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하늘만 쳐다 보아도 가슴 설레게 합니다.
지난 몇 년을 통틀어 보아도 올 해처럼 가을다운 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는 게 힘들수록 좋은 날을 맞이하는 마음은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 가을은 산이 더 아릅답고 그리운 님이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그것도 아주 오랫만에 아내와 함께 산엘 올랐습니다.
처음 가보는 청계산입니다.
서울에 둥지를 틀고 산 지도 벌써 서른 해가 넘었어도
한 번도 눈 길을 주지 못했던 산입니다.
양재동 뒷 길을 지나
원터마을에서 오르는 산 길을 따라 자박자박 청계산을 올랐습니다.
서울을 둘러보는 산 중에 나즈막 하면서도 그 자태가 꼭 여인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워
사람 발 길을 힘들게 하지 않는 고운 산이지요.
평일임에도 산 오르는 이들이 제법 많아서 호젓한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도 숲이 주는 신선함과 그윽한 내음은
산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그윽하게 합니다.

아내는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중이어서 힘차게 걷지는 못 하지만
제 걸음을 놓치지 않고 줄 곧 잘 따라왔습니다.
옥녀봉을 올랐다가 다시 되짚어 매봉을 오르는데 한나절이 걸렸습니다.
오르는 걸음은 느릿느릿 했지만 몸은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긴 계곡을 이루는 청계을 따라 내렸습니다.

오르내리는 길에 사람들 발걸음 무게로 단단해진 길은 오랜 가뭄탓인지
먼지가 폴폴날렸습니다.
관청에서는 조금 험하다 싶은 고갯 길은 모두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그윽한 산 정취를 오히려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산을 오르는 이들을 위한다는 마음은 가륵하지만
오르면서 느끼는 마음은 내내 꺽여진 계단 수 만큼이나 답답했습니다.

다시 원터마을로 돌아와 콩비지 찌게백반을 먹으면서
산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고개 마루마다 푸른 기운이 서늘하게 감도는 청계는
말 그대로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 가을 산의 정취는
그 산이 지닌 이름으로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