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역사논술 나눔터
안녕하세요.
막바지로 가는 역사논술, 우리 역사를 배우면서 긍지를 느끼기 보다는 한스러움과 분노를 더 많이 느끼지 않았나 합니다. 그 분노는 어제 오늘도 이어지네요. 막가는 세상을 뜻하는 사자성어라는 '용판무죄'와 기자회견 방송조차 잘라먹는 세상에, 혼자서 싸우는 권은희 님께 응원의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눈도 정상이 아니고 한글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컴퓨터도 없고.....간단히 정리합니다.
17강 현대사 (1)
1. 주어진 해방과 분단*<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해방의 의미와 분단에 대해 여러 축면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수업안 발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읽기 -해방은 어떻게 주어졌나? *해방은 도둑같이 왔다.(함석헌) /해방은 8.16일 하루뿐이었다.(안재홍)/ 해방은 청천벽력과 같이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경성 진공 작전이 무사로 돌아갔다.(김구) 제 2차 세계대전 후 선발제국주의와 후발제국주의 경쟁체제에서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대결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의 유리한 고지 점령을 위하여 전쟁 막바지 승리를 장담하면서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20만명 사상)하여 전대미문의 끔찍한 참상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였으며 일본의 식민지인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의 공동 손아귀에 들게 되었고 그들의 이익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점령군 미국 그리하여 38선에 따라 미소 분할 통치 구도가 이루어져, 남쪽에 미국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이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가 없던 미국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친일관리를 그대로 두었으며 우리의 자주적 건국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북한 정권은 친일파 처단하고 사회 개혁을 실시하는 가운데, 남쪽과 북쪽에서 사상적 개인적 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남하하거나 월북하여 그 이후 서로 분단의 상처를 깊게 하였다. - 국내 상황 정리 →건국준비위원회(여운형, 안재홍)- 중도좌파로 1944년 일본의 패망 예상, 건국준비, 좌우를 아우르는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주장했으나 미국의 반대에 부딪힘, 1947년 여운형 암살되며 뜻을 이루지 못함. →임시정부 세력(김구)-1919 상해시절, 집단지도 체재, 1931 한인애국단(윤봉길, 이봉창), 1940 충칭, 주석체재 →사회주의 세력(박헌영과 남노당, 김일성과 조선의용군-친소 사회주의로 독립무장투쟁 경험으로 북쪽 정권을 잡음.) →한국민주당(한민당-김성주와 송진우 따위의 친일파 세력과 그 얼굴마담 이승만-국내기반이 없던 이승만과 정통성 문제로 주저하던 친일파의 야합당-그후 지긋지긋한 그놈들의 역사는 길이 보전한다-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한다라당-새누리당]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미소공동위원회)-반탁, (처음) 대부분의 민족정서, 찬탁-(이후)사회주의 일부세력, 이렇게 사회주의 계열의 분리가 이루어지자, 친일파 무리들은 교묘히 민족주의 세력인 것처럼 변신하여 '민족' 대신 '좌우'이념 대립의 선봉에 서게 됨. →주요 연표 1947년 여운형 암살 1948년 4.3 제주 항쟁~54년까지 계속됨(2만 5천-3만 희생)-매도하는 세력의 정체를 바로 보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현기영<지상의 숟가락하나> 1948년 4.19 김구 38선 넘음 1948.5.10 단독선거 1948. 8. 15 이승만 취임 1949. 6.26 김구 암살 1949. 9. 9 조선인민공화국 1950. 6. 25 예정된 한국전쟁 -국외 상황 정리 미-38선을 소련에 제의해 합의를 봄, 국내의 건준, 임정 같은 어떤 세력에도 관심 없음, 오직 '미군정'만을 강요하며 친일파 대거 정부 요직에 임명→친일파의 변신, 역사 바로잡기 실패(지금까지 역사 왜곡의 연장선), 친일파의 득세와 친미파로 변신 모스크바 3상회의(45년 12월, 소련의 얄타) 1945.12 -미, 영, 소(루즈벨트, 처칠, 스탈린)- 미국의 안에 따라 신탁통치로 결정, 동아일보의 의도적 오보, 반미 대신 반소감정 유도 미국의 건준 반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 심화, 미소를 대신한 대리 전쟁 6.25,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패권 장악을 위한 제 3차 대전으로 봐야 한다. 이제까지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전쟁(67개국) ★ 이 당시 민족의 최대 과제 2가지는 무엇일까? 친일파 척결과 민족통일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결과-역사바로 세우기 실패-정통성 없는, 정의가 없는 사회+자본주의-돈 많은 것이 장땡, 천민자본주의 -민족지도자들의 선택에 대한 평가 우리의 최대 민족 과제를 볼 때 그 노선만으로 평가를 해보면 여운형의 중도좌파 지향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성공을 했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남북 분단의 원인과 한국 전쟁 미소의 냉전과 민족의 분열 →활동-자료 읽기 -민족지도자들의 선택에 대해 쓰고 자신의 생각 써보기 -임시 정부 김구 선생이 개인 자격으로 쓸쓸히 들어올 때의 심정 써 보기
|
선생님 짱!!!
저의 두서 없는 설명을 이렇게 잘 정리하시다니요~~
용판무죄...... 정말 뻔뻔한 세상이죠~
역사속에 수많은 어리석은 판단과 악행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당대 사람들은 바보야? ' 하고 생각했던 일들이 요즘 시국을 보면 '아~~~ 이래서 그런 바보같은 일들이 벌건 대낮에 일어나고 그렇게 나라는 엉망으로 꼬이는 구나 ' 하는 생각이 들고 역사 속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이해가 갑니다.
권은희씨를 어떻게 응원할까요?
우리 모두 이름을 이 기회에 은희로 개명이라도 할까요? 정말 그러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이들과 수업하다 보면 이런 시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될 때도 있고 선생님들께서 물어 오실 때도 있어요. 저는 일부러 말하지는 않아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거나 가끔 이런 내용을 묻는 경우에만 잘 설명해 주지요. 너무 현재에 막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선생님만 앞서 가면서 설명하기 보다는 역사 논술 수업에 충실하려 합니다. 논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정의감을 갖게 하는것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역사 논술이건 그냥 논술이건 꾸준히 하다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깊이가 생길 것으로 믿거든요.
가끔 지독한 보수 집안 아이들은 저의 수업을 힘들어 하고 늘 갸우뚱 하거나 부모님하고 생각이 안 맞아서 하다가 결국 그만두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시사적인 이야기를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이런 공부를 계속하면 쓸데 없는 생각에 휘둘린다고 보는 학부모들이 있거든요. 가령 예를 들면 그런 분들은 가난한 사람은 다 게으르고 기부나 적선은 그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니 논술 수업이 대입때문에 하기는 해도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럴 때 저는 그런 부모님이나 아이들에게 더 강조해요~
정의감이라고 해서 대단한게 아니고요~ 몇 년전 두아이의 경우를 말씀드리면 금방 이해가 갈 거에요~
한 아이는 논술을 2년 정도 했고 한 아이는 시작한 지 얼나 안되는 아이였어요. 두 아이 다 꿈이 의사였는데 오래 공부한 아이는 노만 베쑨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구요, 다른 아이는 돈 많이 벌어서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지요~~~ 이게 논술의 힘이구나 . 대단한 지식을 주는 것 보다도 아이 마음 속에 정의 로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씨앗을 심어주었구나 하고 참 뿌듯했습니다.
저는 역사 논술 수업을 충실하게 해주다보면 제2의 제3의 권은희씨 같은 자기 분야에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요~
지난 번 교학사 교과서 파동 났을 때 보수쪽 인사가 학교에 있는 역사 선생들은 다 좌파라서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에 혼자서 막 웃었어요. 맞는 말이니까요. 좌파라는 말이 웃기지만 보수입장에서는 정의로운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좌파라고 하잖아요. 역사공부를 하면 당연히 무엇이 옳은 지 저절로 알게 되잖아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바보인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