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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다음시간 발제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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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왜 우리는 <사피엔스>를 공부할까?


00. 들어가며


 만약 어떤 남자가 시카고 갱단에서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살아왔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굉장히 빠른 총잡이이고 의리 있는 친구를 여러 명 거느린 능력 좋은 사나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이 추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가 생존해 온 조건, 성공해 온 조건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성격에 관해서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 인류가 생존해온 조건들을 유발 하라리의 관점으로 정리해본다면, 4차 혁명을 앞둔 우리는 로봇과 다른 인간만의 성격 및 특징에 대한 답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01. 실낙원과 오래된 미래 


실낙원은 수렵 채집의 종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밀턴이 쓴 유명한 고전 '실낙원'은 바로 아담과 이브의 낙원추방을 기본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단군신화와 성경의 실낙원 이야기는 믿기 어렵겠지만 완전히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군신화는 우리 역사의 첫머리를, 실낙원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단군신화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회가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되는 과정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실낙원 이야기는 어떤 구조일까? 먼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자.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제외한 어떤 과일이라도 따먹을 수 있었다. 또 에덴동산에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었을 테니 그것들로 잡아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개천이 있었으니, 그 속에서 자라는 물고기나 조개류도 잡아먹었을 것이다. 이런 생활을 학술적인 용어로 바꾸면 바로 채집, 수렵, 어로이다. 채집, 수렵, 어로는 중동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생업활동이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을 양치기였다. 역시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바꾸면 카인의 생업은 농업이고, 아벨의 생업을 목축이다. 즉 카인과 아벨 단계에서 농업과 목축이 시작된 것이다. 농업과 목축은 역시 중동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시작된다. 이러한 변혁을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고 한다. 에덴동산에 쫓겨난 인간들은 농업과 목축을 시작한 셈이다. 결국 실낙원 이야기도 수렵, 채집, 어로에서 농경, 목축으로, 시대적으로 말하자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전환되는 국면에 대한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야기가 인간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을까?


 인간들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의 일들을 기억하게 된 것은 그만큼 그 사건이 많은 여파와 충격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단군신화에서 청동기문화인들이 한반도로 왔을 때 그곳에서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신석기문화인들은 쑥/마늘/동굴로 은유되고 있는 억압과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시대의 이야기에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구석기인은 구석기인대로 신석기인은 신석기인대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동이나 이집트지역에서 신석기시대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고 이어서 국가가 성립되면서 인간들은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평등하고 사유재산이 없던 시대로부터, 국가에 편입되면서 위로는 왕, 귀족, 사제들이 생기고 많은 일반사람들은 농경과 목축, 혹은 다른 노동에 종사하면서 국가를 지탱하는 기층민이 되었다. 초기의 농경은 자연의 변덕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안정적인 수확을 보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농경과 목축은 수렵 채집 어로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는 생업이므로, 사람들은 그전에 비해서 더 오랫동안 노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에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은 향상되지 않았다. 농업과 목축의 시작으로 사회에 잉여가 발생하면서 전쟁과 약탈이 일상화된다. 그러자 전쟁과 약탈을 억제하고 사람들은 지킨다는 명분을 가진 국가가 생겨난다. 그러자 이번에는 절반 이상의 수확량을 국가에 납부해야 했을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기근상태를 면하기가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업 이외에 국가가 요구하는 노동에도 참여해야만 했다. 국가가 일으키는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농경과 목축은 인간들에게 반드시 축복이었던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커다란 재앙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농경과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 켠에서는 여전히 구석기단계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농경이나 목축을 하는 신석기인을 보면서도 이러한 새로운 생업을 받아 들이지 않은 구석기 문화가 보고되고 있다. 구석기인의 삶은 물론 자연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신석기인들처럼 지속적인 노동에 시달릴 필요도 국가의 착취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물론 때로는 신석기인들에게 사로잡혀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신석기문화로 이행하는 초기에는 광범위하게 신석기인과 구석기인이 공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는 신석기인들의 눈에는 구석기의 삶이야말로 낙원이었을 것이다. 자기들이 떠나온 낙원이었던 셈이다. 에덴동산은 신석기인들의 눈에 비친 구석기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간 최초의 유토피아이다. 에덴동산은 하느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고통에 시달리던 신석기인들이 꿈꾸었던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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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오래된 미래


 행복경제학의 대가인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물질적 풍요로움이 인간에게 근본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를 벗어나 지역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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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라다크(Ladakh)의 사례를 통해 세계화 폐해에 대항하는 지역성 회복 운동을 펼치고 있는 호지는 <오래된 미래>라는 저술의 역설적인 제목처럼 오래된 라다크의 문화 속에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라다크의 전통 사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자립과 자존감, 검소함, 조화와 지속성, 내면적인 풍요로움 같은 것들로서, 이미 지나간 ‘오래된’ 것에 우리가 찾는 ‘미래’가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았다. 지역화(Localization) 이론으로 무장한 호지는 세계화를 주도하는 대기업의 횡포와 정치적 함의를 공격하면서 경제적 지역화가 우리에게 선한 행복을 제공한다는 이론을 행복의 경제학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추가 자료 읽기 : 현대사회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행복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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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간디가 산업주의에 대해서 그의 후계자였던 네루와 갈등을 빚었던 것은 널리 알려졌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그의 산업주의 비판이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복고주의에 기댄 것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네루가 좇는 산업사회가 결코 평범한 인도 사람 대부분의 행복과는 관계가 없음을 냉철한 현실분석을 통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확히 묘사한다. 


 "뭄바이의 공장 노동자는 노예가 되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상황은 충격적이다. 공장이 없었을 때 이 여성은 굶주리지 않았다. (…) 공장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다른 부자보다 나을 가능성도 없다. 인도인 록펠러가 미국인 록펠러보다 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난한 인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부도덕을 통해 부유해진 인도는 자유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인도가 산업사회가 될수록) 가난한 마을 사람은 외국 정부에 착취당하고 또 같은 나라 사람, 즉 도시 거주자들에 의해서 착취당한다. 그들은 식량을 생산하고 굶주린다. 그들은 우유를 생산하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우유를 먹지 못한다. (…) 인도 마을 사람은 신선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가장 신선한 식품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기계 자체라기보다는 기계에 대한 '열광'이다. 그 '열광' 때문에 결국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 굶어 죽게 된다. (…) 오늘날 기계는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착취하는 것을 도와줄 뿐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추진력은 노동을 줄이려는 박애정신이 아니라 탐욕이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이다."


 "우리는 슬픔도 고통도 없는 나라에서 산다네. 환상도 고뇌도 없고, 미혹도 욕망도 없는 곳. 사랑의 강 갠지스가 흐르고 온갖 피조물은 기쁨이 가득한 곳. 모두의 마음이 한 곳으로 흐르고 시간의 흐름을 느낄 일이 없는 곳.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곳; 이곳에서 모든 교환은 정당하고 모두가 같은 틀에서 만들어지네. 결핍도 근심도 없고 어떤 모습의 이기심도 없네. 높은 이도 낮은 이도, 주인도 노예도 없는 곳; 모두가 빛이지만 불타는 연기는 없네, 그 나라는 그대 안에 있으니-스와라지 스와데시, 그대 마음속의 고향-승리! 승리! 승리! 그것을 갈망하는 이가 그것을 이루네."


02. 공진화와 살인


 공진화는 모든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어느 구성원의 선택은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전략에 대한 최선의 대응에 의한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든 기술적 진화든 관계없이 진화는 공진화의 결과물이라고 가정한다. 공진화라는 개념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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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잡기 위해 경주를 벌이지만 결국에는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왕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는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해." 근래에 들어서는 이것이 자연선택이 왜 적대적 공진화[antagonistic co-evolution]를 일으키는지를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한 종이 살아남으려면 자기 적수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맞추어 자기도 쉬지 않고 적응해야만 한다.


 붉은 여왕 가설은 1973년에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른[Leigh Van Valen]이 제안했다. 다양한 화석들을 연구한 후에 밴 베일른은 지질학적 수명에 상관없이 멸종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로운 진화 법칙[A New Evolutionary Law]’이라는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려다 번번이 거절당하자 그는 아예 자기가 〈진화론[Evolutionary Theory]〉이라는 학술지를 만들어 거기에 그 논문을 발표했다. 


 밴 베일른은 붉은 여왕 가설을 이용해 종은 종의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 적응해야 한다는 ‘멸종 속도 일정의 법칙[law of constant extinction]'을 설명하고, 종 사이의 갈등이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이끌어낸다고 주장했다. 밴 베일른은 이것을 제로섬 게임이라 불렀다. 이것은 승자는 없고 오직 멸종되는 패자만 존재하는 게임이었다. 그 후로 그의 비유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이용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진화생물학자 존 재니키[John Jaenike]와 W. D. 해밀턴[W.D. Hamilton]이 주장한 성의 진화다. 하지만 붉은 여왕 가설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성 간의 싸움, 이기적 유전자 요소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붉은 여왕은 천적을 만들어낸다. 갈등은 결국 생태계의 한정된 자원, 특히 먹잇감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결국 ‘피해자’, 그리고 그 피해자로부터 자원을 훔쳐가는 ‘착취자’ 사이의 적대적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 모든 숙주 vs 기생생물, 포식자 vs 피식자, 식물 vs 초식동물 상호작용이 이런 착취자 vs 피해자 관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식물과 초식동물 사이의 직접적 갈등은 명확하지 않다. 식물은 여러 생물 종에게 먹히므로 둘 이상의 적대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생생물들은 단일 숙주에 적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특성과 유전적 변이로 드러나는, 기생생물의 공격과 숙주의 방어 사이의 관련성은 결국 둘 사이의 군비경쟁으로 나타난다.


 공진화의 관점으로 따져보면, 인간이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선설), 생존과 상관없이 동족을 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라는 점은 인간만의 또 다른 특성을 생각하게 한다. (성악설) 게다가, 동족을 살해하는 인간의 이러한 범죄성은 심리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범죄 자체도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다양한 패턴으로 변화해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인간 범죄의 역사가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주창한 욕구 단계설과 비슷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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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린 윌슨 <인류의 범죄사>에 따르면, 인간의 초기 문명부터 19세기 초까지는 1단계인 생리적 욕구(음식)와 관련된 생존형 범죄가 대부분이었고, 이후 2단계인 안전의 욕구(집)와 3단계인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섹스와 호감, 인정)와 연관된 주거침입, 강도, 성범죄가 출현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는 4단계인 존경의 욕구와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련된 범죄로 접어들었다.


03. 가상의 실재와 노래 그리고 간절함 


음악의 객관성 (논리적 학문으로 음악을 분석하다)


 음악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리적인 소리의 울림인가, 악보에 적혀있는 음표인가. 물리학자라면 음악을 ‘소리의 울림’으로 볼 것이고 음악학자에게는 ‘악보의 음표’로 볼 것이다. 음악의 가치는 그 자체의 가치이며 순수하게 음악적 영역 안에 있다. 불변하는 존재와 형상을 절대적 진리로서 이상화시키는 합리주의자에게 음악은 질서 정연하고 패턴화되고 체계적이며 규칙과 원칙의 산물이다.


 음악이란 작곡기법의 합리성과 논리성에 초점을 두어 음악과 수학적 개념과 연계시킨다. 음악의 경우 음 자체에 미적 특질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 미적 경험을 하려면 음 외적인 세계에 들어 갈 필요가 없으며 예술 경험은 형식 그 자체를 인식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형식주의적 관점을 선호하는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이러한 경험들의 객관성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음악은 잘 구성된 움직임에 대한 학문이다.(musica est scientia bene modulandi)” 여기서 “잘 구성된 움직임”이란 올바른 움직임을 시간의 척도와 시공간에 전제된 것으로 여기에는 수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아름다움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온 전통적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미적 가치(아름다움의 본질)를 형식적인 관례 혹은 초월적 이념으로 파악한 것이다. 다양한 화성과 리듬으로 구성된 음악작품 속에는 수와 관련된 요소가 다양하게 발견된다. 전통적 장르에 속하는 작곡기법 역시 숫자와 수의 비율관계로 설명되며 음악구성의 수리적 이론에 수를 통한 음악의 상징적-미학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예로부터 아름답고 안정된 형상을 공통으로 추구해 왔다. 자연의 속성에 내재되어 있고, 인간이 보고 느끼기에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안정적인 비율이 황금 비율이다. 황금비는 건축과 조각, 회화와 공예 등 조형예술의 분야에서 통일감을 주는 하나의 원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예: A4용지, 명함, 인체, 달팽이의 나선. DNA의 나선구조, 오페라하우스, 파리의 개선문, 스핑크스, 파르테논 신전, 석굴암 불상, 스트라디바리우스: f 홀(울림구멍)자리, 바이올린 몸체의 길이와 너비)


 그리스인들은 수와 비례를 가리켜 “로고스(Logos, 이성)”라고 말했다. 수와 비례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법칙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음악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수학적이라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490)는 최초로 음정을 수적 비율관계로 분석하여 설명하였으며 황금분할(1개의 수평적인 선을 길고 짧은 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전체의 길이와 그 긴 쪽과의 비례가 긴 쪽과 짧은 쪽과의 비례가 일치하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음악에서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은 각각의 숫자가 앞선 두 숫자의 합이다. 예, 1, 2, 3, 5, 8, 13…)이 황금비를 만들어낸다. 2/1, 3/2, 5/3, 8/5, 계속 계산하면 1.618이란 황금비에 수렴한다. (음악에서 한 옥타브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8음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피아노의 건반은 한 옥타브를 13개의 음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으며 이 중 하얀 건반의 8개, 검은 건반이 5개있고 하얀 건반은 3개와 5개, 검은 건반은 2개와 3개로 구분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2,3,5,8,13은 피보나치 수열이다.)


 특히 20세기 헝가리 현대 음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의 형식이나 화성면에서의 황금분할의 법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새로운 주제의 도입, 악기의 배치, 음색의 변화 등의 시점을 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의 마디를 나누고 황금 분할점에 클라이맥스를 두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 밖에도 황금분할과 유사한 수법을 사용한 작곡가는 바흐, 모차르트가 있다.


 라모(Jean Philip Rameau,1683-1764)의 <화성론> 역시 합리주의적 성향을 반영한다. 그의 이론은 배 음렬로부터 화음의 법칙적 도출을 주장하고, 일상 관례적인 화음 진행 규칙을 해명한다. 라모는 또한 음악의 협화음과 불협화음,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패턴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공유되는 본유적인 성향으로부터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이와 같은 발견들은 음악의 근저에 있는 합리적 본성에 대한 강력한 증명이었다. 라모는 표면적으로 ‘자연’과 ‘자연스러움’을 매우 강조하는 작곡가였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기에 걸친 고전파 음악(1740-1810)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적 사상의 기초 위에 균형 잡힌 잘 다듬어진 형식과 명쾌한 화성을 바탕으로 한다. 음악 양식은 장단조의 기능화성법에 의한 수직과 수평의 조화 및 그것에 기초를 둔 형식의 확립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다. 형식이란 악곡을 구성하는 틀을 의미한다.


 대위법이나 화성법이 한 시대의 음악 양식과 연관되어 전개되었듯이 음악형식에 대한 이론은 순수 기악 음악이 융성한 고전주의 시대부터 나왔다. 전체의 악곡은 여러 악구로 나누었고 이 악구가 모여 악절이 된다는 설명이다. 또 악절이 모여 한 부분을 이루고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 또는 전체가 몇 부분으로 나누어지는지 등을 살피는 과정에서 형식이론이 발달했다. 투명한 호모포니의 조직, 짧은 악절 등으로 형식을 강조하였으며, 형식 그 자체를 구성미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고전파 시대의 조성감과 화성에 있어서도 합리적 통일성을 유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음 자체에 의한 구성과 형식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절대 음악이 고전파 시대의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18세기, 19세기를 통해서 소나타 형식(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3중주)으로 된 악장을 묘사, 설명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나타났다. “소나타 형식”이라는 용어, 그리고 소나타 형식을 2부가 아닌 3부로 보는 관점은 독일의 음악이론가이자 비평가, 편집인, 작곡가, 분석가였던 마르크스(Adolf B. Marx, 1795-1866)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소나타 형식은 당대의 음악 실제를 ‘설명 기술’하는 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음악작품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유기체의 특징은 ‘유기적 통일성'(organic unity)과 ‘발전적 성장'(developmental growth)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모티브는 ‘씨앗’과 ‘추진력, 충동’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소나타 형식은 음악 전개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며 음악적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이들의 모양을 만들어주는 일종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우는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 Mozart, 1756-1791)의 음악을 한마디로 함축시키자면 조화와 균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화성적으로 가장 최적화된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의 명쾌하고 간명한 구조, 선율의 특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소나타 형식이 황금분할의 비를 나타내고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음악에 보통 도입부, 전개, 절정, 그리고 마무리가 있는데 이러한 특이점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황금비율을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음악의 약 2/3지점에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만 하다.


 음악을 자율적인 형식으로 보는 한슬릭(Edward Hanslick,1825-1904)은 음악이란 감정이 아닌 아름답게 패턴화된 소리라고 논증한다. 그는 음악의 가치가 순전히 음악적인 문제이며 음악이 객관적으로 제시될 때 이것을 완전히 지각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슬릭은 음악가들에게 음악 양식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을 제공해 주는 분석의 주된 목적은 “작품 본위’여야 하기 때문에 음악작품의 존재방법과 구조 즉, 음악작품 그 자체를 완결한 음악형태로서, 존재하는 유기체로서, 유기적 생성으로서 다룰 것을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분석을 행한 사람이 쉔커(Heinrich Schenker,1868-1935)이다. 20세기 음악이론가로 활동한 쉔커는 음악적 진행의 의미와 음악적 결합력의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음악을 진행의 유기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문을 연다. 쉔커는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작품의 원형인 근본구조가 ‘어떻게 펼쳐지는 가’의 문제를 중요시하였다. 쉔커식 분석의 목표는 작품마다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 이 근본구조가 음악의 표면층으로 펼쳐져 나가는 고유의 특징적인 과정을 밝혀내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생각과 쉔커의 근본 구조 개념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은 19세기 대표적인 작가이며 과학자, 유기체 철학자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의 식물학 논문에서 수많은 식물들의 형태들은 ‘원형 식물’혹은 근원 식물(Urplantz)의 변형이라고 논한다.


 모든 음악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화음 즉 자연에 있는 ‘음향’으로 환원된다고 하는 쉔커의 음악관은 모든 음악이 자연배음의 밑음으로 환원된다는 생각으로 압축될 수 있다. 쉔커 이론은 특히 1960년 이후 수학의 집합이론(Set Theory)으로 음렬주의자(12음기법을 사용한 작곡가, serialist)들에게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했다.


원전 연주 (고 음악을 다시 듣다)


 음악작품은 본래의 음향 형태로 울려 퍼질 때 가장 듣기 좋기 때문에 해당 작품의 전체적인 역사적 관계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음악 내용의 정격성은 연주가가 작곡가의 본래 의도와 음악 본연의 정체성 즉 진정성의 요구와 작품의 충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격음악이라 불리는 원전 연주는 변질된 현대 악기에 의한 연주법으로부터 옛 음악(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의 본래의 순수성을 되살리자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작곡 당시의 여러 가지의 음악적 논리와 어법(악기, 해석방법, 악기 편성)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연주 방식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시작한 인물 중 한 사람이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1929- )이다.


음악과 종교성 (음악은 하늘과 통하다)


 종교가 시작되면서 음악이 발달했다. 일반적으로 종교와 문화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특히 가톨릭교회가 유럽문화 형성에 큰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서양 중세는 그리스도교적 세계라는 이름의 사회적, 종교적인 통일체가 육성되어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윤리 그리고 지성(知性)이 점차 유럽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중세는 종교(교황)가 지배하는 사회였던 시기로 모든 문화는 종교에 구속되어 있으며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음악은 영성을 더욱 강하게 해주고 절대 신을 느낄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교회음악이 발달하였고 교회음악을 바탕으로 고전음악(클래식 음악)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태동하게 된다.


 교황 그레고리오(Papa Gregorio Magno, 540-604)가 성가의 통일 정책으로서 가창학교(Scola Cantorum)를 세우고 성가를 여러 지역에 전파함에 따라 생겨난 것이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전례인 미사를 비롯한 교회의식에서 사용되는 모든 무반주 단성성가를 총체적으로 뜻한다.


 미사의 기원은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며 기리는 의식(영성체)에서 비롯되었다. 가사는 종교적 성격을 띤 라틴어로 되어있으며 물질 숭배 사상을 배제하던 교회에서는 물질로 만들어진 악기는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남자 신부만의 목소리로 된 가사 붙은 성악음악만이 존재하였다.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1098-1179)은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며 다방면의 연구를 통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힐데가르트는 구약 이후 기본적으로 신의 모습에서 여성의 면을 부각한 첫 인물로, 남녀 모두가 신의 모습을 본 따 창조되었으므로 여성은 종종 하느님의 여성적 측면을 드러낸다고 보았으며, 남녀가 신 앞에 동등한 ‘사람’임을 말했다. 이를테면 신의 여성적 측면을 드러내는데 구약의 인물 소피아(Sophia, 지혜의 상징, 여성성)를 꺼내 구체화한다.


 11세기 음악이론가였던 귀도 다렛쪼(Guido d’Arezzo, 990-1050)는 기억하기가 어려운 그레고리오 성가를 빠른 시간 안에 성가를 배우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는 음악사적으로 기여한 공적 중 6개의 음들(ut re mi fa sol la)에 근거하는 계명창(solmization)의 발명자이며 새로운 기보체계, 즉 보표 선의 도입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선과 칸을 통한 정확한 음높이 기보체계를 발전시켰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가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깊은 종교적인 신앙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90% 이상이 종교음악) 그가 음악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으며, 이러한 그의 신앙은 그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아들 C.P.E.바흐는 모든 바흐의 가족들은 “모든 일들을 종교로 시작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의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바흐는 종교적인 음악과 세속적인 음악을 실제 구별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세속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그의 <Little Organ Book>의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은 헌정사를 써 놓았다.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해 여기에 쓰여진 이 책이 하나님에게만 찬양을 돌릴 지어다.”


 더 나아가 바흐는 악보를 그리는데 선택된 숫자를 종교적 의미와 메시지를 부각시키는데 사용하였다. 그는 음악에 대한 지적 노력의 분출, 이성 및 논리의 표현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위법은 또한 철학적 사색과 동일한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베토벤,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등에 다양한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음악의 구조를 수평적인 시간 축과 수직적인 화성으로 나눌 때 서양음악에서 다루는 대위법은 음정이나 화성학에 바탕을 두었기에 수직축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대위적이라는 개념을 시간 축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긴장과 이완을 이룰 뿐 아니라 수평적으로 이웃한 소리와 어울리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때 모든 음들은 주위의 음들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유지하며 긴장감을 유도하고, 듣는 이에게 심리적인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논리적 사고, 푸가, 대위법 작곡기법)


 바흐가 목적의식에서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수 많은 종교음악을 남긴데 반해 헨델(George F. Handel,1685-1759)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종교관으로 웅대하면서 화려한 오페라 성향의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신실한 신앙심을 지녔던 헨델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나 종교적인 내용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교회나 음악회장에서 연주되는 대규모 악곡인 오라토리오(Oratorio)를 32곡 작곡하였다. 그의 오라토리오의 본질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모체로 하는 보편적 윤리적인 관념을 전개하는데 있었다.


 20세기 전환기에 활동한 러시아의 진보적 작곡가이자 신비주의자라 불리는 스크리아빈(Alexander Skriabin,1872-1915)의 음악에는 니체와 동양철학의 영향이 표현된다. 그는 신지학(Theosophy)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음악관을 확립했으며 음악을 통하여 세계의 조화와 무한한 환희의 경지를 재현하려 했다. 예술을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이며 예술가를 <예술의 정신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는 종교가>로 이해했다.


 스크리아빈에 이어 20세기 신비주의자인 메시앙(Olivier Messiaen,1908-1992)의 음악세계는 정교한 음악적 논리와 신비주의를 결합시켜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준 프랑스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의 표현적 측면과 구조적 형성에 깊이 영향을 끼친 것은 기독교적인 신앙이다. 그에게 음악은 개인적인 표현 수단뿐 만 아니라 신이 지은 세계의 아름다움의 완벽함을 주관적으로 형식화 하는 과정이자 도구였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안에 간절한 것을 몸의 신호로 터트리기도 한다. 그래서 노래를 통해 절망과 고통을 이겨냈으며, (노동요, 재즈, 데모가 etc) 내 안에 갇혀 있던 슬픔과 기쁨이 터져 나와 감동이라는 매개체로 마음이 연결되어 힘이 모아진다. 그래서, 한국인은 단합을 위해서 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노래를 부르러 노래방으로 가는 것이었다. 


[꽃의 노래]  


꽃이 핀다는 것은 

아픔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


꽃이 핀다는 것은  

아픔을 스스로 견뎌 냈다는 것


꽃의 향기가 퍼지는 것은

고통과 슬픔을 초월했다는 것


꽃이 아름답고 그리운 것은 

꽃의 노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꽃이 된다는 것은 

봄이 온다는 것은 


이러한 꽃의 눈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04. 불과 홍수 그리고 온난화 


 사피엔스는 불을 사용하면서, 생태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불의 사용으로 많은 나무들이 없어지게 되고, 이에 따라 자연의 홍수 제어 기능이 사라지게 되었다. 당연히, 이전보다 홍수는 많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신화에서 대홍수에 대한 사건을 기록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불과 대비되는 지구 온난화로 또 다시 대홍수에 버금가는 환경적 재앙이 시작되고 있다. 미세먼지를 필두로 시작되는 이번 환경 변화에서도 사피엔스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길가메쉬.JPG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홍수 이야기다. 우드나피시팀의 이야기에서 보듯 신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 소란스러워지자 인간을 벌주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성경에서도 신은 사악하고 교만해진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이런 면에서 길가메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닮은꼴이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없다. 生이 있으면 반드시 滅이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홍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mortality)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필경 죽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운명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려 애를 쓴다. 길가메시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공포를 겪은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불멸의 길을 찾는 데 매달린다.


 “우루크(Uruk)의 지배자 길가메시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왕으로 3분의 2는 신, 3분의 1은 인간인 초인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의 압제에 불만을 터뜨리자 天神 아누(Anu)(수메르어로는 안)와 母神 아루루(Aruru)는 길가메시의 힘을 낮추기 위해 엔키두라는 힘센 야만인을 만든다.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싸우고 예상외로 길가메시가 이기자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삼나무 숲의 괴물 파수꾼 훔바바를 정벌하는 모험에 떠나 그를 죽이고 우루크에 돌아온다. 길가메시가 여신 이슈타르(Ishtar)(수메르어로는 이나나)의 유혹을 뿌리치자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징벌하기 위해 하늘의 황소를 내릴 것을 요청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하늘의 황소를 죽인다. 신들은 엔키두가 훔바바와 하늘의 황소를 죽인 데 대해 분노하고 엔키두를 죽인다. 친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듣기 위해 죽지 않는 유일한 인간인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과 그의 아내를 찾아 나선다. 고생 끝에 우트나피시팀을 만나 대홍수에 대해 전해 듣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얻지만 모두 실패하고 우루크에 돌아온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목할 부분은 영생이나 불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대홍수 이야기다. 우드나피시팀의 이야기에서 보듯 신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고 소란스러워지자 인간을 벌주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심술궂은 신이다. 성경에서도 신은 사악하고 교만해진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킨다. 이런 면에서 길가메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닮은꼴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핍박과 고난이라고 할 바빌론 유수와 같은 전쟁의 상처가 인류 역사에 예기치 않은 긍정적인 흉터를 남긴 셈이다. 문화의 모방이 그것이다.


 길가메시 홍수 설화에서는 7일간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는 기원전 2348년경에 큰 비가 40일간이나 내려 1년 10일간 홍수가 계속됐다고 한다.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2300년경 동방에도 대홍수가 발생했는데 바로 堯舜시대의 9년 홍수가 그것이다. 또 기원전 3500년경에도 중국대륙에 홍수가 났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물의 신 共工과 불의 신 祝融이 싸워 공공이 졌고, 그래서 그의 무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不周山을 들이받아 산허리가 무너져 웅덩이와 골짜기에 물이 넘쳤는데 이를 여와(女氅)가 보수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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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메시의 홍수설화는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 문화권에서 전해지던 이야기를 기원전 2000년경에 점토판에 기록한 것이다. 수메르 홍수설화의 지우수드라王, 길가메시 서사시의 우트나피스팀, 구약성경의 노아는 배를 만들어 생명을 구했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밖에도 여러 면에서 이들 세 홍수 이야기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 놀라운 것은 또 있다. 알타이 지방의 홍수 설화도 길가메시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은꼴이다.


 “나마(Nama)는 성품이 어질어 天神 텡그리(Tengeri)로부터 큰 홍수가 날 것이니 산 위에 배를 만들어 놓으라는 경고를 받았다. 나마는 소준울, 사르울, 발릭스라는 세 아들을 시켜 큰 배를 만들었다. 곧 홍수가 나서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다. 홍수가 그치고 배가 산꼭대기에 걸리자 큰 까마귀부터 차례로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으나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로 비둘기를 날려 보내니 자작나무 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주인공과 신의 명칭만 다를 뿐 내용은 길가메시나 노아의 방주 홍수 설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찌 된 일일까. 알타이 설화 즉 투르크족 땅의 설화가 수메르나 유대인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문화 보편주의에 기인한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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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위기와 지오엔지니어링


 또 한번의 우연의 일치는 2018년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인류가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해 걷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한 공학적 해결책으로 일부 과학자들이 제안해온 지오엔지니어링은 지구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대규모로 조작한다는 거부감 때문에 오랫동안 과학계 변방에 머물렀다. 가속화하는 온난화가 지오엔지니어링까지 기후변화 대책으로 불러내고 있다.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미국 해양대기청(NOAA) 집계 기준으로 1980~2010년 장기평균보다 섭씨 0.426~0.466도 오르며 관측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2014년 작성됐던 1880년 이후 최고기온 기록이 1년 만에 바로 깨진 것이다. 최고기온 기록은 올해 다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가 관측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엘니뇨와 라니냐를 비롯한 여러 자연적 변수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등 변동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1985년 1월 이후 지난 7월까지 31년 7개월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단 한번도 20세기 평균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관측사상 가장 더웠던 열다섯 해 가운데 열네 해는 2000년 이후에 집중돼 있다. 이것은 온실가스에 의한 온난화가 자연적 기온 변동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지구 온난화 대응을 목표로 한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고 24년이 흘러가고 있지만 온난화 속도는 누그러지기는커녕 갈수록 빨라지는 형국이다.


 세계 190여개 나라는 지난해 말 파리기후회의에서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0도 훨씬 아래에서 억제하면서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기후체제에 합의했다.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면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고, 태평양의 섬나라들과 같이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지역은 1.5도만 넘어서도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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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가 합의한 이 온난화 억제 목표의 달성 전망은 밝지 않다. 각 나라가 내놓은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계획(INDC)이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교토의정서 체제와 달리 새 기후체제에서 온실가스 감축계획 이행은 국제법적 의무사항도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충분치 않고 그나마 이행을 강제할 장치도 없이 온난화 억제 목표만 크게 강화된 것이다. 독일의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를 비롯한 세계 12개 기후변화 전문기관과 대학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은 지난 6월29일 과학저널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은 연구 논문에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파리기후회의에서 약속한 감축계획을 모두 이행하더라도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2.6~3.1도 상승하게 된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모든 나라가 감축 계획을 100% 이행한다는 가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 가능성을 높이려면 결국 각 나라에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지우고, 이것을 반드시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협상 과정으로 미뤄볼 때 세계가 이런 합의에 너무 늦지 않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섭씨 1도 가량 올라간 상태다. 이번 세기말 온난화 억제 목표선까지는 1도 남았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 대응전략을 주기적으로 평가해오고 있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제5차 기후변화평가 종합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면 일부 물리적 시스템이나 생태계는 갑작스럽고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이런 변화를 촉발하는 임계점에서의 위험은 현재 수준 대비 0~1도 온난화 상황에서는 중간 수준이고, 1~2도 추가 온난화에서는 위험도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3도에 이르면 위험이 높은 수준이 된다”고 밝혔다.


수단 뒷받침 안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인류는 온실가스 감축에 성공해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점점 빨라지는 온난화 속도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제사회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누구나 품어봤을 법한 의문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돼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될 상황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과학자들은 이처럼 기존의 기후변화 대응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시간에 지구 온도를 낮추거나 대기 중 온실가스를 제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안해왔다. 이 방안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구가 태양에너지를 받아 반사하는 비율인 알베도(Albedo)를 높여 지구 온도를 낮추는 방안이다. 지구의 알베도를 1.5~2%만 높여도 대기 중 온실가스가 현재의 두 배까지 높아지는 데 따른 온난화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계산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이산화탄소 흡수 작용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키거나 별도의 장치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모두 지구와 기후, 생태계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대규모로 조작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지오엔지니어링’(지구공학) 또는 ‘클라이밋 엔지니어링’(기후공학)으로 불린다.


 알베도를 조작하는 지오엔지니어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로켓이나 항공기, 대포, 풍선 등을 이용해 성층권에 이산화황과 같은 미세한 입자를 대량 살포하는 것이다. 성층권에서 고루 퍼진 입자들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사하게 해 지구의 온도를 신속히 떨어뜨리자는 아이디어다. 이 방안은 대규모 화산 폭발에서 힌트를 얻었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듬해 북반구의 평균기온은 0.5~0.6도, 지구의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섭씨 0.4도나 내려갔다. 폭발 때 성층권까지 분출된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 입자가 지표면으로 내리쬐는 햇빛 일부를 우주로 반사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저명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2006년 과학저널 <기후변화>에서 성층권에 이산화황 150만t을 살포하면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가 산업혁명 이전의 갑절인 550ppm까지 높아지는 데 따른 온난화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50만t은 피나투보 화산 폭발 때 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의 7.5~15%에 해당한다. 성층권 부유 입자 살포는 영국 왕립학회가 2009년 다양한 지오엔지니어링 방안을 검토한 뒤, 기존의 온난화 억제 노력이 모두 실패한 상황을 염두에 둔 ‘플랜 B’를 작성할 경우 포함될 가장 유망한 후보로 꼽은 방안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의 알베도를 조작하는 방안도 비교적 일찍부터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연구가 이뤄져왔다. 전세계 해양의 20~40%는 낮은 고도의 층적운으로 덮여 있다. 풍력을 이용해 바닷물을 분무하는 선박을 띄워 하늘로 수분을 추가 공급하면 구름의 양과 밝기가 증가해 태양 빛을 더 잘 반사하게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미국 국립과학원(NAS)이 미 연방정부 기관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내놓은 지오엔지니어링 검토보고서 <기후 개입>을 보면 이밖에 대기권 밖 우주 공간에 반사체를 설치해 지구와 함께 돌면서 햇빛을 가리게 하는 방안, 사막을 햇빛을 잘 반사하는 물질로 덮거나 건물의 지붕을 흰색으로 칠해 지표면의 알베도를 높이는 방안, 해수면에 햇빛을 잘 반사하는 물질을 살포하거나 흰 거품을 형성해 알베도를 높이는 방안, 대류권 상층을 덮고 있는 권운의 발생과 두께를 조절해 지표와 대기에서 우주로 복사에너지가 더 잘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안 등도 제안돼 있다.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안 가운데는 바다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물질을 살포하는 방안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바다 표층에서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은 철 성분과 같은 영양물질이 살포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대량 흡수하며 급속히 증식한다. 그 뒤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이산화탄소를 해저에 격리시킬 것이란 아이디어다. 이 방안은 지오엔지니어링 방안 가운데 유일하게 상업적 적용이 시도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려는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현장 실험을 추진하면서 해양생태계에 끼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는 결국 국제사회가 2010년 일본 나고야 생물다양성협약 총회에서 소규모 연구를 뺀 모든 지오엔지니어링 활동 금지에 합의하도록 이끌었다.


 숲 가꾸기 과정에서 나오는 간벌목이나 옥수숫대와 밀짚과 같은 농업 부산물을 깊은 바닷속에 그대로 집어넣거나 숯으로 만든 뒤 땅속에 묻는 방안도 많은 과학자들이 제안하고 연구해온 방안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식물에 흡수돼 탄소로 바뀌었다가, 식물이 죽어 부패하는 과정에서 다시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방출되는 순환 과정을 반복한다. 이 순환을 아예 차단하거나 순환하는 속도를 늦추자는 아이디어다.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처럼 암석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과정인 자연의 화학적 풍화작용을 이용하는 방안과 관련된 연구 논문도 많이 나와 있다


‘인공 나무’는 시험 공장까지 생겨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바로 뽑아내 격리하거나 에너지원으로 만들어 쓰자는 이른바 ‘인공 나무’ 아이디어는 연구실을 벗어나 시험 공장까지 진출한 상태다. 미국 하버드대의 기후변화 연구자인 데이비드 키스 교수가 설립한 벤처기업인 ‘카본 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대기 중에서 매일 1t가량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이산화탄소로 탄소 함량이 휘발유의 3분의 1 이하인 연료를 합성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오엔지니어링 연구의 대표적 후원자로 꼽히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이 업체의 주요 투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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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뽑아내 제거하는 지오엔지니어링 시험시설을 운영 중인 ‘카본엔지니어링’이 자사의 시험시설을 대규모로 확장할 경우를 상정해 디자인한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 이미지. 


 이와 같은 지오엔지니어링 방안들은 설령 일부 기술적으론 가능하다고 해도 쉽게 적용할 수는 없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 예기치 못한 부작용의 위험, 막대한 비용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 등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베도를 증가시키는 지오엔지니어링 방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온실가스 증가를 방치해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 바닷물 산성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성층권에 올라간 이산화황 입자는 지구의 생명체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오존층에 피해를 줄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빗물에 섞여 지표로 떨어지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태양에너지 반사율을 높이는 방안들에는 강우량을 감소시켜 식량 생산의 차질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지오엔지니어링을 통해 바다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이상 증식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무산소층이 확산돼 해양생태계 전체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오엔지니어링은 오랫동안 환경단체들은 물론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주류 과학계로부터 지구를 대상으로 한 ‘금지된 장난’으로 취급받으며 변방에 머물러왔다. 지오엔지니어링 반대론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알베도 조작으로 지구 온도를 관리하다 문제가 생겨 중단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누적된 온실가스에 의한 온난화 효과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기후 시스템에 재앙에 가까운 혼란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오엔지니어링 찬성론자들은 지오엔지니어링을 인류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며 온실가스를 감축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수단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지오엔지니어링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해왔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손쉬운 해결 방법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수록 사람들에게 힘들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설득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부정적 인식 때문에 오랫동안 공개적인 논의가 금기시돼온 지오엔지니어링의 위상은 최근 부쩍 올라간 상태다. 외신을 보면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알베도 조작’ 연구를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 상원 세출위원회는 얼마 전 2017회계연도부터 에너지부와 육군 공병단 등의 기관들에 이런 연구를 지원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이 포함된 세출법안을 통과시켰다. 의회의 이런 움직임은 국립과학원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국립과학원의 기후지오엔지니어링위원회, 기후대기과학위원회, 해양연구위원회는 2012년 미국 연방정부 기관들로부터 지오엔지니어링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의견 제시를 요청받고 공동 논의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내놓은 <기후 개입> 보고서에서 “최악의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을 적용해야 될 필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어, 연방 기관들이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알베도 조작에 대해서도 “기후를 바꿀 수 있을 규모로 현시점에서 적용돼서는 안 되지만, 연구 프로그램은 발전시키고 실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과학원은 미래의 정책 결정자들이 알베도 조작 적용 여부를 고심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모델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실제 대기 중에 가스나 입자를 살포하는 것을 포함한 소규모 현장 실험이 유용할 수 있음도 인정했다.


이산화탄소 지하 저장은 핵심 수단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이미 2014년 국제사회에 지오엔지니어링을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2007년 기후변화평가 제4차 종합보고서에서는 지오엔지니어링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협의체가 2014년 제5차 종합보고서에서는 지오엔지니어링인 이산화탄소 제거(CDR)와 태양복사관리(SRM)를 평가한 뒤 “이산화탄소 농도를 의미있게 감소시키기 위해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을 광범위하게 장기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협의체는 특히 이산화탄소 제거 방식 지오엔지니어링 기술의 하나인 바이오에너지탄소포집저장(BECCS)을 온난화 억제에 불가결한 핵심 수단의 하나로 꼽았다. 보고서에서 “많은 (기후변화) 모델에서 바이오에너지와 탄소포집저장(CCS),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BECCS가 제한되면 지구 기온 상승 폭을 2도가 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BECCS는 공기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빨리 자라는 식물을 대량 재배한 뒤 태워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 뒤 지하에 저장함으로써 탄소 순환과정에서 제거하는 방안이다.


 협의체는 태양복사관리 지오엔지니어링에 대해서는 “적용되면 다양한 불확실성, 부작용, 위험 그리고 단점이 뒤따를 것”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향후 논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어느 정도 지구 온도 증가와 그에 따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며 잠재력을 인정하면서 “(태양복사관리 관련) 연구를 조정하고, 실험과 적용을 제한하는 것 등이 국제기구들에 다가오는 과제”라고 평가했다. 지오엔지니어링 가운데 성층권 입자 살포를 포함한 대규모 알베도 조작에 대해서까지 국제기구에서 공개적으로 연구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갈수록 가속화하는 온난화,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턱없이 미흡한 온실가스 감축 등이 지오엔지니어링을 다시 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02] 사피엔스 정리


01.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 : 인간은 언제 생겨났고 어떻게 진화하였으며 어떤 일들로 인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까?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고 문화가 출현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 종들과 눈에 띄게 차이점도 없었고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진화하기 시작했고 뇌를 사용하고, 두 발로 걸으며 점차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도구를 사용하고 두뇌를 사용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결과적으로 먹이사슬 최상위층에 자리 잡게 된다.


02. 지식의 나무 : 인지혁명을 통해 사피엔스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호모사피엔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습득하여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키고 보다 규모가 크고 응집력이 강한 집단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사회적 행태의 급속한 변화와 혁신을 가능하게 했고, 사피엔스는 생물학적 한계 속에서도 다양하고 정교한 역사적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03. 아담과 이브가 보내 어느 날 : 오늘날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현대인의 사회적, 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기나긴 시대에 형성되었다. 사피엔스는 식량 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더불어 자기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터득했다.


04. 대홍수 : 인간이 바다를 넘어 외부세계로 나아간 후인, 4만 5천 년 전부터 지구 생태계는 혁명적으로 변경되었고 지금도 변경되고 있다. 그런데, 그 생태적 변경 중에서, 수렵채집인의 이동으로 멸종의 제1물결, 농업혁명으로 멸종의 제2물결 그리고 산업 활동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멸종의 제3물결을 통해서, 사피엔스는 지구를 생태적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