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MB 영어정책 정면비판…네티즌 열광

‘우리 십대에게 필요한 영어는 돈을 벌기 위한 영어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십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만의 표현들입니다.’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영어교육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글이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인수위 홈페이지 국민성공정책제안 게시판에 지난 1일 ‘고 1 학생의 글입니다. 꼭꼭꼭 읽어주십시오’ 제목으로 ‘박윤호’씨가 올린 이 글은 조회수가 1500여건을 훌쩍 넘고 수십 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글을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퍼나르며 “차기 교육부장관감”, “속이 다 시원하다”, “진짜 고1이 쓴 것인가. 정말 개념글”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비보이들은 영어 한마디 못해도 외국에 나가서 몸으로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영어 잘해서 세계를 감동시키고 박지성 선수가 영어를 잘해서 프리미어리그에 들은 게 아니잖습니까’, ‘제발 우리의 창의력을 당신들의 잣대로 억누르지 말아주십시오. 음악으로. 색깔로. 몸짓으로 소통하는 21세기를 당신들은 보지 못 하는 겁니까?’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 네티즌들은 “완전 공감”, “제발 이명박 당선인이 이 글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며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이 정말 고등학교 1학년생이 작성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글이 논리적으로 매우 탄탄해 ‘대학원생급’이라는 탄성을 자아내는 것은 그렇다해도, 인수위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 ‘고1 학생입니다’라고 시작하고 있을 뿐 정말 고등학생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글이 일파만파 인터넷상에 퍼져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글에 공감하고 있는데, 글을 쓴 고1 학생이 언론에 직접 나와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수위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전문이다.

<전문>

고1 학생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라디오 영어프로를 1시간씩 듣고 저녁에 EBS 영어회화를 보고 영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토익은 만점 나오고요. 외국인과 의사소통 전혀 문제없습니다. 인수위의 정책들 보면서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인수위식의 영어는 배우기 싫습니다. 이 나라 교육이 몇 년 째 영어랑 씨름중입니까? 20년 전에도 국.영.수 세과목이 이 나라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10년 전에도 국.영.수 세과목이 이 나라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학창시절에 정말 제대로 배웠으면 했던 과목이 무엇이었냐? '한문'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사'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3학년 수험생이 되는 순간부터 '자습'시간으로 변해버리는 '음악'과 '미술'과 '체육'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지금 현장에 나가서 학생들한테 물어봐주세요. 뭐가 가장 배우고 싶은지요. 영어 말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면 사교육 안 할것 같나요? 이명박 당선자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외국에서 대학하고 MBA한 사람들을 한국에 불러서 자원봉사" 시키겠다구요? 원어민도 아닌 교사 아닙니까? MBA하면 미국사람처럼 영어 가능합니까? 저 같으면 그 시간에 그냥 학원가서 원어민 영어교사랑 5:1로 그룹스터디 하겠습니다. 지금 한 반에 학생 수가 몇 명입니까. 40명 아닙니까. 아니 그냥 EBS 영어회화 틀어놓고 하루 1시간씩만 달달 외우면서 공부해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더 고차원적 의사소통하는데 필요한 것은 어휘력이지 발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외에서 활동에 제약받는 게 있습니까?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발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휘력은 자기가 안 외우면 아무리 옆에서 집어넣어줘도 안 늡니다. 우리가 영어 못해서 경쟁력이 없습니까? 중국어로 중국 진출하고 일본어로 일본 진출하는 한국인들은 학창시절에 중국어와 일본어 배운 분들입니까? 다들 필요에 의해서 도전하고 배운 분들입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의식 역사의식이 먼저 갖추어진다면 영어 잘 못해도 외국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없으니까. 영어 단어 몇마디 틀리면 위축되는 거고 상대방 눈치만 살피다가 머리 속은 백짓장이 되는 거 아닙니까. 공교육이 정말 고민해야 될 문제가 뭔지 그렇게 모르시겠습니까? 수 십년 째 국어.영어.수학 이 전부였던 이 나라 공교육 정말 칼을 대고 싶으면 이걸 고치시기 바랍니다.

영어로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라구요? 학교에서 40명 모아놓고 성적 발표하는 날 아이들 앞에서 똑같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 성적이 앞으로 사회에서 너희의 신분이다" 라고 새싹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40명 모인 교실에서 무슨 영어수업이 가능합니까. 현직 선생님들의 능력 운운 하십니다만 현직 선생님들이 정말 회화가 안 되서 영어로 수업을 못하시는 걸까요? 수많은 학생들을 같은 진도로 이끌고 가야되니까 안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정말 영어만 잘하면 우리가 선진국이 되고 정말 영어만 잘하면 우리가 세계 1류 국가가 된다면 다른 과목은 다 버리고 영어만 합시다. 다른 과목 뭐하려고 합니까. 안 그래도 공교육은 이미 문학과 예술과 역사는 버렸습니다. 지리나 생물 같은 과목도 뒷전이 되었구요 한문이나 제2외국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교육이 뭐 때문에 존재합니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존재합니까?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지성과 교양을 함양해주는 것이 공교육 아닙니까? '선생님 저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그 시간에 수학이나 한 문제 더 풀어라. 이게 우리 교육의 현실 아닙니까? 정말 인수위의 말이 많다면. 그렇다면 우리나라 공교육은 전 과목 다 폐지해버립시다 오직 영어 한과목만 가르쳐서 세계 제일의 선진국이 되어 보자구요.
  이 당선자여.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의 마음이 뭔지 압니까? 당신은 임시입니다. 임시 대통령이요. 당장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나마 가장 임기응변을 잘 할듯한 사람이라 뽑아준 겁니다. 기업인 출신이니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제발 쓸데 없는데 삽질하지 말고 본인 앞가림이나 잘해주세요. 공교육에 대한 교육철학을 국민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기본권침해입니다.

그리고 이경숙 위원장. 인수위는 인수인계나 하세요 대학교에 적용할 교육철학을 중고등학교에 적용하려 하지마시고요 대학과 중고등학교는 엄연히 다릅니다. 저는요 40명 교실에서 발표할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하며 귀로만 듣는 원어민 수업 따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바엔 영어테입 듣게 어학실이나 만들어주세요 서로 실력이 맞지 않아서 아이들끼리 눈치 보는 그런 반 분위기도 싫어요. 영어수업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현실과 무관하게 대통령 업적으로 추앙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싶습니다. 제대로요 국.영.수 말고 제대로 역사와 문학과 예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그게 21세기 문화 시민으로서 세계화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세계는요 영어로 모든 소통을 하는 것 같지만 말이 아닌 것으로 소통을 합니다.

우리나라 비보이들은 영어 한마디 못해도 외국에 나가서 몸으로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영어 잘해서 세계를 감동시키고 박지성 선수가 영어를 잘해서 프리미어리그에 들은게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이미 세계화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십대에게 필요한 영어는 돈을 벌기위한 영어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십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만의 표현들입니다. 제발 우리의 창의력을 당신들의 잣대로 억누르지 말아주십시오. 이것은 중대한 인권침해입니다. 음악으로. 색깔로. 몸짓으로 소통하는 21세기를 당신들은 보지 못 하는 겁니까?
                                 출전 : 세계일보 신미연 기자 minerva2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