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1일 마니샘과 함께 했던 도반들에게 띄우는 편지글입니다. 이 글은 도반들 집으로 우송합니다. (혹 집에서 받지 못하는 도반들에게 남기기 위해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마니샘 논술 배움의 숲 도반들에게


가을이 깊어 갑니다.
가을이 오는 가 싶더니 아직도 가을입니다. 여름이 가는 가 싶더니 아직도 여름 속살이 짙게 가을 속에 배어 있습니다. 계절은 순환의 진리를 일깨워 주고 인간은 그 순환의 원리 속에서 삶의 이치를 배워갑니다. 한반도를 휘감아 가는 해수온도가 아직도 여름의 정취를 즐기고 있어 쉬 여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사회과학적 인식 체계로 보면 이 계절은 우리들에게 생태환경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일깨워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야 할 것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가야만 제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와야 할 것들은 제 때 와야만 제 역할을 해내는 것처럼, 이렇게 자연이 더디 움직이고 갈 곳을 못 찾아 웅크리고 있게 되면 아무래도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이별은 늘 아쉬움만 남습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깊은 가을 햇살 속에는 세월이 자연을 통해 그 흐름을 보여주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 속내를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요즘입니다.
이별의 한마디 없이 여러 도반들과 이별을 한 저는 마음속에 많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있습니다. 사람은 머물러 있어야 할 곳과 떠나야 할 곳을 잘 분별하여야 지혜롭다고 하였는데, 저는 그 동안 참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늘 떠나야 함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반들을 만날 때마다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반들이 중간고사를 치루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홀연히 떠나왔습니다.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라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별이 내가 생각해 온 것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핑계삼으며 떠나야 함을 늦게나마 알려드립니다.


도반들이 그립습니다.
제 마음 속에 살아있는 도반들 모습을 봅니다. 토론 수업 때 불꽃처럼 타오르던 도반들의 열정을 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깊은 속내를 털어놓으며 자신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고자 했던 도반들의 아픔도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 학교 생활에 대한 고민을 어렵사리 풀어놓으며 제게 해법을 바라던 도반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하였음을 생각하니 참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특히 정시를 앞 둔 고3 도반들에게 더없이 미안함이 남습니다. 마지막까지 힘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리되지 못 하여 안타까울 뿐입니다.


해오름에서 배우며 일하며
저는 이제 해오름에서만 일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부족한 제가 여러 곳에서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힘이 부쳤나봅니다. 해오름은 지난 94년에 설립된 논술연구소이면서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교육단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곳에서 고등학생 도반들과 논술공부를 합니다. 오전에는 논술교사들과 연구활동과 교수활동을 하고, 해오름살림학교 어린이들과 교육예술 활동도 합니다. 밤엔 주로 이 지역 고등학생 도반들과 논술공부를 합니다.


돌아보면 늘 아름답습니다.
지난 7년 동안 현덕학원에서 논술강의를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진정성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빛나는 도반들을 만난 것이 가장 보람되고 아름다움 시간이었다는 것을 간직합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살아가기 위해선 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저 또한 수 많은 이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입은 은혜와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인연은 아주 질기고 긴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이별을 통해 잠깐 소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다시 재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인연이든 옅은 인연이든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참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반들과의 만남이 저에겐 더없이 소중한 인연으로 남습니다. 앞으로 자주 볼 수는 없더라도 서로의 삶을 걱정해주고 기억해 준다면 우리들의 인연은 단풍잎에 스민 세월의 흔적처럼 깊이 서로의 마음 속에 아로새겨질 것입니다. 그 인연을 보듬고 언제든 도반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억하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오늘이 내일의 보람과 기쁨을 생산합니다.
미래를 막연히 바라보는 낭만적인 태도보다는 오늘의 애씀이 내일의 보람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늘 오늘은 어려운 과제가 나에게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다면 오늘과는 전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반들의 삶에 이러한 진정성이 하루하루를 이루어 가는 바탕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또 다른 길을 계획하고 추구하더라도, 그리고 삼십대 사십대가 되어서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를 스스로 즐겁게 맞이하고 수행하면서 참된 삶의 의미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느끼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건강도 중요합니다.
서서히 건강을 잃어가거나 자신의 몸에 대한 문제를 느낄 때부터 건강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힘은 자신의 굳센 의지와 맑은 정신의 힘이 좌우하지만, 의지와 정신을 생성시키는 것은 바른 몸과 건강한 몸입니다. 도반들과 수업 할 때마다 안타깝게 느낀 점은 해가 갈수록 도반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특히 장이 약해서 편두통을 앓고 있거나 변비를 달고 다니거나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해 집중력을 이어가지 못 하는 도반들이 많고, 시험 때마다 감기 몸살을 정기적으로 감내하는 도반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내가 살아갈 미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내 미래를 갉아먹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할 때 공부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일이 바로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모두에게 평화를~!
평화는 한자어로 平和입니다. 평(平)은 골고루, 평평하게, 평등하게 고르게 하는 뜻을 품고 있고, 화(和)는 밥을 먹는다는 뜻을 안고 있습니다. 즉 골고루 함께 나누는 일이 ‘평화’라는 말에 깃든 정신입니다. 늘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정신을 굳건하게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논술적 사고는 열리고 풀려나게 됩니다. 도반들에게 평화의 정신과 신념이 올곧게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세계의 모든 문제는 “함께 나누는 일”의 결핍과 장애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면 나는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는 수용할 수 있는 삶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자신의 품은 뜻 정성을 다해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기억하는 도반들에게 하나님 크신 사랑과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길 기대합니다.

2006년 10월 21일

해오름에서 토토로 마니샘 (박형만) 드림

www.heorum.com (해오름 누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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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many07@hanmail.net (마니샘 이을 곳)


* 작은 선물을 보냅니다. 제가 일하는 해오름에서 매달 펴내는 논술교사용 월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