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톱날에 베어 엄마와 헤어진 그날을 기억합니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라는 엄마의 비장한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언니오빠들과 한 바구니에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남자분이 오더니 우리를 들어올려 동그랗게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언니들과 오빠들이 하나 둘 책상에 놓이고 나는 맨 마지막으로 한 여자의 책상위에 놓였습니다. 

그 여자는 처음에는 돋보기로 나를 구석구석 살피더니 꺼끌한 종이로 내 피부에 가열찬 스크럽을 해댔습니다. 처음에는 무지 따가웠지만 엄마와 떨어져있느라 푸석했던 피부가 고와져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각질이 벗겨지면서 매력포인트인 나이테도 선명해지고 다시 미모에 물이 오른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벗겨낸 내 각질을 털어내고 알록달록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쓰는가 싶더니 양초로 사정없는 마사지를 했습니다. 간지러워라. 


앗!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언니, 오빠....

그러다 전보다 훨씬 더 작은 그러나 따뜻한 불빛이 나를 비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언니 오빠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기운은 서서히 중심에서 사방으로 스미었고 노곤노곤한 상태로 살펴본 내 몸은 전보다 더욱 선명한 색이 되어 원숙미까지 느껴졌습니다. 

여자는 나에게 가죽끈을 달았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제가 새긴 이름은 그 여자의 이름이었습니다. 엄마가 목에 걸고 있던 '단풍'이라는 이름표. 얼마나 부러웠던지요. 저 또한 이 여자의 목에 걸리며 여자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단풍나무 엄마의 철부지 막내에서 내 앞, 나를 공들여 다듬고 꾸민 이 여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면서, 춥고 덥고 눈오는 날을 지나면서, 이 사람이 만날 세상을 만나고, 이 사람이 맺을 인연과 인사할 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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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지만 올려야겠죠?    - 이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