의 희로애락이 지구 저편의 희로애락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별의 사람들인 우리는 어떻게 서로의 그림자를 껴안으며 이 별을 위로할 것인가.

 

  적어둬라!

나는 아랍인

내 등록번호는 50000번이다

(…)

내게 증오는 없다

남의 권리를 앗을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내가 굶주린다면

착취자의 살점이 내 밥이 되리라

조심하라

조심하라

내 굶주림을

내 분노를.

 

-「아이덴티티 카드」 부분

 

다르위시는 아라파트 의장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에 합의하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탈퇴한다. 그후 정치권과 절연한 채 오랫동안 떠돌며 시를 썼다.

 

 

우리는 정체성의 땅

그 중력에서 풀려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우리는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그리고 긴 밤이 없다면

강물을 응시하는 이 긴 밤이?

 

-「유랑이 없다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부분

 

유랑, 저항, 투옥, 유랑, 저항, 투옥…… 그리고 나이 든 다르위시는 고백한다. "한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를 바꾸고,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가 바꿀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시인 자신뿐이란 것을." 아프지만 수긍한다. 열렬히 싸워온 자의 고백이므로 수긍한다. 그리고 조금 덧붙인다. 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시인 자신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몇몇의 사람들이 여전히 시를 통해 자신을 지켜간다는 것은 더더욱 놀랍지 않은가.

  한때 우리는 시를 향해 전위를 운운했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혁명보다 혁명 이후를 지키는 것이 시의 정신이라고. 어떤 혁명도 혁명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혁명은 영원히 미완이다. 혁명이 완성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부패는 시작되고, 조직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 타락의 가능성이 내포된다. 그때 타락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내부의 자기 성찰력뿐이다. 시는 혁명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시는 혁명 이후 혁명의 마음을 지킨다. 시는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시는 최초의 조직의 순수를 향해 깨어 있을 수 있다. 불안한 후위에서 시는 아주 느리게 개인의 역사에 작용한다. 불안한 후위, 그것이 시가 여전히 '춤추는 별'인 이유가 아닐는지.

작년, 한국에서 개최한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에서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보았다. 지병인 심장병의 악화 때문인지 그는 몹시 피로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랑에 대하여'(About Roaming)라는 흥미로운 발제를 들려주었다. 내적 유랑, 외적 유랑, 자발적 유랑에 대한 비범한 언표들이 곳곳에서 반짝였다. 한 대목이 기억난다. "수백만의 피난민, 유랑자, 강제이주자, 추방당한 사람,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권리를 빼앗긴 사람,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비참함과 고통 그리고 재앙들을 망각할 권리가 작가에게는 없다." 나는 내가 읽었던 그의 시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 중 아무 구절이나 마음에 떠올려보았다. 몹시 피로해 보이는 그에게 무엇으로든 응원을 보내줘야 할 것 같았으므로.

   

그대는 이 밤에도 달 위에 못박혀 있다

나는 나의 밤에게 말했다: 돌아가라!

밤과 성벽 뒤로

내게는 낱말들과 빛과 맺은 약속이 있으니까

그대는 나의 순결한 정원

우리들의 노래는 아직도

겨누기만 하면 검이 된다

그대는 밀처럼 충직하다

우리들의 노래는 아직도

심기만 하면 거름이 된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 부분

  팔월에, 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죽었다. '하나의 유랑이 끝나고 또다른 유랑이 시작되었다'고 나는 일기에 썼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팔월에 그는 돌아갔다. 유월에 다시 오기 위하여'라고.

 

2008.10.29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