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푸른 빛은 사람들에게 청아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간 들뜨고 어수선하기도 했던 들살이 이틀이 이번에는 좀 여유있고 차분했습니다.
봄 여름 내내 가꾸어 오던 먹을거리들을 수확하는 과정에서 마음에도 풍성함이 하나 가득하여 아이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고구마 줄기를 걷고 따가운 야콘 줄기를 뽑고 매운 고추를 다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 아이들은 두 시간도 안 되어 모든 일을 끝내고 운동장을 뛰어 다닙니다.
줄기들로 엉킨 밭이 훤해지고 모둠별로 골을 맡아 야콘도 캐고 고구마도 캤습니다.
야콘을 캐보니 오랜 가뭄 끝에 모두 터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지만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야콘에게는 참 고통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구마는 땅 속 깊이 박혀 아이들을 한참이나 붙들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고구마 모양도 보고 색깔도 보고 흙 속에 사는 애벌레도 같이 보고 친구들과 손으로 살살 파면서 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좀 매울법한데 어린 동생들은 고추 줄기에 달려있는 고추를 다 따고 고구마를 캤습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고구마, 야콘을 간식으로 깎아 먹고 배추와 무를 솎아내고 무도 깎아 먹었는데 처음 먹는 맛이라며 좋아합니다.
밭일을 끝내고는 개울, 운동장, 모둠 방에서 좀 쉬는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잠시 동안 깊어가는 가을밤을 함께 맞았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밤이었지요.
짧은 시간의 연습이었는데 멋지게 해내는 아이들이 대단합니다.
까불기만 하고 그저 놀 줄만 아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강한 의지를 갖고 힘을 모을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간식으로 호박죽을 만들고 호박전을 만들었습니다.
호박을 자르고 깎고 속을 파 내고 새알도 만들고...
다음해에는 저녁식사 한 끼를 스스로 만들어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산으로 힘껏 걷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을 찾았습니다. 좀 덜 험한 산이었지요.
중턱에 서서 아래를 보니 이제 조금씩 물들어 가는 산이 참 푸근합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산으로 오릅니다.
신선한 공기와 조금씩 흐린 하늘이 맑아 오면서 몽롱한 마음과 몸을 깨웁니다.
계속 이어지는 무덤...
아이들은 처음엔 좀 예의를 갖추더니 나중에는 왜 이리 많냐고 하면서 오릅니다.
산 중턱에 앉아 전날 밤의 감동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산새나 산에 사는 동물들도 좋았을까?
분명 자연의 소리니 좋아하지 않았을까?
내려와서 차에서 먹을 간식을 만들었습니다.
가져온 도시락통 크기만큼 주먹밥을 만들어 넣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큰 덜 가져오는 건데...
여지저기서 아쉬운 소리.
가을은 화려했던 지난날을 접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모두에게 따뜻하게 전해졌으리라 봅니다.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먼 미래를 보고 사는 자연에게서 참다운 삶의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