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강의 나눔터
제 3강 ; 사람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1) 고대 사회의 규정을 도구의 발달 단계를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고대 이후의 역사를 기술할 때는 나라 이름을 써서 구분하는데 비해 고대사회는 그때 사용했던 도구가 무엇이었나를 기준으로 한단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아. 그땐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써서 구분할 수 없었다고? 음. 그것도 맞는 얘기야. 하지만 좀 더 설득력있는 근거는 문자가 없는 시대라서 기록도 없고, 그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적, 유물도 적기 때문에 그나마 발견된 도구의 변화가 발달 단계를 나누는 가장 구체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2) 선사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차이
청동은 구리, 주석, 아연, 납을 섞어서 주조하는 것인데 이러한 청동을 사용하는 도구로 농사기구를 만들어 발전된 농사기술로 농사를 짓게 되니 생산성이 높아지게 되었단다. 높아진 생산성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이는 생산과 소유관계의 변화를 일으켜서 씨족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산과 공동분배의 평등사회에서 불평등사회로 변화하게 되었어.
한편 영토와 노예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전투력에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무기였지. 그래서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당시 청동으로 만든 무기의 개발은 현대의 핵무기에 비견할 만한 큰 사건이었어. 청동 무기를 들고 영토와 노예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씨족보다는 큰 단위의 공동체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왕이 필요해졌고, 그 주변의 관료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점차 계급이 만들어지게 되지.
3) 고조선의 8조법과 부여 법에 나타난 사회의 모습
#8조법의 특징 : -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아야 한다.
- 도둑질한 자는 도둑맞은 집의 노비로 삼는다. 이 때 노비를 면하려면 50만전의 돈을 내야 한다. 사람들은 노비가 되지 않고 평민이 되어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8조법의 내용을 통해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인정했으며 노비와 노비를 부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계급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또한 사람을 죽이거나 상하게 한 경우 그 책임을 무겁게 물은 점을 볼 때 사회적 노동력을 손상함으로 해서 얻는 손실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게 했다는 점, 50만 전이라는 금액을 통해 노비매매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지. 이러한 보복법의 성격은 부여법이나 서양의 함무라비 법전같은 고대법의 특징이란다.
부여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는데 특히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법으로 볼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어.
4) 단군신화 속의 고조선 사회
단군은 천신인 환인의 여러 아들 중 하나인 환웅에게서 태어난다는 점에서 천손사상을 바탕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해석할 수 있어. 외부에서 선진적 기술과 지식을 가진 부족들이 옮겨왔고, 그들이 천손사상으로 자신들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했으며, . 弘益人間과 在世理化를 통치이념으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토착민이었던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있었는데 그들과 결합하여 단군왕검이 태어난 거야. 여기서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차원의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그러니까 여기서는 미개한 백성이 환웅이 속한 선진문명을 가진 부족과 같아지는 것을 뜻하는 거야) 쑥과 마늘을 먹고 일정기간을 동굴에서 버티어내는 것처럼, 일종의 통과의례랄까 입문식이랄까 그런 고통과 시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해. 그건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 아니겠니? 이처럼 신화는 의미있는 해석을 통해, 먼 옛날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우리의 근원적 뿌리를 발견하게 해준단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초기 고대국가의 성립과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