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동네 가로수들은 은행나무입니다.

이미 잎들을 떨궈내고 겨울 채비를 하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느긋하게 늦가을  햇살을 즐기는 녀석들도 있지요.

그러고보니 오늘 수능 날입니다.

지난 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던 수능부정사태가 불현듯 떠오르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천박성이 한탕주의로 귀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각인하는 날이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 동안 함께 공부했던 수많은 도반들을 한 사람 한사람 떠올려 봅니다.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도반들도 있고

특징은 기억하지만 얼굴이 자세하게 떠오르지 않는 도반들도 있습니다.


잠시나마 인생을 논하고 세상을 논했던 논술 시간,

격렬하게 토론하면서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함께 가슴아파하며

이 문제를 어찌할꼬? 걱정을 나누었지요.


오늘 수능날입니다.

많고 많은 허구한 날 중에 또 다른 하루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무엇인가 특별한 날인 것 같습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십이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갈고 닦았던 학업을

남김없이 송두리채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이 몇장으로요......

단 하루만에......


우리 인생이 이렇게 가볍지 않은 것인데,

우리 삶이 이렇게 내동쳐져서는 안 될 것인데,

우리는 이런 하루를 통해 생생하게 내 삶을 저당잡히게 됩니다.

누구나 이 관문을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리고 이 시험이 다가 올 내 삶을 철저하게 규정하고 규울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더 이 하루가 통렬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금 언어영역이 끝나고 수리 영역을 치루고 있을 도반들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배우고 익히고 노력한 것만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언듯언듯 스치며 지났던 기억들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서로 흩어져 있던 조각 지식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문제를 또렷하게 읽고 선연하게 풀어낼 수 있기를~!!!


시험 끝나는 벨이 울리기 전까지

집중력 잃지 않고

졸리지 않고

척추의 곧은 힘을 빼앗기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어

차근차근 답안을  잘 써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올 한해동안 재수의 길을 걸으며 재도전의 꿈을 풀어 낼 도반들에게도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수능 시험을 치루는 모든 도반들에게

하루 해가 다가고

시험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맞이할 저녁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가득하길 기대합니다.


도반들 곁에서 늘 안타까움으로만 함께 하는 마니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