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컴퓨터(PC)가 처음 나왔을 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물리학과에서 논쟁이 있었다. 물리학 개론 과목에서 전자입자를 깨는 실험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르칠 것인가 여부. 2년여 동안 토론 끝에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하는 실험만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손으로 직접 실험도구들을 만들고 설치하고 실제로 전자가 깨지는 흔적까지 눈으로 확인을 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결정의 근거였다. 교수들은 전자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손으로 만들고 눈으로 보는 과정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훨씬 깔끔하게 결과를 보여주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직접 실험도구를 접착제로 붙이고 끼워서 만들어야만 했다.

자연과학을 하는 선배의 경험담 하나. 좋은 학자로 성장하는 학생들의 특징을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실험실 설거지를 늘 잘하더라는 것이다. 실험도구, 재료와 시약이 손에 익어서 눈을 감고도 실험 과정 전체(예를 들면 세밀한 화학반응 과정까지)를 머릿속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배 교수는 실험실에 들어오는 대학원생들에게 설거지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뛰어난 축구선수는 훈련일지를 작성한다고 한다. 좋은 훈련일지는 오늘 패스 연습을 몇 번 했다는 식이 아니라 아 그때 안으로 파고들지 말고 옆으로 빠졌어야 했던 것 아닌가와 같이 구체적 기록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훌륭한 선수들은 경기에 나가기 직전에 오늘 이뤄질 시합 전체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그 그림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기획한다고 한다. 움직임에 대한 기획. 이때 훈련일지는 선수 자신의 몸의 움직임과 그 결과에 대한 판단·평가·성찰을 담는 그릇이 된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실습과 예술이론을 통합함으로써 20세기 건축과 디자인에 커다란 전환을 이룬 미술공예운동이었다. 미학과 기예의 통합. 이 학교 신입생은 실습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6개월간 목공·도예·스테인드글라스·벽화직조·그래픽·인쇄·무대연출 등을 직접 배우고 전문 직공 자격증을 따야 했다. 파울 클레가 스테인드글라스와 회화를 담당했고, 바실리 칸딘스키가 벽화를, 라이오넬 파이닝어가 그래픽을 가르쳤다. 손과 머리를 통합했던 대표적 사례이다.

공부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다르게 가르쳐야 할까, 혹은 배우는 방식이 달라야만 할까. ·중등 12년과 대학, 때로는 대학원까지의 교육과정에서 점수로 사람을 끊임없이 가른다. 공부를 잘하면 의대·법대 가고, 경영대와 공대에 간다. 국영수 성적이 나쁘면, 기술 배우라면서, 요리, 자동차 정비, 미용 등등 직업교육을 시킨다. 정말 잘못된 교육과 학습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이 손으로 실험기기를 조립하고 도출된 결과를 정리하고 확인하는 과정, 축구선수가 전체 경기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리고 상대 팀의 배치와 움직임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서 자신의 플레이를 운용하는 과정은 사실상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과학 잘하는 아이는 올림피아드만 준비시키고, 축구 잘하는 아이는 운동장에서 놀게 하는 오류를 우리 교육 전체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성적이 좋은 선수가 있으면, 공부도 잘한다고 칭찬한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요리 배우고, 운동선수로 뛰고, 패션디자인 배우는 게 아니어야 함에도 우리는 그렇게 나누고 차별한다. 국영수 잘하면 손과 발은 묶어 놓고, 책상에 앉아 문제풀이만 시키는 학습을 시킨다.

대학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이론과 개념 중심은 여전하고 실험과 실습은 이론을 배우기 위한 보조에 불과하다. 사회봉사나 현장실습은 대충대충 쉬어가는 과목이다. 몸을 던져서 하는 봉사, 손과 발의 느낌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공작(工作)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육과 음악·미술은 고상한 취미나 교양을 갖추기 위한 우아한 활동으로 치부된다. 칸딘스키의 날카로운 사각형의 선이 드러내는 무한과 유한의 인식은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것 아닌가. 손과 발은 몸과 머리, 감성과 인식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손과 발이 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여전하다.

 

 

 

강명구 칼럼 /한겨레. 2013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